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2일 바로 어제 사법연수원 40기 수료식이 있었다.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이 이제 끝이났다. 수료식이 진행되는 동안 2년의 추억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연수원에서 즐거운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움을 만끽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2년동안 정이 든 동료들을 이제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수료식은 언론도 관심을 가진다. 수료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각 언론사에서 연수원 수료식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수료식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사법연수생의 취업난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은 다소 자극적은 타이틀로 이번에 수료한 연수원생들 10명 중 4명이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쓸쓸한 수료식을 맞이 했다는 내용을 쏟아냈다.

언론의 기사들은 연수생들의 혹독한 실무수습과정을 통해 법조인으로서 사회에 나서서 법치국가의 확립과 소수자의 인권옹호에 앞장서 활동할 것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연수생들의 취업난만 부각시켜 흥미위주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다면 정말 사법연수생들의 취업난은 심각한 수준일까? 수료식까지 취업하지 못한 이들은 정말 평생 백수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기사들을 보면 일응 진실된 부분도 있고 다른 한편 과장 보도한 측면도 있다.

우선 법률시장이 침체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대학 선배나 후배의 말을 들어보아도 경기침체 등과 맞물려 법률시장이 몇년 채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경제규모에 비해서 법률시장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어 더욱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변호사 고용시장에서 월 얼마가 무너졌다. 변호사에 대한 복지수준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등의 소문이 들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로스쿨생이 배출되면 법률시장은 더욱더 어려워 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각종 언론 기사는 지금 수료한 연수생들이 한참 취업시즌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사법연수원은 2년차 4학기 시험을 보통 10월에 본다. 그리고 최종성적은 11월말에나 나온다. 따라서 본격적인 취업시즌은 12월에나 시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취업시즌은 다음해 6월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연수생들이 수료하는 1월 중순은 한참 취업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미취업한 연수생의 숫자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연수원의 취업시즌의 길게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일반 기업체와는 다르게 각종 로펌이나 기업체에서 변호사들을 소규모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중형로펌이상도 변호사 업계의 특성상 5명이상을 한해에 뽑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로펌들이 긴 시간을 가지고 소규모의 채용을 계속적으로 이어 나가기 때문에 취업시즌이 길어진다. 

그리고 대다수의 연수생들은 보통 3,4월 경에 취업을 완료한다. 그러나 언론기사는 한참 취업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연수생들이 취업하지 못해 쓸쓸하고 힘든 수료식을 맞이 한 것처럼 과장하여 보도한 측면이 있다. 물론 언론의 특성상 특정 부분을 과장하여 보도하는 행태는 당연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연수원 수료식장에 찾아와서 천편일률적으로 연수생들이 취업되지 못한 채 쓸쓸한 수료식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연수생들은 2년동안의 힘들게 실무수습을 하면서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무사히 수습과정을 마쳤다는 것에 대해 가족, 동료와 기쁨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종 사회,경제, 문화 각 영역에 진출하여 법치주의 확립과 소수자의 인권옹호를 위해 일할 것이다. 연수원 성적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익법무법인 등에 들어가는 이들도 많다.

 법률시장이 일대 변혁기에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연수원을 수료한 연수생들은 2년의 교육과정에서의 실무수습을 통하여 훌륭한 법률가의 자질을 모두 갖추었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 법조인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2년동안의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며...

좌충우돌연수원일기 2010. 12. 10. 23:2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도 내년 1월 수료식을 끝으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2년동안의 생활이 무척이나 짧게만 느껴진다.연수원 처음 입소할 때에는 한없이 세상을 다가진 자처럼 우쭐해하며 마치 내가 지구라도 구할 사람처럼 정의감에 불타 법을 통해 세상을 구제할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우수한 인재들고 같이 수업을 받으며 나의 법적지식과 논리가 얼마나 빈약하고 형편없는지에 대해 깨닭고 사회정의는 커녕 좌절감에 허덕이기도 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과제물에 제대로 제대로 소장도 써보지 못하고 답을 베끼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덧 연수원 끝자락에 와서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나도 모르게 제법 소장이나 준비서면 흉내를 내는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모든 것이 힘겹게 다가오는 순간에 나에게 조그마한 마음의 안식을 찾게 해주었던 일산의 호수공원도 이제는 안녕이다.

  고민은 계속된다. 나의 진로는 변호사이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있는 진정한 능력을 갖춘 변호사가 될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연수원 동료들이 벌써 부터 그리워진다. 이제는 동료들과의 소중했던 기억들은 영원히 추억이 되어 낡은 추억의 앨범처럼 가끔가다 그리워지는 그 것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한마디로 백수이다. 연수원은 한참 취업전쟁이다. 연수원 취업게시판에는 변호사 채용공고가 뜨자마자 많은 연수생들이 응시한다. 나또한 벌써 여러통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냈다. 먼저 취업하거나 개업한 선배 기수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법률시장이 어렵다고 하고 있다.

  난 아직 모르겠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지금은 백수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밤늦게 까지 영화, 미드를 보고 아침 늦게 일어나고, 취업게시판에 공고뜨면 자기소개서 보내고, 집근처 산에 올라가고, 그런 일과들이 반복되고 있다.

 또하나 요즘 식물을 기르는 재미에 푹빠져있다. 산세베리아. 산호수, 킹벤자민, 테이블야자, 관음죽, 토피어리, 금전수 요즘 내가 관리하는 식물들이다. 이녀석들에게 물을 주고, 잎파리를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닦아 내면 그렇게 맘이 편해진다^^. 녹색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제 날 편안하게 한다. 자연이 한없이 그리워 지고, 흙냄새가 그립다. 그리고 고향이.....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일까...^^

언제까지 백수생활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가끔은 이 백수생활이 두렵기도 아직은 이 여유로움이 좋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그러지 못한체 증오와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증오였다는 것을 깨닭는 순간 모든 것이 평온해진다.연수원 2년동안의 기간은 나에게 법조인은 아마추어가 아니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동안 아마추어의 낭만적 망상은 잊어 버려야 한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지...

실력이 없는 법조인은 도태될 수 밖에 없고 또 의뢰인에게도 큰 상실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도전하자. 아직은 두려워 할 필요없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2달간의 법원 시보를 드디어 마쳤다.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봄을 시샘하듯 하늘은 하얀 눈을 바람소리와 함께 뿌린다.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이글을 쓴다.아마도 올겨울의 마지막 눈일것이다. 

 40기 사법연수원생은 이제 1년차 과정을 마치고 각 시보생활을 하고 있다. 난 처음으로 법원시보생활을 하게 되었다. 법원시보는 각 형사.민사판결문 작성.조정.영장기록검토등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법원시보생활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국선변호일것이다. 시보기간동안 의무적으로 2건이상의 국선변호를 하도록 되어있다. 실질적으로 법정에서서 피고인을 위해 변호를 해야하는것이다. 연수원 생활동안 실무경험을 처음하게 되는 그런 사건이다. 처음 국선변호 사건을 배당받아 법정에서 피고인 신문을 하고 판사님께 피고인을 위한 최후변론을 하던 그때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기록을 들고 법정의 변호인석에 앉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떨렸다.그러나 피고인을 위해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었다.심호흡을 크게 하고 집중해서 피고인 신문사항을 검토하고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니 다행히 긴장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

 국선변호인에 선정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피고인을 접견하기 위해 구치소로 향했다.과연 피고인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초짜 사법연수원생을 그를 조력할수 있는 변호인으로 신뢰할까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마침내 구치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접견실에서 피고인을 기다렸다.이미 접견실에는 많은 변호인과 피고인들이 접견을 하고 있었다.가방에서  피고인에 관한 기록을 꺼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내가 국선 변호를 담당한 피고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다.무엇이 이 사람을 범죄의 길로 이끈것일까? 기록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가했다. 또 내가 이사람을 위해 무엇을 변호해야 하는 것일까? 피고인은 이미 모든 범죄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특별히 법률적 쟁점이 없는 사안이었다.다만 피고인이 범죄전력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정상관계를 강조해 실형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할수 있을 뿐이다.

  약 10여분이 흐른후 피고인이 찾아왔다.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피고인은 자리에 앉았다.난생 처음으로 보는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의 모습.나도 모르게 다소 긴장했다. 간단하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음으로 알리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피고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기 때문인지 많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피고인이 왜 이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부터해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피고인의 가족관계.어린시절,경제적 상황등 정상관계를 참조하기 위한 질문을 했고, 피고인은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고인을 바라보니 피고인도 우리 보통사람과 다를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피고인도 이사건 범죄를 저지른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는 생계형 범죄로 그렇게 죄질이 중한 범죄가 아니었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초범이고 죄질이 중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피고인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약 한시간정도의 피고인과의 접견을 마치고 구치소를 나왔다. 나도 모르게 피곤함이 밀려왔다. 

  법과 정의 그것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모순덩어리처럼 보인다. '죄를 지은자는 반드시에 그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일것이다. 그러나 법도 눈물을 흘린다. 지나친 온정주의는 피해야 할것이지만,엄정한 처벌만이 정의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하는것은 아닐까?

집으로 오는 도중이 깊은 한숨을 계속 내리쉬던 피고인의 모습이 창밖에 스쳐갔다. 

 기일에 제출할 변론요지서와 피고인신문사항을 작성했다.자백한 사항이라 중요한 법적쟁점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관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피고인 신문사항도 피고인이 왜 이러한 범행을 저지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지 피고인이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 작성할수 밖에 없었다. 

  또 피고인이 취한 범죄수익을 피고인이 그대로 보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피고인의 가족에게 일정부분 복지단체에 기부할것을 제안했고 피고인의 가족도 흥쾌이 수락해주어 피고인의 가족이 일정부분의 금액을 기부하고 그 영수증을 제출받아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드디어 변론기일이 열렸다.변호인석에 앉아 맡은 사건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기록을 차근차근 다시 한번 살피고 피고인 신문사항을 다시한번 검토하고 변론요지서 또한 검토해 최후변론할사항도 정리하였다. 

 피고인이 호명되었고 변호인석에 앉았다. 변호인석에 앉아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몰려왔다.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증거조사가 시작되었다.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하여 간이공판절차로 재판은 진행되었다. 증거조사가 끝난후 피고인 신문이 진행되었다. 

  나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피고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나 신문이 진행되면서 다소 떨리던 목소리도 어느덧 안정감을 찾아갔다. 피고인의 정상관계를 가능한 많이 부각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약 30여개 이상의 질문을 마치고 피고인 신문을 끝냈다. 다른 이에게는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변론요지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최후변론을 하였다. 가능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번 피고인의 정상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최후 변론이 드디어 끝나고 재판이 종료되었다.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재판부의 선처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변론을 마치면서 피고인과 간단히 악수를 했다. 피고인의 손은 따스했다.내가 이피고인을 위해서 과연 제대로 변호를 해준것일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변호인이었다면 숨어 있던 법적 쟁점을 찾아내거나 혹은 정상관계를 더욱 부각시켜 피고인에게 유리한 변론을 해줄수 있었던것은 아닐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변론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나의 잘못된 변론으로 해서 이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무능력한 앞으로도 배울것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후 판결선고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준것이다. 피고인은 과연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갈수 있을까?법은 이피고인에게 이번기회에 죄를 깊이 반성하고 소박한 시민으로 살아갈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피고인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피고인의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수 있도록 하는 사회정책적 접근방식도 필요할것이다. 

 어찌 되었건 2달간의 법원시보생활은 다시 한번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닭게 하였다. 무료법률상담에서는 아직도 내가 너무나 모르는 영역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조정위원으로 참석한 조정사건에서는 당사자간의 법적 분쟁에 대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은 가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국선변호를 맏은 사건에서는 변호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능력한 변호인은 그 의뢰인에게 깊은 상처를 줄수도 있겠구나 하는 반성을 하는 시기였기도 했다. 

 화사한 봄꽃소식을 전해 주여야 하는 3월에 한가운데 봄을 시샘하듯 눈발이 휘날린다. 이번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이 오고 추웠다. 어둠을 밝혀내는 작은 촛불은 나약하다. 작은 바람에게 꺼질듯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 나약한 불빛에 의지에 길을 찾는 이에게 그 불빛은 유일한 희망일것이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 유일한 희망이 될수 있는 그런 법률가가 될수 있을까?



...........................3월의 눈내리는 새벽 어느날...................



 

꿈에 그리던 사법시험합격...그것은 정말 꿈만 같은 그것이었다.합격자 명단에서 나의 이름을 확인하던 순간 난 세상의 모든것을 얻은것처럼 행복했다. 어느덧 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에 들어오고 10여일간의 1학기 시험을 마치고 잠시동안의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시험에 합격후 난 어떻게 변했을까?
오만해졌을지도 모른다.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직도 고시촌에서 고생하는 후배나 친구들에게 뻣뻣한 자세로 별같지도 않은 위선을 떨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고향친구들에게 한턱쏜다며 있는폼 없는 폼을 잡으며 허세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이제 사법시험은 국가최고의 시험도 아니고 그져 자격시험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천명의 로스쿨생의 배출되는 상황에서 더이상 사법시험합격을 가지고 우쭐대는 시대는 지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사법시험 합격자에게 바라는 기대가 큰것도 사실이다.

난 솔직히 연수원에 들어와서 내진로의 문제에 대해서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과거 고시공부를 할때도 틈틈히 느껴왔던 고민인데 과연 내가 법조인의 능력이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이고민은 연수원에 들어와서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수많은 기록숙제와 사례과제들을 접하면서 꼼꼼하지 못한 성격탓에 주요한 법적 논점을 그냥 흘려버리고.또는 실력 미달로 꼭 언급해야 할 논점들을 날려버리는 일들이 허다하다.

지금은 비록 연습이지만 막상 실무에 들어가서 이러한 실수들을 한다면 난 의뢰인에게 뺨을 수십대 얻어맞아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이러한 실수는 마치 의사가 큰수술에서 말도 안되는 실수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것처럼 의뢰인에게 큰 아픔과 상처로 다가올것이기에 나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점점더 과연 내가 법조인의 자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이러한 고민탓에 요즘은 솔직히 간간히 나의 낙서장처럼 운영하던 이블로그마져 거의 방치해놓고 있었고 혹은 이블로그를 폐쇄하고 싶기도 했다.나의 블로그에 찾아와 고시공부방식에 대해 조언을 구하는 분들에게 더이상 조언을 해주고 있지도 못했다.나의 정체성에 고민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연수원1학기동안은 내가 법조인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지낸 시기였다. 1학기 방학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 2학기가 시작된다. 하지만 방학동안에도 나의 고민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일은 내가 꿈꾸워왔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질문이 점점 꼬리를 물며 나에게 답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과연 난 법조인의 역할을 잘해낼수 있을까?

깊어가는 새벽과 함께 난 아직도 이러한 고민에 잠못이룬다. 깊은 새벽 톨스토이의 젊은날의 고백이라는 책을 붙잡고 있다가 뜬금없이 오래간만에 방치되어 있던 나의 블로그에 찾아와 이글을 끄적인다.그동안 버려져있다 할정도로 무성한 잡초만 자란 이블로그에 여전히 하루에 100여명이상의 방문자가 있는 것을 보고 난 놀랐다.기록은 기억되는 것이다. 그것이 버려진 무덤의 낡은 묘비의 몇글자이건...존재하는한 기억되는 것이다....


사법연수원생들의 순수한 사랑...

좌충우돌연수원일기 2009. 5. 17. 13:12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추적추적 처량하게 비가 내린다. 어느덧 연수원에 입소한지도 2달이 넘어 3달째 들어가고 있다. 연수원은 이제 초반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넘어 본격적인 공부모드로 들어갔다. 이제1학기 시험이 40여일도 남지 안은 상황이기 때문에 많은 연수원생들은 잠을 줄여가며 공부에 몰두한다.

한때 TV드라마의 단골소재중의 하나가 힘든 환경속에 어렵게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고시공부할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남자친구를 위해 모든것을 희생해가며 뒷바라지 해주었던 여자친구를 합격하자 마자 매몰차게 차버리고 이른바 잘나가는 집안의 처자와 결혼해 버리는 그야말로 고전신파같은 이야기였다.

물론 지금도 그러한 경우가 없다고 단정할수없다.그러나 많은 연수원생들은 그들만의 순수한 사랑을 지켜오는 이들이 많다. 우리반의 경우를 보더라도 고시생때부터 힘들게 가꾸어온 사랑을 지금까지도 지켜가며 장차 결혼까지 약속한 이들이 상당히 많다.

대학시설부터 문득 캠퍼스를 지나가는 한여인에 반하여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쳐 그여인에게 힘겨운 사랑의 승낙을 얻어낸후 지금까지 7년이상을 아름다운 사랑을 하는 녀석도 있다.7년이상을 사랑을 해오면서도 아직도 자신의 여자친구를 보면 설레인다는 녀석은 많은 솔로연수생들의  질시를 받고 있지만 다른한편 나도 그런 사랑을 해보았으만 하는 부러움의 시선도 있다.

다른 녀석은 고시생시절에 역시 우연히 한여인에 큐피트의 화살을 맞고 열정적으로 찾아온 사랑을 주체할수 없어 고시생시절에 결혼을 해버렸다.그러나 자신과 결혼했던 여인을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다며 자신감이 넘쳤던 이청년은 연거푸 시험에 떨어지며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몸소 느껴야 했다.

그러나 그친구의 힘든 시절에 묵묵히 녀석을 지켜주던 아내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거라고 다짐했지만 어느덧 자신의 아내가 녀석을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연거푸 시험에 떨어지는 힘겨움 속에서도 녀석의 아내는 녀석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며 녀석이 다시 일어날수 있도록 격려해주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의 사랑은 마침내 녀석을 합격의 길로 인도했다.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합격의 결실아래 연수원 근처의 작은 아파트에서 그들의 사랑의 결실은 귀엽고 소담스러운 아이와 함께 행복에 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랑을 지켜가고 있는 또다른 녀석 아니 여인(?)도 있다.신림동에서 함꺼 고시생생활을 했던 커플이었는데 둘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지만 아쉽게도 이여인이 먼저 시험에 합격해서 연수원에 입소하게되었다.흔히들 고시생 커플중 일부만 합격하는 경우에는 깨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반은 이들커플이 해피앤딩으로 끝날것이라는 것을 100%로 확신하고 있다.

남자친구가 힘겨워 하는 상황을 알고 주말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생하고 있을 남자친구를 생각해 항상 고시촌을 찾아가 남자친구와 함께한다. 사랑은 변한다고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을것 같다.남자친구를 볼때마다 존경심과 세상에 이러한 남자가 또있을까 하는 경외감마져 든다는 그녀는 영원히 남자친구에 대한 콩깍지를 던져 버리지 못하고 평생 남자친구와 행복한 사랑은 만들어 낼것이다.

또다른 녀석은 고시촌에서 함께 시험준비를 하다가 자신이 먼저 시험에 합격하자 1년을 연수원 유예를 하고 여자친구가 합격할때까지 여자친구의 공부를 도와주고 힘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자친구가 합격하자 같이 연수원에 들어와 행복한 동화의 결말같은 결혼식을 올려 알콩달콩살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 행복은 무엇일까?
치열한 삶과 경쟁속에 우리는 때로는 우리가 사는 이유를 망각한다.우리가 사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기위해서도 아니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랫동안 살아기기 위해서이다.

 이른바 사법고시에 합격후 자신을 뒷바라지 한 여인을 배반하고 잘나가는 집안의 여자와 결혼해 버려 그 비운의 여인이 한을 품고 복수한다는 고전신파같은 드라마의 소재들..어찌보면 예전의 소수의 법조인만을 선발하던 그시대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매년 1000여명의 법조인이 양산되는 상황에서 이제 사법시험합격그자체는 자격시험합격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많은 연수원생들은 그러한 구태의연한 드라마와는 다르게 그들만의 소중하고 순수한 사랑을 가꾸어 가며.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1.서울중앙지방법원을 향하여

지난 4월 3일 사법연수원생으로서 처음 경험한 법정 방청이 있었다.대학시절에 형사법정을 방청한 경험은 있었지만 민사법정을 방청하는 것은 처음이라 다소 설레였다.법정방청장소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었다.오전 법정이 열리는 10시전까지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4월3일 오전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고 아침일찍 일어나 차가운 아침바람을 맞으며,정발산역으로 향했다.

정발산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고,지하철은 굉음을 울리며 빠른속도로 서울을 향해 달렸다.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한시간정도가 지나고 나니 최종목적지 교대역에 도착을 했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열차는 사람들을 토해냈고,나또한 그 대열에 합류해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했다.너무 빨리 왔기 때문인지 조원들을 찾지 못했고.한참을 서울에 처음 올라온 시골의 촌부처럼 법원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렸다.


 약 20여분간의 시간이 흐른후 조원들과 지도교수님을 만났다.그리고 곧바로 우리가 방청할 민사17부로 향했다.약 40명의 연수원생들로 법정의 방청석은 꽊찼다. 연수원생들은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어떠한 사건이 심리되고.쟁점이 무엇이 될지 궁금해 하며,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치열한 법정공방의 열기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던 법정


 그러나 3인의 판사님이 곧바로 입장을 하시며 재판정은 순간 고요한 침묵과 긴장감이 흘렀다.그리고 고요한 침묵속에 곧바로 사건의 심리가 개시되었다.


 각 원고와 피고측의 소송대리인은 법정에서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쳤다.원고측은 각종 증거자료와 함께 그들의 논거를 주장하며 그들이 승소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이에 대해 피고측은 각종 반박자료와 증거를 제출하며.원고측의 청구요건사실에 대해 항변사항을 주장하며 그를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연수원에서 교과서로만 배워왔던 원고측의 청구요건사실의 주장입증,피고측의 항변사항의 주장입증,그리고 다시 원고측의 재항변등을 실체적으로 익힐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인해 법정은 팽팽한 긴장감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재판장님은 조용하면서도 절도있는 목소리로 각 소송대리인의 법정공방이 가열된다 싶으면 적당히 쟁점을 정리해 사건의 쟁점을 명확히 하고,불분명한 쟁점은 보충질문을 하면서 사건을 정리해 나갔다.그두꺼운 기록속에 쟁점이 되는 포인트를 정확히 찍어내는 재판장의 능력에 감탄을 했다. 


 끝날것 같지 않았던 치열한 첫사건에 대한 법정공방이 끝난후 잠시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잠깐동안의 휴식기간동안에 연수원생들은 각기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원고와 피고측의 어느주장이 타당한지 그들의 설전을 버렸다. 마치 작은 모의법정이 만들어진것 같았다.



3.숙연해진 법정


 그리고 다시 11시경부터 사건의 심리가 시작되었다.11시경이 되자 연수원생들로만 꽊차있던 법정방청석이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할머니들께서 입장하셨다.갑작스럽게 늘어난 방청객으로 인해 자리가 부족해지자 연수원생들은 할아버지.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고 법정끝으로 가 서서 방청을 했다.


 도대체 어떠한 사건이길래 갑작스럽게 방청객들이 오신것일까? 생각을 했는데,알고보니 ‘인혁당사건’이었다.우리에게 너무나 잘알려져 있는것처럼 ‘인혁당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최근에 재심을 통해 대부분 무죄판결을 받자,이에 대해 국가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이미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국가를 대리한 소송대리인도 대부분 요건사실을 인정하고 다만 손해배상금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감액만을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원고측의 대표자께 말씀을 하실 기회를 주셨고,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일어서서 국가의 권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자신 및 가족들은 큰 가슴속에 상처를 새긴체 숨죽이며 살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히셨고,앞으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법정은 숙연해졌다.내옆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한분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셨다.사건 심리가 모두 끝나자 연신 눈물을 훔치시던 할머니께서 일어서시며 나에게 사법연수원생이냐고 물어보셨다.나는 짧게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나를 바라보시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짧게 말씀하시며 떠나셨다.아직도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던 할머니의 슬픈모습이 오버랩된다.수십년의 세월동안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 상채기는 아무리 국가가 뒤늦게 반성하며 그들에게 금전적 손해배상을 해준다고 해도 결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법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어쩌면 그러한 사법불신의 원인은 과거 권력의 공포로 부터 사법부가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오늘날 사법부는 이런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의 불신은 높기만 한것같다.이점은 지도교수님들도 항상 염려하며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다.

 할머니께서 연수원생들에게 연신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라"며 짧게 던진 한마디는 그 어떠한 조언보다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권력으로부터.온갖 유혹으로부터 굴복하지 않는 정의로운 판결을 하라는 의미일것이다.비론 나는 판사로 임관할 능력은 없겠지만 앞으로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도 그할머니의 눈물의 의미를 항상 되새기도록 할것이다.



4.법조인의 길을 향한 한단계 걸음


 법정방청이 끝난후 지도교수님께서는 우리조원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만약 앞에서 방청한 사건의 원고나.피고측의 소송대리인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조언해주셨다.


 법정방청을 통해서 그리고 교수님의 조언속에 아직도 부족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스스로 걸을수도 없지만 한단계 법조인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법정방청을 마친후 일산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맡긴체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지만 그 풍경속에 연신 눈물을 흘리던 방청객속의 할머니 모습이 보였다.


 재판장의 잘못된 판단과.변호인의 잘못된 변론이 그 당사자에게는 돌이킬수 없는 인생에 있어서 큰 아픔을 줄것이다.결국 그러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공부에 매진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고 또한 당사자와 재판부의 충분한 의사소통과 구술심리가 시행되고 있음을 경험한 소중한 법정체험이었다.


체육대회 열풍에 빠진 사법연수원.....

좌충우돌연수원일기 2009. 3. 30. 07:36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연수원에 입소한지도 이제 어느덧 한달째가 되어간다.입소식을 앞두고 오래간만에 시작되는 단체생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과연 간만에 시작되는 단체생활에 잘 적응할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입소식후 이런저런 모임.회식.MT등으로  생각할시간도 없이 숨가쁘게 시간이 흘러갔다.특히 대학졸업후 오래간만에 가는 MT는 마치 대학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연수원 입소초기에는 연수원생들의 어색함을 피하고 친해지기 위해 각종모임이 밤늦게까지 이루어 진다. 이번에 입소하는 약 1000여명의 연수원생들은 보통 14개의 반으로 나누어지고 또 그반은 각반마다 3개의 조로 나누어 진다.

각반은 약 70여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조는 보통 23명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고등학교처럼 각반은 반장을 선출하고 각 조는 조장을 선출하는데 관례상 각 반이나 조에서 가장 연장자가 반장이나 조장에 선출이 된다. 

 보통은 이렇게 구성된 약 20여명의 조원들이 가장 친하게 지내게 된다.입소식 첫날부터 어색했던 자기 소개가 반원들앞에서 이루어지고 각 반 담당 교수님들의 소개도 이루어진다. 또 각반의 조를 담당하는 교수님들께서 삼각형 형태의 사법연수원 뱃지를 직접 달아주시고 임명장을 배부해주신다.

 아주 작은 삼각형 형태의 뱃지에 불과하지만 교수님께서 왼쪽 양복 옷깃에 손수 달아주실때 짧은 순간이지만 뭐라 말할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그동안 시험준비하면서 고생했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그러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입소식 첫날 자기소개가 이루어지고 곧바로 각 조원들은 조를 담당하시는 교수님들과 함께 회식을 시작한다. 이렇게 첫날부터 서로 친해지기 위한 회식이 시작된다.날마다 있는 회식의 강행군이 시작되는 순간이다.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회식자리가 아직까지 어색하다....;;

또 연수원에서는 3월중순부터 4월중순에 있는 체육대회 예선경기가 시작된다. 예선종목은 축구.농구.발야구등이다. 각종목의 각반의 대표들이 선발되어 치열한 예선전이 펼쳐진다.

 연수원에와서 느낀것은 연수원생들의 승부욕이 정말로 강하다는 것이다. 비록 정식프로리그도 아니고 단지 화합을 다지기 위한 체육대회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이기고자 하는 열기는 얼마전에 있었던 WBC의 한국국가대표팀의 이기고자 하는 열정을 능가한다. 


 각반의 명예가 걸려있는 게임이기에 각반의 대표로 선발된 선수들은 일과시간이후에 따로 모여서 치열한 연습을 한다.여자연수원생들도 마찬가지이다.발야구는 여자연수원생들이 하는데 연수원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나 중학교 운동장.혹은 연수원 기숙사뒤에 있는 잔디밭에 모여 밤늦게까지 연습에 몰두한다. 

 그리고 정식예선 경기가 있는날이면 각반의 구성원들이 모두 모여 각반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각반의 대표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승리를 위해 땀을 흘린다. 그러나 이러한 격렬한 게임끝에 안타갑게도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한다.지금 사법연수원에 와보면 목발을 짚고 다니거나,다리나 팔에 깁스를 하고 다니는 이들을 많이 볼수 있을것이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반의 경우도 농구연습중 손가락이 골절이 되어 손가락에 깁스를 하고 다니는 이도 있고.축구예선게임중 상대방팀과 충돌로 인해 다리뼈에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하여  깁스를 하고 다니는 구성원도 있었다.

다른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몇해전의 경우는 체육대회도중에 심하게 허리를 다쳐 안타갑게 연수원1년을 유예하는 사고도 발생했다고 한다. 이러한 각종 부상이 발생하여 각반의 담당교수님들은 너무 심하게 하지 말고 그냥 즐기는 정도로만 게임을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그들의 승부욕에 교수님들의 신신당부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아마도.어린시절부터 공부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던 인재들이었기에 뭐라고 할까 뭐든지 지기 싫어하는 남다른 승부욕이 연수원생들에게는 있는듯하다. 생각해보면 그러한 뭐든지 강렬하게 빠져드는 그러한 승부욕과 열정이 그들을 국가최고의 시험이라는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했던 원동력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그런면에서 승부욕과 열정이 부족했던 나의 합격의 늦추어진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속한 반은 그러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 농구.축구.발야구 모두 예선에서 탈락하는 절망을 맛보았다.특히 내가 참가했던 축구는 예선에서 치욕적인 대패를 했기 때문에 반구성원들의 따가운 눈총을 피해 다녀야 하는 형편이다.;;


얼마전까지 WBC에서 우리 야구선수들이 위대한 도전정신으로 야구강국들을 차례로 다운시키며 우리국민들을 야구의 열광에 빠지게 했지만,연수원은 이제부터 뜨거운 체육대회열풍에 빠져들고있다. 비록 아마추어수준의 게임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타오르는 승부욕과 열정은 아무도 막지 못할것이다.

 그들과 한달을 생활하면서 배운것은 모든일에 최선을 다해 그들이 가진 열정을 쏟아붇은태도이다. 체육대회 예선이나.각종 회식등의 자리가 있어도 교수님들의 각종 실무 수업은 빽빽하게 진행되어 간다. 밤늦게 체육대회연습으로 땀을 흘리고 나서도 그들은 지친몸을 이끌고 도서관이나 독서실로 향해 밤늦도록 그날 배운 실무과목의 복습이나.교수님들께서 내어주신 사례과제물을 작성한다. 


 열정적인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것 자체가 나에게는 한없이 영광이고 앞으로 2년의 생활동안 그들의 열정을 배우고자 노력할것이다.연수원의 체육대회 열풍은 체육대회가 열리는 4월 17일까지 계속될것이고 앞으로 더많은 부상자가 속출하여도 그들의 끝없는 승부욕과 열정을 가로막지는 못할것이다.....
연수원에 입소한지도 이제3주가 지나갔다.
입소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주가 흘러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입소후 반원.조원들과의 회식,조MT,반MT,체육대회 예선.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등으로 숨쉴틈이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운영해오던 블로그관리도 전혀 하지 못했다.간간히 찾아오는 분들께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한점 깊은 사과한다.

아직까지 연수원의 같은 반.조원사람들이 어색하기만하다.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나의 성격을 바꾸어 볼려고 노력도 했지만 천성을 바꾸기란 힘든듯하다. 한번 친해지면 나름대로 정도 많고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지만;; 한번 친해지기가 참 어렵다;;

 그래도 어느덧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친해져가는 친구.나이어린 친구들이 있어 조금은 위안이 된다.

 연수원에 다니면서 한가지 미안한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우리 연수원생들이 너무 많은 헤택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우수한 실력과 인품을 자랑하는 판사.검사출신의 교수님들로부터 질높은 실무수업을 듣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스스로도 이야기 하지만 이른바 '국립로스쿨'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그야말로 실무의 최고 전문가인 교수님들로부터의 생생한 실무수업은 그 어느 로스쿨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천금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교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각별해서 수시로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는 젊은 제자들에게 귀찮아 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 답변해주는 모습은 정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가장 미안한 점은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소중한 월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연수원에 입소후 지난 3월20일 처음으로 월급을 받았다. 첫월급은 약 118만원 정도였다. 어떻게 보면 작다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다. 또 훌륭한 시설과 또 각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교수님으로 부터 생생한 실무교육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수업료를 내가 지불해야만 할것같은데 국가로부터 월급까지 받는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미안했다.

 솔직히 월급이 입금된 통장을 처음봤을때는 그냥 즐겁기만 했는데 오늘 이렇게 늦은 새벽에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뻔뻔한 놈이 아닌가?하고 생각해보았다. 과연 나는 이러한 국민의 혈세로 마련된 월급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국가와 국민들께 미안함뿐이다. 그러나 이월급을 도로 반납할 용기도 없다. 어느덧 나이도 들고 혼자 살아가야 하니 이 소중한 돈이 나에게는 정말 생활하는데 큰도움이 된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국가와 국민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시킬 방법을 찾던중 한달에 조그마한 액수라도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기부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그래서 기부할곳을 인터넷을 보면서 이곳저곳 찾던중 예전에 도너스캠프라는 곳에 조그마한 돈을 기부했던 기억이 나서 그곳을 다시 찾아가서 아주적은 금액인 5만원 정도를 기부했다.

도너스캠프라는 사이트는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회원들로부터 기부를 받아 그들을 지원해주는 사이트이다.(사이트주소:http://www.donorscamp.org/ )

 그곳의 여러사연을 읽던중 현경이.현수남매의 사연을 보게되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기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현경이 현수남매는 2년 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빠는 돌아가시고 엄마는 그 후 얼마 못되어 위암 선고를 받고 투병을 위해 거의 병원에 계시며 11살로 보기엔 한참 어린 현경이(가명/3학년)는 오빠 현수(가명/5학년)와 함께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으나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경제적으로 어려웠고 집도 없어서 친척집에서 살았던 현경이네 4식구는 기초수급권자로 국가의 보조금으로 생활하고있다.

하지만 어머니가 치료를 받는 동안 보조금의 대부분이 엄마의 치료비로 들어가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 최소한의 비용으로 지내고 있으며 앞으로 치료는 물론 자녀 교육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막막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현경이는 또래 아이들에 비해 키가 작고 몸무게도 훨씬 적다. 오빠인 현수도 몸이 워낙 약하여 심각한 영양실조로 의사로부터 부실한 식사 습관과 균형있는 영양식을 섭취하라는 조언을 들은 적도 있었고, 작년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심장이 약하다는 진단을 받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되는 딱한 사연이었다.

 더많은 금액을 기부하고 싶지만 지금 내사정이 허락하는 금액은 이정도 밖에 안되어서 미안함 마음을 금할수가 없다. 또 겨우 5만원을 기부하면서 무슨 생색을 그리 내냐고 묻는 다면 난 더이상 할말이 없고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 공개적으로 밝히는 이유는 나스스로를 강제하기 위해서이다. 그나마 이렇게 공개를 해야만 스스로 강제가 되어 적은 금액이라도 매달 기부할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마련된 월급을 받는 미안함에 대한 조그마한 고마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으로  연수원에서 최고의 시설과 최고의 판사.검사님들로 구성된 교수님들로부터 수업을 듣는 나에게 국가가 월급을 지급해주는 이유를 다시한번 곰곰히 생각했다.

그것은 결국 연수원에서 2년여의 기간동안 법률이론과 실무교육을 뼈를 깍는 고통으로 제대로 이수하여 법적분쟁에 있어서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말고 조금이나마 사회적 약자보호와 법적 정의 실현에 앞장서라는 국가와 국민의 뜻일것이다.

 연수원 수료후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지는 모르겠지만.소중한 혈세를 지급해준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은 내 뜨거운 가슴속에 심장이 식는 그순간까지 남아있을것이다.
 시험에 합격하고 들떠있을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월달이 되었다. 이제 연수원에 입소하기까지 한달도 남지않았다. 합격후 여행도 많이 다니고 싶었고.이것저것 하고싶은것도 많았는데 어리버리 지내다 보니 어느덧 입소가 코앞으로 닥쳐 온거 같아 그동안 아무생각 없이 보낸 시간이 아쉽고 아까웠다.

 지난 일요일에는 오래간만에 신림동 고시촌에 찾아가 공부에 여념이 없는친구몇놈을 만났다.시험이 코앞으로 닥쳐와 녀석들의 몸과마음은 지칠대로 지친상태였다.간단히 녀석들을 위로해주고 영양보충을 시켜주기 위해 삼계탕을 시켜주었다.아무래도 영양보충을 위해서는 삼겹살보다는 삼계탕이 좋을거 같아서 같이 먹었는데 겨울에 먹는 삼계탕도 먹을만은 했다.

 간만에 찾은 신림동 나에게는 어느덧 아련한 추억의 장소가 되어버렸다.하지만 녀석들에는 탈출하고 싶은 유배지같은 장소일것이다. 부디 올해에는 녀석들이 좋은결과를 만들어내서 지긋지긋한 신림동을 탈출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시험이 얼마안남은 녀석을 위해 시험후 다시만남을 가질것을 약속하며 저녁식사후 바로 헤어졌다.

 연수원 입소전까지 한가지 해야할 숙제가 있다. 연수원에서 선정한 10권의 도서중 3권을 읽고 A4지3장 분량의 간단한 에세이를 제출해야 하는것이다. 사법연수원 홈페이지 배움터의 권장도서란을 보면 '사법연수원생이 꼭 읽어야 할 10권의 책'이라는 제목과 함께 10권의 권장도서 목록이 펼쳐진다.

 사법연수원생이 꼭 읽어야할 10권의 책의 선정은 연수원 원장님.부원장님.각  교수님. 사법 연수원 운영위원.외래강사등 각계각층의 추천을 받은 150여권의 도서중 심사를 거쳐 연수원시절에 꼭 한번은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 10권을 선정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등 철학서에서 일본최고재판소이야기등의 법과 관련된 서적.열국지등의 소설등 이미 정평이 나있는 다양한 분야의 명서들이 선정되어있었다. 많은 책들이 이미 유명한 책이기 때문에 나또한 선정된 도서중 많은 책들은 읽은 경험이 있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경험이 있고,라드부르흐가 쓴 법철학은 대학1학년때 읽어본기억이 있다.그밖에 간디자서전.죄와벌.열국지등도 어린시절 읽어본 기억이 있는 친숙한 책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면서 어린나이었지만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신성모욕이라는 어이없는 죄를 뒤집어 쓰고 소크라테스의 적들의 선동에 의해 속아넘어가버린 아테네 시민들의 어이없는 재판에 희생되는 것을 그져 바라만 보고 있어야 만 했던 플라톤의 아테네 시민민주주의에 대한 염증을 이해할수 있던 책이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어이없는 희생이 결국 플라톤이 그토록 강력하게 소수의 철인에 의한 정치를 주장하게 만든 계기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오늘날 대중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대중의 선택은 올을수도 있고 그를수도 있다. 결국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것은 현명한 정치지도자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전에는 마리 자겐슈나이더가 쓴 '권력과 양심의 파워게임,세기의 재판 50'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소크래테스의 재판에서부터 나치전범재판.O.J심슨재판등 시대를 흔들었던 대표적인 재판을 담은 책이다.

 권력은 사법을 그들의 권력유지를 위해 통제할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법과 적법절차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양심을 위해 그 권력에 대항하며 권력으로부터 사법을 보호하려고 투쟁하기도 한다. 때로는 권력에 굴복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내며 부당한 재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 권력에 맞서 싸워 시대를 이끌에내는 명재판을 만들어 내기도 하는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자신은 권력이 가해오는 공포에 맞서 싸울 용기가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솔직히 자신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권력의 공포에 굴복한 이는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본디오빌라도 같은 낙인이 찍인체 많은 이들의 역사적 비난을 받을것이고 그와 맞서 싸운이는 시대를 변화시킨 영웅으로 역사는 기록할것이다.

하지만 현세의 권력의 공포와 달콤한 유혹에 의해 앞으로도 재판에 있어 권력과 양심의 파워게임은 계속될것이다. 권력과 양심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법을 집행하고 판단하는 이들의 몫이다.그래서 그들의 양심과 소신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아무튼 대학졸업후 오래간만에 독후감 숙제를 받고 보니 막상 무엇을 써야할지 고민이 되고 있다.마치 초등학교 시절 겨울방학 숙제를 받은 느낌이다.

 사법연수원에서 선정한 사법연수원생이 꼭 읽어야할 10권의 책은 꼭 연수원생이 아니라도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은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가을이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이라고 하지만 한겨울 잠들기전 따뜻한 차한잔을 마시고 따스한 이불속에 누워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은 재미도 나름 솔솔하다.

  지난 12월 23일 사법시험 최종합격자를 대상으로 한 사법연수원 면접이 있었다. 지난 11월 3차면접시험때에도 일산 특유의 칼바람이 불어 많은이들을 덜덜떨게 하더니 이번 사법연수원면접도 다소 추웠다.

 그러나 이미 최종합격을 한상태에서 앞으로 연수원에서 일과소개와 연수원교수들과의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기 때문에 지난 3차면접때의 팽팽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연수원 홈페이지에 약8시 30분까지 도착해달라는 공지를 보고 8시20분 정도에 도착을 하니 이미 많은 예비연수원생들이 도착해있었다.일부는 지난 서류등록기간에 연수원수첩에 기재될 증명사진을 찍지 못해서 연수원내에 있는 식당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이들도 보였다.


 그리고 일부 연수원생은 자신의 예비학번을 기억하지 못해 단상에서 확인하는 모습도 보이는등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수원생들이 대강당에 다모이자 공식적인 행사가 시작되었다.

 우선 연수원 교수님 한분께서 오셔서 앞으로 연수원생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즉 학기는 언제 시작하고 시험은 어떻게 보고 하는지등등 연수원생활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다. 인상이 아주 포근했던 분이셨는데 간간히 유머도 섞어가면서 연수원생들의 웃음을 유발하며 아주 자상한 설명을 해주셔서 앞으로 연수원생활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연수원생은 단순한 대학원생이 아닌 국민의 혈세를 통해 매월 봉급을 받는 공무원신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실제로 3월 연수원 입소식을 마치고 정식으로 연수원생이 되는 순간부터 연수원생은 5급공무원에 해당된다. 공무원에 해당되는 만큼 매월 국민의 소중한 혈세로 마련된 약 100여만원의 봉급을 받게 된다.

 최근에는 합격자가 1000여명에 달하여 연수원생중 일부만이 판검사로 임용되고 대부분 변호사활동을 하는 상황에서 변호사를 양성하는 그런 교육과정에 국민의 혈세를 통해 봉급을 지불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우리사회의 비판이 있다는 사실을 연수원 교수님들도 잘알고 계셨고.따라서 그러한 상황에서 더욱더 공무원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경솔한 행동을 하지 말고 항상 겸손하게 법률봉사활동등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2월초에 수강과목신청을 설명해주셨다.개인적으로 자신의 전공분야를 선택해서 그러한 전공분야에 맞는 필수학점과목을 수강신청해야만 한다. 아직까지 시간이 남아 있지만 나의 전공을 무엇으로 해야할지 아직까지 제대로 정하지 못했다.남은 시간 진지하게 고민해보야 할듯하다.

 그리고 예상밖의 숙제도 있었다. 입소식때까지 연수원에서 지정해준 책을 읽고 간단한 A4지 3장분량의 에세이를 써오라는 숙제였다.연수원홈페이지에 게시된 책들중에 3권정도의 책을 읽고 써오라는 숙제였다.대학졸업후 오래간만에 숙제를 받아보니 마치 초등학교때 겨울방학 숙제를 오래간만에 다시 받는 느낌이었다.

 오전에 이렇게 앞으로 있을 연수원생활을 교수님들로부터 소개 받은후 점심식사후 오후부터 연수원생을 대상으로 개별면접이 시작되었다.일부는 오전에 면접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왔다.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꾸벅꾸벅 계속졸았다.연수원 본관 10층에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꾸벅꾸벅 졸다가 일어나 창을 통해 바래보니 일산의 전경이 내려다 보였다. 잠시 동안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공부했던 고시공부하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과연 내가 합격할수 있을가하는 불안감,불합격하고 좌절하던 순간등이 하나 하나 떠올랐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사법연수원 본관에 이렇게 와 있건만 잠시동안의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보았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내이름이 호출이 되었고 교수님이 계신 방으로 들어갔다.교수님은 우선 합격을 축하한다고 자상하게 말씀해주셨고.그후부터는 개인적인 신상이야기 즉 고향.고등학교가 어디출신인지 대학생활을 어떠했는지.앞으로 어느분야에 진출하고 싶은지등등을 이야기 나누었다. 사법시험3차시험 면접에서와는 정말 정반대의 분위기였다.엄격함속에서 이루어진 집단면접 법률적 지식을 물어보시고 냉정하게 바라보던 면접관님들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연수원 면접의 교수님은 아주 자상하게 이것저것 물어봐 주셨고 그래서인지  긴장이 풀려 간단한 농담도 나눌수 있었다.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면접이 끝났다.

 이제 공식적인 모든 일정이 입소식전까지 마무리되었다. 이제 약 2달여 남은 기간이 입소전의 선배들 말로는 앞으로 다시 찾아오기 힘든 일생에 있어서 가장 여유로운 시기라고 말한다.먼저 연수원에 들어간 선배나 후배들은 다시 찾아오기 힘든시기이니 여행도 다녀오고 좀 여유롭게 지내라고 조언을 한다.
 한편 연수원 교수님께서 강조하신것처럼 연수원생이 공무원신분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항상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필요성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