속물 변호사가 본 영화 '변호인'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3. 12. 30.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어느덧 2013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금요일 대표변호사님을 비롯하여 회사 직원들과 함께 조촐한 송년회를 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변호인을 보았다.

 영화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다. 이른바 전두환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감추기 위해 부산 지역 독서모임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엮어 넣은 이른바 '부림사건'의 변호인을 맡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나 또한 개봉하기 전부터 관심있고 지켜보았고 개봉을 하면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직원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섰다. 

  상고 졸업의 백도 돈도 없는 변호사 송우석 그에게는 다른 것은 관심도 없고 돈을 버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했기에 다른 변호사들의 욕을 먹으면서 당시 사법서사(법무사)나 했던 부동산 등기 업무에 손을 댔고 상고 경험을 살려 세무영역에 손을 대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아내와 자식들에게 돈없는 서러움을 안겨주지 않을 정도로 아파트도 장만하고 번듯한 사무실도 차릴 정도로 돈을 번다. 그리고 그를 멸시하던 변호사들은 이제 그가 초호화 요트를 장만했다느니 하며 시기어린 질투를 느낀다. 그렇게 그는 부산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명성을 높이고 어느덧 부산을 벗어나 전국구 변호사로 그의 명성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그렇게 험난한 세상을 스스로 극복해온 그에게 데모를 하여 세상을 바꾸겠다며 뉴스에 나오는 학생들은 그져 데모를 핑계로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그런 문제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 빨갱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도 없는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진우가 행방불명이 되고 몇달이 지나 빨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짜맞혀진 각본에 따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그제서야 변호사 송우석은 그가 어쩌면 의도적으로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던 부당한 국가권력의 횡포를 보고, 거대한 국가권력과 싸운다.

  영화는 즐거웠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가슴 한곳이 먹먹했다. 시골에서 논 몇 마지기를 부쳐 먹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찌어찌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요 시골에서는 이른바 개천의 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물 변호사이다. 변호사가 급작스럽게 너무 많이 늘어나 이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불평하고, 어떻게 하면 사건을 수임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도무지 말도 안되는 사건도 수임한다. 그리고 복잡하게 널부러진 재판기록을 보며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되지도 않는 머리를 짜내며 밤새워 서면을 작성하고 재판 며칠을 앞두고 납기일을 마치듯 그렇게 법원에 서면을 낸다. 그렇다고 영화속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성공한 속물 변호사도 아니다.

  영화 변호인은 속물 변호사로서 살아온 나에게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작은 무엇인가를 끄집어 낸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속물 변호사 일 수 밖에 없다. 송우석 변호사처럼 모든 것을 내던질 그런 용기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싸운다는 것, 거대한 권력과 싸운다는 것 그것은 그렇게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고정된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죽어있는 바위를 살아 있는 계란이 뛰어 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는 힘든 것이다. 오늘도 자신을 버린 채 정의로움을 위해 싸우는 변호인들에게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영화 변호인은 속물 변호사로 살아온 나에게 조그마한 양심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던 그런 영화였다.

해방 이후 법조인 되기 참 쉬웠어요(법조비사 1회)

법조비사 2013. 12. 16.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급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은 당시 조선을 혼동스럽게 했다. 36년간 일제치하에 살아온 민중이나 일제와 협력해 민중을 착취해온 지배계급이나 급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혼동스러운 상황이었다.

법조계도 마찬가지였다. 8. 15. 해방 당시에는 일제치하에서의 마지막 변호사 시험이 치러지고 있었다. 해방 전날 민법, 행정법 시험을 보았고 해방 당일 오전까지 상법이 치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정오 일왕의 예상하지 못했던 항복 선언은 변호사 시험을 중단하게 만들었고, 변호사 시험 응시자들은 오후 시험을 준비하다 그렇게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이에 변호사 시험을 보던 당시 응시자들은 자신들의 책임없이 시험이 중단된 것으니 응시자 전원에게 합격증을 교부할 것으로 요구하였고, 마침 급작스러운 해방으로 법조인력이 턱 없이 부족했던 미군정은 응시자 200여명 중 연락이 된 106명은 변호사 시험 합격증을 교부받고 그해 즉시 판검사로 임용되었고, 일부는 1947년 시행된 변호사 시험의 예비시험과 필기시험을 면제받고 형식적인 면접을 통하여 모두 변호사자격을 취득하였다.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며 일본인 판검사와 형무소관리 등을 모두 파면시키고 한국인으로 대처해야 했는데, 일제치하 당시 대부분의 판검사는 일본인으로 힌국인 판검사는 극히 드물어 대부분의 판검사를 새롭게 임명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미군정 법무국은 서울, 대구, 부산 등 각 지방별로 일제 때 판검사단과 변사호회에서 투표하여 고등법원장, 고등검사장, 지방법원장, 지방검사장 등을 추천해오면 그대로 임명했으며 부장판검사나 평판검사 등은 이들 단체의 추천에 의하거나 특별한 절차도 없이 법무국에서 이력서만 보고 직적 임명하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검사 인원을 충당할 수 없자. 미군정은 법원 검찰 서기 중에서 법과 전문학교 이상을 졸업하고 서기 7년이상 근무한자를 변호사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판검사로 인명하였다.

당시 에피소드를 보면 판검사를 발령을 하루에 약 백명에서 이백명씩 미군정에서 영문타자로 찍어 군정장관의 결재를 받으면 그날 즉시 신문에 보도되었는데 자신이 어느법원 부장판사로 임명되었다는 사실을 신문을 보고 나서야 아는 경우도 허다했다. 현재 판검사로 임관되기 위해서는 여러 시험과 수련을 거쳐야 가능한 어려운 과정을 통과해야 하나 해방 이후 판검사는 변호사 자격이 없어도 서기 경력만 있으면 하루에도 수백명씩 임명되는 그러한 자리였던 것이다. 이렇게 졸속으로 판사들이 임명되었으니 판사의 자질이 없는 이들이 부지기수였고 판결문 하나 제대로 쓸 능력이 되지 아니하여 법원서기가 재판의 결론을 내리고 판결문을 대신 써주는 그런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였고, 판사 재직 동안 판결문 하나 써보지 못한 판사들도 허다했다.

이렇게 졸속적으로 판검사 변호사 등을 배출하였어도 법조인력은 여전히 부족하였고 결국 1947년 9월 제1회 조선변호사시험이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 변호사 시험은 예비시험 합격자, 대학 예과 및 전문학교와 위원회가 동등 이상으로 인정하는 학교 졸업자로서 예비시험 면제자에 한하여 본 시험에 응시 할 수 있었는데, 시험과목은 민법, 상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국제사법, 현법 및 경제학 등이었다.

당시 시험의 특이한 점은 국민학교졸업 지금의 초등학교 졸업자가 상당수 변호사시험에 응시하엿다는 것이다. 제1회 시험은 응시자 807명 중 국민학교졸업자가 무려 156명으로 20%에 달했고, 제2회 시험은 응시자 875명 중 271명이 국민학교졸업자로서 응시자의 약 1/3에 육박하였다. 실제로 국민학교 졸업자 상당수가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당시 변호사 시험은 시험관리 제도가 지금처럼 엄격하지 아니하였던 모양이다. 제2회 변호사시험에 응시한 외무부 정보국장이 공무로 해외에 출장을 가 시험에 응시하지 못했으니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청원하자 합격자 발표 후 이승만 대통령이 특명을 내려 위 공무원은 법무부장관 부속실에서 혼자 시험을 봐 최종합격하는 특이한 사례도 있었으니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 그 당시에는 통용될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만큼 아무런 준비없이 급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은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해방이후 대한민국 법조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판검사는 변호사 자격조차 없는 서기들이 졸속 임명되었고 그런 자격없는 자들에 의해 원님재판이 빈번하였다. 모든 사회 전반에서 그러했겠지만 급작스럽게 찾아온 해방은 대한민국 법조사의 시작도 그렇게 혼동속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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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음주문화는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회식이 있으면 3차, 4차 까지 가는 것이 기본이고, 다양한 폭탄주의 제조방법이 넘쳐나며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한다. 우리나라는 유독히 음주에 있어서는 관대하다. 형사재판에  있어서도 술을 먹고 실수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 관대하게 용서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음주문화에 대한 관대함이 변하고 있다.

 

  사법기관은 주취폭력에 대한 엄격한 처벌을 약속하며 대대적인 주취폭력을 단속하고 있고, 회사의 끝까지 달리는 회식문화도 바뀌고 있다. 더이상 술을 마시고 실수로 그랬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는 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마시고 이와 관련된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술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시고 용감하게 음주운전을 하여 사람을 다치게 하고, 때로는 무엇이 그렇게 억울한지 술의 힘을 빌려 폭행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사회는 술로 인해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한 피해자는 당연히 술에 취해 사고를 친 가해자에게 손해배상을 구하거나 형사 고소를 통하여 형사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판매한 술집주인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술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마시고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 책임이 있지 술을 판매한 술집 주인이 무슨 죄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우리나라에는 술을 판매한 술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미국은 오래전부터 술에 취한 고객에게 술을 계속 판매하여 그 고객이 교통사고를 내거나 폭행 등을 저지른 경우 그 피해자가 술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즉 미국의 대부분의 도시들은 조례로서 술에 취한 술을 계속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조례를 Dramshop Act라고 한다. 

 

따라서 위와 같는  Dramshop Act가 제정되어 있는 도시는 당연히 그 술로 인한 피해자도 술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또 미국은 한발 더나아가 위와 같은 법규가 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술집주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판례도 있다(ono v Applegate, 612 p. 2d 533).뿐만 아니라 미국법원은 고객 자신이 술집주인이 판매한 술을 마시고 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일정한 경우 술집 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위와 같은 법규와 판례에 의하면 술집 주인은 무서워서 술도 제대로 팔지 못할 듯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현재 무절제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지출이 너무나 크다. 대학 신입생 들은 학기가 시작되는 초기에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가정을 지켜야할 중년의 가장들은 과도한 음주로 인하여 가장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술로 인하여 폭력을 휘둘러 사람을 다치게 하고,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일으켜 선량한 피해자를 양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술취한 고객을 제지하지 아니하고 술을 판 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미국의 Dramshop Act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일정부분 도입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상담 전화 : 010 3146 9735,  채희상 변호사, 법률사무소 진실

고시생과 어머니

고시촌이야기 2013. 3. 4. 23:2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함께 사법시험 준비를 했던 K군의 고향은 시골이었다. K군의 아버지는 어릴적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셨고, 홀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임에도 K군을 잘 키웠다. 어머니에게 K군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머니의 희망대로 K군은 시골에서 수재로 소문이 날 정도로 공부를 잘했고, 이른바 모든 사람들이 말하는 명문대 법학과에 합격했다.

  K군의 고향사람들은 K군이 곧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판사 또는 검사가 될 것이라고 믿었고 K군의 어머니 또한 K군의 합격을 의심하지 않았다. K군은 그러한 어머니의 기대속에 조기에 합격하겠다는 기대속에 군대를 제대하자 마자 신림동 고시촌 가장 값이 싼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K군은 빨리 합격해서 자신을 위해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고 싶었다. K군은 고시원에 자리를 잡고 온 종일 두꺼운 법서와 씨름하였다. 그리고 2년만에 사법시험 1차시험에 합격했다. 이제 사법시험 합격이 코 앞으로 다가온 듯 했다. 1년만 더 고생해서 2차 시험만 합격하면 어머니를 더 이상 고생시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K군은 죽기 살기로 공부했다.

 

 

 

 

간혹 가다가 티비에서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가 출연하여 본인 스스로를 국제변호사로 호칭하거나 방송국에서 국제변호사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또 일반인들은 흔히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자들을 국제변호사로 알고 또 그렇게 호칭한다.

 그러나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잘못된 호칭이다. 오히려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본인을 광고하면 변호사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외국법자문사법 제2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변호사"란 「변호사법」에 따른 변호사를 말한다.
2. "외국변호사"란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하여 보유한
사람을 말한다.
3. "외국법자문사"란 외국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제6조에 따라 법무부장관 으로부터
자격승인을 받고 제10조제1항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한 사람을 말한다.

즉 외국법자문법에 의하면 변호사, 외국변호사, 외국법자문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외국변소사는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한자, 외국법자문사란 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자격승인을 받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만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외국자문법 제27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7조(자격의 표시 등)
1. 외국법자문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본인을 표시할 때는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원자격
국의 명칭(원자격국이 도·주·성·자치구 등 한 국가 내의 일부 지역인 경우 그 국가의 명
칭을 위 원자격국의 명칭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하 같다)에 이어 "법자문사"를 덧붙인
직명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직명과 함께 괄호 안에 원자격국언어로 된 원자격국의
명칭을 포함한 해당 외국변호사의 명칭을 부기할 수 있고, 이어 국어로 된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원자격국의 명칭에 "변호사"를 덧붙인 명칭을 병기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만을 사용할 수 있다.예를 들어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고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변호사 협회에 승인을 받은 자는 '미국법자문사(Attorney at law Newyork, 미국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뿐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변호사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여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제23조(광고)
제2항 변호사 등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변호사의 업무에 관하여 거짓된 내용을 표시하는 광고
2. 국제변호사를 표방하거나 그 밖에 법적 근거가 없는 자격이나 명칭을 표방하는 내용의
광고

제113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 제23조제2항제1호 및 제2호를 위반하여 광고를 한 자

즉 변호사법에 의하여 국제변호사를 표방하는 광고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위와 같이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변호사법 등에 의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정식적인 명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국제변호사로 불러온 것이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협회는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의 사용으로 일반인들에게 혼동을 줄 여지가 있고 법률시장의 혼탁을 줄 여지가 크다는 이유로 4월부터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외국변호사 및 법무법인에 대해 일제히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의 국제변호사라는 명칭 사용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의지가 천명되었는바 앞으로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의 사용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애인 강도오인 총격 피스토리우스 처벌 가능할까?

형법여행 2013. 2. 17. 10: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2월 14일 장애를 극복하고 런던 올림픽에서 영웅적 모습을 보여주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던 남아프리카의 육상영웅 피스토리우스가 여자친구를 살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리에게 충격을 던져 주고 있다.

 언론에  남아공 수사당국은 피스토리우스가 계획적으로 애인을 살해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는듯 하나, 피스토리우스는 애인을 강도로 오인하고 총격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는듯하다. 따라서 사건의 진실은 법정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법정에서 피스토리우스의 주장처럼 애인을 강도로 오인하여 애인을 총격한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면 피스토리우스는 처벌이 될까, 아니면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처벌되지 아니할까? 생각하기에 따라 처벌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살인범으로 처벌하기에는 무엇인가 일반적인 상식에 맞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것이 정답이다. 법은 일반인의 상식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애인을 강도로 오인하여 살해한 사람의 경우 왜 살인죄로 처벌할 수 없는 것일까?

 형법상 범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고의, 위법성, 책임의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여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폭행하여 폭행죄나 상해죄로 처벌받기 위해서는 일단 그 사람을 때려서 상해를 입히겠다는 주관적인 의사가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 위법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강도여서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 즉 정당방위를 하기 위해 그 사람을 폭행한 경우에는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되지 아니한다. 그리고 고의, 위법성이 모두 인정된다고 할 지라도,폭행한 사람이 형사상 미성년자, 또는 심싱상실자로서 그 비난의 가능성의 없는 경우에는 책임이 조각되어 또 처벌되지 아니한다.

  피스토리우스는 애인을 강도로 오인해서 총을 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정당방위 상황이 아닌데도 정당방위가 필요한 상황으로 착오를 일으킨 경우인데 이러한 경우를 좀 유식하게 말하면 위법성 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라고 한다.

  우리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여 정당방위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피스토리우스의 주장처럼 정당방위를 구성하는 요건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데도 이것이 존재한다고 오신하는 경우는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 명문의 규정이 없다.

그렇다면 해석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일단 사람을 살해할려고 한 것은 맞기 때문에 구성요건적 고의는 인정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살인죄의 고의범으로 처벌하기에는 좀 일반인의 상식에 맞지 않는것 같고, 처벌받는 사람이 억울해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좀 말이 안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이론을 주장한다. 즉 애인을 강도로 오인하여 살해한 자의 구성요건적 고의는 당연히 인정되어 살인죄의 고의범의 성립은 당연히 인정되지만, 그 법효과 즉 처벌에서만은 구성요건착오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하여 과실범과 같이 처벌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이른바 법효과제한적 책임설이라고 한다. 얼핏보면 말장난 같기도 한데, 그래도 이론구성을 할 필요가 있기에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형법학계는 이 이론을 지지한다.

  결국 피스토리우스의 주장처럼 애인을 강도로 오인하여 총격을 가한 것이 사실이라면, 일단 피스토리우스는 살인죄로 처벌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과실범으로 처벌은 가능하다. 따라서 피스토리우스가 우리나라에서 재판을 받게된다면 형법상 과실치사죄로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청년변호사들의 반란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3. 2. 3. 11:3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최근에 대한변호사협회장,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가 있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큰 이슈가 되었던 선거이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는 더 큰 화제를 불러왔다. 그동안 간선제로 선출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직선제 선거방식이 도입된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위철환 전 경기중앙변호사회장이 당선되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위철환 변호사의 당선을 두고 지방,비주류의 반란이라고 부르며 다소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결과는 전체 변호사 1만2000여명의 70%가 넘는 9131명이 소속된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에 30대 중반의 나승철 변호사가 당선된 것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가 이와 같이 비주류,젊은 변호사가 당선된 것을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서는청년변호사들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에 변호사 업계는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변호사들 숫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최근에 변호사가 된 젊은 변호사들은 그동안 변호사들의 겪어 보지 못했던 어려움에 처했다. 즉 어려워진 법률 시장으로 인해 젊은 변호사들은 만성적인 고용불안, 연봉의 감소,

 

 

 

 

 

 

사법시험합격 선물로 받은 독립선언서

고시촌이야기 2012. 10. 23.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금요일 제54회 사법시험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아마도 신림동 고시촌은 합격의 기쁨과 낙방의 아픔이 공존하며 하루종일 술렁거렸을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생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였을 것이다.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지난 수년간의 고되고 힘든 순간들이 떠올라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54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들으니,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때가 2008년 10월경이나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2008년 나는 무척이나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다. 2007년 4번째로 본 사법시험 2차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춥고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지나 1차 시험에 합격을 하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더위와 싸우며 2차 시험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10월 합격자 발표의 날이 다가왔다. 1차시험에 처음합격했을 때 나는 초시로 단번에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고시촌에서 도들 닦듯이 오랫동안 공부하는 장수생은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시는 커녕 재시에서도 낙방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세번째 2차시험에도 떨어지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4번째 시험에도 떨어지면서 난 처음으로 고시원 옥상에 올라가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수생이 나는 되어가고 있었다.그리고 철없이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이 가득했던 나는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몸을 떨어야 했다.

  2008년 10월 21일 그날은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고시원을 나가 관악산을 거닐다가 발표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상원서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서 나의 이름을 보았을 때 그 때의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08년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당시 고시촌)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부모님께 전하고 나는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에는 부끄럽게도 나의 뒤늦은 합격을 축하한다는 플랭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떼어내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기뻐하시는 마음을 생각하여 그대로 두었다. 지금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고향에 도착하니 친척, 동네주민분들께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고향은 아직도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시골마을이라, 아직도 사법시험이 마치 과거시험에 급제라도 한 것처럼 대단한 시험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동네주민과 부모님의 축하를 받으며 오래만에 마음편히 고향집에 머무르던 어느날, 백발이 성성한 동네 어르신 한분이 찾아와 정성스럽게 포장한 무엇인가를 전해주셨다. 솔직히 그 분은 부모님과는 친분이 있는 분이셨지만, 나는 일면식도 없는 낯선 분이었다.

 그분께서 별다른 말씀없이 전해 주신 것은 한자,한자 정성스럽게 직접 쓰신 독립선언서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 독립선언서을 마음깊이 새기며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라는 뜻으로 정성스럽게 작성한 그 독립선언서을 나에게 시험합격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얼핏 보아도 작은 글자로 빽빽하게 기재된 독립선언서는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을 것이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그분께서는 왜 보잘것 없는 나에게 그렇게 정성이 가득 담긴 독립선언서를 준 것일까?

 아직도 나는 그때 받은 독립선언서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뿐, 사무실이나 집의 벽에 걸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독립선언서이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한 큰일은 커녕, 조그마한 법무법인에서 사건이 복잡하다, 의뢰인이 너무까다롭다고 투덜거리며 변호사의 능력을 수시로 시험당하는 그져 그런 변호사의 길을 살고 있다. 나는 그분이 의도한 대로 그러한 큰 뜻을 펼칠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정성이 가득담긴 독립선언서를 받을 자격이 없기에 독립선언서를 떳떳히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오면, 난 그때 받아 책장 한구석에 고이 보관해온 독립선언서를 펼쳐본다. 내가 사법시험에 그토록 메달렸던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변호사의 길은 옳은 것인지를  그 짧은 순간이라도 고민해본다.

 이제 사법시험 합격은 큰 영광이 아니다. 그러나 사법시험 합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5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선배.후배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보낸다. 고된 노력의 결과가 이제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축하받을만 하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많은 이들이 나같이 평범한 변호사의 삶을 살지 말고, 보다 의미있고 어려운 이들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러한 법조인의 삶을 살기를 기원해본다.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평범한 변호사이기에 그런 기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난주에 변호사들 사이에 자신이 근무하던 법인을 상대로 임신을 이유로 무급 휴직명령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며 휴직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한 여변호사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이 여변호사는  법무법인에 입사하여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 1시 또는 2시일 정도로 바쁘게 근무하였으나, 지난 5월 임신한 사실을 회사에 알리자 회사는 2차례에 걸쳐 업무 실사를 했고 회사는 이후 일방적으로 무급 휴직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물론 소송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변호사들 특히 이러한 현실과 직면해 있는 많은 청년 변호사들이 상당 부분 분노했고, 최근 설립된 청년변호사협회는 해당 법무법인을 형사고발까지 했다.

  왜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아니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공감을 하며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것인 아마도 현재 청년변호사들이 접하고 있는 현실을 이 사건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쿨 제도 및 사법시험 합격자의 증가로 인하여 변호사들은 최근 사이에 급속도로 늘어났다. 반면에 법조시장은 수년째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급속도로 늘어나는 변호사들의 숫자에 비하여 법률시장 정체로 인한 변호사들의 고용상황 및 근무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상당수의 변호사들이 취업하는 법무법인 등은 소규모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서 당연히 보장받아야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변호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으로 인하여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야근을 하는 등 주당 평균근무 시간이 60시간에서 80시간 이상되고, 주말 출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야근수당 등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또한 업무량으로 인하여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연차휴가 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미 사용 연차휴가에 대하여 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임신한 여변호사에게 노골적으로 회사를 그만 둘 것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 퇴직시 퇴직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또한 신입변호사의 급여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변호사가 전문직 고소득 직종이라는 말은 이제 점차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변호사들은 오히려 해고되지 않고 고용되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법률시장의 고용환경은 상당히 악화되고 있다. 주변에 연수원 동기나 후배들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데, 그러한 소식이 들려오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니 현재의 변호사들의고용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법률시장의 여건속에 용기를 내어 개업할 수 있는 청년 변호사는 몇 되지 않는다. 농담으로 개업이나 할까라고 개업한 선배들께 물어보면 모두 당분간 참아라. 지금 개업하면 힘들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개업변호사들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 우려스려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호사 숫자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고, 법률시장은 그에 비하여 확대의 폭이 넓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인데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청년변호사들의 열악한 고용조건과 노동환경으로 인해 최근 청년변호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청년변호사들의 처우개선에 있다. 이에 따라 매번 대한변협회장 선거나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 이러한 청년변호사들의 처우개선은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나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서는  청년 변호사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운 청년변호사 출신 후보가 당선자와 근소 차이로 떨어져 기성 법조인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 만큼 청년변호사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번주 일주일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추석명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바쁜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능한 주말출근은 하지 말자는 의지를 가지고 월요일부터 밤이 늦도록 야근을 했건만, 사건을 화요일에 기록을 만들어서 가지고 와서 목요일에 서면을 제출해달라고 하는 급박한 사건이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장을 쓰면서 '주말출근은 제발'이라는 나의 목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 중 목요일은 최악이었다. 사건이 꼬여버린 다소 부담스러운 사건이 3개나 있었던 마의 목요일이었다. 그중 아침에 잡혀있던 사건은 그나마 어떻게 잘 해결될 기미를 보여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찰나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진행했던 항소심 사건이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통보.......1심에서 승소한 사건이었으나 항소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점점 불리해지더만....결국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잠시동안의 안도의 한숨이 무거운 한숨으로 바뀌었다. 의뢰인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까...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 뒤집어지는 판결은 의뢰인도 당혹스럽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당혹스럽다.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인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의뢰인은 역시나 크게 실망했고. 나는 대략적으로 패소한 원인을 설명하며 일단 판결문이 오고 나서 상고여부를 검토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쓰디쓴 패배의 소식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동부지원으로 향했다. 형사사건 재판이다. 의뢰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신청한 증인은 수차례 출석을 거부하고, 사건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측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기일에도 증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기일이 될 것이다.

 역시 증인을 출석하지 아니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은 증인의 불출석에 풀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 기대가 날아가는 심정일 것이다....그리고 방청석에는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와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을 가르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뢰인을 위해 최후변론을 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십명의 피해자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고함을 쳤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나는 법정경위와 피고인과 함께 온 교도관들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다시 나는 오후 5시에 잡힌 수원재판을 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난 지칠때로 지쳐있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머리속이 복잡....아니 미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이 사건 다소 논리적을 빈약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변호사로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그런 낯뜨거운 사건이랄까^^;;; .......그러나 어찌어찌 그렇게 마치고 나니 5시30분이 넘어선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바람에 춤을 추는 막대인형처럼 이리저리 이끌려 춤을 추다가 바람이 빠져버려 힘없이 사그라지는 느낌이랄까....온몸이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금요일은 오후에 춘천재판이 있었다. 그렇게 부담은 없는 사건이었으나, 의뢰인이 필요한 증거를 준비해오지 않아 공전이 될 사건이기에 재판부에 한기일만 더 잡아달라고 사정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가을하늘은 가을하늘의 청명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목요일의 고단함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상쾌한 공기로 잊혀지는 듯 했다.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던 중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을 보았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하얀소금을 뿌러놓은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왜 문학작품에 그렇게 아름답게 메밀꽃을 묘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과 청명한 가을하늘의 유혹에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췄다. 콧등을 스치우는 상큼한 바람의 내음, 유유히 떠가는 하얀 구름사이로 푸르른 얼굴을 비치우는 하늘...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일어섬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사그라짐이라고 했던가...나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게 유유히 구름을 보내며 나에게 근심을 덜어놓으라 하고, 이름모를 풀꽃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며 나에게 행복하라 하는데,, 나는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듯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일주일의 고단함이, 소박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의 유혹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