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해가는 고시촌을 지나며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6. 2. 9. 00:02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금요일 오후 인천에서 2시간에 걸친 지루한 증인신문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맡기고 서울로 향했다. 무심코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한참을 가던 나는 점점 눈에 익숙해지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그토록 내가 몸부림치며 벋어나고 싶어 했던 신림동 고시촌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나는 5년여 동안 거주하며 처절하게 시험준비를 했던 신림동 고시촌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신림동 고시촌은  항상 탈출하고 싶은 그러나 쉽게 탈출할 수 없던 절망과 한숨의 아물지 않는 상채기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는 찾기 싫었던 신림동 고시촌으로 네비게이션이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그렇게 사법시험 합격 후 처음으로 찾아간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을 차량 창문으로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난한 촌부의 아들이 사법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한 것자체가 무리였을지 모른다. 몇년에 걸친 2차시험에서의 낙방은 나를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만들었고 거주지는 점점 가격이 낮은 신림동 산 끝으로 향했다. 더이상 새책을 살 여력이 되지 않아 헌책방에서 책을 사야했고, 학원 강의는 들을 여력이 되지 않아, 헌책방에서 테입을 사서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테입도 듣자 마자 바로 팔아야 했고 책도 시험이 끝나자 마자 다시 팔아야 했다.

그래도 시험은 계속 떨어졌고, 더이상 독서실비도 낼 여건이 되지 않아, 서울대 도서관에서 1,800원 짜리 식사를 하며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나는 그해 4번째 2차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3번째 낙방까지는 무덤덤했다. 하지만 총점에서 3점 차이로 떨어진 4 번 째 낙방은 날 더이상 일어설 수 없게 만든 카운터 펀치 같았다. 그날 고시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고시원 옥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난 좌절해야만 했다. 그렇게 신림동 고시촌은 나에게 처절한 아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잊으려 했을지 모른다. 끄집어 내면 낼수록 아픈 과거가 들추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우연치 않게 스쳐 지나가는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은 더이상 아픈 상채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아픈 기억도 시간이 흘러가 뒤돌아보면 아름답게 포장되는 추억이 되는가 보다. 20대 후반 젊은 시절을 통채로 바친 고시촌의 모습은 어느덧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고시촌은 쇠락해가고 있었다. 합격자 발표일에 합격자 명단을 붙여 놓아, 수많은 고시생들이 서로의 명단을 확인하며 기쁨의 환호성과 아쉬움이 탄식이 교차하던 상원서적, 쿠폰을 가져가면 책을 할인해주었던 광장서적, 사법시험 2차시험 강의로 유명했던 고시학원 등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 하다. 나의 젊은 시절을 모두 바친 고시촌이 그렇게 쇠락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의 젊은시절 추억의 앨범하나가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사법시험합격 선물로 받은 독립선언서

고시촌이야기 2012. 10. 23.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금요일 제54회 사법시험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아마도 신림동 고시촌은 합격의 기쁨과 낙방의 아픔이 공존하며 하루종일 술렁거렸을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생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였을 것이다.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지난 수년간의 고되고 힘든 순간들이 떠올라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54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들으니,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때가 2008년 10월경이나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2008년 나는 무척이나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다. 2007년 4번째로 본 사법시험 2차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춥고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지나 1차 시험에 합격을 하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더위와 싸우며 2차 시험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10월 합격자 발표의 날이 다가왔다. 1차시험에 처음합격했을 때 나는 초시로 단번에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고시촌에서 도들 닦듯이 오랫동안 공부하는 장수생은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시는 커녕 재시에서도 낙방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세번째 2차시험에도 떨어지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4번째 시험에도 떨어지면서 난 처음으로 고시원 옥상에 올라가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수생이 나는 되어가고 있었다.그리고 철없이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이 가득했던 나는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몸을 떨어야 했다.

  2008년 10월 21일 그날은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고시원을 나가 관악산을 거닐다가 발표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상원서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서 나의 이름을 보았을 때 그 때의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08년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당시 고시촌)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부모님께 전하고 나는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에는 부끄럽게도 나의 뒤늦은 합격을 축하한다는 플랭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떼어내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기뻐하시는 마음을 생각하여 그대로 두었다. 지금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고향에 도착하니 친척, 동네주민분들께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고향은 아직도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시골마을이라, 아직도 사법시험이 마치 과거시험에 급제라도 한 것처럼 대단한 시험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동네주민과 부모님의 축하를 받으며 오래만에 마음편히 고향집에 머무르던 어느날, 백발이 성성한 동네 어르신 한분이 찾아와 정성스럽게 포장한 무엇인가를 전해주셨다. 솔직히 그 분은 부모님과는 친분이 있는 분이셨지만, 나는 일면식도 없는 낯선 분이었다.

 그분께서 별다른 말씀없이 전해 주신 것은 한자,한자 정성스럽게 직접 쓰신 독립선언서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 독립선언서을 마음깊이 새기며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라는 뜻으로 정성스럽게 작성한 그 독립선언서을 나에게 시험합격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얼핏 보아도 작은 글자로 빽빽하게 기재된 독립선언서는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을 것이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그분께서는 왜 보잘것 없는 나에게 그렇게 정성이 가득 담긴 독립선언서를 준 것일까?

 아직도 나는 그때 받은 독립선언서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뿐, 사무실이나 집의 벽에 걸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독립선언서이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한 큰일은 커녕, 조그마한 법무법인에서 사건이 복잡하다, 의뢰인이 너무까다롭다고 투덜거리며 변호사의 능력을 수시로 시험당하는 그져 그런 변호사의 길을 살고 있다. 나는 그분이 의도한 대로 그러한 큰 뜻을 펼칠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정성이 가득담긴 독립선언서를 받을 자격이 없기에 독립선언서를 떳떳히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오면, 난 그때 받아 책장 한구석에 고이 보관해온 독립선언서를 펼쳐본다. 내가 사법시험에 그토록 메달렸던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변호사의 길은 옳은 것인지를  그 짧은 순간이라도 고민해본다.

 이제 사법시험 합격은 큰 영광이 아니다. 그러나 사법시험 합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5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선배.후배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보낸다. 고된 노력의 결과가 이제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축하받을만 하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많은 이들이 나같이 평범한 변호사의 삶을 살지 말고, 보다 의미있고 어려운 이들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러한 법조인의 삶을 살기를 기원해본다.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평범한 변호사이기에 그런 기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고시촌 입성기(고시촌 탈출기 1)

좌충우돌고시촌탈출기 2012. 2. 4.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서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다. 비록 법학을 전공하기는 하였지만 나는 법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학 1학년때 처음 접한 민법총칙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외계어 같은 각종 법률용어, 이론 등은 아 내가 괜히 법학을 전공했구나 하는 충격을 주었고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즉시 군대로 도피를 택했다. 그만큼 법학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강릉에 침투한 무장공비와 열심히 싸우고, 제대를 하고 보니 대한민국은 듣지못했던 외환위기로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었고,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던 직장은 이제 실업자를 양산하며 수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시골에서 힘겹게 자식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난 안정적인 무엇인가를 해야했고, 그렇게 택한 것이 결국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법시험 준비였다.

  그러나 쉽게 고시공부를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난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거래에서 친구들과 "대한민국"을 외친 후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림2동 산꼭대기에 위치한 조용한 원룸에 정착했다. 그때가 아마도 2002년 가을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 혼자 조용히 입성한 고시촌은 나에게 어색했고 쓸쓸했다. 생전 처음 고시식당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들과 섞여 혼자 밥을 먹는 것이 가장 어색했고, 독서실에서 하루 종일 법서를 바라보는 것도 민법총칙의 충격에 군대로 도피했던 나에게는 신기하리 만큼 어색했다. 독서실 책상에 조용히 공부해달라며 음료수 하나와 메모지를 받은 것도 어색했다. 그러나 가장 어색한 것은 하루종일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무인도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때였다.


쓸쓸함, 독서실에서 힘겨운 공부를 마치고 달빛을 조명삼아 산꼭대기 원룸을 꾸역꾸역 올라 갈때는 쓸쓸함을 넘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처량함이 밀려들어 왔다. 고시촌에서의 몇달의 생활을 통하여 수시로 받는 조용히 해달라는 메모지, 고시식당에서의 어색한 식사 등 등이 익숙해졌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은 여전히 어색한 친구였다.

  더욱 나를 당황시키는 것은 역시 법학이라는 과목에서 오는 어색함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니 모든 것들이 구멍이었다. 민법은 여전히 외계어처럼 들려오고, 형법총칙의 이론들은 내가 법을 공부하는 것인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난해했다.

 그러나 신림동 고시촌에 꿈을 품고 입성한 이상, 즉 사나이가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썰어야했다. 어떻게 해서든 1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밤공부를 마치고 원룸에 돌아와 창문을 열면 신림동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 이곳을 내가 벗어 날 수 있을지, 아니면 패배자가 되어 쓸쓸히 퇴장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난 과연 신림동 고시촌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은 시작되었다.
 

안경이 부러진 채 사법시험 본 사연

고시촌이야기 2011. 1. 5. 07:4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고시촌에 입성하여 그 해 겨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 비록 경제적 환경이 넉넉하지 못하여 학원은 수강할 수 없었지만 강의테입으로 대체하여 유명강사의 강의도 들었고, 미니원룸과 독서실을 왔다갔다하며 단조로운 생활을 이겨내고 가능한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이전처럼 긴장감과 두려움은 덜했다. 오히려 때로는 시험을 빨리 봐서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그리고 어느덧 매서운 겨울 바람이 잠잠해지고 봄의 기운이 찾아 올 무렵 사법시험1차시험 전날이 되었다. 그해 시험은 2003년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서 법률저널 게시판에 가보니 나와 똑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글을 올린 것이 있어 다소 참 우습기도 했는데 법률저널 게시판에 보니 안경이 부러져 안경없이 시험을 보았다고 하소연 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나도 그 해 시험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난 중학교때부터 안경을 썼기 때문에 눈이 상당히 나쁘다. 흔해 말해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장님 수준이다. 그러한 내가 그 해 사법시험 1차시험을 안경없이 본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시험전날 나는 독서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밤 10시경에 숙소인 미니원룸으로 왔다. 역시 시험전날이라 무척이나 긴장되었다. 숙소에 들어와 대충 씻고 내일 시험장에 가지고 갈 책 등 준비물을 정리하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영 오지 않았다. 시험장에 갈려면 그래도 7시경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영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시험장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또 떨어지면 하는 잡생각만 머리속에서 맴돌고, 또 눈을 뜨면 얼릉 자야지 하며 다시 눈을 감고를 반복하며 시간은 12시, 1시,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 잠이 오지 않아. 군대시절 이후 끊었던 담배를 물고 창문을 열고 한눈에 내려보이는 신림동 전경을 바라보았다. 고요함이 오히려 더 나의 잠을 방해했다. 그렇게 뒤척이다 난 안경을 침대아래에 두고 새벽3시경에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6시경에 눈을 가까스로 떴다. 잠을 못자서인지 머리가 빙빙돌고 컨디션이 별로 안좋았다. 그리고는 무심결에 침대 아래 방바닥을 밟았는데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밟히고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경이 두동강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절단나버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들고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주 허탈한 웃음....순간 든 생각은 올해 시험은 또 이렇게 어이없이 망치는 구나 하는 것과 모르겠다.시험보러 가지말까...등등의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잠시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잡고 방을 뛰쳐나가 안경점을 찾아 갔지만 이른 아침이 문연 안경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을 찾아가 순간 접착제를 구해 와서 절단난 안경을 접착시키려고 했지만 절단면이 너무 매끄러워선지 안경은 야속하게 계속 떨어져 나갔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이제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시험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일단 시험장에 가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뿌옇게 초점이 잡히지 않은 채 보였다. 버스번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택시를 잡아 타고 가야 했는데, 그때서야 시험당일 날 신림동에 보이는 택시들은 대부분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붙잡는 택시마다 예약되어 있다고 승차를 거부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당황스러웠다. 간신히 버스정류장에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버스를 타고 신림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주의깊게 들어야 했다. 그때서야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지금 내모습이 너무나 황당하여 계속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험은 시작되었다. 시험지도 잘 안보였다.가능한 시험지와 눈을 밀착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글자한자한자를 세심하게 보며 시험을 치루었다. 그때의 모습이 시험감독관도 이상했는지 세심히 나를 관찰했다.

한자 한자 집중해서 보아야 했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했다. 오전 시험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를 사 군대제대 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폈다. 역시 식후에 먹는 담배맛이 제일이었다.솔직히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다시 급하게 안경을 맞출 시간은 있었지만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이미 의욕상실이라고 할까....

 그리고 다시 오후 시험을 보았다. 자포자기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험에 대한 긴장감도 이미 사라졌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어려운 문제 아리송한 문제도 그냥 맘편하게 고민없이 답이라고 생각되는 지문에 정답을 체크했다. 역시 시험은 긴장없이 보아야 해 하면서 말이다.시험을 잘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다시 한번 올림픽정신으로 끝까지 해보자 뭐 그런 생각이었다. 시험지와 다시 내 눈을 밀착시키고 한자한자 글자를 세어가며 시험을 보았다.

악몽같은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시험장을 나오며 다시 담배를 물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도 잘 안보였다. 내 불투명한 미래처럼 모든 것이 흐리멍텅했다. 가까스로 신림동에 와 안경점에 갔다. 그리고 한풀이라도 하듯 내 능력을 뛰어 넘는 비싼 안경을 샀던 기억이 있다.

 작은 내 안식처 미니원룸에 와 그냥 잠이 들었다. 채점이고 뭐고 할 기력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너무 웃겨서 웃음만 나왔다. 지금생각해도 웃긴 상황이 아니던가. 며칠후 가답안을 보고 채점을 해보긴 했다. 그러나 점수가 생각보다 잘나왔다. 정확히는 기어나지 않지만 81.5점인가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당시 컷트라인이 내 기억에는 82점이었을 것이다.그런데 81.5점이었다. 아마  그 당시 합격자 발표전까지 컷트라인 공방이 꽤 있었던 기억이 있다.당시에는 좀 아쉬웠다. 만약 안경을 끼고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시험을 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 나의 점수대가 가장 불안한 점수대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합격이었을까?

아니. 나는 합격했다. 컷트라인이 82점인대 어떻게 합격했냐고? 안경을 안쓰고 어려운 상황에서 시험을 끝까지 마친 것에 대해 법무부가 이를 참작하여 합격을 시켜주었다. 무슨 말이냐고..... 당시 경제법을 선택과목으로 시험을 보았는데 경제법 한문제가 복수정답이 인정되어 0.5점이 올라가버렸다. 그래서 정확히 컷트라인 82점으로 붙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꼴찌로 1차시험에 합격했다.(물론 다음해 2차시험에는 어이없이 떨어졌지만...,,) 컷트라인으로 붙는 짜릿함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수석으로 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안경이 부러진 어이없는 상황에서 시험으로 포기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시험을 보고 드라마같이 꼴찌로 합격을 해버렸다.지금생각해도 내 인생의 역사 중에게 가장 재밌는 상황중에 하나이다.

다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무엇인가 결과물이 생기는 모양이다. 우리 다시 힘들고 지금은 괴롭더라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말고 도전합시다. 오늘은 어둡고 힘들더라도 내일은 태양이 다시 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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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 입성기

고시촌이야기 2010. 12. 29. 08:2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은 어느덧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긋지긋했던 고시촌을 탈출한지도 이제 2년을 넘어서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아직도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각종 시험준비생들이 치열한 시험준비를 하며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고시생들이 모두 꿈을 이루어 고시촌을 탈출하지 못한다. 오히려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간직한 채 고시촌을 떠나는 이들이 더욱 많다. 그리고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간직한 채 떠나는 이들의 빈 공간을 새로운 이들이 채운다.

 신림동 고시촌에 내가 처음 입성한 때는 2002년 겨울이었다. 2002년은 월드컵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웠다. 나 또한 대학에서 월드컵 기간동안 흥분하며 광란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자 현실로 돌아왔다. 

 법대를 나온 나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것인가? 취업을 할것인가? 솔직히 대학을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몇번 도전했지만 결과는 1차시험에도 떨어졌다. 솔직히 열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떠밀리듯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무엇인가? 내가 갈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우선 방을 알아 보아야 했는데 신림9동은 너무나 사람들이 많아 평소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용한 신림2동의 산꼭대기에 있는 조용한 미니원룸에 자리를 잡았다. 

 신림동 고시촌(지금은 대학동으로 변경되었다고 함)은 보통 신림2동과 9동으로 나누어진다. 예전에는 9동에 유명학원들이 몰려 있어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신림9동에 몰려 살고 또 편의시설, 복사집등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림2동에 유명학원들이 옮겨 오면서 독서실, 편의시설도 신림2동에 많이 생겼다.

  내가 선택한 미니원룸은 우선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경치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는 나즈막한 산이 자리잡고 있어 기분이 울적하거나 하면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름에는 정말 힘들다. 스키장 활강 코스같은  경사로 인해 여름에 학원이나 독서실이라도 나갔다가 복귀할 때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리고 겨울에 눈이라도 쏟아지면 내려갈 생각을 안하는 것이 속편하다. 굳이 내려갈려면 아이젠이라도 신고 가야 할 정도이다. 그렇게 난 2002년 매서운 바람이 부는 12월 겨울 어느날 신림동 고시촌에 자리를 잡았다.


 딱 3년을 기약했다. 3년이면 충분히 고시촌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능력을 무시한 오만으로 판명되었다. 3년이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이 5년이상이 되어 버릴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고시촌의 첫날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첫경험은 잊지 못하는 것 처럼 그날의 기억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골집을 떠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잠못들며 밤새 뒤척거리던 자취방의 첫경험, 군대입대해서 잠못들며 한숨만 푹푹내쉬던 훈련소에서 첫밤, 마치 고시촌의 첫날은 그런 것이었다. 


 그날따라 바람은 왜 그렇게 매섭게 몰아치던지, 창가를 무서운 소리를 내며 때렸다. 밤하늘은 달빛, 별빛 하나 없어 블랙홀 같은 어둠이 꽉 차있었다. 두꺼운 법서를 책장에 정리고 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릴적 추억들, 대학에 입학했던 기억, 부모님, 장래에 대한 고민, 낯선 곳에 있는 어색함 등등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고시촌의 첫날밤은 뒤척거림과 매서운 겨울바람, 한숨으로 무언지 모를 두려움으로 하얗게 질린 소녀의 뺨과 같이 흘러 가고 있었다.

월드컵은 남자 고시생들의 무덤

고시촌이야기 2010. 12. 17. 07:46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10월 27일 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많은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특히 로스쿨 도입으로 인해 사법시험 합격자 인원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점점 응시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초조함이 더해갔을 것이다.

 이번 시험 합격자의 특성은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처음으로 40%를 넘겼다는 것이다. 행정고시에 이어 여풍이 지속되었다. 이번 행정고시에 있어서도 여성합격자가 총 143명으로 44.7%를 차지하며 여성합격자가 강세를 보였는데 사법시험에 있어서도 전체 합격자 800명 중 여성합격자가 337명으로 42.1%를 차지하였다. 


 여성합격자가 40%를 넘은 것은 이번시험이 처음이었다. 여성합격자가 이렇게 각종 고시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분석이 다수를 차지하나 일각에서는 2010년에는 월드컵 등 스포츠 행사가 많아 남자고시생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전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빠졌던 2002년에 여성합격자 비율은 처음으로 20%를 넘어 23.9%를 차지하였으나 다음해에는 21%로 다소 하락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 월드컵에서는 여성합격자가 37.5%를 차지하며 증가하다가 월드컵 다음해인 2007년에는 하락하였다.그리고 2010년 월드컵에 다시 상승하여 처음으로 40%를 돌파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월드컵 저주가 다시 실현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월드컵 저주란 월드컵, 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행사가 있는 해에는 유독 남자고시생의 합격률이 저조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남자고시생들의 특성상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고시생들이 여전히 박지성등이 활약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엄리그가 있는 날에는 만화방이나. 비디오방 등에 삼삼오오 모여 밤을 세워 티비를 보는 경우가 흔하다.

 단순한 클럽경기에도 이렇게 열광하는데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월드컵경기에는 얼마나 열광하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광인 후배인 B군은 2006년도에 사법시험 2차시험을 치루었다. 1차 시험에만 3번이나 떨어지고 2005년도에 처음으로 1차시험에 붙고 후배는 최선을 다해 2차시험을 준비했다. 주말에도 잠을 제대로 못자며 그야말로 눈만 뜨면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전의 2006년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배는 연대에 시험장이 걸려 일찍 시험장 근처로 숙소를 옮겨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시험을 2주정도 남겨놓고 연대근처의 하숙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민의 축제 2006년 월드컵이 시작된 것이다. 후배녀석은 평소에도 야구와 축구에 열광하는 녀석이다. 특히 축구는 스페인의 프리메가리그 부터 잉글랜드 리그까지 유럽의 빅리그 소속 유명선수들의 프로필을 모두 외울정도로 광적인 팬이다.

 2006년 6월 13일 경에 약 사법시험 2차시험을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대한민국과 토고와의 첫게임이 펼쳐졌다. 후배녀석은 첫경기이고 아직 시험이 일주일남았고, 2시간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컨디션 조절에도 좋다는 생각으로 하숙집의 하숙생들과 같이 거실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대한민국을 목이 쉬어라 외치며 열렬히 응원했다.후배녀석의 응원에 힘입은 것인지 대한민국은 토고를 이기며 원정에서 첫승리를 따냈다.

시험을 일주일이나 남겨두었으니 뭐 이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사단은 6월19일 정도(?)에 치루어진 대한민국과 프랑스전에 이루어졌다. 당시 2차시험이 6월 20에 시작되기 때문에 스포츠광인 후배녀석도 더이상은 안돼겠다는 생각으로 연대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정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 처량하게 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하숙집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 왔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아니고 새벽에 열리는 프랑스전때문이었다.

내가 보지 않아도 대한민국이 잘해낼 수 있을까? 최소한 비겨야 하는데, 박지성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잠깐 잠이 든 후배녀석은 와 하는 함성소리에 잠이 깨어버렸다. 하숙집 거실에서 프랑스전 응원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후배는 잠에서 깨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실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열렬히 학숙생들과 어울려 응원했다. 녀석의 혼을 다한 응원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최강 프랑스와 비기는 기적을 연출했다. 녀석은 너무 흥에 겨워 잠에 들지 못하고 하숙생들과 수다를 떨다 오전 10시경에 잠이 들고 그리고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찌는 오후 늦게야 일어났다.

 다음날이 바로 2차시험 시작인데, 후배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언제 두꺼운 교과서 2권을 봐야 할지 앞이 막막하고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2차시험 4일 내내 허탈함에 사로잡혀 시험을 치지 못했고 결국 그해 2차시험에 헌법 과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후배녀석은 다행히 다음해 3시로 2차시험에 붙어 지금은 대형로펌의 유능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아무튼 가끔 만나는 후배녀석은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무슨 무용담처럼 이야기 한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시험을 망치고도 2차시험이 끝나는 날 열렸던 마지막 경기 스위스전을 신림동 고시촌의 만화방에서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고시생들중에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월드컵은 사법시험 2차시험이 치루어지는 6월달에 개최되어 시험일정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스포츠에 열광하는 남자고시생들을 힘들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여러가지 것들이 겹쳐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남자고시생의 합격률이 저조하다는 월드컵의 저주라는 말이 생긴 듯 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다 핑계일 수도 있다. 월드컵이 열리던 그렇지 않던 여성 합격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고시생 유혹하는 고시촌의 환경

고시촌이야기 2010. 12. 14. 12:04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의 연말은 바쁘다.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등 각종 시험의 1차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고시생들은 독서실이나 고시원에서 공부에 매진한다. 그러나 일부 고시생들은 공부에 매진하지 못하고 고시촌이 유혹하는 유혹의 몸짓에 넘어가 안타까운 젊음을 낭비하기도 한다.

1. 불법 성인 업소들
 
 한때 고시촌에는 xxx 스포츠 마사지라는 이름을 건 업소들이 우우죽순 들어섰다. 대부분 짐작을 하겠지만 이러한 업체들은 건전한 스포츠 마사지 업체가 아닌 젊은 남성을 유혹하는 성인 업소들이다. 고시촌의 특성상 젊은 미혼의 남성들이 많이 거주하는 관계로 많은 고시생들이 이런 불법 업소에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 이러한 업체들이 많이 사라졌다고 들었지만, 여전히 몇몇업체들은 남아 있어 고시생들을 유혹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위해 고시촌에 온 이상 이러한 유혹에는 참겨 이겨 낼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할 것이다.

2.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게임이 있는 PC방
   
   아무래도 고시촌에서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독서실과 고시원등을 오가며 작은 공간에 갇쳐 공부를 하다보니 고시생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그래서 많은 고시생들이 피씨방등을 찾아 간단한 게임이나 웹서핑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그러나 그렇게 잠깐의 시간을 이용하여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오히려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하다보면 게임에 중독이 되어 버려 소중한 시절을 낭비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리니지, 워크래프트등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게임에 중독되어 독서실 대신에 하루종일 피씨방에 출근하여 게임 삼매경에 빠진 고시생들이 피씨방에 가면 많이 목격된다. 

 대학 후배 녀석인 J군도 한때는 사법시험 1차시험에 합격하여 2차시험 합격을 코앞에 두었지만, 2차시험일이 점차 다가오자 스트레스와 긴장감 때문인지 갑작스럽게 피씨방 출입이 많아 지더니 결국 온라임 게임에 빠져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 와도 피씨방을 떠날 줄 모르는 사태를 초래하고 결국 J군은 2차시험에 떨어지고 쓸쓸히 고시촌을 떠났다. 

 온라임 피씨게임이 대부분 환타지 게임이다 보니 특히 치열한 현실에 살고 있는 고시생들은 새로운 세계의 피씨게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특히 그 스트레스가 극대화되는 시험 막바지 준비단계에서는 더욱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다. 신림동 고시촌의 피씨방은 특히 그 시간단 이용요금이 다른 곳이 피씨방보다 저렴하고 서비스가 좋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고시촌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것들이 바로 피씨방과 DVD방들이다. 고시촌의 피씨방은 지금도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평일 오후에도 찾아가면 대부분 좌석들이 꽉 차있다. 그만큼 그 수요가 많다는 것이고, 자칫하면 온라인 게임의 유혹에 넘어가 고시생들의 젊음을 낭비할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고시촌에 성인 PC방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3. 고시생 유혹하는 BAR

  신림동 고시촌에 또 늘어나고 있는 것이 각종 술집과 이른바 토킹바이다. 여러분들이 아는 것 처럼 토킹바는 각종 양주나 맥주를 마시며 바에 있는 여종업원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구조이다.

고시생들이 대부분 혼자 공부하거나 독서실에서 말없이 공부하다 보니 외로움을 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약점을 이러한 토킹바들이 파고 드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고시생들이라면 주말에 간단한 맥주를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습관이 되어버리거나 중독이 되어 버리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대부분이 고시생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곳에 자주 들르게 되면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오히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여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고시촌에 이러한 고시생들을 유혹하는 BAR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듯 하다. 고시생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4.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라.
  
  고시촌에는 각종 피씨방 술집등이 오히려 서점보다 더 많이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혈기왕성한 고시생들을 유혹하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시생들이 처음 고시촌에 들어왔을 때에는 단단한 각오를 하고 들어왔을 것이다. 고시촌은 오래 있으면 있을 수록 사람의 마음을 황폐화 시키고 외롭게 만드는 곳이다. 가능한 빨리 고시촌을 탈출하는 것만이 고시생의 힘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일 것이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 부디 이러한 유혹들을 이겨내고 꼭 올겨울에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여 내년 봄에는 모두 활짝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52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

수험뉴스 2010. 10. 27. 15:06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제 52회 사법시험 2차 합격자 명단이 발표되었습니다.
합격한 분들 축하드리고 모두 훌륭한 법조인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11107376 강균하 11138173 강동훈 11138132 강면구 11105194 강명구
11137102 강미혜 11112747 강민주 11137029 강민혜 11138184 강보람
11137121 강석원 11136036 강성대 11137420 강승현 11136201 강영훈
11113420 강유정 11137677 강정욱 11104538 강주영 11138159 강주혁
11138187 강지성 11136433 강지엽 11136640 강지영 11136562 강태리
11136780 강하림 11110211 강현규 11138114 강현준 11137636 강형윤
11137271 경수현 11137898 고민지 11115250 고봉주 11136375 공주희
11103852 곽규열 11136358 곽리찬 11102581 곽은정 11137002 곽종규
11136850 곽중욱 11160299 곽효영 11103381 구동윤 11138030 구본웅
11137300 구세희 11137934 구영채 11137072 구현양 11138113 국명수
11136922 국수호 11137675 국순화 11137026 권도연 11137269 권민영
11137047 권비룡 11137872 권오장 11138199 권오준 11136739 권오훈
11137798 권윤주 11136765 권은석 11137169 권준상 11137457 권태안
11137220 권혁도 11137734 김가람 11137107 김건호 11109745 김경란
11136626 김경목 11137635 김경보 11137942 김경수 11137136 김경아
11138221 김경인 11115577 김계리 11136737 김광명 11136461 김광욱
11136744 김근조 11105973 김근철 11136011 김근홍 11160070 김기백
11137938 김기호 11136362 김나은 11103410 김낙의 11136889 김노아
11136188 김대근 11136080 김대현 11137590 김덕수 11136006 김도하
11137452 김동현 11100317 김동훈 11115388 김두섭 11136068 김명섭
11137988 김명환 11138039 김무한 11136702 김미란 11138197 김미영
11138230 김미혜 11137111 김민건 11136334 김민경 11138313 김민서
11138138 김민석 11111415 김민선 11114048 김민수 11136369 김민수
11137470 김민수 11137063 김민영 11136047 김민정 11136355 김민정
11137588 김민지 11137909 김민호 11104767 김벼리 11137758 김벼리
11137672 김병진 11136157 김보경 11136295 김보경 11138219 김보라
11107671 김보람 11113478 김보미 11110952 김삼일 11136181 김상우
11104427 김상철 11107726 김새미 11137508 김성경 11137726 김성순
11136009 김성은 11136088 김성훈 11136354 김성훈 11138226 김성훈
11136469 김세은 11138079 김소연 11136606 김송하 11136623 김수경
11136473 김수길 11136989 김수민 11137021 김수민 11136331 김수아
11136086 김수지 11105704 김순호 11136938 김슬기 11137163 김승곤
11160435 김승현 11137618 김신혜 11137288 김안나 11138207 김알찬
11137246 김영수 11137586 김영원 11137362 김영준 11138076 김영지
11137080 김영환 11137372 김용근 11137219 김용필 11138169 김웅수
11136019 김원상 11110060 김원중 11136222 김유리 11106352 김유미
11136150 김유미 11113545 김유원 11136054 김윤석 11137232 김윤연
11100098 김은 11108848 김은경 11136920 김은영 11138189 김장식
11136033 김재승 11137276 김재식 11136166 김재욱 11136199 김재윤
11136852 김재윤 11137740 김재호 11137195 김정수 11137435 김정아
11137696 김정용 11137092 김정인 11136061 김정한 11138129 김정현
11114282 김정화 11137616 김제헌 11136476 김종무 11136032 김종욱
11136792 김주영 11137182 김주형 11115152 김준석 11111608 김준성
11140185 김준성 11137828 김준우 11136143 김준현 11108626 김지미
11138078 김지수 11137162 김지애 11112944 김지영 11137752 김지영
11137778 김지예 11136353 김지웅 11137599 김지형 11136078 김지혜
11138003 김진 11136073 김진경 11137874 김진기 11136987 김진모
11136535 김진우 11138192 김진주 11136689 김진희 11137565 김찬년
11136746 김창용 11136614 김철호 11136401 김초하 11137005 김추
11109892 김태민 11110878 김태욱 11140144 김태욱 11108069 김태중
11112965 김태진 11103472 김태호 11110351 김태환 11136569 김태희
11137705 김평중 11138108 김한수 11136718 김한철 11136816 김현민
11138276 김현숙 11138051 김현정 11116226 김현주 11137413 김현주
11136577 김현지 11136723 김현환 11136777 김형돈 11150601 김형돈
11110793 김형준 11136194 김형철 11138174 김혜겸 11137851 김혜경
11137537 김혜림 11136223 김혜미 11137006 김혜미 11136236 김혜수
11138127 김혜인 11110422 김혜현 11137658 김호준 11138086 김홍율
11138136 김홍준 11112544 김효림 11101083 김효손 11137291 김희수
11137282 김희진 11137780 나꽃샘 11103506 나상돈 11101393 나수지
11136921 나재영 11105333 남관모 11137820 남궁혁 11136754 남다정
11138021 남민준 11111720 남지선 11138149 노서령 11138167 노승욱
11138165 노영실 11136902 노용준 11137183 노재인 11137593 도현정
11136425 라성문 11160509 류민옥 11136859 류민지 11102063 문고운
11136501 문수헌 11106565 문준석 11137418 문태권 11136486 문호섭
11136538 박가연 11136936 박건태 11136404 박경모 11103679 박광균
11138299 박광호 11138237 박광흠 11137967 박근호 11137832 박근희
11136526 박기범 11136996 박남동 11136372 박노민 11137093 박노산
11137919 박노을 11137343 박대웅 11136177 박대한 11136835 박도현
11138160 박미영 11136953 박민경 11137272 박민선 11137230 박민지
11136617 박병선 11100014 박병언 11136682 박병주 11136647 박상곤
11138148 박상룡 11136715 박상욱 11137637 박상훈 11138015 박상훈
11137572 박서우 11110257 박설아 11136370 박설아 11137805 박성규
11136344 박소연 11138181 박소영 11136750 박소정 11150295 박순철
11137797 박영기 11137952 박영아 11137116 박유화 11113569 박은숙
11101248 박인범 11136965 박재성 11136656 박재현 11137533 박정환
11137950 박종민 11105995 박종석 11136459 박종항 11136937 박종휘
11136865 박주희 11136940 박준범 11136730 박준석 11104361 박준영
11117670 박준철 11137025 박지연 11136928 박지영 11103383 박지원
11137366 박지은 11136171 박진영 11138122 박진환 11109813 박찬우
11137355 박창환 11137352 박한샘 11137346 박현식 11105402 박형무
11138061 박호현 11137954 박홍조 11136071 박희경 11116244 방명은
11136104 방인석 11137603 배우미 11137279 배인영 11104143 배장환
11109645 배정관 11136293 배정신 11112952 배준성 11136973 배준익
11136463 배준철 11109365 백규재 11136532 백현민 11136556 백현숙
11136245 변재은 11137885 변준석 11137403 사해정 11137411 서국화
11137856 서대봉 11136773 서동원 11136158 서동인 11136784 서동후
11136149 서민경 11136854 서상영 11102922 서수완 11137215 서승원
11136125 서태규 11116180 서효성 11138245 석동현 11137652 석웅
11113883 선지현 11136053 설대석 11110936 설재선 11138023 성효진
11110835 성훈 11137442 소준 11109848 손광남 11137171 손정윤
11137064 손정현 11137724 손지훈 11137425 손현정 11136005 송민주
11137575 송선아 11137839 송승훈 11137835 송시영 11107491 송시원
11137840 송인화 11136013 송지영 11105513 송현주 11137296 신광섭
11137150 신그린아 11136804 신동빈 11136049 신문재 11137905 신미진
11113681 신민호 11138156 신병준 11137907 신상헌 11136371 신수환
11136868 신아정 11137625 신옥영 11137314 신윤경 11137060 신윤철
11136969 신재호 11137199 신정인 11136546 신정현 11137070 신제영
11136243 신주현 11137716 신지숙 11108785 신창현 11137145 신태광
11137051 신현경 11136838 신현정 11136072 신호니 11137149 심준호
11136612 안미영 11136323 안용석 11136227 안은복 11101137 안중성
11137153 안창석 11137729 안철범 11137476 안홍균 11136234 양미영
11137479 양성은 11138048 양소영 11108114 양영진 11137759 양준열
11136643 양지은 11137012 양진석 11138178 양진영 11136523 양태광
11136021 양해인 11136389 양화진 11136483 양희철 11138052 어일공
11138254 엄지민 11136042 엄현재 11138229 여동근 11136320 여인지
11137308 여인홍 11137667 염혜수 11137880 오경택 11137679 오권석
11137749 오규진 11136764 오민주 11137684 오성희 11136808 오세한
11137595 오승석 11137345 오승진 11138263 오승혜 11136738 오승희
11137007 오신환 11137736 오에스더 11137928 오유미 11137985 오유승
11116922 오은석 11137254 오정식 11136572 오정화 11100448 오주영
11136215 오지영 11136551 오창완 11136534 오현지 11136114 오화택
11110054 온채희 11104833 우희성 11114655 원동훈 11137045 원아롱
11136099 원지영 11111356 유경석 11102120 유규환 11138195 유나
11138303 유동균 11136467 유상우 11104217 유성권 11109686 유수민
11136477 유의준 11137039 유인한 11114817 유재영 11140402 유정화
11136260 유지훈 11117821 유혜정 11136673 유혜주 11138294 육영아
11137550 윤근형 11136653 윤상일 11104039 윤서용 11136204 윤성식
11102415 윤성후 11136968 윤소정 11136513 윤수경 11138162 윤승용
11137137 윤아리 11136416 윤유호 11137671 윤준섭 11112844 윤현준
11136393 이강은 11113021 이경득 11136943 이경무 11106490 이경윤
11137433 이고업 11136290 이규봉 11137316 이규석 11138288 이나현
11136912 이대현 11108783 이도형 11137177 이도훈 11101497 이동규
11137992 이동현 11137853 이동환 11136112 이동희 11137472 이디모데
11160130 이명일 11136881 이무룡 11136136 이미경 11137659 이민규
11137617 이민령 11136400 이민정 11136508 이병래 11136442 이병정
11136867 이병철 11137410 이병탁 11136214 이보아 11137289 이봉수
11138128 이상언 11136396 이상운 11137747 이상재 11136925 이상철
11136017 이상훈 11137048 이서연 11113500 이성은 11136123 이성화
11137419 이소연 11136094 이소영 11137380 이소진 11136279 이소현
11137030 이수경 11136741 이수민 11102045 이수연 11136988 이수정
11137813 이수진 11136285 이슬아 11136339 이승민 11137707 이승준
11136164 이시원 11102838 이신명 11111922 이신애 11136766 이아영
11136963 이영곤 11137901 이영신 11136424 이영심 11137598 이영애
11107163 이영자 11117078 이영주 11138097 이옥경 11112476 이용길
11136081 이용찬 11136029 이용호 11137198 이원식 11138155 이유경
11112826 이유진 11136588 이유진 11136008 이윤규 11138212 이윤수
11137502 이윤종 11136618 이은경 11138054 이은경 11137363 이은우
11137523 이은혜 11107410 이응교 11137217 이인민 11137597 이인섭
11137648 이장희 11116833 이재민 11136435 이재민 11136489 이재운
11136475 이재원 11111505 이재인 11136448 이정덕 11136058 이정렬
11116043 이정아 11111178 이정엽 11107874 이정훈 11137606 이제훈
11111397 이조로 11115223 이조은 11103603 이종근 11137542 이종덕
11137979 이종승 11136218 이종원 11136840 이종찬 11137611 이종희
11136809 이주일 11110954 이주환 11136096 이준석 11136676 이지성
11136896 이지수 11137870 이지수 11103706 이지언 11137054 이지연
11137741 이지윤 11136481 이지현 11136933 이지훈 11137434 이지훈
11138215 이진규 11111165 이진석 11136304 이진필 11137864 이찬경
11137210 이창환 11136045 이학민 11136248 이한규 11136945 이한길
11108617 이한상 11137440 이해용 11112412 이현수 11137662 이현일
11116530 이현정 11136721 이혜진 11136338 이호선 11138277 이호영
11117568 이홍석 11137514 이홍열 11137765 이화진 11138001 인자한
11136761 인형은 11136376 임경민 11136610 임기훈 11136812 임대규
11136518 임동성 11150649 임병재 11137657 임성수 11136502 임성진
11137489 임세준 11137237 임세진 11136791 임수민 11136709 임승규
11137055 임승현 11136219 임원택 11137196 임자운 11136351 임재형
11137866 임정옥 11136420 임종미 11137213 임준규 11117619 임지예
11137700 임지훈 11137576 임진 11137973 임채호 11136857 임태혁
11138200 임한아 11138259 임혜진 11136684 임희정 11110484 장규배
11138091 장명 11137834 장미 11137471 장민관 11137186 장민하
11136048 장성민 11137312 장성호 11110995 장세희 11136321 장우진
11136942 장원석 11137746 장유나 11137408 장유미 11136039 장윤영
11136281 장은민 11101454 장재정 11136445 장지영 11136699 장지혜
11112496 장지희 11137335 장진 11136345 장태관 11111881 전민정
11136043 전승대 11137610 전승진 11137176 전영익 11100549 전용석
11138292 전우진 11137309 전유상 11140213 전윤경 11136897 전지숙
11138182 전진표 11160246 정건 11136941 정경원 11136332 정다훈
11137225 정동아 11113265 정명주 11137374 정명주 11137604 정소영
11137770 정수미 11136677 정영경 11137687 정우성 11138185 정원욱
11137318 정원일 11136831 정유리 11136866 정은 11137194 정일안
11136818 정재영 11137402 정재영 11105373 정재용 11136814 정재용
11137690 정재우 11102606 정재현 11137113 정지아 11150451 정지영
11137126 정지원 11138175 정지원 11107197 정철희 11137936 정초아
11136357 정헌 11137285 정현욱 11136311 정화진 11136140 정희경
11137146 조경원 11136490 조기현 11137887 조낙원 11138018 조대현
11136277 조동화 11136638 조민식 11137003 조병주 11136586 조승철
11136650 조아라 11138009 조연희 11101612 조영곤 11113750 조영주
11137414 조용연 11137711 조유현 11136497 조은혜 11137725 조재웅
11138058 조재학 11136537 조지현 11136788 조진영 11113557 조한기
11137939 조현미 11114703 조현연 11137477 조현준 11136978 조혜민
11136492 조혜연 11136258 주병창 11136341 주성원 11137966 주용조
11138070 주태권 11138102 주학준 11114015 지윤시 11136348 진윤기
11137209 차대영 11137143 차민철 11138107 차병곤 11136220 차승현
11107656 천성훈 11111749 천성희 11136885 최경욱 11137193 최계숙
11106640 최규원 11138077 최누리샘 11137466 최동환 11105759 최명구
11136390 최문정 11137281 최민혜 11103797 최석민 11136687 최성룡
11136994 최성범 11136817 최승호 11136167 최승훈 11136097 최용범
11138068 최윤규 11137382 최윤서 11136427 최윤선 11136644 최윤영
11136263 최의윤 11137501 최정완 11136430 최정필 11137960 최정필
11100569 최주선 11137908 최주희 11136233 최지연 11111519 최지예
11136495 최지은 11137551 최파라 11117093 최현민 11137961 최형민
11113338 최형주 11137202 최희원 11137600 하동규 11137806 하진우
11137306 하환희 11108997 한명희 11107615 한상술 11137073 한수연
11137650 한수진 11137206 한승진 11101493 한승희 11137528 한아름
11137499 한아영 11111407 한영민 11136688 한윤영 11138269 한은형
11138188 한장헌 11137049 한지은 11136206 한채영 11115659 함현지
11136995 허남욱 11109055 허보윤 11137483 홍세욱 11106235 홍세진
11136948 홍승국 11136251 홍승우 11137260 홍승표 11110665 홍영호
11136310 홍정민 11136595 홍주현 11136126 홍주혜 11102950 홍해숙
11101090 홍현준 11137158 황두평 11137524 황상익 11138228 황성욱
11138072 황용남 11136186 황은정 11109964 황의수 11140943 황현종
(이상 800명)




사법시험2차준비에 대한 간단한 팁

고시촌이야기 2010. 4. 29. 02:4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이 블로그가 주로 고시생들 이야기 사법시험이야기등을 다루다 보니 가끔씩 공부방법을 메일등을 통해 문의하는 분들이 꽤 있다. 하지만 사법시험1차시험은 몇번 합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도움을 줄수 있을지 모르지만,2차시험은 여러번 실패끝에 간신히 합격한 입장으로서 쉽게 조언을 해줄수가 없어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의해오시는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간단한 팁을 적어볼까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을것이고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다알고 있는 것이다.결국 가장 중요한것은 실천이다.

1.글씨는 중요하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중에는 의외로 악필이 많다. 나또한 대표적인 악필이다. 그러나 사법시험2차시험은 안타깝게도 논술형 시험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이쁜글씨가 채점위원눈에 들어오는 것이 사실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면 악필이어도 큰상관이 없다. 그러나 점수가 컷라인에 걸려있는 사람에게는 글씨도 상당히 중요하다.단 몇점차이에서 당락이 갈리기 때문이다. 난 아쉽게 단 총점2.3점차이라 떨어진경우가 2번정도 있었다.그럴때마다 선배들이 하는 말이 "너는 글씨만 조금만 잘썼으면 합격하는건데...니글씨는 알아볼수가 없다...:;"라는 이야기 였다.

 마지막 시험에서 그나마 합격했을때는 대부분의 중요논점을 다썼기 때문에 그나마 합격할수 있었던거 같다.악필은 분들은 그나마 알아볼수는 있을정도로 필체를 교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은 연수원시험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다.어쩔수 없는 진실....


2.시험초반 10분에 당락이 결정된다.

  2차시험은 시험초반 10분에 당락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즉 문제를 받고 논점을 잡고 초안지를 만들때 이미 당락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말은 조금 과장된측면이 있지만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만큼 논술형시험이다 보니 논점잡기가 중요하다.

 제대로된 논점만 잡으면 내용이 다소 부실해도 어느정도 합격컷라인근처의 점수가 나온다.그러나 아무리 내용을 많이 써도 논점에서 벗어나 허튼 내용을 쓰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험본직후 합격여부를 판가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시중에 유통되는 모범답안을 구해서 그 주요논점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것이다. 어느정도 일치한다면 합격을 기대해도 좋다.

  그만큼 논점잡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여 허둥대지 말고 문제를 계속 반복하여 읽으면서 중요한 논점을 잡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잊지 말자 논점잡기...!!

3.학설은 간단히...
 
  2차시험답안지가 바뀌면서 쓸수 있는 양이 많이 줄었다.또한 시간도 많이 부족하다. 그런상황에서 학설의 논거를 많이 끄집어 낼필요가 없다.학설의 논점은 간단히 학설당 하나정도만 쓰면 된다. 솔직히 학설에 점수비중은 큰편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점수비중은 판례와 사안의 검토에 집중된다.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답안을 쓰다보면 학설은 장황하거 판례와 사안의 해결은 대충쓰는 용두사미식의 답안이 되기 쉬운데,그러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초시볼때 형법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온적이 있어서 당황한적이 있는데 초시이다보니 아무런 부담없이 판례를 가능한 많이 쓰고 그다음에는 사안의 검토부분을 반페이지 창의적인생각??;;을 보태어 가능한 자세하게 많이 썼던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점수가 58점이나 나와서 놀란적이 있다.

 학설은 간단히 쓰고 판례와 사안의 검토를 잘쓰자.

4.판례의 중요문구는 암기하자.

 판례는 득점포인트다.중요문구를 답안에 그대로 현출하는 것은 그만큼 포인트를 더딸수 있는것이다. 아사다마오가 트리플악설에만 전념하다 망했지만 김연아는 각 득점포인트를 파악하여 그대로 실현해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우리에게 중요한 득점포인트는 판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를 암기하기 어렵다고 대충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수록 합격확률은 떨어진다. 다소 힘들더라도 두문자를 따던,뭘하던,판례를 외우고 또외우자.방법이 없다.

5.사안의 검토는 가능한 자세히..

계속반복되는 말이지만 사안의 검토부분도 정말 중요한 득점포인트다.우리가 사례문제를 푸는 목적은 사안을 해결하기 위함인데.이부분을 대충쓰게 되면 채점위원에게 아주 안좋은 인상을 주게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다보면 이부분을 대충쓰기가 쉽다. 그러나 가능한 시간안배을 해서 자세히 써야 한다. 그리고 각 사안의 쟁점을 답안에 제대로 현출시켜야 한다 법조문을 활용하던지 해서 법률용어를 사안마다 현출시켜주고.구체적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하고 두리뭉실넘어가는 것도 안좋은 방법이다. 가능한 자세히 쓰자...!!

6.민소법에서 고득점하자??

꼭 민소법에서 고득점하자는 말은 아니고 자신만이 잘할수 있는 전략과목??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7과목을 시험보다 보면 분명 점수가 과락근처에 몰리거나 하는 망한 과목이 한두과목 나오게 된다. 그러면 어느정도 반드시 고득점하는 한두과목이 나와야 커버가 가능하다. 따라서 고득점할수 있는 과목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나같은 경우는 형법과 민소법은 항상 고득점이 나왔다. 형법은 평소에 좋아하는 과목이라 그랬던거 같다. 그러나 민소법은 그렇게 좋아하는 과목도 아니고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수험생이 어렵게 다가오기 때문에 교수님들도 시험을 그렇게 어렵게 내지 않는듯하고 점수도 대체로 잘주는 것 같다.

 나는 민소법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에서는 교과서를 안보고 이창한 사례집만을 반복해서 봤는데 시험에 대비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던거 같다. 교과서가 피상적으로 다가 온다면 시중에 유통되는 사례집을 보는것도 좋은듯하다. 어차피 민소는 사례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더 효과적일수도 있다.

7.좌절하지 말자

  2차시험은 1차시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해야할 분량이 많다. 특히 기본삼법이외에 처음접해보는 후사법까지 공부해야 하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후사법의 경우 예비순환까지 합해봐야 기껏 교과서를 정독할수 있는 시간은 3회정도에 부족하다.
그러한 상태로 난해한 2차시험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방대한 분량앞에 시험이 다가올수록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한다.그러나 나만 힘든것이 아니다. 시험보기전2달.3달전에는 누구나 다 힘들다. 그것을 이겨내는 자만이 좋은 결실을 맺을수 있을것이다.

시험보기 2달전이 되면 방대한 분량앞에 모든이들이 패닉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럴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다소 힘들고 고되더라도 묵묵히 자기 갈길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 처음1차시험에 합격한분들은 마치 최종합격한것처럼 자만에 빠지기 쉽다.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이제 겨우 1차시험에 합격한것이 불과하다는 것을.....자만에 빠져 우쭐거리다가는 어느덧 30대가 훌쩍 넘어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장수생이 되어 있을것이다. 부디 최선을 다해 훌륭한 법조인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합격하여서는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법조인이 되길....!!






 

고시촌을 쓸쓸히 떠나는 친구에게.......

고시촌이야기 2010. 4. 10. 11:3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이제 봄인가보다
얼마전까지 차갑게 몰아치던 차가운 늦겨울 바람은 이제 더이상 버틸수 없다는듯 사그러 들었다.진해에는 벚꽃이 활짝피었고.개나리는 노란 봄소식을 전해 온다.변호사시보를 하고 있는 법무법인에서 간단히 출근하여 업무를 마치고 집에서 멍때리고 있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녀석이었다.지금도 신림동 고시촌에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녀석이이다.대학때부터 서로 하숙집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이것저것 볼것 못볼것 다본 친한녀석이었다.그러나 운이 좋게 실력도 없는 내가 시험에 먼저 합격하고나서부터 그녀석의 자존심을 건디릴까봐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하는...어설픈 사이가 되어버렸다.

 너무나 반가웠기에 전화벨이 울리자 마자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녀석과 간단한 안부를 나누었다.그리고 녀석은 나에게 말했다.이제 신림동을 떠나야겠다고....;;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녀석의 결정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녀석도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린것일 것이다.그러나 찹찹한 마음은 금할수 없었다.

 녀석은 신림동을 떠나 당분간 강남쪽에 고시원에 있기로 결정했다며 이삿집을 옮겨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나는 알았다고 답했다.그리고 얼마전에 구입한 싸구려 중고승용차를 끌고 신림동을 향해 달려갔다.

 자유로를 따고 달리는 동안 녀석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대학교 입학해서 유난히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와 다가왔던 녀석.그리고 난 녀석과 단짝이 되었다.하숙집에서 같이 라면도 끓여먹고 당시에 유행하던 컴퓨터  게임 '삼국지'에 빠져 같이 수업을 빼먹었던 기억.중간고사에 벼락치기 공부하며 날밤을 지새웠던 기억....신림동 고시촌에서 싸구려 고시식당밥을 먹으면서도 행복해했던 기억........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에 운전을 하니.어느덧 신림동 고시촌에 도착했다.녀석이 있는 곳은 신림9동에 있는 산꼭대기 고시원...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과 간혹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사람들...독서실앞에 잠깐 휴식을 취하며 서성거리는 이들....변한것은 없다. 월 15만원에 닭장같은 공간에 그들의 피곤한 몸을 맡긴다....

  녀석이 보였다.차에서 내려 녀석과 반갑게 악수했다.무슨말을 할까.거의 2달만에 보는 녀석인데..특별히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그져 묵묵히 그녀석이 거주했던 고시원방으로 향해 짐을 옮겼다.녀석의 짐은 간촐했다.이미 시험을 더이상 안보기로 결정했는지 돈이 될만한 시험관련책은 헌책방에 모두 팔아버렸다.두꺼운 민법 기본서와 그외 법서 몇권.여름,겨울 구별없는 얇은 이불,옷몇가지...그것이 전부였다.

  녀석의 짐을 차에실고 녀석과 함께 차에 타고 신림동 고시촌을 빠져나왔다.녀석은 아쉬움이 남는듯 창가를 통해 점점 사라져가는 고시촌의 풍경을 바라보았다.여전이 길게 줄이 늘어선 고시학원.다닥다닥붙어있는 각종 미니원룸과.고시원.그리고 독서실...그곳에는 아직도 꿈을 간직한체  많은 이들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그리고 녀석처럼.아쉬움을 간직한체..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참을 달려 녀석이 새롭게 자리잡기로 한 강남의 고시원에 도착했다.녀석은 당분간 이고시원에서 총무로 지내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고 한다.고시원은 신림동의 15만원짜리 고시원보다 훨씬 사정이 안좋아 보였다.공간은 너무 협소했다. 미로같은 방들..누울자리조차 부족해보이는곳....간단히 짐을 정리해놓으니 공간은 더 협소해 보였다.그나마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원이 훨씬 넓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녀석과 저녁을 먹었다.지글지글 타오르는 삼겹살...녀석은 쓰디쓴 소주만 연거푸 마신다. 멋진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던 녀석의 어릴적 꿈을 이제 포기하기로 했으니 그 심정이 쓰라릴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녀석은 잘모르겠다고 한다. 공기업이나.공무원등을 알아볼까 하는데...그것도 잘모르겠단다.

 녀석에게 로스쿨이라도 응시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녀석의 경제적 형편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그것도 권할수 없었다.녀석은 이삿짐을 옮겨줘서 고맙다고 했다.그러나 무엇이 고마운것일까?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슬픈일이다.인간은 꿈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이기에...하지만 난 녀석이 지금 이 작은 꿈을 포기하지만 보다 원대한 꿈을 이룩할 녀석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착한녀석.너무나 착하고 인간적인 녀석이라는 것을 알기에....

 녀석과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녀석은 마지막으로 내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했다. 무엇이 고마운 걸까? 난 녀석에게 해준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녀석에게 난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그러하지 못하고 "다음에 다시 보자"는 무덤덤한 말을 하고 떠났다.



  난 신림동 고시촌에 오래동안 있었지만.그 신림동 고시촌만의 이상한 기운이 싫었다.고시촌의 달은 슬펐다.누군가의 아픈 사연을 집어 삼켜버린듯한 저 밝은 달빛의 우울한 모습...

 녀석이 떠난 자리에는 아마 새로운 고시생이 차지하고 있을것이다. 그러나 반면 녀석처럼 그렇게 그곳을 조용히 아쉬움을 뒤로 한체 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자.비록 지금 아쉬움의 발걸음에 저 처량하게 걸린 달처럼 슬프고 가슴아프겠지만..그들에게는 더 밝고 희망찬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친구야.우리 슬퍼하지 말자.지금의 쓰디쓴 상처가 언젠가는 아물어 새로운 희망의 봄을 노래하는 순간이 올것이다.기나긴 춥고 시린 겨울이 있어야만 봄은 소중히 기억될것이다.우리의 인생에 한순간의 실패에 두려워 해서는 안될것이다. 우리는 아직 젊고.해야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