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12일 바로 어제 사법연수원 40기 수료식이 있었다.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이 이제 끝이났다. 수료식이 진행되는 동안 2년의 추억이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연수원에서 즐거운 기념사진을 찍고 즐거움을 만끽했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것은 2년동안 정이 든 동료들을 이제 자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사법연수원 수료식은 언론도 관심을 가진다. 수료식을 마치고 돌아오니 각 언론사에서 연수원 수료식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수료식에 대한 기사는 대부분 사법연수생의 취업난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기사들은 다소 자극적은 타이틀로 이번에 수료한 연수원생들 10명 중 4명이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쓸쓸한 수료식을 맞이 했다는 내용을 쏟아냈다.

언론의 기사들은 연수생들의 혹독한 실무수습과정을 통해 법조인으로서 사회에 나서서 법치국가의 확립과 소수자의 인권옹호에 앞장서 활동할 것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이 천편일률적으로 연수생들의 취업난만 부각시켜 흥미위주의 기사를 쏟아냈다.

그렇다면 정말 사법연수생들의 취업난은 심각한 수준일까? 수료식까지 취업하지 못한 이들은 정말 평생 백수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기사들을 보면 일응 진실된 부분도 있고 다른 한편 과장 보도한 측면도 있다.

우선 법률시장이 침체되어있는 것은 사실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는 대학 선배나 후배의 말을 들어보아도 경기침체 등과 맞물려 법률시장이 몇년 채 침체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경제규모에 비해서 법률시장의 성장은 정체되어 있어 더욱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변호사 고용시장에서 월 얼마가 무너졌다. 변호사에 대한 복지수준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등의 소문이 들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로스쿨생이 배출되면 법률시장은 더욱더 어려워 질 것이라는 예측은 이미 기정사실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각종 언론 기사는 지금 수료한 연수생들이 한참 취업시즌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사법연수원은 2년차 4학기 시험을 보통 10월에 본다. 그리고 최종성적은 11월말에나 나온다. 따라서 본격적인 취업시즌은 12월에나 시작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취업시즌은 다음해 6월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진다. 따라서 연수생들이 수료하는 1월 중순은 한참 취업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단계이기 때문에 미취업한 연수생의 숫자가 많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연수원의 취업시즌의 길게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일반 기업체와는 다르게 각종 로펌이나 기업체에서 변호사들을 소규모로 선발하기 때문이다. 중형로펌이상도 변호사 업계의 특성상 5명이상을 한해에 뽑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로펌들이 긴 시간을 가지고 소규모의 채용을 계속적으로 이어 나가기 때문에 취업시즌이 길어진다. 

그리고 대다수의 연수생들은 보통 3,4월 경에 취업을 완료한다. 그러나 언론기사는 한참 취업시즌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마치 연수생들이 취업하지 못해 쓸쓸하고 힘든 수료식을 맞이 한 것처럼 과장하여 보도한 측면이 있다. 물론 언론의 특성상 특정 부분을 과장하여 보도하는 행태는 당연히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언론사의 기자들이 연수원 수료식장에 찾아와서 천편일률적으로 연수생들이 취업되지 못한 채 쓸쓸한 수료식을 맞이했다는 기사를 쏟아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연수생들은 2년동안의 힘들게 실무수습을 하면서 혹독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무사히 수습과정을 마쳤다는 것에 대해 가족, 동료와 기쁨을 함께 했다. 

  그리고 그들은 각종 사회,경제, 문화 각 영역에 진출하여 법치주의 확립과 소수자의 인권옹호를 위해 일할 것이다. 연수원 성적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익법무법인 등에 들어가는 이들도 많다.

 법률시장이 일대 변혁기에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연수원을 수료한 연수생들은 2년의 교육과정에서의 실무수습을 통하여 훌륭한 법률가의 자질을 모두 갖추었다.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 법조인이 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고시촌의 무늬만 고시생들

고시촌이야기 2011. 1. 11. 07:1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많은 고시생들이 밤을 지새우며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한다.대다수의 고시생들은 독서실이나 고시원등에서 다른분야에 관심을 끊고 공부에 매진한다.

  그러나 신림동 고시촌에는 대다수의 고시생들과 다르게 그들의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하는 이른바 무늬만 고시생인 이들도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에게 소중한 용돈을 받아서 유흥 등에 탕진하는 고시생들이 많이 있다.

 과거 내가 공부하기 위해 자리잡은 신림동 원룸에 몇달이 지난 후 옆방에 한 고시생이 들어왔다. 그 고시생은 처음 한달 정도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듯 하더니 그 후로 본색을 들어냈다. 매일 밤 친구들을 불러와 술파티를 벌였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늦은 밤 원룸에 들어오면 옆 고시생방은 술파티로 항상 시끄러웠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시끌벅적한 소리로 잠을 자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파티를 벌이니 낮에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여자친구가 있는지 여자친구를 원룸에 데리고 와 또 수다를 떨었다. 그런 무늬만 고시생에게 한달에 한번씩 어머니가 찾아와 그 고시생 방을 청소하고 빨래거리를 가지고 가 빨아주었다. 생각같아서는 그 무늬만 고시생인 친구의 어머니에게 그 고시생의 평소 행태를 하나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무늬만 고시생의 부모님은 그 친구가 다른 고시생과 마찬가지로 매일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소중한 자식이 안쓰럽다고 생각을 했을 것인데, 그 무늬만 고시생은 공부는 뒷전이고 소중한 젊은 시절을 유흥에 낭비하고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이러한 무늬만 고시생들이 많다. 많은 고시생들이 처음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고시촌에 들어오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막대한 공부분량앞에 질려버려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공부는 부업이고 유흥이 본업이 되어 버린 이들이 많다. 

 또 고시촌에 각종 술집, 바, 등의 유흥시설이 많다보니 혈기왕성한 젊은 고시생들이 부모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쉽게 그러한 유흥시설에 유혹되어 초심을 잃고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소중한 공부비용을 유흥비로 몇년이나 낭비하고 결국 고시촌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오랫동안 국가고시에 도전하였지만, 번번히 실패의 쓴잔을 맛본 이른바 장수생들은 더이상 갈곳이 없어 신림동 고시촌에 눌러 앉아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미 나이는 들대로 들어 일반 기업에 취업할 수없어 신림동을 벗아나고 싶어도 벗아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도 많은 장수생들은 그들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지만, 또 다른 장수생들은 이미 공부의 뜻을 버렸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신림동에 고시생이라는 타이틀만 걸어두고 머무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본가에서 생활비가 올라오기 힘들어 가능한 신림동 산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고시원에 머무르며 고시원이나 독서실 총무, 학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계비를 마련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아르바이트 등으로 공부시간이 부족하여 공부는 하루에 채 몇시간을 하지 못하니 합격의 길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고시생이라는 명칭은 그들에게 하나의 직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이름만 고시생인 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무늬만 고시생들은 오늘도 그들의 소중한 젊은 시절을 아무런 의미없이 낭비하며 보낸다. 그러한 이들은 몇년을 낭비한 후에야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는다.

지금 국가고시를 위해 신림동 고시촌 입성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와 합격의 영광을 차지하여 웃으며 떠나는 이들은 10명 중 한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이들은 실패의 쓴 경험을 안고 떠난다. 그만큼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오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 누구보다 성실히, 열정적으로 그들의 꿈을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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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2011. 1. 10. 11:2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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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접촉사고 후 도주 처벌가능할까?

형법여행 2011. 1. 6. 12:0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살다 보면 가끔 황당하고 기분나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주차장에 주차해놓은 그것도 새로 구입한지 얼마 안되는 귀한 차를 누가 긁어 놓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우일 것이다.

 이른 아침 멋드러지게 새로나온 신형 중형차를 운전할 마음에 들떠 상쾌한 기분으로 주차장으로 향하다 눈에 확 들어오게 누군가의 차에 의해 긁힌 자국을 보면 어느덧 상쾌한 기분은 사라지고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욕설이 본능적으로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두번 겪어 봤을 일이다. 특히 주차장에서 이런 접촛사고가 빈번하고 그나마 예의바른 사람들은 접촉사고후 연락이라도 주는데 일부 몰염치한 사람들은 단순 접촉사고의 경우는 아무런 통지없이 그냥 사라지는 것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이렇게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은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을까?

뺑소니에 해당될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뺑소니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 3에 규정되어 있는 범죄이다. 

 
한마디로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이 죽거나 다치게 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한 경우에는 그 사람이 사망에 이른경우는 무기징역 또는 5년이상의 유기징역에 또 상해에 이른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는 뺑소니는 인명사고 후 도주한 경우에 처벌되는 범죄이다. 단순 주차장 접촉사고 후 도주한 경우는 이 법이 적용될 여지가 없다.

도로교통법으로 처벌이 가능할까?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처벌이 불가능하다면 도로교통법상으로 처벌이 가능한지 문제된다.

우선 고려되는 것이 도로교통법 148조(사고 후 미조치)로 처벌이 가능한지가 문제된다.
우리 도로교통법 제148조는 교통사고 후 아무런 조치도 없이 도주하는 경우를 처벌하고 있다.


그리고 두번째로 고려될 수 있는 것이 도로교통법 제151조의 재물손괴로 처벌이 가능한지 여부이다. 재물손괴죄는 고의범으로 과실범은 원칙적으로 처벌할 수 없으나 우리 도로교통법 제 151조는 예외적으로 과실로 인한 재물손괴를 처벌하고 있다.


자 이렇게 도로교통법에서 교통사고 후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하거나 다른 사람의 차를 과실로 손괴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니 주차장 접촉사고의 경우도 충분히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의 고귀한 새차를 긁고 도망간 사람을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하지만 도로교통법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그 사고가 도로에서 벌어진 사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차장 특히 아파트 지하주차장 백화점 지하주차장 등이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 해당될까?

이에 대해 우리 판례는 도로교통법 상의 도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도로라 함은 도로법에 의한 도로, 유료도로법에 의한 유료도로 그밖의 일반 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을 말하고, 일반교통에 사용되는 모든 곳이라 함은 현실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 또는 차량의 통행을 위하여 공개된 장소로서 교통질서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교통경찰권이 미치는 공공성이 있는 곳을 의미하며, 특정인들 또는 그들과 관련된 특정한 용건이 있는 자들만이 사용할 수 있고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장소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2000두6909)

다소 어려운 말처럼 보이는데 쉽게 설명하면 불특정 다수인이 사용하고 일반 교통경찰권이 미치는 것은 도로교통법상의 도로에 해당하지만 특정인들만이 사용하고 특정인들을 위해 자주적으로 관리되는 곳은 도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파트 지하 주차장 백화점 주차장 등은 도로에 해당할까?

아쉽게도 도로에 해당하지 않는다.

아파트 주민들이 자주적으로 관리하는 아파트 구내 노상 주자창에 주차된 차량을 아파트 구내 지하주차장으로 옮기기 위해 운전한 경우, 운전한 장소가 도로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경찰관의 주취측정 요구에 불응한 경우 음주측정불응죄가 성립되지 않는다.(99도2127)

아파트 주차장은 도로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례이다. 이유는 아파트 주차장은 차단기 등이 설치되어 일반적으로 아파트 입주민 등만이 사용되고 그 이외의 차량은 출입이 통제되고, 또 아파트 측에서 출입통제 등 자주적으로 관리하여 일반적인 교통경찰권이 미치는 도로에 해당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백화점 지하 주차장도 같은 이유로 도로가 아니다.

결론은 아파트 주차장 등에서 접촉사고 후 도주한 자를 처벌할 수 없는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이에 대해 판례가 도로의 개념에 교통질서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교통권이 미치는 곳을 요건으로 포함시켜 대학구내 등에 경찰권이 미치지 못한 다는 이유로 음주, 무면허 등을 처벌하지 못하게 하여 인명피해의 위험성과 형평성상 부당하고, 도로교통법 문언의 범위를 벗어나는 해석이라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판례의 도로의 개념에 대한 정의는 변경되지 않았다. 결국 주차장에서 내차를 긁고 도망간 파렴치 한 자에 대한 형벌적 처벌은 불가능한 안타까운 사태가 초래된다. 새차를 사신 분들은 조심조심하는 길밖에 없다.물론 미세하게 차량이 긁힌 정도에 불과한데 형벌로 처벌한다는 것도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사적 책임, 보험책임은 충분히 물을 수 있기 때문에 cctv를 뒤져서라도 차를 긁고 도망간 자를 찾아야 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사고를 낸 사람이 스스로 상대방에게 연락하여 변상해주는 자동차 에티켓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티스토리 초대장 배포합니다.(4장)

이런저런얘기 2011. 1. 6. 11:33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티스토리 초대장이 4장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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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캐스트를 발행하려면 추천인 5명의 추천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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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초대장을 받으가실 분은 다음과 같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1.네이버 이메일 입력
2.네이버 오픈캐스트 추천동의 메일 받으시면 추천해주세요^^(초대장이 4장밖에 없어서 한분은 죄송하지만 초대장 없이 추천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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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얘기 2011. 1. 6. 00:4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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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이 부러진 채 사법시험 본 사연

고시촌이야기 2011. 1. 5. 07:4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고시촌에 입성하여 그 해 겨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 비록 경제적 환경이 넉넉하지 못하여 학원은 수강할 수 없었지만 강의테입으로 대체하여 유명강사의 강의도 들었고, 미니원룸과 독서실을 왔다갔다하며 단조로운 생활을 이겨내고 가능한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이전처럼 긴장감과 두려움은 덜했다. 오히려 때로는 시험을 빨리 봐서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그리고 어느덧 매서운 겨울 바람이 잠잠해지고 봄의 기운이 찾아 올 무렵 사법시험1차시험 전날이 되었다. 그해 시험은 2003년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서 법률저널 게시판에 가보니 나와 똑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글을 올린 것이 있어 다소 참 우습기도 했는데 법률저널 게시판에 보니 안경이 부러져 안경없이 시험을 보았다고 하소연 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나도 그 해 시험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난 중학교때부터 안경을 썼기 때문에 눈이 상당히 나쁘다. 흔해 말해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장님 수준이다. 그러한 내가 그 해 사법시험 1차시험을 안경없이 본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시험전날 나는 독서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밤 10시경에 숙소인 미니원룸으로 왔다. 역시 시험전날이라 무척이나 긴장되었다. 숙소에 들어와 대충 씻고 내일 시험장에 가지고 갈 책 등 준비물을 정리하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영 오지 않았다. 시험장에 갈려면 그래도 7시경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영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시험장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또 떨어지면 하는 잡생각만 머리속에서 맴돌고, 또 눈을 뜨면 얼릉 자야지 하며 다시 눈을 감고를 반복하며 시간은 12시, 1시,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 잠이 오지 않아. 군대시절 이후 끊었던 담배를 물고 창문을 열고 한눈에 내려보이는 신림동 전경을 바라보았다. 고요함이 오히려 더 나의 잠을 방해했다. 그렇게 뒤척이다 난 안경을 침대아래에 두고 새벽3시경에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6시경에 눈을 가까스로 떴다. 잠을 못자서인지 머리가 빙빙돌고 컨디션이 별로 안좋았다. 그리고는 무심결에 침대 아래 방바닥을 밟았는데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밟히고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경이 두동강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절단나버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들고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주 허탈한 웃음....순간 든 생각은 올해 시험은 또 이렇게 어이없이 망치는 구나 하는 것과 모르겠다.시험보러 가지말까...등등의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잠시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잡고 방을 뛰쳐나가 안경점을 찾아 갔지만 이른 아침이 문연 안경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을 찾아가 순간 접착제를 구해 와서 절단난 안경을 접착시키려고 했지만 절단면이 너무 매끄러워선지 안경은 야속하게 계속 떨어져 나갔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이제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시험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일단 시험장에 가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뿌옇게 초점이 잡히지 않은 채 보였다. 버스번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택시를 잡아 타고 가야 했는데, 그때서야 시험당일 날 신림동에 보이는 택시들은 대부분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붙잡는 택시마다 예약되어 있다고 승차를 거부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당황스러웠다. 간신히 버스정류장에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버스를 타고 신림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주의깊게 들어야 했다. 그때서야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지금 내모습이 너무나 황당하여 계속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험은 시작되었다. 시험지도 잘 안보였다.가능한 시험지와 눈을 밀착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글자한자한자를 세심하게 보며 시험을 치루었다. 그때의 모습이 시험감독관도 이상했는지 세심히 나를 관찰했다.

한자 한자 집중해서 보아야 했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했다. 오전 시험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를 사 군대제대 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폈다. 역시 식후에 먹는 담배맛이 제일이었다.솔직히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다시 급하게 안경을 맞출 시간은 있었지만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이미 의욕상실이라고 할까....

 그리고 다시 오후 시험을 보았다. 자포자기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험에 대한 긴장감도 이미 사라졌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어려운 문제 아리송한 문제도 그냥 맘편하게 고민없이 답이라고 생각되는 지문에 정답을 체크했다. 역시 시험은 긴장없이 보아야 해 하면서 말이다.시험을 잘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다시 한번 올림픽정신으로 끝까지 해보자 뭐 그런 생각이었다. 시험지와 다시 내 눈을 밀착시키고 한자한자 글자를 세어가며 시험을 보았다.

악몽같은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시험장을 나오며 다시 담배를 물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도 잘 안보였다. 내 불투명한 미래처럼 모든 것이 흐리멍텅했다. 가까스로 신림동에 와 안경점에 갔다. 그리고 한풀이라도 하듯 내 능력을 뛰어 넘는 비싼 안경을 샀던 기억이 있다.

 작은 내 안식처 미니원룸에 와 그냥 잠이 들었다. 채점이고 뭐고 할 기력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너무 웃겨서 웃음만 나왔다. 지금생각해도 웃긴 상황이 아니던가. 며칠후 가답안을 보고 채점을 해보긴 했다. 그러나 점수가 생각보다 잘나왔다. 정확히는 기어나지 않지만 81.5점인가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당시 컷트라인이 내 기억에는 82점이었을 것이다.그런데 81.5점이었다. 아마  그 당시 합격자 발표전까지 컷트라인 공방이 꽤 있었던 기억이 있다.당시에는 좀 아쉬웠다. 만약 안경을 끼고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시험을 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 나의 점수대가 가장 불안한 점수대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합격이었을까?

아니. 나는 합격했다. 컷트라인이 82점인대 어떻게 합격했냐고? 안경을 안쓰고 어려운 상황에서 시험을 끝까지 마친 것에 대해 법무부가 이를 참작하여 합격을 시켜주었다. 무슨 말이냐고..... 당시 경제법을 선택과목으로 시험을 보았는데 경제법 한문제가 복수정답이 인정되어 0.5점이 올라가버렸다. 그래서 정확히 컷트라인 82점으로 붙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꼴찌로 1차시험에 합격했다.(물론 다음해 2차시험에는 어이없이 떨어졌지만...,,) 컷트라인으로 붙는 짜릿함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수석으로 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안경이 부러진 어이없는 상황에서 시험으로 포기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시험을 보고 드라마같이 꼴찌로 합격을 해버렸다.지금생각해도 내 인생의 역사 중에게 가장 재밌는 상황중에 하나이다.

다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무엇인가 결과물이 생기는 모양이다. 우리 다시 힘들고 지금은 괴롭더라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말고 도전합시다. 오늘은 어둡고 힘들더라도 내일은 태양이 다시 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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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출연자(엑스트라)는 근로자일까?

노동법여행 2010. 12. 31. 10:13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어제 주목을 받는 서울행정법원 판례가 나왔다. 아직 행정법원판례이기 때문에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보조출연자 우리가 흔히 말아는 엑스트라가 산재의 대상이 되는 근로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소송의 당사자인 갑씨는 지난해 4월 경기도 안성에서 MBC 드라마 선덕여왕을 촬영하다 배수로로 추락해 부상을 입고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했지만 거부당했고, 이에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촬영 장소나 시각 등을 용억업체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점, 촬영이 시작되면 개인적인 행동이 금지되고 업체 지시에 따라야 하는 점 등을 보면 보조출연자도 용역업체에 소속된 일용직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보조출연자도 돈받고 일하기에 근로자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근로기준법에서 정하는 근로자의 정의는 그렇게 쉽지 않다.

 당사자가 법적인 근로자가 되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이사례에서 본 것처럼 산재가 적용되느냐 아니냐 등의 문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근로기준법에서 말하는 근로자의 정의

  이에 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제1호는 근로자에 관하여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의 근로자의 범위에 속하는지 여부는, 원칙적으로 그 사람이 상대방과의 사용종속관계 아래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기준법상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기로 하는 내용의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다고 할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국 판가름 난다고 할수 있다.

이러한 기준중에서 가장중요한 기준은 사용종속관계에 있는지, 또 임금을 지급받고 있는지 등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근로자의 구체적 판단기준
 
  그렇다면 근로자의 구체적 판별기준은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해 법원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근로자 특히 사용종속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1. 취업규칙 똔든 복무(인사)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여부
2. 사용자로부터 구체적, 개별적인 지휘, 감독을 받는지 여부
3. 사용자에 의해 근무시간과 근무장소가 지정되는지 여부
4. 업무의 대체성 여부
5. 비품 원자재 작업도구 등의 소유관계
6.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져 있는지 여부
7. 근로소득세의 원천징수 여부
8.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
9. 사용자에의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10. 사회보장제도의 관한 법령 등 다른 법령에 의해 근로자의 지위인정 받는지 여부
11. 사용자와 근로자의 경제. 사회적 조건고려


이와 같은 요건 등을 고려하여 법원은 일반적으로 근로자인지 근로자가 아닌지를 판결한다. 이번 보조출연자에 대한 판결은  촬영 시간, 장소 등이 용역업체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보조출연자의 개인적 행동이 금지되고 용역업체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보조출연자가 용역업체와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는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에서 대법원은 안마시술소의 소속 안마사의 경우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안마시술소의 안마사의 경우 매일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안마시술소 대표의 포괄적인 지휘감독을 받으며 대표가 정한 취업규칙의 적용을 받는 근무형태를 취하고 있어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92도 674판결)

반면에 유흥업소에 출연하는 가수는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있다. 유흥업수 출연가수가 장소적, 시간적 구속하에 노무를 제공한 것이 아니고 그에 대한 보수도 근로의 대가로 지급된 것이 아니므로 종속적인 관계 하에서 노무를 제공하였다고 볼 수없으므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다.(93누 16680판결)

유흥업소 접대부는 근로자일까?

 그렇다면 유흥업소 접대부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할까? 이경우도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단 대법원 판결은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경우가 있다.

대법원은 어떠한 기준을 가지고 유흥업소 접대부에 대해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을까?

1. 출퇴근의 자유

유흥업소 접대부은 일반적으로 근무시간이 저녁 6시경부터 자정까지가 원칙이며, 근무시간 중에는 마담이나 업주의 지시를 받아 근무를 하기는 하나 개인 사정이 있으면 마담 등에게 말하고 결근, 지각 조퇴 등 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고 그로 인한 제재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다는 점

2. 사용자로부터 임금을 지급받지 않는 다는 점
 
유흥업소 접대부들이 업주로부터 받는 기본급 등 고정급은 없고 수입은 손님들로부터 받는 팁이 전부이며, 통상 접대부들이 팁을 쉽게 써버리므로 마담이 이를 보관하고 있다가 필요시 지급하고 나머지는 월말에 정산하고 있으나 업주가 손님으로 부터 받은 팁 액수를 통제하거나 사용. 관리하는 일이 없다는 점

그 밖에 접대부들의 팁 수입에 대한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일도 없으며, 취업규칙이나 근무수칙이 정하여진 바 없고, 업주가 산업재해보험에도 가입된 바 없다는 점에 비추어 법원은 유흥음식점 접대부는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95다35289판결)

 이 판결에 대해서는 다소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어제 있었던 서울 행정법원의 보조출연자에 대한 근로자 인정판결은 사회적 약자를 고려한 합리적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근로자인지 아닌지의 문제는 각종 복지관련법의 적용을 받느냐 받지 못하냐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티벳궁녀로 유명해진 보조출연자분도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눈과 풋사랑

이런저런얘기 2010. 12. 30. 10:5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새벽에 폭설이 내렸다. 올들어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 지구온난화 등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의 결과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눈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온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은 어느덧 아련한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

 새벽에 세상을 뒤덮은 함박눈을 창가에 서서 한동안 바라보았다. 바람에 휫날리던 눈송이는 이리저리 휘날리다, 열어놓은 창문을 박차고 들어와 나의 손바닥에 안겼다. 그리고 잠시 솜사탕처럼 스르르 녹아 버렸다.



사람들은 저마다 눈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눈을 볼때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추억이 있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풋사랑의 추억이랄까?

 중학교 시절 우리학교는 남녀공학이었다. 그중에서 난 피부는 꺼무잡잡하지만 아주 귀여운 소녀를 발견했다. 활달하고 귀여운 소녀, 하지만 난 호감의 표시를 반대로 했다. 아마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고무줄 하는 소녀의 고무줄 끊어놓고 도망가기, 의자 몰래 빼서 넘어 트리기, 도시락에 개구리 넣기 등등 소녀를 끊임없이 괴롭혔고, 나의 장난에 소녀는 화가나서 씩씩 거리며, 때로는 울며 나를 잡아먹을 듯 잡으러 다녔고, 난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장난에 화가 나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소녀의 모습이 너무나 귀여워 그렇게 장난을 쳤던 것 같다. 그렇게 소녀에 대한 장난으로 어느덧 1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겨울이었다. 시골에 있던 우리학교는 석탄난로를 썼다. 선생님의 명령으로 석탄창고에서 석탄을 가져왔는데, 책상서랍에 예쁜 편지봉투와 선물상자가 있었다. 소녀가 보낸 것이었다. 내용은 이성으로써 날 좋아한다는 내용;; 선물상자에는 소녀가 곱게 포장한 초콜렛이 있었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연애편지에 당황했다. 어릴 적 부터 이성친구에게 장난을 많이 쳤지만, 그런편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무엇인가 큰 잘못을 한 것처럼 가슴은 두근거렸고 또 소녀를 향한 내마음을 들켜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사춘기 소년의 얼굴은 화끈거렸다.

 그리고 한편으로 내 마음을 이해해준 소녀가 고마웠다. 하지만 난 그편지사건이후로 소녀에게 더이상 장난을 칠 수 없었다. 소녀와 마주치면 얼굴을 피했고, 소녀를 볼 때 마다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소녀는 계속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언제, 어디서 만나자, 편지에 대한 답장을 해달라 등등 또 인형, 열쇠고리, 직접 접어만든 장미 등 등 정성이 담긴 선물도 이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녀를 볼때 마다 무언가 화끈거리는 시골소년은 소녀를 피했다. 속으로는 좋아하면서 말이다. 참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소녀가 이성으로 다가오자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그렇게 한달가량이 흘렀다. 소녀의 구애에 시골소년이 답이없자 소녀는 지쳤던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를 보냈다. 며칠 몇시까지 버스정류장 앞에 기다리고 있을 테니 나와달라는 것이다. 만약 나오지 않는 다면 소녀를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마음을 접겠다는 마지막 통지서였다.

 고민되었다. 버스정류장은 당시 컴퓨터 학원을 다니고 있던 나의 학원 봉고차가 오던 장소인지라 소녀와 마주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소녀에 다가가 나도 너를 좋아해 하고 말하고 싶었는데, 바보같은 시골소년은 버스정류장앞에 귀마개를 하고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소녀를 못본척 하고 학원 봉고차에 올라탔다. 참 바보같은 시골소년이다.

학원차안에서 점점 사라지는 소녀를 바라봤다. 이것으로 소녀와의 추억은 끝이겠구나 했다. 1시간가량이 지나 학원이 끝나고 나오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갔다. 눈때문에 학원 봉고차가 운행을 안해 버스를 탔다.

 하얀 눈을 바라보며 난 소녀를 잊었다. 친구들과 눈싸움을 하고, 눈밭에서 축구를 할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에 귀마개를 하고 벙어리장갑을 낀 채 소녀가 눈물을 글썽이며 서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시골소년을 바라보며 소녀는 눈물을 끌썽글썽 거렸다.



 그리고 소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어떻게 넌 그럴 수 있는 거야 하는 표정으로 날 오래동안 바라보고 함박눈 휫날리는 거리로 달려갔다. 휫날리는 눈송이 사이로 소녀는 눈송이와 함께 하얗게 사라져갔다.

 소녀와 시골소년의 풋사랑은 하얗게 내리는 눈송이가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렇게 싱겁게 끝이났다. 그후로 소녀는 날 바라보지 않았고, 부끄럼많은 시골소년은 더이상 예전처럼 소녀를 대할 수 없었다.

 하얀눈이 소복히 쌓인 아파트 놀이터에 장갑과 두꺼운 점퍼로 무장한 아이녀석 둘이 눈사람을 만들 것인지 눈을 뭉치고 있다. 녀석들에게 눈은 어떤 추억으로 다가올까?

사람은 저마다 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있겠지, 난 눈을 볼때마다 소녀와의 어리숙한 풋사랑이 가끔씩 떠오른다.이제 눈은 설레임보다는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골치아픈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더이상 설레임을 느낄 수 없는 서글픈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어릴 적 순수했던 그시절의 설레임이 너무나도 그립다.

고시촌 입성기

고시촌이야기 2010. 12. 29. 08:2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은 어느덧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지긋지긋했던 고시촌을 탈출한지도 이제 2년을 넘어서고 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아직도 청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각종 시험준비생들이 치열한 시험준비를 하며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고시생들이 모두 꿈을 이루어 고시촌을 탈출하지 못한다. 오히려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간직한 채 고시촌을 떠나는 이들이 더욱 많다. 그리고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간직한 채 떠나는 이들의 빈 공간을 새로운 이들이 채운다.

 신림동 고시촌에 내가 처음 입성한 때는 2002년 겨울이었다. 2002년은 월드컵으로 온나라가 시끄러웠다. 나 또한 대학에서 월드컵 기간동안 흥분하며 광란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월드컵이 끝나자 현실로 돌아왔다. 

 법대를 나온 나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법시험을 준비할 것인가? 취업을 할것인가? 솔직히 대학을 다니면서 사법시험을 몇번 도전했지만 결과는 1차시험에도 떨어졌다. 솔직히 열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인가 떠밀리듯 회사에 취업했다. 그러나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무엇인가? 내가 갈길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우선 방을 알아 보아야 했는데 신림9동은 너무나 사람들이 많아 평소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조용한 신림2동의 산꼭대기에 있는 조용한 미니원룸에 자리를 잡았다. 

 신림동 고시촌(지금은 대학동으로 변경되었다고 함)은 보통 신림2동과 9동으로 나누어진다. 예전에는 9동에 유명학원들이 몰려 있어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신림9동에 몰려 살고 또 편의시설, 복사집등이 몰려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신림2동에 유명학원들이 옮겨 오면서 독서실, 편의시설도 신림2동에 많이 생겼다.

  내가 선택한 미니원룸은 우선 산꼭대기에 위치하고 있어 경치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는 나즈막한 산이 자리잡고 있어 기분이 울적하거나 하면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하지만,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여름에는 정말 힘들다. 스키장 활강 코스같은  경사로 인해 여름에 학원이나 독서실이라도 나갔다가 복귀할 때에는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리고 겨울에 눈이라도 쏟아지면 내려갈 생각을 안하는 것이 속편하다. 굳이 내려갈려면 아이젠이라도 신고 가야 할 정도이다. 그렇게 난 2002년 매서운 바람이 부는 12월 겨울 어느날 신림동 고시촌에 자리를 잡았다.


 딱 3년을 기약했다. 3년이면 충분히 고시촌을 탈출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능력을 무시한 오만으로 판명되었다. 3년이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이 5년이상이 되어 버릴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고시촌의 첫날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엇이든지 첫경험은 잊지 못하는 것 처럼 그날의 기억은 내가 죽는 그날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부모님과 함께 했던 시골집을 떠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잠못들며 밤새 뒤척거리던 자취방의 첫경험, 군대입대해서 잠못들며 한숨만 푹푹내쉬던 훈련소에서 첫밤, 마치 고시촌의 첫날은 그런 것이었다. 


 그날따라 바람은 왜 그렇게 매섭게 몰아치던지, 창가를 무서운 소리를 내며 때렸다. 밤하늘은 달빛, 별빛 하나 없어 블랙홀 같은 어둠이 꽉 차있었다. 두꺼운 법서를 책장에 정리고 침대에 몸을 눕혔지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릴적 추억들, 대학에 입학했던 기억, 부모님, 장래에 대한 고민, 낯선 곳에 있는 어색함 등등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렇게 고시촌의 첫날밤은 뒤척거림과 매서운 겨울바람, 한숨으로 무언지 모를 두려움으로 하얗게 질린 소녀의 뺨과 같이 흘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