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법불신의 시대를 살고있다.

시사비평 2012. 1. 28. 09: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영화 도가니에 이어서 부러진 화살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부러진 화살은 흥행에 성공하며 일반 대중에게 법원의 판결이 정의롭지 못했다고 어필하고 있다.

 

 우리는 사법불신의 시대를 살고 있다. 법원 앞에는 연일 재판의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판결을 한 판사의 이름을 공포스러운 빨간 글씨로 적어 1인 시위를 하고 있고,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의 판결의 결과에는 이념적 성향에  따라 정의롭지 못한 판결이라며 사법부를 비판하고, 심지어는 판사의 집앞에서 날계란을 던지며 항의하고, 정치인들은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사법부를 비판한다.

  영화 부러진 화살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직설적으로 사법부의 판단이 잘못됬으며, 정의롭지 못한 판결로 선량한 시민이 희생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사법불신의 시대를 초래한 것일까?

  대중들의 법조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다. 판사의 판결은 정의롭지 못하며, 검사는 권력에 아부하는  집단이며, 변호사는 돈만 밝히는 수전노 같은 존재이다. 대중들에게 법조인 및 사법부는 항상 개혁의 대상이며, 때로는 타도의 대상이기도 하다. 

  자업자득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의 선배 법조인들은 과거 군사 독재시절 그들의 눈치를 보며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내린 것이 사실이었고, 변호사는 의뢰인이 고액의 수임료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진행 과정 내내 변호사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던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과거 다소 무지했던 대중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그려러니 하고 넘어갔지만 투철한 시민의식으로 무장된 대중들은 이제 과거의 무지했던 그들이 아니다.

대중들에게 각인된 사법불신을 깨트리기는 너무나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법조비리 사건이 종종 터질때마다 사법불신을 종식시킬 개혁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유아무야 넘기며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렸고, 대중의 기대는 실망감을 넘어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한 대중들은 이제 양치기 소년이 되어 버리는 사법개혁을 믿지 않는다.

 그러한 대중의 좌절감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마른 사막의 모래땅을 옥토로 만든다는 각오로 이제라도 정의의 칼을 들어야 할 때이다. 법원은 누가 보아도 신뢰할 수 있는 판결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대중들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여기는 이른바 전관예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고, 나와 같은 변호사들은 보다 낮은 자세로 의뢰인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대중은 법이 정의롭고 만인에게 공평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법은 항상 가진자에게 유리하고, 약하고 소외된 자들에게는 가혹하다고 여긴다. 탈주범 지강헌이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외침은 아직도 대중들에게 진실로 다가온다.
 
   법은 공평해야 한다 그것이 진리이다. 그러나 진리를 지키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가야만 한다. 진리의 고된 행군을,  그래야만 대중들의 뿌리깊은 사법불신의 시대를 종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여야는 한미 FTA에 대한 극한 대립끝에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한나라당의 본회의 기습상정으로 단독처리되었다. 이에 대하여 야당은 본회의 장에 사상 초유의 최루탄을 터트리며 결사 항전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번 FTA 국회 단독처리는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다. 여야 협상파의원은 단독처리라는 파행을 막기 위해 분주히 노력하였지만, 강경파에 밀려 그 입지가 축소되었고, 결국 협의는 실패하였고, 단독처리가 언제 될 것인가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FTA 국회 단독처리는 야당의 극렬한 반대로 인한 몸싸움, 한국 국회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추태로 끝이났다. 국회 단독처리는 기존정당의 한계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인 것이다. 이번사태로 기존정당의 한계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기존 정당은 국가의 중요한 결정사항에서 항상 극렬한 대립을 보이며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본회장에서 몸싸움과 난투극으로 해결하는 자세를 보여왔다. 대한민국 국회가 개원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회에서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방식은 찾을 수 없고 오직 몸싸움과 난투극으로 해결하는 구시대의 작태는 여전히 훌륭한 의사결정 방식으로 남아 있는 형상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모두 마찬가지이다. 마치 임진왜란을 발발전에 왜의 동향을 살피기 위해 왜에 다녀온 대신들이 그들의 당파에 따라 서로 반대의견을 내어 왜의 침입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것 처럼,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당은 중요한 국가의 중대사항에서 여전히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만으로 기존정당의 정책이나 협의점에 대해 반대정당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극렬하게 반대한다. 그리고 이러한 극한 대립을 피하기 위해 협상을 주도하는 협상파의원들은 각 당의 강경론자들에 의해 당을 배반하는 행위로 간주되며 결국 협상파 의원들의 입지는 줄어든 채 강경론자들의 의견이 그 당의 의견이 되어 더이상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초래되는 것이다.

  쓴웃음이 나올 일지만 매년 반복되는 국회단독처리와 몸싸움은 대한민국 국회만의 의사결정 방식이 아닌가 생각한다. 매년 국회 본희의장을 점령하기 위한 극한 몸싸움 끝에 어찌되었건 중요한 안건은 처리되고 집행이 된다. 그리고 국가는 그 처리된 법률에 따라 나름대로 제대로 작동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우리 시민들은 이런 구석기 시대같은 의사결정 방식을 바라만 보아야 하는 것일까?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시민들에게 봉건시대에나 있을 법한 의사결정방식을 강요하는 우리 국회와 정당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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