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폰이 피로 회복제였다고?

마약범죄 2024. 4. 24. 00:53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케타민, 코카인, 엑스터시, 합성대마 등 다양한 마약이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대표주자는 필로폰이다. 아무래도 제조과정에서 냄새는 고약하지만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제조원가가 저렴하기 때문일 것이다.

에페드린 등 화학물질을 합성하여 제조하는 필로폰의 정식명칭은 메스암페타민이다. 그런데 왜 필로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릴까?

 

메스암페타민은 1888년 일본 교수가 천식치료제인 마황으로부터 에페드린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발견후 효능을 보니 투약후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우며 기분이 좋게 하고 또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 각성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각성효과가 그 어떠한 약물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한 후 1900년대 초반 대일본제약에서 메스암페타민을 피로회복제로 출시했는데, 그 상품명이 ‘philopon’이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필로폰은 피로회복제로 출시된 메스암페타민의 상품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필로폰은 처음 출시되었을때에는 합법적인 피로회복제였다. 각성 효과가 워낙 탁월해 당시 밤낮으로 전투를 해야하는 군인들이 많이 사용했다. 스타크래프트의 스팀팩같은 존재라 할까? 특히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과 독일군이 많이 사용했는데, 독일군이 프랑스 침공당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르덴 숲을 뚫고 전격전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독일군에 보급품으로 지급되었던 필로폰 덕분이었다. 일본군도 전쟁 막바지 죽음의 공포를 뚫고 미국 항공모함에 돌진해야 하는 카미가제 대원들에게 필로폰을 투약했다.

이처럼 필로폰이 처음에는 피로회복제로 정식으로 군에 보급되던 보급품이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하지만 필로폰의 부작용은 너무 심각한 것이다. 단기적으로 각성효과가 있으니 반복 투여시 정신 분열이 생기면서, 환청, 환시 등이 나타나고 극심한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한편 종전 후 일본 군수창고에 보관 중이던 필로폰을 야쿠자들이 몰래 빼내 시중에 유통하며 대중들에게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후 각성제 파동으로 일본에서 필로폰 범죄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하자, 야쿠자는 원료를 대만에서 사와 제조를 한국에서 한후 다시 일본에 수출하는 소위 백색의 삼각지대가 구축되었다. 1970년대 한국은 세계 최대의 필로폰 제조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송강호가 주연한 마약왕도 당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한국의 필로폰 공장이 증가함에 따라 일본에 수출되고 남은 잉여물이 한국에도 유통되면서 한국의 필로폰 사용자도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한국정부도 1990년대 강력한 단속을 함으로써 국내 필로폰 제조 기술자들이 중국으로 도주해 이후 중국이 주요 필로폰 제조 국가로 부상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가 2000년대 후반부터 필로폰 제조 사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걸리면 무조건 사형으로 엄벌에 처하자 또 제조 조직이 동남아로 이동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강력하게 필로폰 등 마약을 이처럼 단속하지만, 마약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필로폰은 여전히 한국, 일본, 필리폰 등 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마약류이다.

 

문제가 심각한 것은 마약을 처음 접하는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로폰 등 마약의 단가가 점점 떨어지다 보니 본드나 부탄가스를 하던 청소년들도 필로폰이나 케타민 같은 마약류를 쉽게 구해 투약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번 마약의 유혹에 빠져들만 단약은 정말 힘들고 괴로운 것이다. 하지만, 점점 유혹의 손길이 많아지고 있으니 상황이 삼각한 것이다. 피로회복제로 탄생한 필로폰이 점점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투약사범은 일종의 중독자와 같기에 엄벌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다. 물론 유통사범은 엄하게 처벌해야겠지만, 투약사범은 치료가 선행되어야 한다. 마약류 중독자에 대한 단순 처벌은 일시적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출소 후 그 중독성으로 인해 다시 마약류에 의존하게 되어 처벌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투약가 구금되면 마약사범으로 교도소 내에서 일반 형사범들과 구분되어 마약사범들끼리 같은 거실에서 생활을 하게 되며, 따라서 마약 사범들이 같은 거실에서 수형생활을 하며 서로 자신들의 마약경험을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마약을 좀 더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과 인간관계를 획득함으로써 사회에 나와서 더욱 쉽게 또다시 약물을 접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 투약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면 엄벌보다는 재활치료가 시급할 것인데, 우리나라 형사정책은 아직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