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일주일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추석명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바쁜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능한 주말출근은 하지 말자는 의지를 가지고 월요일부터 밤이 늦도록 야근을 했건만, 사건을 화요일에 기록을 만들어서 가지고 와서 목요일에 서면을 제출해달라고 하는 급박한 사건이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장을 쓰면서 '주말출근은 제발'이라는 나의 목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 중 목요일은 최악이었다. 사건이 꼬여버린 다소 부담스러운 사건이 3개나 있었던 마의 목요일이었다. 그중 아침에 잡혀있던 사건은 그나마 어떻게 잘 해결될 기미를 보여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찰나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진행했던 항소심 사건이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통보.......1심에서 승소한 사건이었으나 항소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점점 불리해지더만....결국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잠시동안의 안도의 한숨이 무거운 한숨으로 바뀌었다. 의뢰인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까...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 뒤집어지는 판결은 의뢰인도 당혹스럽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당혹스럽다.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인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의뢰인은 역시나 크게 실망했고. 나는 대략적으로 패소한 원인을 설명하며 일단 판결문이 오고 나서 상고여부를 검토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쓰디쓴 패배의 소식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동부지원으로 향했다. 형사사건 재판이다. 의뢰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신청한 증인은 수차례 출석을 거부하고, 사건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측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기일에도 증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기일이 될 것이다.

 역시 증인을 출석하지 아니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은 증인의 불출석에 풀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 기대가 날아가는 심정일 것이다....그리고 방청석에는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와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을 가르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뢰인을 위해 최후변론을 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십명의 피해자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고함을 쳤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나는 법정경위와 피고인과 함께 온 교도관들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다시 나는 오후 5시에 잡힌 수원재판을 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난 지칠때로 지쳐있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머리속이 복잡....아니 미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이 사건 다소 논리적을 빈약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변호사로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그런 낯뜨거운 사건이랄까^^;;; .......그러나 어찌어찌 그렇게 마치고 나니 5시30분이 넘어선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바람에 춤을 추는 막대인형처럼 이리저리 이끌려 춤을 추다가 바람이 빠져버려 힘없이 사그라지는 느낌이랄까....온몸이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금요일은 오후에 춘천재판이 있었다. 그렇게 부담은 없는 사건이었으나, 의뢰인이 필요한 증거를 준비해오지 않아 공전이 될 사건이기에 재판부에 한기일만 더 잡아달라고 사정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가을하늘은 가을하늘의 청명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목요일의 고단함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상쾌한 공기로 잊혀지는 듯 했다.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던 중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을 보았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하얀소금을 뿌러놓은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왜 문학작품에 그렇게 아름답게 메밀꽃을 묘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과 청명한 가을하늘의 유혹에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췄다. 콧등을 스치우는 상큼한 바람의 내음, 유유히 떠가는 하얀 구름사이로 푸르른 얼굴을 비치우는 하늘...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일어섬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사그라짐이라고 했던가...나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게 유유히 구름을 보내며 나에게 근심을 덜어놓으라 하고, 이름모를 풀꽃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며 나에게 행복하라 하는데,, 나는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듯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일주일의 고단함이, 소박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의 유혹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법원은 휴식중......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2. 8. 7.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법원은 7월말에서 8월 초까지 약 2주간의 휴정기를 갔는다. 이 기간 동안 판사 및 법원 공무원이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맞추어 변호사들도 여름휴가를 떠난다. 드디어 변호사들이 꿈꾸어 오던 법원 휴정기기 시작되었다. 올해는 7월 30일부터 8월 11일 까지 약 2주간의 법원 휴정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7월 30일부터 약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1년동안 오직 이 일주일간의 휴가만을 기대하며 살아 온 것처럼 휴가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설레였다. 휴가 일주일 전부터는 다소 나를 짜증스럽게 만드는 의뢰인이 찾아와도 싱글벙글 웃으며 친절하게 상담을 하였고, 촉박하게 재촉하는 의견서를 작성하기 위해 밤 10시가 넘어서 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어도 즐거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휴가 전주 금요일..... 오후 4시 인천재판을 마치고 나는 바로 집으로 고고씽이다. 나를 괴롭히던 두꺼운 사건 기록들이여 이제는 안녕, 이제 너를 다시 보지 않으리.....나에게는 푸르른 제주도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일찍 끝날줄 알았던 인천재판은 뜻밖에 밀려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고, 퇴근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출발하는 나의 애마는 질주본능을 느끼지 못하고 서울로 기어만 간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휴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후 8시가 다되어서 집으로 도착, 사랑하는 아내와 10개월 된 딸아이가 나를 반긴다. 이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이번 휴가는 큰맘먹고 유럽으로 날아가 런던 올림픽의 영웅들도 응원하고 싶었건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원대한 유럽원정의 꿈은 날아가고 제주도로 향했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푸른 바다의 시원함과, 맛있는 음식들,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겨주었고, 일년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날아만 가는 것 같았다.

  3박 4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이제부터 슬슬 다시 사무실에 나가야 할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지옥같은 현실이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아직 여유는 있다. 쇼파에 늘어져 올림픽 경기를 보고,,,졸리면 자고,,,,배고프면 먹고,,,,,, 이 얼마만에 누리는 여유란 말인다. 영원히 이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달콤했던 일주일간의 휴가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월요일 요란스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기상소리가 왜이렇게 지옥의 종소리 처럼 느껴지는지....결국 사무실에는 지각을 했고...사무실 책상에는 결제 서류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고, 갑작스럽게 다음주 까지 제출하라는 석명준비명령은 왜 이렇게 많이 날라왔는지,,,아무래도 다음주 광복절에는 출근을 해야만 할 것 같구나....

 나의 일주일의 휴가는 그렇게 꿈처럼 사라져 갔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우울함의 그림자가 나를 하루종일 짓눌렀던 검은 월요일이다.

 

법원에서 느끼는 불황의 그림자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12. 20.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생각외로 오래간다. 미국을 벗어나 이제 유럽을 휩쓸며 전세계를 불황의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수출을 대상으로 하는 몇몇 대기업은 불황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게 직원들에게 연말에 두둑한 성과급을 지급하며 돈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긴 불황의 늪에서 연말의 분위기 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불황의 깊은 그림자는 법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재판을 하러 법정에 앉아 담당 사건을 준비하며 법정을 바라보면, 많은 이들이 카드빚을 갚지 못하여, 채권양수기관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하고, 어려운 경제적 형편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을 받아 사업자금을 마련하였으나, 사업의 부진으로 부도를 내고 보증기관으로부터 구상금을 청구당하는 빈번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채권자로서는 채권회수를 위해 당연히 소송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하지만 간간이 법정에서 고령의 노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들의 부탁으로 연대보증인 등이 되어 법정에 출석하여 그들의 사정을 하소연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가슴이 아려오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고령의 노인의 꾸부정한 모습으로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을, 아들의 바라본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정부에서는 무역1조달러를 달성하였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섰다며 호들갑 떨고 있지만 무역1조달러의 혜택은 몇몇 대기업에 국한되는 듯하다. 법원에는 여전히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이들로 북적이고, 불황의 그늘을 견디지 못한 한때는 유망 중소기업이었던 기업이 파산신청을 하기위해 법원에 온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개인회생을 문의하는 전화를 하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다.

경제난으로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명예퇴직을 당한 아직 한창인 이들은, 자의반 타의반 자영업의 세계로 들어오고 결국 자영업의 공급과잉으로 많은 이들이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고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아들의 빚보증을 했던 백발의 어머니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행방불명된 아들 대신 법원에서 그들의 사정을 하소연한다.

얼마전에는 법정에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를 대동하고 사라진 남편의 빚을 탕감하여 달라고 울며 하소연 하는 젊은 여성을 보았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어머니의 하소연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


법원 앞은 많은 이들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고, 오늘따라 법원은 유난히 춥다. 무역1조달러의 달콤한 과실은, 적어도 법원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눈앞에 보였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2달간의 법원 시보를 드디어 마쳤다.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봄을 시샘하듯 하늘은 하얀 눈을 바람소리와 함께 뿌린다.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이글을 쓴다.아마도 올겨울의 마지막 눈일것이다. 

 40기 사법연수원생은 이제 1년차 과정을 마치고 각 시보생활을 하고 있다. 난 처음으로 법원시보생활을 하게 되었다. 법원시보는 각 형사.민사판결문 작성.조정.영장기록검토등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법원시보생활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국선변호일것이다. 시보기간동안 의무적으로 2건이상의 국선변호를 하도록 되어있다. 실질적으로 법정에서서 피고인을 위해 변호를 해야하는것이다. 연수원 생활동안 실무경험을 처음하게 되는 그런 사건이다. 처음 국선변호 사건을 배당받아 법정에서 피고인 신문을 하고 판사님께 피고인을 위한 최후변론을 하던 그때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기록을 들고 법정의 변호인석에 앉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떨렸다.그러나 피고인을 위해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었다.심호흡을 크게 하고 집중해서 피고인 신문사항을 검토하고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니 다행히 긴장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

 국선변호인에 선정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피고인을 접견하기 위해 구치소로 향했다.과연 피고인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초짜 사법연수원생을 그를 조력할수 있는 변호인으로 신뢰할까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마침내 구치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접견실에서 피고인을 기다렸다.이미 접견실에는 많은 변호인과 피고인들이 접견을 하고 있었다.가방에서  피고인에 관한 기록을 꺼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내가 국선 변호를 담당한 피고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다.무엇이 이 사람을 범죄의 길로 이끈것일까? 기록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가했다. 또 내가 이사람을 위해 무엇을 변호해야 하는 것일까? 피고인은 이미 모든 범죄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특별히 법률적 쟁점이 없는 사안이었다.다만 피고인이 범죄전력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정상관계를 강조해 실형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할수 있을 뿐이다.

  약 10여분이 흐른후 피고인이 찾아왔다.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피고인은 자리에 앉았다.난생 처음으로 보는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의 모습.나도 모르게 다소 긴장했다. 간단하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음으로 알리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피고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기 때문인지 많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피고인이 왜 이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부터해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피고인의 가족관계.어린시절,경제적 상황등 정상관계를 참조하기 위한 질문을 했고, 피고인은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고인을 바라보니 피고인도 우리 보통사람과 다를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피고인도 이사건 범죄를 저지른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는 생계형 범죄로 그렇게 죄질이 중한 범죄가 아니었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초범이고 죄질이 중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피고인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약 한시간정도의 피고인과의 접견을 마치고 구치소를 나왔다. 나도 모르게 피곤함이 밀려왔다. 

  법과 정의 그것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모순덩어리처럼 보인다. '죄를 지은자는 반드시에 그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일것이다. 그러나 법도 눈물을 흘린다. 지나친 온정주의는 피해야 할것이지만,엄정한 처벌만이 정의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하는것은 아닐까?

집으로 오는 도중이 깊은 한숨을 계속 내리쉬던 피고인의 모습이 창밖에 스쳐갔다. 

 기일에 제출할 변론요지서와 피고인신문사항을 작성했다.자백한 사항이라 중요한 법적쟁점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관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피고인 신문사항도 피고인이 왜 이러한 범행을 저지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지 피고인이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 작성할수 밖에 없었다. 

  또 피고인이 취한 범죄수익을 피고인이 그대로 보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피고인의 가족에게 일정부분 복지단체에 기부할것을 제안했고 피고인의 가족도 흥쾌이 수락해주어 피고인의 가족이 일정부분의 금액을 기부하고 그 영수증을 제출받아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드디어 변론기일이 열렸다.변호인석에 앉아 맡은 사건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기록을 차근차근 다시 한번 살피고 피고인 신문사항을 다시한번 검토하고 변론요지서 또한 검토해 최후변론할사항도 정리하였다. 

 피고인이 호명되었고 변호인석에 앉았다. 변호인석에 앉아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몰려왔다.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증거조사가 시작되었다.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하여 간이공판절차로 재판은 진행되었다. 증거조사가 끝난후 피고인 신문이 진행되었다. 

  나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피고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나 신문이 진행되면서 다소 떨리던 목소리도 어느덧 안정감을 찾아갔다. 피고인의 정상관계를 가능한 많이 부각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약 30여개 이상의 질문을 마치고 피고인 신문을 끝냈다. 다른 이에게는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변론요지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최후변론을 하였다. 가능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번 피고인의 정상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최후 변론이 드디어 끝나고 재판이 종료되었다.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재판부의 선처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변론을 마치면서 피고인과 간단히 악수를 했다. 피고인의 손은 따스했다.내가 이피고인을 위해서 과연 제대로 변호를 해준것일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변호인이었다면 숨어 있던 법적 쟁점을 찾아내거나 혹은 정상관계를 더욱 부각시켜 피고인에게 유리한 변론을 해줄수 있었던것은 아닐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변론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나의 잘못된 변론으로 해서 이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무능력한 앞으로도 배울것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후 판결선고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준것이다. 피고인은 과연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갈수 있을까?법은 이피고인에게 이번기회에 죄를 깊이 반성하고 소박한 시민으로 살아갈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피고인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피고인의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수 있도록 하는 사회정책적 접근방식도 필요할것이다. 

 어찌 되었건 2달간의 법원시보생활은 다시 한번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닭게 하였다. 무료법률상담에서는 아직도 내가 너무나 모르는 영역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조정위원으로 참석한 조정사건에서는 당사자간의 법적 분쟁에 대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은 가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국선변호를 맏은 사건에서는 변호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능력한 변호인은 그 의뢰인에게 깊은 상처를 줄수도 있겠구나 하는 반성을 하는 시기였기도 했다. 

 화사한 봄꽃소식을 전해 주여야 하는 3월에 한가운데 봄을 시샘하듯 눈발이 휘날린다. 이번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이 오고 추웠다. 어둠을 밝혀내는 작은 촛불은 나약하다. 작은 바람에게 꺼질듯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 나약한 불빛에 의지에 길을 찾는 이에게 그 불빛은 유일한 희망일것이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 유일한 희망이 될수 있는 그런 법률가가 될수 있을까?



...........................3월의 눈내리는 새벽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