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가다가 티비에서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변호사가 출연하여 본인 스스로를 국제변호사로 호칭하거나 방송국에서 국제변호사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또 일반인들은 흔히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자들을 국제변호사로 알고 또 그렇게 호칭한다.

 그러나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잘못된 호칭이다. 오히려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본인을 광고하면 변호사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도 있다.

 외국법자문사법 제2조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변호사"란 「변호사법」에 따른 변호사를 말한다.
2. "외국변호사"란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하여 보유한
사람을 말한다.
3. "외국법자문사"란 외국변호사의 자격을 취득한 후 제6조에 따라 법무부장관 으로부터
자격승인을 받고 제10조제1항에 따라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한 사람을 말한다.

즉 외국법자문법에 의하면 변호사, 외국변호사, 외국법자문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외국변소사는 외국에서 변호사에 해당하는 법률 전문직의 자격을 취득한자, 외국법자문사란 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자격승인을 받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만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외국자문법 제27조 제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27조(자격의 표시 등)
1. 외국법자문사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본인을 표시할 때는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원자격
국의 명칭(원자격국이 도·주·성·자치구 등 한 국가 내의 일부 지역인 경우 그 국가의 명
칭을 위 원자격국의 명칭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하 같다)에 이어 "법자문사"를 덧붙인
직명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 경우 직명과 함께 괄호 안에 원자격국언어로 된 원자격국의
명칭을 포함한 해당 외국변호사의 명칭을 부기할 수 있고, 이어 국어로 된 대한민국에서
통용되는 원자격국의 명칭에 "변호사"를 덧붙인 명칭을 병기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국제변호사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고 외국법자문사라는 호칭만을 사용할 수 있다.예를 들어 미국 로스쿨을 수료하고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여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변호사 협회에 승인을 받은 자는 '미국법자문사(Attorney at law Newyork, 미국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을 뿐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변호사법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여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제23조(광고)
제2항 변호사 등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광고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변호사의 업무에 관하여 거짓된 내용을 표시하는 광고
2. 국제변호사를 표방하거나 그 밖에 법적 근거가 없는 자격이나 명칭을 표방하는 내용의
광고

제113조(벌칙)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3. 제23조제2항제1호 및 제2호를 위반하여 광고를 한 자

즉 변호사법에 의하여 국제변호사를 표방하는 광고를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된다.

위와 같이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은 변호사법 등에 의해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정식적인 명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국제변호사로 불러온 것이 사실이고 이에 대해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서울지방변호사협회는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의 사용으로 일반인들에게 혼동을 줄 여지가 있고 법률시장의 혼탁을 줄 여지가 크다는 이유로 4월부터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외국변호사 및 법무법인에 대해 일제히 단속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협회의 국제변호사라는 명칭 사용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의지가 천명되었는바 앞으로 국제변호사라는 명칭의 사용은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법시험합격 선물로 받은 독립선언서

고시촌이야기 2012. 10. 23.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금요일 제54회 사법시험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아마도 신림동 고시촌은 합격의 기쁨과 낙방의 아픔이 공존하며 하루종일 술렁거렸을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생은 그 누구보다 행복한 하루였을 것이다.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을 보는 순간 지난 수년간의 고되고 힘든 순간들이 떠올라 벅차오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54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소식을 들으니,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때가 2008년 10월경이나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2008년 나는 무척이나 자신감이 없었던 시절이다. 2007년 4번째로 본 사법시험 2차시험에서 낙방을 하고 춥고 어두운 겨울의 터널을 지나 1차 시험에 합격을 하고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나는 무더위와 싸우며 2차 시험을 마쳤다.

  그리고 다시 10월 합격자 발표의 날이 다가왔다. 1차시험에 처음합격했을 때 나는 초시로 단번에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고시촌에서 도들 닦듯이 오랫동안 공부하는 장수생은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시는 커녕 재시에서도 낙방을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자신감에 차있었다. 하지만 세번째 2차시험에도 떨어지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4번째 시험에도 떨어지면서 난 처음으로 고시원 옥상에 올라가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나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수생이 나는 되어가고 있었다.그리고 철없이 자신감을 넘어 오만함이 가득했던 나는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몸을 떨어야 했다.

  2008년 10월 21일 그날은 제50회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었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 일찍 고시원을 나가 관악산을 거닐다가 발표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상원서적으로 향했다. 그리고 합격자 명단에서 나의 이름을 보았을 때 그 때의 감정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2008년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 당시 고시촌)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부모님께 전하고 나는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에는 부끄럽게도 나의 뒤늦은 합격을 축하한다는 플랭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떼어내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기뻐하시는 마음을 생각하여 그대로 두었다. 지금생각해도 부끄러운 일이다. 고향에 도착하니 친척, 동네주민분들께서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고향은 아직도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는 시골마을이라, 아직도 사법시험이 마치 과거시험에 급제라도 한 것처럼 대단한 시험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동네주민과 부모님의 축하를 받으며 오래만에 마음편히 고향집에 머무르던 어느날, 백발이 성성한 동네 어르신 한분이 찾아와 정성스럽게 포장한 무엇인가를 전해주셨다. 솔직히 그 분은 부모님과는 친분이 있는 분이셨지만, 나는 일면식도 없는 낯선 분이었다.

 그분께서 별다른 말씀없이 전해 주신 것은 한자,한자 정성스럽게 직접 쓰신 독립선언서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니 독립선언서을 마음깊이 새기며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라는 뜻으로 정성스럽게 작성한 그 독립선언서을 나에게 시험합격 선물로 준다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얼핏 보아도 작은 글자로 빽빽하게 기재된 독립선언서는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갔을 것이다. 나와 일면식도 없는 그분께서는 왜 보잘것 없는 나에게 그렇게 정성이 가득 담긴 독립선언서를 준 것일까?

 아직도 나는 그때 받은 독립선언서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을 뿐, 사무실이나 집의 벽에 걸어놓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독립선언서이 나에게 너무나 과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나라를 위한 큰일은 커녕, 조그마한 법무법인에서 사건이 복잡하다, 의뢰인이 너무까다롭다고 투덜거리며 변호사의 능력을 수시로 시험당하는 그져 그런 변호사의 길을 살고 있다. 나는 그분이 의도한 대로 그러한 큰 뜻을 펼칠 수 없는 그러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정성이 가득담긴 독립선언서를 받을 자격이 없기에 독립선언서를 떳떳히 내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자 발표일이 다가오면, 난 그때 받아 책장 한구석에 고이 보관해온 독립선언서를 펼쳐본다. 내가 사법시험에 그토록 메달렸던 이유는 무엇인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변호사의 길은 옳은 것인지를  그 짧은 순간이라도 고민해본다.

 이제 사법시험 합격은 큰 영광이 아니다. 그러나 사법시험 합격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5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선배.후배들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보낸다. 고된 노력의 결과가 이제 이루어졌으니 당연히 축하받을만 하다. 그러나 사법시험에 합격한 많은 이들이 나같이 평범한 변호사의 삶을 살지 말고, 보다 의미있고 어려운 이들의 삶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러한 법조인의 삶을 살기를 기원해본다. 그러한 삶을 살지 못하는 평범한 변호사이기에 그런 기원을 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지난주에 변호사들 사이에 자신이 근무하던 법인을 상대로 임신을 이유로 무급 휴직명령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며 휴직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한 여변호사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이 여변호사는  법무법인에 입사하여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 1시 또는 2시일 정도로 바쁘게 근무하였으나, 지난 5월 임신한 사실을 회사에 알리자 회사는 2차례에 걸쳐 업무 실사를 했고 회사는 이후 일방적으로 무급 휴직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물론 소송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변호사들 특히 이러한 현실과 직면해 있는 많은 청년 변호사들이 상당 부분 분노했고, 최근 설립된 청년변호사협회는 해당 법무법인을 형사고발까지 했다.

  왜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아니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공감을 하며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것인 아마도 현재 청년변호사들이 접하고 있는 현실을 이 사건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쿨 제도 및 사법시험 합격자의 증가로 인하여 변호사들은 최근 사이에 급속도로 늘어났다. 반면에 법조시장은 수년째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급속도로 늘어나는 변호사들의 숫자에 비하여 법률시장 정체로 인한 변호사들의 고용상황 및 근무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상당수의 변호사들이 취업하는 법무법인 등은 소규모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서 당연히 보장받아야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변호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으로 인하여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야근을 하는 등 주당 평균근무 시간이 60시간에서 80시간 이상되고, 주말 출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야근수당 등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또한 업무량으로 인하여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연차휴가 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미 사용 연차휴가에 대하여 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임신한 여변호사에게 노골적으로 회사를 그만 둘 것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 퇴직시 퇴직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또한 신입변호사의 급여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변호사가 전문직 고소득 직종이라는 말은 이제 점차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변호사들은 오히려 해고되지 않고 고용되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법률시장의 고용환경은 상당히 악화되고 있다. 주변에 연수원 동기나 후배들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데, 그러한 소식이 들려오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니 현재의 변호사들의고용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법률시장의 여건속에 용기를 내어 개업할 수 있는 청년 변호사는 몇 되지 않는다. 농담으로 개업이나 할까라고 개업한 선배들께 물어보면 모두 당분간 참아라. 지금 개업하면 힘들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개업변호사들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 우려스려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호사 숫자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고, 법률시장은 그에 비하여 확대의 폭이 넓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인데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청년변호사들의 열악한 고용조건과 노동환경으로 인해 최근 청년변호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청년변호사들의 처우개선에 있다. 이에 따라 매번 대한변협회장 선거나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 이러한 청년변호사들의 처우개선은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나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서는  청년 변호사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운 청년변호사 출신 후보가 당선자와 근소 차이로 떨어져 기성 법조인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 만큼 청년변호사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번주 일주일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추석명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바쁜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능한 주말출근은 하지 말자는 의지를 가지고 월요일부터 밤이 늦도록 야근을 했건만, 사건을 화요일에 기록을 만들어서 가지고 와서 목요일에 서면을 제출해달라고 하는 급박한 사건이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장을 쓰면서 '주말출근은 제발'이라는 나의 목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 중 목요일은 최악이었다. 사건이 꼬여버린 다소 부담스러운 사건이 3개나 있었던 마의 목요일이었다. 그중 아침에 잡혀있던 사건은 그나마 어떻게 잘 해결될 기미를 보여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찰나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진행했던 항소심 사건이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통보.......1심에서 승소한 사건이었으나 항소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점점 불리해지더만....결국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잠시동안의 안도의 한숨이 무거운 한숨으로 바뀌었다. 의뢰인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까...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 뒤집어지는 판결은 의뢰인도 당혹스럽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당혹스럽다.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인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의뢰인은 역시나 크게 실망했고. 나는 대략적으로 패소한 원인을 설명하며 일단 판결문이 오고 나서 상고여부를 검토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쓰디쓴 패배의 소식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동부지원으로 향했다. 형사사건 재판이다. 의뢰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신청한 증인은 수차례 출석을 거부하고, 사건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측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기일에도 증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기일이 될 것이다.

 역시 증인을 출석하지 아니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은 증인의 불출석에 풀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 기대가 날아가는 심정일 것이다....그리고 방청석에는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와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을 가르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뢰인을 위해 최후변론을 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십명의 피해자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고함을 쳤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나는 법정경위와 피고인과 함께 온 교도관들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다시 나는 오후 5시에 잡힌 수원재판을 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난 지칠때로 지쳐있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머리속이 복잡....아니 미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이 사건 다소 논리적을 빈약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변호사로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그런 낯뜨거운 사건이랄까^^;;; .......그러나 어찌어찌 그렇게 마치고 나니 5시30분이 넘어선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바람에 춤을 추는 막대인형처럼 이리저리 이끌려 춤을 추다가 바람이 빠져버려 힘없이 사그라지는 느낌이랄까....온몸이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금요일은 오후에 춘천재판이 있었다. 그렇게 부담은 없는 사건이었으나, 의뢰인이 필요한 증거를 준비해오지 않아 공전이 될 사건이기에 재판부에 한기일만 더 잡아달라고 사정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가을하늘은 가을하늘의 청명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목요일의 고단함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상쾌한 공기로 잊혀지는 듯 했다.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던 중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을 보았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하얀소금을 뿌러놓은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왜 문학작품에 그렇게 아름답게 메밀꽃을 묘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과 청명한 가을하늘의 유혹에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췄다. 콧등을 스치우는 상큼한 바람의 내음, 유유히 떠가는 하얀 구름사이로 푸르른 얼굴을 비치우는 하늘...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일어섬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사그라짐이라고 했던가...나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게 유유히 구름을 보내며 나에게 근심을 덜어놓으라 하고, 이름모를 풀꽃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며 나에게 행복하라 하는데,, 나는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듯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일주일의 고단함이, 소박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의 유혹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법원은 휴식중......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2. 8. 7.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법원은 7월말에서 8월 초까지 약 2주간의 휴정기를 갔는다. 이 기간 동안 판사 및 법원 공무원이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맞추어 변호사들도 여름휴가를 떠난다. 드디어 변호사들이 꿈꾸어 오던 법원 휴정기기 시작되었다. 올해는 7월 30일부터 8월 11일 까지 약 2주간의 법원 휴정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7월 30일부터 약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1년동안 오직 이 일주일간의 휴가만을 기대하며 살아 온 것처럼 휴가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설레였다. 휴가 일주일 전부터는 다소 나를 짜증스럽게 만드는 의뢰인이 찾아와도 싱글벙글 웃으며 친절하게 상담을 하였고, 촉박하게 재촉하는 의견서를 작성하기 위해 밤 10시가 넘어서 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어도 즐거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휴가 전주 금요일..... 오후 4시 인천재판을 마치고 나는 바로 집으로 고고씽이다. 나를 괴롭히던 두꺼운 사건 기록들이여 이제는 안녕, 이제 너를 다시 보지 않으리.....나에게는 푸르른 제주도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일찍 끝날줄 알았던 인천재판은 뜻밖에 밀려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고, 퇴근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출발하는 나의 애마는 질주본능을 느끼지 못하고 서울로 기어만 간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휴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후 8시가 다되어서 집으로 도착, 사랑하는 아내와 10개월 된 딸아이가 나를 반긴다. 이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이번 휴가는 큰맘먹고 유럽으로 날아가 런던 올림픽의 영웅들도 응원하고 싶었건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원대한 유럽원정의 꿈은 날아가고 제주도로 향했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푸른 바다의 시원함과, 맛있는 음식들,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겨주었고, 일년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날아만 가는 것 같았다.

  3박 4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이제부터 슬슬 다시 사무실에 나가야 할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지옥같은 현실이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아직 여유는 있다. 쇼파에 늘어져 올림픽 경기를 보고,,,졸리면 자고,,,,배고프면 먹고,,,,,, 이 얼마만에 누리는 여유란 말인다. 영원히 이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달콤했던 일주일간의 휴가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월요일 요란스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기상소리가 왜이렇게 지옥의 종소리 처럼 느껴지는지....결국 사무실에는 지각을 했고...사무실 책상에는 결제 서류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고, 갑작스럽게 다음주 까지 제출하라는 석명준비명령은 왜 이렇게 많이 날라왔는지,,,아무래도 다음주 광복절에는 출근을 해야만 할 것 같구나....

 나의 일주일의 휴가는 그렇게 꿈처럼 사라져 갔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우울함의 그림자가 나를 하루종일 짓눌렀던 검은 월요일이다.

 

 점심식사 전까지만 해도 즐거운 금요일이었다. 다소 부담스러웠던 오전 재판은 새로운 증
거를 추가하여 밤을 새워 쓴 서면 덕분인지 우리측에게 다소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오후에 증인신문이 예정되어 있던 재판은 상대방이 기일변경을 신청해와 한 시름 덜게 되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금요일까지 제출할 의견서의 마무리만 하면 즐거운 주말이 나를 반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의견서를 마무리 짓고 달콤한 커피한잔과 김광석의 애절한 음악을 들으며 오래간만에 감상에 젖어 있는데, 직원이 급작스럽게 들오오더니 내일까지 의견서를 낼 것이 있다며 질의서를 들고 왔다.

내일까지? 그렇다면 오늘 일찍 퇴근하기는 ;;, 그러나 쉬운 의견서일지도 몰라 하며 바라본 질의서, 이런 젠장 기업회생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생소한 분야의 질의서였다.
이런제기랄...어떤 놈이야 나의 소중한 금요을 저녁을 빼앗아 간 질의서를 보낸놈이 라는 욱하는 그 무엇인가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하지만 이성을 찾아야 했다. 적어도 토요일에는 회사에 나와서는 안된다. 나의 소중한 토요일까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질의서를 읽고 또 읽어 사실관계를 정리했다. 그러나 답을 내리가가 정말 힘들었다. 왜냐면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니까...;;

  기업회생 관련 서적을 이제 탐독해야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이것 저것 관련 서적을 뒤지고 정리하며 계속 되었고, 어느정도 답을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니, 벌써 저녁 9시가 넘어갔다. 사무실에는 변호사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적어도 의견서를 던져준 직원은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투덜대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타 마셨다.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커피가 이제는 왜 이렇게 쓰게 느껴질까....

자료를 정리하고 이제 의견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자료를 대충 정리하고, 초안을 짜 놓았으니 금방 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견서를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또 다시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며 해결책을 찾아내고 하며 의견서를 완성하니 시계의 시침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의견서를 메일로 관련 기관에 보내고 긴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안에서 김광석의 마지막 앨범에 실렸단 '부치지 않은 편지'를 볼륨을 크게 하여 틀어놓고 목이터져라 따라 불렀다. 내 소중한 금요일 저녁을  빼앗아간 얄미운 의견서, 김광석의 노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처량하고 슬프게 들리는 것일까? 야근없는 유토피아 같은 직장은 없는 것일까? 이럴때 개업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요즘 어려운 법률시장에 회사에서 안 짤리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숨죽이고 살아야만 할 뿐;;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토요일, 일요일이 보장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변호사가 된 것을 후회할 때...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12. 4. 09: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어느덧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지도 11월이 되어간다. 첫 재판에서의 긴장되었던 순간이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지만 이제 긴장되었던 법원도 제법 익숙하게 다가온다.

낯선 것들과 수시로 계속 되는 야근과 가끔씩 즐겁게 나를 부르는 주말출근, 밤샘근무가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가끔씩 괜히 내가 변호사가 되었구나 하는 후회와 회의감이 들때가 있다.

1. 쓰라린 패배의 경험

  변호사는 결국 소송의 승패로 말한다. 아무리 재판의 과정에서 치밀히 변론하고, 의뢰인에게 친절하였더라도 재판의 결과에서 지고 만다면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면목이 없을 뿐더러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 담당사건이 그래도 어느정도 패배가 예측되는 사건이라면 그 결과의 크게 아픔을 겪지 않겠지만,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나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패배의 결과가 나왔을 때에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슬프다. 마치 프로야구에서 다 이긴 경기를 망쳐놓은 마무리 투수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중요하고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경우 판결 선고기일이 다가오면 올수록 점점 잠을 잘 수도 없고, 때로는 재판에서 어의없이 지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나같은 경우는 얼마전에 재판에서 패소하면 더이상 담담 의뢰인이 우리법무법인에 사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선고기일이 다가오면 올수록 조금만 더 열심히 변론준비할 껄, 사실조회라도 더 해볼껄 그랬나... 아 참고서면에 이걸 좀더 강조해서 썼어야 했는데 등등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다반사였고, 회사에 출근해서도 그 사건 생각에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선고기일에는 마치 사법시험 2차시험 발표를 기다리는 고시생이었던 시절의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나를 짓눌렀다. 다행히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앞으로의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수도 없이 해야 할 것이기에.....아무튼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맛보는 순간 변호사로서의 깊은 회의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2.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변호사의 업무는 많은 편이다. 우리사회의 경우는 보통 저녁 9시까지는 기본으로 일하고 일이 밀려있는 경우는 밤샘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말출근도 많이 해야 한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이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대형펌의 경우는 더 하다. 새벽근무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오전에는 원주재판을 갔다가, 오후에는 천안으로 가서 2시간동안 당사자들과 사건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조정절차를 진행하였으나 조정은 불성립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저녁 7시...그리고 책상에는 결재해야 할 서류와 당장 내일까지 처리해야 할 의견서 2통과 준비서면이...그럴 보는 순간 깊은 한숨과 함께.....내가 왜 변호사를 했을까 하는 깊은 후회가 밀려온다...

3. 의뢰인과의 소통의 어려움

의뢰인과 소통은 변호사로서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의뢰인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해야만 사실관계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보다 재판진행을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의뢰인과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 재판에 있어서 서로 생각하는 관점이 틀리고 의뢰인이 무리하게 법리에서 벗어나는 주장을 하거나, 변호사를 믿지 못하는 경우에는 참 변호사로서 난감한 경우가 있다.

4. 사건을 해결할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사건자체가 어려운 사건인 경우 사건을 해결할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변호사는 고민한다. 상대방의 준비서면은 우리의 약점을 잘도 찾아서 들어오는데, 우리는 이에 대응할 증거도 없고 오직 새로운 법리만을 개발하여야 할 것인데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변호사는 괴롭다. 점심을 먹으로 가서도 항상 사건이 머리속에 빙빙 맴돌고, 잠을 자려고 누워도 사건은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내 머리속을 유유히 유영하며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끔 회사에서 선배 변호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마치 좀비들 처럼 무표정으로 밥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이런 경우는 모두 머리속에 저마다 하나의 사건을 채워놓고 사건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 사건은 변호사를 좀비로 만들어 놓는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의 업무는 생각보다 스트레스도 많고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일이 항상 힘들고 회의감만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건을 노력끝에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 의뢰인들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주면 그 순간은 내가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깊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초보변호사에게 앞으로 어떠한 태풍이 닥쳐 올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내가 정한 가치관에 부합하는 길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것만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할머니의 아픔을 함께하는 변호사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5. 6. 10:04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징검다리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지만, 오후 내내 재판일정이 잡힌 나는 다소 짜증이 났던 하루였다. 간단한 공시송달 사건이지만, 여러개의 사건이 시간을 달리하며 잡혀 있었기에 오후시간 모두 법정에서 소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소송기록을 챙겨 무거운 마음으로 법정으로 향했으나. 머리속에는 여전히 사무실에 쌓여만 있는 복잡한 사건들이 빙빙 돌았다.

 오후 2시 30분 재판이어서 2시 20분 정도에 법정에 도착하니,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어서 그런지 변호사, 소송 당사자들로 붐볐다. 오늘도 재판이 늦게 끝나겠구나 하는 불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2시30분 사건은 3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리고 3시 15분 사건은 3시 40분이 넘어서 끝났다. 다음 사건은 4시 예정이었으나. 재판의 진행 속도로 보아 4시 30분이 넘어서 진행될 것이 분명해보였다.그래서 3시 15분 사건을 마치고 법정을 나와 자판기에서 쓰디쓴 커피한잔을 뽑아 잠깐 동안의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에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와 젊은 여성 한분이 법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 여성은 할머니에게 항상 밝은 웃음을 보이며,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걷기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부축해주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 그 할머니의 딸이나 손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사연으로 법정에 온 것일까? 하는 잠시 동안의 궁금증이 있었지만,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의 궁금증도 사라지고, 커피를 모두 마시고 기지개를 펴고 4시가 거의 다되어 다시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은 여전히 복잡했고, 4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3시 40분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무실에서 가져온 민법관련 서적을 읽고 있었다. 수많은 당사자, 변호사들이 재판을 진행하고 법정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그렇게 더디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4시 30분 경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에 온몸이 꼬이며 내 재판은 언제 진행되나 하며 지루해하고 있을때, 법정의 피고석에 휴식을 취하며 눈여겨 보았던 할머니와  젊은 여성 한분이 나왔다.

재판의 진행과정을 들어보니 할머니의 가족중 한명이 할머니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여 발생한 소송인 듯했다. 할머니를 부축해 피고인 석에 앉은 밝은 표정의 젊은 여성을 보고 재판장은 처음의 나의 생각처럼 할머니의 따님이냐고 물어보았다. 누가 보아도 젊은 여성의 할머니에 대한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딸이나 손자 등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젊은 여성은 법률구조공단 소속의 여성 변호사였다. 그 변호사는 우선 신용카드신청서 등 처분문서에 대해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하였고, 재판장은 다음기일을 잡고 재판은 끝났다.

  그리고 나의 간단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남은 한건을 위해 긴긴시간을 기다렸으나. 채 5분도 안되 마지막 사건의 재판 진행은 끝났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4시 5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서류가방에 피곤에 지쳐, 소송관련 서류를 넣고 법정을 나와 힘없이 걸어갔다. 여전히 황사의 영향으로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그런데 내 앞에 방금전에 보았던 할머니와 법률구조공단 소속 여성 변호사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변호사는 할머니에게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이것저것 재판 진행과정을 다정하게 설명해주었고, 재판의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도 다정다감하게 건냈다. 할머니는 연신 이렇게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표현을 했고, 변호사는 마치 딸처럼 다정하게 자신이 해야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법원에서 나와 아마도 할머니와 반대방향인 정문쪽으로 나와야 하는 듯 했으나, 할머니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에게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할머니를 부축하여 후문쪽으로 사라져갔다.

지루하게 진행되었던 재판에 다소 짜증이 났던 나는, 마치 모녀지간 같았던 할머니와 여성 변호사를 보며 마치 한여름의 짜증나던 무더위 속에 시원한 소낙비를 만난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그 여성 변호사는 진정하게 만족하는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변호사는 나에게 앞으로 나의 변호사의 삶에 대한 과제를 던져 주었다.

2년동안의 사법연수원 생활을 마치며...

좌충우돌연수원일기 2010. 12. 10. 23:2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2년간의 사법연수원 생활도 내년 1월 수료식을 끝으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2년동안의 생활이 무척이나 짧게만 느껴진다.연수원 처음 입소할 때에는 한없이 세상을 다가진 자처럼 우쭐해하며 마치 내가 지구라도 구할 사람처럼 정의감에 불타 법을 통해 세상을 구제할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우수한 인재들고 같이 수업을 받으며 나의 법적지식과 논리가 얼마나 빈약하고 형편없는지에 대해 깨닭고 사회정의는 커녕 좌절감에 허덕이기도 했다. 끝없이 쏟아지는 과제물에 제대로 제대로 소장도 써보지 못하고 답을 베끼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덧 연수원 끝자락에 와서는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나도 모르게 제법 소장이나 준비서면 흉내를 내는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모든 것이 힘겹게 다가오는 순간에 나에게 조그마한 마음의 안식을 찾게 해주었던 일산의 호수공원도 이제는 안녕이다.

  고민은 계속된다. 나의 진로는 변호사이다. 하지만 의뢰인에게 신뢰를 줄 수있는 진정한 능력을 갖춘 변호사가 될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연수원 동료들이 벌써 부터 그리워진다. 이제는 동료들과의 소중했던 기억들은 영원히 추억이 되어 낡은 추억의 앨범처럼 가끔가다 그리워지는 그 것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한마디로 백수이다. 연수원은 한참 취업전쟁이다. 연수원 취업게시판에는 변호사 채용공고가 뜨자마자 많은 연수생들이 응시한다. 나또한 벌써 여러통의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냈다. 먼저 취업하거나 개업한 선배 기수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법률시장이 어렵다고 하고 있다.

  난 아직 모르겠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지금은 백수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뿐이다. 밤늦게 까지 영화, 미드를 보고 아침 늦게 일어나고, 취업게시판에 공고뜨면 자기소개서 보내고, 집근처 산에 올라가고, 그런 일과들이 반복되고 있다.

 또하나 요즘 식물을 기르는 재미에 푹빠져있다. 산세베리아. 산호수, 킹벤자민, 테이블야자, 관음죽, 토피어리, 금전수 요즘 내가 관리하는 식물들이다. 이녀석들에게 물을 주고, 잎파리를 하나 하나 정성스럽게 닦아 내면 그렇게 맘이 편해진다^^. 녹색이 주는 아름다움이 이제 날 편안하게 한다. 자연이 한없이 그리워 지고, 흙냄새가 그립다. 그리고 고향이.....이제 나도 나이를 먹어 가는 것일까...^^

언제까지 백수생활이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가끔은 이 백수생활이 두렵기도 아직은 이 여유로움이 좋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사랑해야지 하면서도 그러지 못한체 증오와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 자신에 대한 증오였다는 것을 깨닭는 순간 모든 것이 평온해진다.연수원 2년동안의 기간은 나에게 법조인은 아마추어가 아니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냉혹한 프로의 세계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동안 아마추어의 낭만적 망상은 잊어 버려야 한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지...

실력이 없는 법조인은 도태될 수 밖에 없고 또 의뢰인에게도 큰 상실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도전하자. 아직은 두려워 할 필요없다.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