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가다가 티비에서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가 출연하여 본인 스스로를 국제변호사로 호칭하거나 방송국에서 국제변호사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또 일반인들은 흔히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자들을 국제변호사로 알고 또 그렇게 호칭한다.

 그러나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잘못된 호칭이다. 오히려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본인을 광고하면 변호사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외국법자문사법 제2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변호사"란 「변호사법」에 따른 변호사를 말한다.
2. "외국변호사"란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하여 보유한
사람을 말한다.
3. "외국법자문사"란 외국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제6조에 따라 법무부장관 으로부터
자격승인을 받고 제10조제1항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한 사람을 말한다.

즉 외국법자문법에 의하면 변호사, 외국변호사, 외국법자문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외국변소사는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한자, 외국법자문사란 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자격승인을 받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만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외국자문법 제27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7조(자격의 표시 등)
1. 외국법자문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본인을 표시할 때는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원자격
국의 명칭(원자격국이 도·주·성·자치구 등 한 국가 내의 일부 지역인 경우 그 국가의 명
칭을 위 원자격국의 명칭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하 같다)에 이어 "법자문사"를 덧붙인
직명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직명과 함께 괄호 안에 원자격국언어로 된 원자격국의
명칭을 포함한 해당 외국변호사의 명칭을 부기할 수 있고, 이어 국어로 된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원자격국의 명칭에 "변호사"를 덧붙인 명칭을 병기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만을 사용할 수 있다.예를 들어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고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변호사 협회에 승인을 받은 자는 '미국법자문사(Attorney at law Newyork, 미국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뿐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변호사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여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제23조(광고)
제2항 변호사 등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변호사의 업무에 관하여 거짓된 내용을 표시하는 광고
2. 국제변호사를 표방하거나 그 밖에 법적 근거가 없는 자격이나 명칭을 표방하는 내용의
광고

제113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 제23조제2항제1호 및 제2호를 위반하여 광고를 한 자

즉 변호사법에 의하여 국제변호사를 표방하는 광고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위와 같이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변호사법 등에 의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정식적인 명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국제변호사로 불러온 것이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협회는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의 사용으로 일반인들에게 혼동을 줄 여지가 있고 법률시장의 혼탁을 줄 여지가 크다는 이유로 4월부터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외국변호사 및 법무법인에 대해 일제히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의 국제변호사라는 명칭 사용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의지가 천명되었는바 앞으로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의 사용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후 3시에 서산에서 재판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조정기일이었는데 별다른 성과없이 양측 당사자의 감정의 골만 깊어졌기에 다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버스에 탔다. 피곤함이 몰려와 주변의 풍경을 볼 여유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버스는 약 2시간여를 달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내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대학후배 녀석을 우연히 만났다. 말이 후배이지 9살 정도 차이나는 녀석이었다. 대학 선후배 모임에서 만나서 간간히 연락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오래간만에 본 것이다.

  녀석은 강남의 어학원으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녀석은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이제 취업을 걱정해야 할 나이가 되어서 이른바 스펙관리하느냐고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학점은 기본적으로 따 놓아야 하고, 토익도 900점이상은 획득해야 그나마 괜찮은 직장에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그외에도 각종 자격시험 등을 보아 스펙을 갖출 수 있는 만큼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녀석의 한숨은 아무리 스펙을 갖추어 놓아도 녀석이 원하는 이른바 좋은 직장은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년실업 어느덧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고용이 보장되고 적장한 임금이 보장되는 이른바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젊은이들은 취업난의 고통속에 실업자로 내몰린다.

 사회는 점점 좋은 스펙을 요구하고, 얼마 안남은 좋은 일자리를 위해 젊은이들을 경쟁의 굴레로 몰아넣는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나름대로 대학의 낭만이 있었다. 1.2학년 때에는 마음껏 놀아도 괜찮았다. 선동열의 방어율과 비슷한 학점이 나와 학사경고장이 나와도 대학생활에서 한번쯤은 경험해봐도 되는 그런 것이었다.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때만 해도 졸업을 앞둔 선배들은 취업이 될까라는 걱정보다는 여러개의 회사 중에 어디로 골라 갈까 하는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그 시절은 청년들의 일자리가 보장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IMF가 오고,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평생 보장되었던 평생 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수시로 반복되는 구조조정, 40대만 넘어서도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고용불안,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는 대기업의 행태로 인한 비정규직의 양산 등으로 젊은이들이 원하는 질 좋은 직장의 수는 줄어만 갔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어가고, 무역규모가 1조원 달러를 넘어갔다고 정부에서는 연일 자랑질을 하고 있지만, 국민소득이 채 1만달러가 안되었던, 그러나 아버지의 퇴근길에는 자식을 위한 따스한 치킨이 들려있던 그 시절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국민소득 2만 달러의 혜택은 몇몇 가진 자에 편중되고, 무역규모 1조 달러의 달콤함은 몇몇 대기업만 누릴 수 있고, 그로인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개천의 용은 사라졌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어쩌면 아버지가 부유층이 아닌 한 신분의 장벽을 영원히 넘어 설 수 없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88만원 세대라는 비아냥 거림을 들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잃어버린 세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보자며 성급히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녀석의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깊은 한숨과 고뇌를 느낄 수 있기에 집으로 오는 내내 측은함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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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2011. 1. 10. 11:2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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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2011. 1. 6. 11:33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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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2011. 1. 6. 00:4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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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과 풋사랑

이런저런얘기 2010. 12. 30. 10:5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새벽에 폭설이 내렸다. 올들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눈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온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은 어느덧 아련한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

 새벽에 세상을 뒤덮은 함박눈을 창가에 서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바람에 휫날리던 눈송이는 이리저리 휘날리다, 열어놓은 창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의 손바닥에 안겼다. 그리고 잠시 솜사탕처럼 스르르 녹아 버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눈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풋사랑의 추억이랄까?

 중학교 시절 우리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중에서 난 피부는 꺼무잡잡하지만 아주 귀여운 소녀를 발견했다. 활달하고 귀여운 소녀, 하지만 난 호감의 표시를 반대로 했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고무줄 하는 소녀의 고무줄 끊어놓고 도망가기, 의자 몰래 빼서 넘어 트리기, 도시락에 개구리 넣기 등등 소녀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나의 장난에 소녀는 화가나서 씩씩 거리며, 때로는 울며 나를 잡아먹을 듯 잡으러 다녔고, 난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장난에 화가 나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그렇게 장난을 쳤던 것 같다. 그렇게 소녀에 대한 장난으로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겨울이었다. 시골에 있던 우리학교는 석탄난로를 썼다. 선생님의 명령으로 석탄창고에서 석탄을 가져왔는데, 책상서랍에 예쁜 편지봉투와 선물상자가 있었다. 소녀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이성으로써 날 좋아한다는 내용;; 선물상자에는 소녀가 곱게 포장한 초콜렛이 있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연애편지에 당황했다. 어릴 적 부터 이성친구에게 장난을 많이 쳤지만, 그런편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가슴은 두근거렸고 또 소녀를 향한 내마음을 들켜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사춘기 소년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 마음을 이해해준 소녀가 고마웠다. 하지만 난 그편지사건이후로 소녀에게 더이상 장난을 칠 수 없었다. 소녀와 마주치면 얼굴을 피했고, 소녀를 볼 때 마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소녀는 계속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언제, 어디서 만나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해달라 등등 또 인형, 열쇠고리, 직접 접어만든 장미 등 등 정성이 담긴 선물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녀를 볼때 마다 무언가 화끈거리는 시골소년은 소녀를 피했다.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말이다. 참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소녀가 이성으로 다가오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한달가량이 흘렀다. 소녀의 구애에 시골소년이 답이없자 소녀는 지쳤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며칠 몇시까지 버스정류장 앞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와달라는 것이다. 만약 나오지 않는 다면 소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마음을 접겠다는 마지막 통지서였다.

 고민되었다. 버스정류장은 당시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있던 나의 학원 봉고차가 오던 장소인지라 소녀와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소녀에 다가가 나도 너를 좋아해 하고 말하고 싶었는데, 바보같은 시골소년은 버스정류장앞에 귀마개를 하고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못본척 하고 학원 봉고차에 올라탔다. 참 바보같은 시골소년이다.

학원차안에서 점점 사라지는 소녀를 바라봤다. 이것으로 소녀와의 추억은 끝이겠구나 했다. 1시간가량이 지나 학원이 끝나고 나오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갔다. 눈때문에 학원 봉고차가 운행을 안해 버스를 탔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난 소녀를 잊었다.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눈밭에서 축구를 할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귀마개를 하고 벙어리장갑을 낀 채 소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서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시골소년을 바라보며 소녀는 눈물을 끌썽글썽 거렸다.



 그리고 소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어떻게 넌 그럴 수 있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날 오래동안 바라보고 함박눈 휫날리는 거리로 달려갔다. 휫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소녀는 눈송이와 함께 하얗게 사라져갔다.

 소녀와 시골소년의 풋사랑은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싱겁게 끝이났다. 그후로 소녀는 날 바라보지 않았고, 부끄럼많은 시골소년은 더이상 예전처럼 소녀를 대할 수 없었다.

 하얀눈이 소복히 쌓인 아파트 놀이터에 장갑과 두꺼운 점퍼로 무장한 아이녀석 둘이 눈사람을 만들 것인지 눈을 뭉치고 있다. 녀석들에게 눈은 어떤 추억으로 다가올까?

사람은 저마다 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겠지, 난 눈을 볼때마다 소녀와의 어리숙한 풋사랑이 가끔씩 떠오른다.이제 눈은 설레임보다는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골치아픈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더이상 설레임을 느낄 수 없는 서글픈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릴 적 순수했던 그시절의 설레임이 너무나도 그립다.

가족과 함께 다녀온 일본여행

이런저런얘기 2009. 2. 23. 18:37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얼마전에 가족과 함께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오래간만에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기에 너무나 행복했다. 시험에 합격하면 꼭 가족과 함께 가까운 일본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등을 하며 조금씩 돈을 모았었는데.그동안 환율이 엄청오르는 바람에 좀 과다출혈이 있었지만 그리도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이었기에 그 어떤 여행보다 행복했다.

 여행일정은 3박4일로 일본의 남단에 위치한 섬 규슈여행이었다. 여행테마는 일본이다 보니 당연히 온천여행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약 오후 1시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고고씽했다. 역시 일본은 가까운 나라였다. 비행기가 떴다하고 생각하니 벌써 착륙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약 1시간정도 걸리는듯 했다. 우리는 북규슈지역의 후쿠오카공항에 내려 수속절차를 마친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첫여행지로 향했다.

 첫여행지는 일본에서 학문의 신이라고 추앙받고 있는 스기와라노미치자네를 모시고 있는 태자부천만궁이었다.일본도 우리처럼 입시열기가 장난이 아니어서 입시를 앞두고 있는 많은 중고등학생이 찾아와 그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를 이곳에 와서 기원한다고 한다.

 규슈지역은 남단에 위치하다 보니 날씨가 상당히 포근했다.벌써부터 각종 봄꽃들이 핀곳이 상당히 많았다.주말이라 그런지 일본인관광객들도 상당히 많았다. 우리는 대충 둘러본후 다음 관광지인 캐널시티라는 곳을 갔는데 한국에도 많은 쇼핑몰이었다. 그렇게 첫째날 관광을 마쳤는데 첫째날을 솔직히 그다지 볼것이 없었다.

 첫째날에 묵었던 호텔은 온천도 되지 않는 도심에 위치한 호텔이었다.워낙 가까운나라이다 보나 솔직히 해외여행이라고 느껴지지 않고 가까운 제주도를 온기분이었다. 하지만 우리와 다른점은 유난히 깨끗한 거리.그리고 장난감같은 소형차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다는 점이다. 거리를 달리는 소형차들을 보면 마치 무선리모콘으로도 움직일것처럼 착각이 드는 귀여는 모습들이었다. 중형차천국인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2.온천의 도시 벳부에서의 온천여행

 둘째날 부터 우리는 드디어 온천여행을 시작했다. 우리는 바로 일본 3대온천의 도시 벳부로 향했다.벳부로 가는 중간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즐비하게 서있는 유후인으로 가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했다.

 유후인은 아기자기하고 이쁜 가게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일본 전통 온천마을로 일본여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가서보니까 정말 아기자기하고 이쁜가게들이 많았다. 또 유후인 근처에는 킨린호수라는 온천호수가 있었는데 뜨거운 물과 찬물이 동시에 올라와 아름다운 물안개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우리가 갔을때는 오후에 가서 그 아름다운 장면을 볼수 없었다.솔직히 호수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한 큰 연못수준이었다.;;


킨린호수의 모습이다.작은 호수이지만 나름대로의 멋은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은후 이번에는 일본에서 유명한 지옥온천이라는 곳으로 갔다. 벳부에 위치하고 있는 유명한 온천명소인데 지하 수백미터에서 뜨거운 열기와 증기가 쏟아오르는 모습이 마치 지옥과 같다 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유명한 바다지옥이라는 곳을 갔는데 진한 에메랄드 빛 물속에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왜 그들이 이곳을 지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지 알수 있었다.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해서 이모양이지만 실제모습이 더 장관이었다.

자이제는 우리의 최종목적지 벳부의 온천호텔 스기노이 호텔로 향했다. 드디어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온천호텔에서 우리가 기다리던 따뜻한 온천을 할 차례였다. 이틀밖에 안되었지만 집떠나면 고생이라고 벌써부터 피곤이 몰려왔기에 따스한 온천이 절실했다.



 벳부지역의 스기노이 호텔은 벳부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온천호텔이다. 우리가족이 묵었던 객실에서 바라본 전망이다. 저기 멀리 보이는 바닷가가 벳부만과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곳이다.스기노이 호텔은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거의 모든 객실에서 활짝 펼쳐진 벳부만을 볼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가 묵었던 객실의 모습이다. 객실은 화양실이라고 일본 전통 다다미방과 침대가 같이 놓여있어 일본 전통 다다미방을 체험할수 있도록 하였다. 다다미 방에서 잠을 자고 싶다고 호텔측에 말하면 다다미 방에 이불을 깔아준다.

 우리는 드디어 기다리는 온천으로 향했다. 스기노이 호텔은 특히 호텔 옥상에 위치한 타나유라는 대전망 노천탕으로 유명한 호텔이다.호텔옥상에 커다란 노천탕이 펼쳐져 있는데 아름다운 벳부만과 벳부시내를 조망하며 온천할수 있어 그맛이 일품이었다.


 바로 스기노이호텔의 그 유명한 타나유의 모습이다. 목욕탕이다보니 실제로 촬영할수는 없었고 호텔홍보 사진에서 퍼온 사진이다.실제 모습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진의 오른쪽으로 보이는 모습이 벳부만의 모습이다.뜨거운 온천물에 누워 아름답게 지는 석양을 바라 보던 그때는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다.여행에서 오는 피로가 따스한 온천물과 아름다운 풍경에 사르르 녹아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 호텔이었다. 우리가족은 온천을 마치고 바에서 시원한 맥주한잔씩을 시켜 마시며 밤새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족과 함께 한 여행이 정말 오래간만이었기에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른 아침에 다나 타나유를 가면 일출도 볼수 있다기에 찾아갔지만 아쉽게도 흐린날씨탓에 일출은 볼수 없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의 벳부만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3.일본전통여관의 노천탕과 아소산의 장관을 경험한 3일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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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과 이별눈치챈 어미소의 눈물

이런저런얘기 2009. 1. 28. 23:02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우연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몽구님의 블로그에서 본 영상이다.

우시장에 팔려나간 소가 자식은 송아지와 이별을 직감하고
처량하게 우는 모습....역시 소는 영물인가보다..

그 큰눈망울에서 뚝뚝 떨어지는 눈물이 더욱 슬픔이 크게
느껴진다.

그모습을 담배를 물고 처량하게 쳐다보는 주인아저씨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어릴적 우리집도 농사를 지은적이 있는데 당시
엄마소하고 송아지 한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동생이 갑자기 큰병에 걸려 많은 돈이 들어
결국 송아지를 팔아야만 했는데

송아지와 이별하고 나고 엄마소가 하루종일 큰소리로
울며 발버둥치던 기억이 위 동영상을 보면서 어렴풋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마도 이와 같겠지...



요즘 40여년을 키운 소와 할아버지의 눈물어린 우정을 다른
'워낭소리'라는 다큐멘타리 영화가 참 볼만 하다고 하는데...

한번시간이 되는 분들은 보아도 좋을듯하다.
친구놈하나가 봤는데..자기도 눈물흘리면서 봤다고 하더라....


소라는 놈은 참 우직하면서도...
그순한 눈빛이....가끔은 우리를 슬프게하는거 같다...

특히 시골에 살아본 사람은 그 느낌을 잘알듯...

저 동영상에 나오는 소는 결국 어떠한 운명을 맞이했을까?
가슴이 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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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포근히 반겨주는 고향과 친구들

이런저런얘기 2009. 1. 25. 15:14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고향에 내려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향이라는 단어가 더 친근하게 다가 오고 그리워진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10대.20대 시절에는 그렇게도 시골 촌구석에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는데.어느덧 30대가 되어보니 고향.그리고 어릴적 빨가벗고 시냇가에서 물장구치구 돌던 고향친구들이 그토록 그리워 진다.일종의 회귀본능일까?..............

 고향마을은 언제나 변함없이 날 포근하게 반겨준다.고향마을은 엊그제부터 함박눈이 펄펄내린다. 소복소복쌓이는 하얀눈에 어느덧 마을은 설탕가루를 뿌린듯 하얗게 변해버렸다.하얗게 변해버린 고향마을을 천천히 거닐면서 왜 어릴적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나의 고을 떠나고 싶어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날씨는 춥다고 하지만 하얗게 덮은 눈들이 마치 따뜻한 흰솜이불처럼 느껴저 전혀 춥지 않았다.고향은 언제나 포근한 나의 어머니같은 존재이다.

 어제저녁은 오래간만에 고향 친구놈들을 만나서 밤늦도록 재밌게 놀았다. 언제나 변한 없이 반겨주는 녀석들..고향친구놈들이 최고다.

시험에 합격후 여러 법조인 선후배들.향우회 모임등등에 자의반.타의반 참여하면서 이른바 잘나가는 선배.후배들에게 나도 모르게 이른바 눈도장이라도 찍을려고 있는말 없는말 지어내며 형식적인 안부인사.잘먹지도 못하는 술을 받아먹는 내모습이 정말 어색하고.이상했다.같이 모임에 참석한 친구놈들은 한국에서 사회생활할려면 어쩔수 없다.니가 그런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하더라도 잘적응해야 한다고 말하지만...아직까지 어색한것은 어쩔수 없다. 결국 그런모임에 나가면 항상 긴장하고 실수하면 안된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모임이 끝나고 나면 극심한 피로가 몰려온다.

 그러나 고향친구들과의 만남은 일분일초가 아쉽고 헤어짐이 섭섭하다.이른바 잘나가는 친구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큰 출세를 한 녀석들도 아닌 공무원.공장근로자.작은 회사에 다니는 그런 평범한 녀석들이지만.난 그어떤 잘나가는 대학선배들보다 이녀석들이 제일 좋다.


 다시한번 시험합격을 축하한다는 그녀석들의 진심이 묻어나는 따뜻한 축하의 말과 함께 우리는 하얀 눈이 펑펑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다.어릴적 불장난하다 산불을 낼뻔한 추억.물고기잡아서 어죽끓여먹던 추억등등 이야기 봇다리는 끄집어 내면 낼수록 커져만 간다.

 어느덧 친구놈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도 있는 녀석도 있고.배도 뽈록 튀어나와 아저씨의 모습을 한녀석도 있지만.어릴적 추억을 이야기할때는 모두 어릴적 그 순수했던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다. 

 화이트 설날이인가보다.밤 11시가 넘었지만 하얗게 온 곳이 덮여 밤이 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건하게 술에취한 녀석들은 술집에서 나와 한참을 소복히 쌓인 눈밭을 걸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너나할것없이 그 어릴적 시절로 돌아가 눈을 뭉쳐 서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큰눈덩이에 맞아도 아프지 않고.눈뭉치를 뒤집어 써도 춥지 않고 행복한 웃음만이 흘러나왔다.그순간만큼은 모두 그 순수했던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행복한 시간은 그토록 시간이 짧게만 느껴진다.어느덧 시간이 흘러 헤어져야만 했다. 다음만남을 기약하고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데 다시 멈추었던 눈이 펑펑 쏟아진다.

내리는 눈속에 어릴적 친구들과 물장구 치고.겨울에 썰매타다 젖은 옷을 말리려 불을 피우며 친구들과 장난질하던 그시절 나의 모습이 보였다.그토록 해맑게 웃던 나의 어릴적 모습 이제는 영영 다시 돌아갈수 없겠지....하지만 난 어릴적 그 순수했던 나의모습을 추억하게 해주는 매개제 같은 고향친구녀석들이 있다.고향친구녀석들이 존재하는한 어릴적 모습으로 돌아갈수는 없겠지만 항상 난 그녀석들과 그 어릴적 행복했던 시간들을 추억할것이다.


워낭소리

이런저런얘기 2009. 1. 24. 10:5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