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주거공간의 변천사

고시촌이야기 2012. 2. 10. 10: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는 아직도 수많은 고시생들이 각종 시험을 준비하며 거주하고있다. 고시촌하면 의례 생각나는 부분이 고시원일 것이다. 티비 드라마 등에서 고시생은 항상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고시원의 조그마한 방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낡은 추리닝을 입고 책상에 앉아 두꺼운 이른바 육법 전서를 하루 종일 외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제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원은 점점 사라져가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고시생들을 낡고 허름한 고시원에서 거주하지 않고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거주한다. 

  신림동 고시촌이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인 90년대 중반에만 해도 고시촌에 거주하는 고시생들은 대부분은 하숙집이나 고시원에 거주하였다. 고시원의 경우에는 대부분 방은 규모가 아주 작았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은 당연히 공용이었다. 그리고 고시원의 경우 고시원 주인이 고시생을 위한 식당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하숙집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한달에 약 30여만원을 내면 밥과 숙식이 제공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시생들은 항상 공부때문에 체력이 딸리기에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들은 고기 등 고열랑 음식을 고시생들에게 수시로 공급해주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나는 고시 공부를 할 생각도 없었고, 법으로 밥을 벌어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시촌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당시 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때 같이 하숙집에 있었던 형이 갑자기 행시 준비를 하겠다며 신림동 고시촌으로 떠났기 때문에 몇번 그 형이 거주하던 고시원을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 형을 찾아 가면 고시원 주인집 아주머니는 나에게도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었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아직은 인정이 남아 있던 시기이다. 그때는 그렇게 신림동 고시촌에 고시원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시기이다.

  더불어 고시촌의 고시원 생활이 답답하다며, 지방의 풍경이 좋은 절을 찾아가 공부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절에는 의례 고시생 몇명씩이 꼭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의 절로 소풍을 갔는데, 고시생 몇명이 어린 여선생님을 보자, 여선생님에게 그렇게 말을 걸려고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합격생을 배출하기로 유명한 즉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인 유명한 절들은 항상 고시생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고시원의 영광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고시생들은 풍요로운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지 아니하는 고시원을 선호하지 아니하였고 그들만의 공간이 보장되는 이른바 원룸형태의 집들을 원했다. 쾌적한 환경을 선호하는 젊은 고시생들의 유입으로 고시원은 급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고시촌에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의 속속 들어섰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각종 시험정보 최신판례 등의 업데이트와 단절된 절도 고시생들이 더이상 찾지 않게되었다.

  원룸형태의 주거공간은 다 아는 것처럼 하나의 공간에 방, 화장실,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갖추어져 있어 개인공간과 쾌적함을 중요시하는 고시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아주 작고 협소하기 때문에 이른바 '미니원룸'이라고 불리웠다. 삶이 더 여유로운 고시생들은 근처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전세로 얻어 윤택한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고시원은 그렇게 고시촌의 중심적인 주거공간의 위치를 넘겨주고, 신림동 고시촌 산꼭대기로 밀려났다. 그러나 아직도 고시원은 고시생들의 유용한 공간이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오랜기간 고시준비로 경제적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이른바 장수 고시생들에게는 고시원은 아직도 저렴하게 거주하며 공부할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 신림동 고시촌은 이제 서서히 고시생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법시험은 조만간 사라질 전망이고, 행시나 외시도 그 제도의 변경으로 우리가 불렀던 고시생들의 숫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신림동 고시촌의 원룸이나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도 고시생에서 저렴하게 방을 잡기를 원하는 직장인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고시촌의 메카로 자리잡았던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이름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시촌 입성기(고시촌 탈출기 1)

좌충우돌고시촌탈출기 2012. 2. 4.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서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다. 비록 법학을 전공하기는 하였지만 나는 법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학 1학년때 처음 접한 민법총칙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외계어 같은 각종 법률용어, 이론 등은 아 내가 괜히 법학을 전공했구나 하는 충격을 주었고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즉시 군대로 도피를 택했다. 그만큼 법학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강릉에 침투한 무장공비와 열심히 싸우고, 제대를 하고 보니 대한민국은 듣지못했던 외환위기로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었고,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던 직장은 이제 실업자를 양산하며 수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시골에서 힘겹게 자식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난 안정적인 무엇인가를 해야했고, 그렇게 택한 것이 결국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법시험 준비였다.

  그러나 쉽게 고시공부를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난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거래에서 친구들과 "대한민국"을 외친 후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림2동 산꼭대기에 위치한 조용한 원룸에 정착했다. 그때가 아마도 2002년 가을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 혼자 조용히 입성한 고시촌은 나에게 어색했고 쓸쓸했다. 생전 처음 고시식당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들과 섞여 혼자 밥을 먹는 것이 가장 어색했고, 독서실에서 하루 종일 법서를 바라보는 것도 민법총칙의 충격에 군대로 도피했던 나에게는 신기하리 만큼 어색했다. 독서실 책상에 조용히 공부해달라며 음료수 하나와 메모지를 받은 것도 어색했다. 그러나 가장 어색한 것은 하루종일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무인도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때였다.


쓸쓸함, 독서실에서 힘겨운 공부를 마치고 달빛을 조명삼아 산꼭대기 원룸을 꾸역꾸역 올라 갈때는 쓸쓸함을 넘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처량함이 밀려들어 왔다. 고시촌에서의 몇달의 생활을 통하여 수시로 받는 조용히 해달라는 메모지, 고시식당에서의 어색한 식사 등 등이 익숙해졌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은 여전히 어색한 친구였다.

  더욱 나를 당황시키는 것은 역시 법학이라는 과목에서 오는 어색함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니 모든 것들이 구멍이었다. 민법은 여전히 외계어처럼 들려오고, 형법총칙의 이론들은 내가 법을 공부하는 것인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난해했다.

 그러나 신림동 고시촌에 꿈을 품고 입성한 이상, 즉 사나이가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썰어야했다. 어떻게 해서든 1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밤공부를 마치고 원룸에 돌아와 창문을 열면 신림동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 이곳을 내가 벗어 날 수 있을지, 아니면 패배자가 되어 쓸쓸히 퇴장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난 과연 신림동 고시촌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은 시작되었다.
 

하이킥 고영욱과 쓸쓸한 젊은날의 오버랩

고시촌이야기 2011. 12. 13.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간만에 일찍 퇴근하여 티비를 보았다. 티비에는 '하이킥3'가 하고 있었다. 과거 하이킥 1,2는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있지만, 최근에 방영한 하이킥3는 바쁜 업무탓인지, 재미가 없어서 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오래간만에 본 하이킥3에서는 고시생으로 출연하는 고영욱의 슬픈 이별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고시생 고영욱,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기에 사랑하는 이 앞에서도 당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영욱은 절에 들어가기전 사랑하는 박하선을 위해 아르바트를 해서 번 돈으로 이것저것 준비하며 최선을 다하지만 박하선은 불편해한다. 그리고 자신이 박하선이 자신이 없는 자리에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생각하고, 결국 박하선을 떠난다.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지만 참는거 하는 잘하는데.....라며 쓸쓸히 떠나는 고영욱을 바랍며 내 젊은날의 기억이 오버랩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지난날의 나의 모습이 고영욱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적부터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었던 나....그나마 공부는 좀 하는 편이었지만, 그것도 남들에게 자랑할 정도의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세상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었기에 나는 고시생의 모습으로 신림동에서 수년간을 방황했다.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눈을 낮추어라, 평생을 고시생으로만 살거냐며 비아냥 거리지만, 젊은이들이 살아가기에 세상은 무정하기만 하다. 대학에 들어가면 행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대학등록금 걱정에 젊은이들은 캠퍼스의 낭만을 누려보지도 못한 채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고, 대학을 졸업해도 그들을 만족시킬 일자리는 없어, 수년간을 고시촌이나, 독서실을 배회하게 하는 고등룸펜으로 만들어 버린다.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세상은 그렇게 잔혹하게 다가 오는 것이다.

 신림동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가면 갈 수록 세상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며, 점점 작아지는 내 모습을 쓸쓸히 나는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고 더욱 깊숙히 신림동 고시촌에 빠져들어야만 했던...슬픈 기억.....

점점 사라지는 희망과 자신감 속에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을 마음속으로 보내고 이별해야 했던 쓰디쓴 젊은날의 기억이 자신감 없는 고시생 고영욱과 오버랩되며 한때 잊고 있었던 신림동 고시촌의 차가운 늦 가을바람아래 쓸쓸히 불합격 통보를 받고 흐느껴 울던 나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찌어찌하여 신림동 고시촌의 차가운 터널을 탈출할 수는 있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삶은 가혹하고 힘겹게 다가온다. 해소될 것 같지 않은 빈부의 격차속에 개천의 용은 실종된지 오래고, 많은 젊은이들의 허울뿐인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88만원인생이라는 비참한 소리를 들으며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특히 신림동 고시촌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몇몇 선배들과 후배들을 바라볼때 나의 쓰라린 가슴은 더욱 아파온다. 오래간만에 본 티비프로그램이 내 가슴속에 깊이 간직한 트라우마를 건드려 놓았다. 


  우리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자신감 없고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고영욱 같은 슬픈 아픔을 가진 젊은이들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고영욱처럼...그렇게 절로, 고시촌으로,,도서관으로....비정규직으로...그렇게 떠나야만 하는 것인가...

웃자고 본 '하이킥3'가 이렇게 슬프게 다가올 줄이야.. 내일 재판을 위해 늦은 밤까지 기록을 보고 증인신문 사항을 준비해야 할 나는,,,오늘 쓸쓸히 떠나는 고영욱의 모습과 방황하던 내 젊은날의 모습의 오버랩에....오랫동안 잠을 못이룰 듯 하다. ..

고시생 떠나는 고시촌

고시촌이야기 2011. 12. 6.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 수많은 고시생들이 모여 청운의 꿈을 준비하며 치열하게 공부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이제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이름은 추억의 옛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고시촌을 떠난후 오래간만에 신림동에 찾아갔다. 아니 신림동이라는 이름은 사라지고 이제 대학동 등으로 불리운다.

친구녀석이 아직도 고시촌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에, 신림동 근처에 갈일이 있어서 겸사 겸사 친구녀석도 볼겸해 고시촌을 찾았다. 여전히 고시촌에는 각종 고시학원이 있고, 두꺼운 법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몇년 전 내가 있었을 때의 분위기와 무엇인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고시학원과 서점은 존재하지만 당시의 치열했던 그 무엇인가가 빠진느낌이랄까...

신림동 고시촌은 이제 변하고 있다. 로스쿨의 도입으로 인해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이들은 이미 많이 사법시험을 포기하고 고시촌을 빠져나간 상태이고, 행시나 외시를 준비하던 이들도 고시제도의 변경으로 인해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고시생들로 꽉차 있던 원룸이나 고시원은 이제 공실이 많거나 싼 값의 거주지를 원하는 직장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고시생들이 줄어들자 각종 고시서적을 파는 서점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고, 고시생들의 식사를 싼값에 해결해주던 고시식당들은 고시생의 감소로 인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녀석은 여전히 변함없이 두꺼운 법서와 싸움을 하고 있지만, 내 주의의 많은 선.후배들은 사라지는 고시제도로 인해 일부는 로스쿨에 들어가고, 일부는 직장을 잡아 취업하고, 일부는 고향에 내려가 장사를 하며, 그렇게 고시촌에서 사라져갔다.



오랫동안 공부하는 친구녀석이 안쓰러워 이제 너도 로스쿨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했지만, 녀석은 그 많은 등록금을 부담함 엄두가 나지 않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다고 한다. 하기야 시골에서 조그마한 땅을 경작하며 사시는 부모님이나, 소방공무원을 하는 녀석의 동생이 엄청난 등록금을 부담하는 녀석의 로스쿨 학비를 마련해주기는 무리일 것이다. 지금도 근근히 과외, 독서실 총무 등을 하며 공부비용을 마련하고 있는 녀석에게 로스쿨은 가까이 할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것일지 모른다.

내가 수년동안 치열하게 공부했던 신림동 고시촌은 이제 서서히 고시생들이 떠나고 그 자리에 술집, 직장인들이 들어찬 그런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수많은 청춘의 꿈, 아픔, 합격의 영광을 함께 했던 고시촌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추억의 낡은 앨범이 되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독서실에서 오전 공부를 마치고 친구녀석과 점심을 함께 했던 고시식당은  사라져 호프집이 되어버렸고, 한순간 밀려오는 고시생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피로를 달래주던 놀이터의 낡은 자판기의 인스턴트 커피는 새롭게 이주해온 이들의 고달픔 삶을 달래준다.

 

 나에게 수많은 아픔과 좌절을 안겨 주었던 고시촌은 항상 나의 기억속에 흑백사진의 잿빛 슬픔으로 기억될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찾아온 고시촌은 나에게 과거 치열하게 살았던 나를 다시 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무엇일까 쇠락해가는 간이역의 아쉬움을 동시에 주었다.


고시촌의 무늬만 고시생들

고시촌이야기 2011. 1. 11. 07:1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는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수많은 고시생들이 밤을 지새우며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한다.대다수의 고시생들은 독서실이나 고시원등에서 다른분야에 관심을 끊고 공부에 매진한다.

  그러나 신림동 고시촌에는 대다수의 고시생들과 다르게 그들의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하는 이른바 무늬만 고시생인 이들도 다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에게 소중한 용돈을 받아서 유흥 등에 탕진하는 고시생들이 많이 있다.

 과거 내가 공부하기 위해 자리잡은 신림동 원룸에 몇달이 지난 후 옆방에 한 고시생이 들어왔다. 그 고시생은 처음 한달 정도는 열심히 공부를 하는 듯 하더니 그 후로 본색을 들어냈다. 매일 밤 친구들을 불러와 술파티를 벌였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늦은 밤 원룸에 들어오면 옆 고시생방은 술파티로 항상 시끄러웠다. 새벽까지 계속되는 시끌벅적한 소리로 잠을 자는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그렇게 새벽까지 술파티를 벌이니 낮에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여자친구가 있는지 여자친구를 원룸에 데리고 와 또 수다를 떨었다. 그런 무늬만 고시생에게 한달에 한번씩 어머니가 찾아와 그 고시생 방을 청소하고 빨래거리를 가지고 가 빨아주었다. 생각같아서는 그 무늬만 고시생인 친구의 어머니에게 그 고시생의 평소 행태를 하나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무늬만 고시생의 부모님은 그 친구가 다른 고시생과 마찬가지로 매일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소중한 자식이 안쓰럽다고 생각을 했을 것인데, 그 무늬만 고시생은 공부는 뒷전이고 소중한 젊은 시절을 유흥에 낭비하고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이러한 무늬만 고시생들이 많다. 많은 고시생들이 처음에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고시촌에 들어오지만 막상 공부를 시작하니 막대한 공부분량앞에 질려버려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공부는 부업이고 유흥이 본업이 되어 버린 이들이 많다. 

 또 고시촌에 각종 술집, 바, 등의 유흥시설이 많다보니 혈기왕성한 젊은 고시생들이 부모님의 통제에서 벗어나 쉽게 그러한 유흥시설에 유혹되어 초심을 잃고 자유분방한 삶을 즐기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소중한 공부비용을 유흥비로 몇년이나 낭비하고 결국 고시촌을 떠나는 것이다.

다른 한편 오랫동안 국가고시에 도전하였지만, 번번히 실패의 쓴잔을 맛본 이른바 장수생들은 더이상 갈곳이 없어 신림동 고시촌에 눌러 앉아 버리는 경우도 많다. 이미 나이는 들대로 들어 일반 기업에 취업할 수없어 신림동을 벗아나고 싶어도 벗아날 수 없게 되어버린다. 그래도 많은 장수생들은 그들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전념하지만, 또 다른 장수생들은 이미 공부의 뜻을 버렸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신림동에 고시생이라는 타이틀만 걸어두고 머무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본가에서 생활비가 올라오기 힘들어 가능한 신림동 산꼭대기에 있는 허름한 고시원에 머무르며 고시원이나 독서실 총무, 학원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생계비를 마련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아르바이트 등으로 공부시간이 부족하여 공부는 하루에 채 몇시간을 하지 못하니 합격의 길은 점점 더 멀어져만 간다. 고시생이라는 명칭은 그들에게 하나의 직업이 되어 버린 것이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이름만 고시생인 이들이 상당히 많다. 이러한 무늬만 고시생들은 오늘도 그들의 소중한 젊은 시절을 아무런 의미없이 낭비하며 보낸다. 그러한 이들은 몇년을 낭비한 후에야 그들의 소중한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는다.

지금 국가고시를 위해 신림동 고시촌 입성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다시 한번 신중히 생각할 것을 권하고 싶다.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와 합격의 영광을 차지하여 웃으며 떠나는 이들은 10명 중 한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이들은 실패의 쓴 경험을 안고 떠난다. 그만큼 신림동 고시촌에 들어오기로 결정을 했다면 그 누구보다 성실히, 열정적으로 그들의 꿈을 위해 공부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만큼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월드컵은 남자 고시생들의 무덤

고시촌이야기 2010. 12. 17. 07:46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10월 27일 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많은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특히 로스쿨 도입으로 인해 사법시험 합격자 인원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점점 응시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초조함이 더해갔을 것이다.

 이번 시험 합격자의 특성은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처음으로 40%를 넘겼다는 것이다. 행정고시에 이어 여풍이 지속되었다. 이번 행정고시에 있어서도 여성합격자가 총 143명으로 44.7%를 차지하며 여성합격자가 강세를 보였는데 사법시험에 있어서도 전체 합격자 800명 중 여성합격자가 337명으로 42.1%를 차지하였다. 


 여성합격자가 40%를 넘은 것은 이번시험이 처음이었다. 여성합격자가 이렇게 각종 고시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분석이 다수를 차지하나 일각에서는 2010년에는 월드컵 등 스포츠 행사가 많아 남자고시생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전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빠졌던 2002년에 여성합격자 비율은 처음으로 20%를 넘어 23.9%를 차지하였으나 다음해에는 21%로 다소 하락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 월드컵에서는 여성합격자가 37.5%를 차지하며 증가하다가 월드컵 다음해인 2007년에는 하락하였다.그리고 2010년 월드컵에 다시 상승하여 처음으로 40%를 돌파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월드컵 저주가 다시 실현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월드컵 저주란 월드컵, 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행사가 있는 해에는 유독 남자고시생의 합격률이 저조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남자고시생들의 특성상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고시생들이 여전히 박지성등이 활약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엄리그가 있는 날에는 만화방이나. 비디오방 등에 삼삼오오 모여 밤을 세워 티비를 보는 경우가 흔하다.

 단순한 클럽경기에도 이렇게 열광하는데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월드컵경기에는 얼마나 열광하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광인 후배인 B군은 2006년도에 사법시험 2차시험을 치루었다. 1차 시험에만 3번이나 떨어지고 2005년도에 처음으로 1차시험에 붙고 후배는 최선을 다해 2차시험을 준비했다. 주말에도 잠을 제대로 못자며 그야말로 눈만 뜨면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전의 2006년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배는 연대에 시험장이 걸려 일찍 시험장 근처로 숙소를 옮겨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시험을 2주정도 남겨놓고 연대근처의 하숙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민의 축제 2006년 월드컵이 시작된 것이다. 후배녀석은 평소에도 야구와 축구에 열광하는 녀석이다. 특히 축구는 스페인의 프리메가리그 부터 잉글랜드 리그까지 유럽의 빅리그 소속 유명선수들의 프로필을 모두 외울정도로 광적인 팬이다.

 2006년 6월 13일 경에 약 사법시험 2차시험을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대한민국과 토고와의 첫게임이 펼쳐졌다. 후배녀석은 첫경기이고 아직 시험이 일주일남았고, 2시간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컨디션 조절에도 좋다는 생각으로 하숙집의 하숙생들과 같이 거실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대한민국을 목이 쉬어라 외치며 열렬히 응원했다.후배녀석의 응원에 힘입은 것인지 대한민국은 토고를 이기며 원정에서 첫승리를 따냈다.

시험을 일주일이나 남겨두었으니 뭐 이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사단은 6월19일 정도(?)에 치루어진 대한민국과 프랑스전에 이루어졌다. 당시 2차시험이 6월 20에 시작되기 때문에 스포츠광인 후배녀석도 더이상은 안돼겠다는 생각으로 연대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정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 처량하게 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하숙집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 왔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아니고 새벽에 열리는 프랑스전때문이었다.

내가 보지 않아도 대한민국이 잘해낼 수 있을까? 최소한 비겨야 하는데, 박지성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잠깐 잠이 든 후배녀석은 와 하는 함성소리에 잠이 깨어버렸다. 하숙집 거실에서 프랑스전 응원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후배는 잠에서 깨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실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열렬히 학숙생들과 어울려 응원했다. 녀석의 혼을 다한 응원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최강 프랑스와 비기는 기적을 연출했다. 녀석은 너무 흥에 겨워 잠에 들지 못하고 하숙생들과 수다를 떨다 오전 10시경에 잠이 들고 그리고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찌는 오후 늦게야 일어났다.

 다음날이 바로 2차시험 시작인데, 후배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언제 두꺼운 교과서 2권을 봐야 할지 앞이 막막하고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2차시험 4일 내내 허탈함에 사로잡혀 시험을 치지 못했고 결국 그해 2차시험에 헌법 과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후배녀석은 다행히 다음해 3시로 2차시험에 붙어 지금은 대형로펌의 유능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아무튼 가끔 만나는 후배녀석은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무슨 무용담처럼 이야기 한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시험을 망치고도 2차시험이 끝나는 날 열렸던 마지막 경기 스위스전을 신림동 고시촌의 만화방에서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고시생들중에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월드컵은 사법시험 2차시험이 치루어지는 6월달에 개최되어 시험일정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스포츠에 열광하는 남자고시생들을 힘들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여러가지 것들이 겹쳐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남자고시생의 합격률이 저조하다는 월드컵의 저주라는 말이 생긴 듯 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다 핑계일 수도 있다. 월드컵이 열리던 그렇지 않던 여성 합격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사법시험2차준비에 대한 간단한 팁

고시촌이야기 2010. 4. 29. 02:4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이 블로그가 주로 고시생들 이야기 사법시험이야기등을 다루다 보니 가끔씩 공부방법을 메일등을 통해 문의하는 분들이 꽤 있다. 하지만 사법시험1차시험은 몇번 합격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느정도 도움을 줄수 있을지 모르지만,2차시험은 여러번 실패끝에 간신히 합격한 입장으로서 쉽게 조언을 해줄수가 없어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의해오시는 분들을 위해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간단한 팁을 적어볼까한다. 하지만 대부분 이러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왔을것이고 공부하는 분들이라면 다알고 있는 것이다.결국 가장 중요한것은 실천이다.

1.글씨는 중요하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분들중에는 의외로 악필이 많다. 나또한 대표적인 악필이다. 그러나 사법시험2차시험은 안타깝게도 논술형 시험이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고 이쁜글씨가 채점위원눈에 들어오는 것이 사실다.

 워낙 실력이 출중하면 악필이어도 큰상관이 없다. 그러나 점수가 컷라인에 걸려있는 사람에게는 글씨도 상당히 중요하다.단 몇점차이에서 당락이 갈리기 때문이다. 난 아쉽게 단 총점2.3점차이라 떨어진경우가 2번정도 있었다.그럴때마다 선배들이 하는 말이 "너는 글씨만 조금만 잘썼으면 합격하는건데...니글씨는 알아볼수가 없다...:;"라는 이야기 였다.

 마지막 시험에서 그나마 합격했을때는 대부분의 중요논점을 다썼기 때문에 그나마 합격할수 있었던거 같다.악필은 분들은 그나마 알아볼수는 있을정도로 필체를 교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것은 연수원시험에서도 반복되는 이야기다.어쩔수 없는 진실....


2.시험초반 10분에 당락이 결정된다.

  2차시험은 시험초반 10분에 당락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즉 문제를 받고 논점을 잡고 초안지를 만들때 이미 당락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말은 조금 과장된측면이 있지만 어느정도 사실이다. 그만큼 논술형시험이다 보니 논점잡기가 중요하다.

 제대로된 논점만 잡으면 내용이 다소 부실해도 어느정도 합격컷라인근처의 점수가 나온다.그러나 아무리 내용을 많이 써도 논점에서 벗어나 허튼 내용을 쓰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험본직후 합격여부를 판가름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시중에 유통되는 모범답안을 구해서 그 주요논점과 일치하는지를 판단하는것이다. 어느정도 일치한다면 합격을 기대해도 좋다.

  그만큼 논점잡기가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여 허둥대지 말고 문제를 계속 반복하여 읽으면서 중요한 논점을 잡는 훈련을 계속해야 한다.잊지 말자 논점잡기...!!

3.학설은 간단히...
 
  2차시험답안지가 바뀌면서 쓸수 있는 양이 많이 줄었다.또한 시간도 많이 부족하다. 그런상황에서 학설의 논거를 많이 끄집어 낼필요가 없다.학설의 논점은 간단히 학설당 하나정도만 쓰면 된다. 솔직히 학설에 점수비중은 큰편이 아니다. 아시다시피 점수비중은 판례와 사안의 검토에 집중된다.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답안을 쓰다보면 학설은 장황하거 판례와 사안의 해결은 대충쓰는 용두사미식의 답안이 되기 쉬운데,그러면 좋은 점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초시볼때 형법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온적이 있어서 당황한적이 있는데 초시이다보니 아무런 부담없이 판례를 가능한 많이 쓰고 그다음에는 사안의 검토부분을 반페이지 창의적인생각??;;을 보태어 가능한 자세하게 많이 썼던 적이 있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게 점수가 58점이나 나와서 놀란적이 있다.

 학설은 간단히 쓰고 판례와 사안의 검토를 잘쓰자.

4.판례의 중요문구는 암기하자.

 판례는 득점포인트다.중요문구를 답안에 그대로 현출하는 것은 그만큼 포인트를 더딸수 있는것이다. 아사다마오가 트리플악설에만 전념하다 망했지만 김연아는 각 득점포인트를 파악하여 그대로 실현해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우리에게 중요한 득점포인트는 판례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례를 암기하기 어렵다고 대충쓰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수록 합격확률은 떨어진다. 다소 힘들더라도 두문자를 따던,뭘하던,판례를 외우고 또외우자.방법이 없다.

5.사안의 검토는 가능한 자세히..

계속반복되는 말이지만 사안의 검토부분도 정말 중요한 득점포인트다.우리가 사례문제를 푸는 목적은 사안을 해결하기 위함인데.이부분을 대충쓰게 되면 채점위원에게 아주 안좋은 인상을 주게된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다보면 이부분을 대충쓰기가 쉽다. 그러나 가능한 시간안배을 해서 자세히 써야 한다. 그리고 각 사안의 쟁점을 답안에 제대로 현출시켜야 한다 법조문을 활용하던지 해서 법률용어를 사안마다 현출시켜주고.구체적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하고 두리뭉실넘어가는 것도 안좋은 방법이다. 가능한 자세히 쓰자...!!

6.민소법에서 고득점하자??

꼭 민소법에서 고득점하자는 말은 아니고 자신만이 잘할수 있는 전략과목??을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7과목을 시험보다 보면 분명 점수가 과락근처에 몰리거나 하는 망한 과목이 한두과목 나오게 된다. 그러면 어느정도 반드시 고득점하는 한두과목이 나와야 커버가 가능하다. 따라서 고득점할수 있는 과목을 만들어 놓는 것이 좋다.

 나같은 경우는 형법과 민소법은 항상 고득점이 나왔다. 형법은 평소에 좋아하는 과목이라 그랬던거 같다. 그러나 민소법은 그렇게 좋아하는 과목도 아니고 어려운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수험생이 어렵게 다가오기 때문에 교수님들도 시험을 그렇게 어렵게 내지 않는듯하고 점수도 대체로 잘주는 것 같다.

 나는 민소법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에서는 교과서를 안보고 이창한 사례집만을 반복해서 봤는데 시험에 대비하는데는 큰 무리가 없었던거 같다. 교과서가 피상적으로 다가 온다면 시중에 유통되는 사례집을 보는것도 좋은듯하다. 어차피 민소는 사례위주로 나오기 때문에 더 효과적일수도 있다.

7.좌절하지 말자

  2차시험은 1차시험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해야할 분량이 많다. 특히 기본삼법이외에 처음접해보는 후사법까지 공부해야 하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후사법의 경우 예비순환까지 합해봐야 기껏 교과서를 정독할수 있는 시간은 3회정도에 부족하다.
그러한 상태로 난해한 2차시험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결국 방대한 분량앞에 시험이 다가올수록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한다.그러나 나만 힘든것이 아니다. 시험보기전2달.3달전에는 누구나 다 힘들다. 그것을 이겨내는 자만이 좋은 결실을 맺을수 있을것이다.

시험보기 2달전이 되면 방대한 분량앞에 모든이들이 패닉상태가 된다. 그러나 이럴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다소 힘들고 고되더라도 묵묵히 자기 갈길을 가야만 한다.

그리고 이제 처음1차시험에 합격한분들은 마치 최종합격한것처럼 자만에 빠지기 쉽다.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이제 겨우 1차시험에 합격한것이 불과하다는 것을.....자만에 빠져 우쭐거리다가는 어느덧 30대가 훌쩍 넘어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장수생이 되어 있을것이다. 부디 최선을 다해 훌륭한 법조인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합격하여서는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법조인이 되길....!!






 

2009년을 보내며......

고시촌이야기 2010. 1. 1. 01:0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2009년도 드디어 끝났다.거역할수 없는 시간의 흐름속에 결국 한해가 흘러가 버렸다.2009년 생각해보면 나에게는 많은 변화들이 있었던 시기이다. 운이 좋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연수원이라는 곳에서 많은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고.심도 깊은 법학공부를 다시하고.또 미래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던 시기인것 같다.

 다른 한편으로 나이를 한살 더먹는것에 대한 서글픔도 든다. 또다시 새로움을 시작한다는것 그것은 항상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한다. 새로운 한해에는 과연 나에게 어떠한 것들이 펼쳐질지 알수 없기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두려움만으로 머뭇거릴수는 없다.두려움과 용기는 한끝차이이다.먼저 앞을향해 나아갈때 인생의 블루오션은 펼쳐진다.


지금 신림동에서 사법시험이나 행정고시등을 준비하는 이들은 새해기분을 느낄여유도 없을것이다.바로 1차시험이 2달도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험이 다가올수록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그러인한 육체적 피로는 점점 깊어만 갈것이다. 더욱이 사법시험의 경우는 내년1차인원을 대폭 감축하여 뽑기 때문에 그 스트레스는 더욱 더 심하고 경쟁은 치열할것이다.

그들의 고통을 알기에 지금 신림동에서 두꺼운 각종 법서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후배.선배.동기들을 생각하면 가슴한곳이 아려온다.겪어본 사람만이 그들의 심정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겨내야 한다. 지금쯤 두려움과 막연한 공포에 포기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같은 심정이다.포기하고 싶고 쉬고 싶고.이쯤에서 잠들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고비를 조금만 견뎌내면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인생의 꽃을 피울수 있을것이다.

 신림동에서 청춘을 불사르며  두꺼운 법서와 시름하는 그대들이여..조금만 더 참자.그리고 도전하자.그러면 그대들이 이루고자 하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것이다.그리고 뜨거운 젊음의 피를 그대들의 꿈을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며 책상에서 열정을 바쳐 공부하는 그대들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바친다.
1.반환점을 돌아선 2차시험

6월 24일 시험을 끝으로 사법시험2차시험은 반환점을 돌아섰다.그러나 많은 고시생들이 이제는 체력적 한계에 부디치는 시점이기도 하다.또 일부고시생들은 첫째날.둘째날에 큰논점을 놓치는등 실수를 했다는 것에 크게 좌절해 시험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사법시험 2차시험은 문제지를 받고 10분안에 합격여부가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그문제의 큰 논점을 찾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문제의 논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출제위원이 원하는 논점이 아닌 엉뚱한 논점으로 답안을 작성하게 되면 고시생들 표현대로 '출제위원이 답안지를 던져 버린다' 결국 순간의 논점 미스가 그해 시험의 당락여부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지친 몸을 이끌고 정신력으로 공부하는 고시생들

이틀간의 시험으로 이미 고시생들의 체력은 말그대로 기진맥진 상태이다. 우선 그전날 제대로 잠을 못자고 또 하루에 4시간의 시험에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아무리 체력이 좋은 고시생이라도 체력이 바닥날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을 쉴수가 없다. 아직도 이틀에 걸쳐 3과목의 시험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고시생들은 간단히 저녁을 먹고 쉴틈도 없이 신림동의 독서실이나 고시반에서 다시 두꺼운 법서를 바라본다.

6월25일의 시험과목은 형법과 형사소송법이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다른과목에 비해 양이 적은 편이어서 그래도 부담이 적은 과목이다. 나같은 경우는 특히 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가장 좋아했기 때문에 특히 부담이 적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략과목으로 삼았던 과목들이기 때문에 여기서 어느정도 고득점이 나와주지 않으면 힘들수 있다는 생각으로 어느정도의 중압감도 있었던것도 사실이다.

형사소송법책을 펴놓고 잠깐 나도 모르게 잠이 든사이 어릴적 고향에서 동네친구녀석들이랑 아무런 생각없이 들판을 뛰어놀던 꿈을 꾸었다.그녀석들과의 아무런 세상사에 대한 걱정없이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던 시절이 그리웠었나보다.

꿈속에서 그렇게 행복한 어릴적 시절에 빠져 있던 순간 갑자기 '퍽'하는 책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놀래 눈을 떴다.잠깐동안의 단잠이 너무 달콤했던지 책에는 질질 흘러내린 침이 가득했다.;;

몽롱한 정신을 깨우려 자판기에서 커피한잔을 뽑아 마신후 다시 형사소송법을 보았다. 나름대로 좋아하는 과목이라 그런지 둘째날시험준비와는 다르게 큰 중압감등이 없이 책이 잘넘어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1시경이 넘어가자 대충 형사소송법책을 다볼수 있었다. 잠시 도서관 밖으로 나와 다시 커피한잔을 마신후 형법책을 폈다.커피를 마셨어도 11시가 넘어가자 피곤함이 몰려왔다.하지만 그 피곤함과 졸림을 참아내야만 했다. 책상에 앉아 기지개를 펴고 졸린 눈을 억지로 비벼가며 교과서의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갔다.

 형법은 가장 자신있는 과목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큰 긴장감 없이 평소대로만 시험을 보면 된다는 위안을 하며 중요쟁점만 보았다.그리고 어느덧 시계는 새벽 1시를 넘어갔고 형법의 중요쟁점도 마무리 되어갔다.

 이제 더이상의 공부는 의미없고 내일시험 컨디션만 나쁘게한다는 핑계로 책을 정리하고 나의 베이스캠프로 향했다.새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무덥고 습한 날씨는 불쾌했다.


3.체력적으로는 힘들었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던 3일째 시험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바로 누워버렸고 피곤함때문인지 뒤척임없이 바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그리고 잠에 빠져든지 5분도 안된거 같은데 요란한 자명종이 울리면서 날 억지로 깨웠다.세상 그 어느 소음보다도 듣기 싫고 이제 또 고생하러 가야지 하며 알려주는 저 자명종소리...지금생각해도 악몽이다.

 또 억지로 샤워를 하며 잠을 쫒아가며 본능처럼 중앙대 시험장으로 향했다.시험장 풍경은 여전하다. 각종 택시.수험생을 실어 나르는 관광버스가 뒤섞여 혼잡을 이루었다.

벌써 3일째 잠을 제대로 못자고 시험을 치루는 이들의 얼굴은 '나 지칠때로 지쳤다...'하는 표정들이었다. 고사장은 지친몸을 이겨내지 못하는듯 깊은 잠에 빠진 이들도 있었고.초코렛을 씹으며 피곤한 몸을 조금이나마 회복시키려는 이들도 있었다.


 또다시 감독관이 들어오고 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시험은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형법이 그리고 오후에는 형사소송법이 치루워졌다. 시험은 그다지 어렵게 출제되지 않았다.형법에서 부작위범.횡령죄의 기수시기등이 논란이 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어려운 수준의 문제는 아니었기에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어렵지 않게 쓸수 있는 문제들이었다.

형사소송법도 최근에 개정된 검사작성의 영상녹화물이 증거능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등이 출제되었지만 최근개정된 법률에 대한 묻는 문제가 나올것이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측이 되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나또한 가장좋아하는 과목들이기도 하고.개정법등을 나름대비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자신감 있게 써나갔다. 오전2시간 오후2시간의 시험을 마치고 드디어 3일째 시험도 끝났다.

이제 하루만 남았다는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하루만 더 고생하면 끝이다 하는 안도감이랄까....그런 느낌이었다.


4.햄버거 두개로 때운 저녁과 함께 마지막 질주를

 형사소송법 시험을 마치고 난 중앙대 식당에서 햄버거 두개를 사들고 바로 베이스캠프로 향했다.마지막 민법정리는 기분전환을 위해 도서관이 아닌 베이스캠프에서 할작정이었다. 베이스 캠프에 도착해 바로 샤워후 햄버거 하나를 꺼내 물며 책상에 앉아 민법책을 보았다. 햄버거는 벌써 식어 버렸고 입맛도 없어서 마치 생고무를 씹는듯한 느낌이었지만 억지로 씹어 먹었다.

 솔직히 민법은 자신없는 과목이다. 1차시험때에는 그래도 나름 점수가 나온과목이었지만 2차시험은 별인연이 없는 과목이다.초시때 재시때에는 과락. 삼시.사시때에는 저공비행을 선물하며 4번에 걸친 2차시험 불합격이라는 불명예의 큰원인을 제공했던 질긴 악연이 있는 과목이었다.

 민법과의 질긴 악연을 여기서 끝내고 싶었지만 그게 내맘대로 되는 일은 아니다.아무튼 민법은 박승수강사의 케이스집을 간단히 정리해서 보기로 했다.어차피 민법은 케이스만 나오니까 하면서 위안을 하며 케이스집만 보기로 하는 모험을 단행했다.시험보기전날에 보기로 한 체크한 주요케이스의 내용과 판례를 중심으로 읽어나갔다.

 시간은 10시를 넘어가고 있었고.어느덧 출출함이 찾아와 다시 햄버거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역시 맛은 영....없는 생고무같은 느낌.....이제 햄버거는 완전히 식어버려서 정말 맛은 제로였고 팍팍하기만 했다..

 속은 계속 안좋았지만 그래도 책은 보아야했다.뜨거운 물을 끓여서 마시며 속을 달래며 책을 보았다.시간은 어느덧 새벽2시가 되어갔고 체크한 민법의 주요케이스도 다볼수 있었다.

 
5.어김없이 날 골탕먹인 민법시험

 마지막 시험이다.끝나지 않을것 같은 4일간의 2차시험도 이제 민법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민법시험은 150점 만점으로 총 3시간에 걸쳐 치루어진다.민법의 중요성을 감안해 몇년전 부터 점수비중이 높아져서 민법에서 실수하면 정말 합격하기 어려운 중요한 과목이다.반면에 이전과목에서 실수했어도 민법에서 고득점하면 충분히 역전할수 있는 과목이기도 하다.

 이제 한과목만을 남겨놓고 있는 고시생들의 표정은 결연했다.난 시험시간 시작 얼마전까지 가족법책을 보면서 가족법을 정리했다.그리고 한편 속으로 부디 내가 준비한 문제만 나와서 이번에는 민법대박한번 나보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드디어 여지없이 10시정각이 되자 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4일간의 사법시험2차시험 대미를 장식할 민법시험이 시작되었다. 문제지에 붙어 있는 스티커를 운전면허증으로 재빠르게 잘라내고 문제지를 바라보았다.


 문제지를 보는 순간 짜증이 확밀려왔다. 1문은 지문은 그렇게 길지 않았지만 역시 당사자가 A.B.C.D.E 다섯명이나 되고 사례는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날 더욱 당황하게 했던것은 분명 1문은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는데 목차구성하기가 좀 어색하고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 잘모르겠다는 것이다. 분명 어려운 문제는 아닌데 뭔가 이상하고.약간 당혹스러운 문제였다.

문제를 보면서 한참을 고민했다.목차를 어떻게 잡을까 법률관계구성을 어떻게 풀어갈까..그렇게 고민하는 순간 시간은 짹각짹각 잘도 흘러갔고 어느순간 시간은 15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 이상 일단 초안이고 목차고 뭐고 답안지에 현출을 해야만 했다.이중매매법리로 갈까 중간생략등기 간단히 언급하고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으로 기초를 잡고 일반적인 채권자 대위권.이중의 대위.손해배상등으로 갈까 고민하다 결국은 동전 던지기로 운명을 결정하는 심정으로 '모르겠다...중간생략형 명의신탁'으로 가자 하고 답을 썼다.
(시험후 보니 나의고민처럼 이중매매법리인지 중간생략형 명의신탁인지 수험생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1문에서 많은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날려 먹었기 때문에 2문부터는 또 글씨가 날라다니기 시작했다.2문의 1은 다행히 어느정도 대비한 가족법의 상속부분과 공유관계의 지분권문제라 대충은 썼다. 그러나 글씨는 어느덧 홍콩으로 날아가고 있었고. 아 과연 이글씨를 채점위원이 알아볼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틈틈히 다시 하게되었다.

2문의 2 답안을 쓰기 시작할때 시간은 약 15분정도가 남았다.1문에서 너무 고민을 했기 때문에 2문의2는 어떻게 쓸까 생각도 하지 못하고 문제를 읽으면서 답안을 쓰기 시작했다. 얼핏 보니 사무관리와 위임등에 관련된 문제같아서 법조문을 거의 그대로 베끼면서 창작할거는 창작하면서 목차고 뭐고 고려할거 없이 그냥 써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신히 1교시 끝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파란만장한 민법1교시 답안을 간신히 마무리했다.그냥 답안을 마무리 했다는 것 자체에 안도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민법은 만만한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고 민법의 득점여부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는 이들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전같으면 1교시를 끝으로 모든 시험이 끝났겠지만 민법이 150점으로 바뀌면서 점심후 50점 짜리 한시간 시험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이제는 시험이고 뭐고 그냥 빨리 끝나서 뜨거운 목욕탕에서 땀좀 푹빼고 침대에 쓰러지고 싶은 생각뿐이다.머리속에는 푹신한 침대만이 아른거린다....

 하지만 어김없이 2시간의 점심후 마지막 민법시험이 또 시작되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이다. 정신집중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흐트러진 정신을 가다듬고 마지막 시험에 응했다.

3문은 1교시보다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다.토지 임차권.저당권.채권채무관계를 적절히 배합한 문제로 어느정도는 정형화된 문제들이었다.나또한 그래서 1교시보다는 별다른 고민없이.간단한 주요 논점을 초안지에 표시후 바로 답안을 작성했다.

 이제 조금만 고생하면 된다는 위안을 하며 이미 지처버린 육신과 정신을 추스르며 답안을 작성했다. 고요한 침묵속에 답안을 작성하는 볼펜소리만이 고사장에 흐르고 있었다.그리고 그 끝날거 같지 않은 4일간의 시험의 끝을 알리는 마지막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감독관은 손을 올린후 더이상 답안작성을 하면 부정행위로 간주하겠다고 말한후 마지막 답안지를 걷고 있었다. 난 3문을 작성한후 어느정도 자신있게 작성했다는 흐뭇한 표정으로 손을 올린체 문제와 답안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순간 두번째 문제에서 실수한것을 발견했다. 당사자를 헷갈려 버린것이다. 두번째 문제에서는 병에 대한 을과 정의 권리를 논하라고 했는데 을을 착각해서 갑으로 보고 갑으로 답안지에 써버린것이다.아주 바보같은 실수를 해버리고 만것이다.


 하지만 그 실수를 너무늦게 발견해버렸다. 답안지를 걷는 감독관이 바로 앞에까지 온 상태여서 답안을 수정할수도 없었다. 내용은 을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썼지만 단지 갑으로 기재했기때문에 갑대신에 을로만 바꾸어 적으면 되었는데..;;

'난 을을 갑으로 착각했을 뿐이고...감독관은 냉정하게 답안지 걷으러 다가올뿐이고...난 감독관 처량하게 쳐다볼 뿐이고.....감독관 내눈피하며 내정하게 답안지 뺏어갈 뿐이고...난 그져 바라볼 뿐이고.....'

답안을 제출하고 고시생들은 모두 이제 끝났다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며 짐을 정리한체 고사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하지만 난 한참동안 멍하니 책상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큰일을 보고 마무리를 안한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었다. 왜 그때는 을이 갑으로 보였을까??.....머리속에는 계속 '갑..을...갑...을......갑....을'이 맴돌았다.

그후로도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짐을 대충정리하고 고사장을 빠져나왔다.홀가분한 느낌이 하나도 안들었고....머리속은 계속 ....갑..을 ..갑...을만 돌고 있었다....차라리 실수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뭐 내용은 맞고 을을 갑으로 착각해서 쓴거니까..점수주겠지....또는 정의 권리는 잘써주었으니까 15점 배당점수에 8점정도는 줄꺼야하고 위안을 하기도했다.다른한편으로는 올해도 민법징크스는 안깨지고 날 괴롭히는구나...라는 허탈한 생각도 했다.


6.지옥의 레이스라 불리우는 사법시험2차시험

 찝찝한 기분을 유지하며 원룸에서 짐을 빼고 택시를 잡아타고 신림동으로 향했다.계속 머리속에는 갑...을이 맴돌았고 택시를 잡고 신림동으로 가달라는 말을..잘못하면 "갑...을로 가주세요"라고 할뻔했다....;;

 애초에는 시험끝난후 신림동에 있는 찜질방에가서 땀좀뺀후 침대에 쓰러져 죽은듯이 자고 싶었는데..영 그럴기분이 아니었다.신림동 작은 원룸에 와서 짐은 그냥 던져버리고 침대에 누웠다.몸은 피곤했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한참동안이나 민법시험에서 실수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나도모르게 잠에 빠졌다.한참을 자다 눈을 뜨니 어느덧 주의는 어두워졌고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이 피곤하긴 했나보다.그렇게 깊은 잠에 빠졌으니 말이다. 그래도 잠을 자고 나니 좀 마음이 편해졌다.어차피 이제 내손을 떠난 답안지이니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4일에 걸쳐 치루어지는 사법시험2차시험을 경험한 이들은 한결같이 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기 싫다고 한다. 강도높은 하루의 4시간에 걸친 시험을 4일이나 치루어야 하고 시험기간 내내 잠도 제대로 못자고 버티어 내야 하는 그 시험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들을 너무나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힘든 경험을 했기 때문에 시험후 고시생들은 이번시험에 합격하던 불합격하던 다시는 2차시험을 안본다고 말을한다. 그러나 그런 힘든고생을 했음에도 2차시험에 떨어지면 그들은 다시 그지옥같은 시험에 도전한다.그들의 꿈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들 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을 운칠기삼이라고도 한다. 논술형 시험이다 보니 채점위원의 재량이 많이 작용해 점수편차가 크기 때문이다.또 자신이 준비한 논점의 시험이 나오면 대박이 나고 그렇지 않으면 쪽박을 맞는 경향도 있다.나같은 경우도 마지막 민법 실수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운이 좋은 시험이었다.행정법의 처분사유추가변경도 답안을 쓰다 생각이 났고 일부 수험생이 놓친 상법의 보험법문제도 대비한 문제라 잘쓸수 있었다.민법의 경우도 논란이 되었던 1문에서 출제위원이 의도한대로 어느정도 쓴듯했다.

 그러나 2차시험에 어느정도 운이 따르는것은 사실이지만.그운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이에게는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사법시험1차시험후 얼마지나지 않아 2차수험생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시기인 이른바 3순환이 시작될것이다.이시기에 많은 2차준비생들이 힘든 진도와 모의고사점수등에 대한 압밥으로 중도포기하기도 한다.그러나 그들이 왜 지금 사법시험에 도전하는지 그들의 꿈이 무엇인지. 또 초심은 어떠했는지를 다시 되새겨 그 힘든순간에 포기해서는 안될것이다.

사법연수원 시험을 경험한 선후배들은 연수원시험에 비하면 사법시험은 그렇게 힘든시험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보통 2학기 시험부터 아침10시에 시작해서 저녁6시에 끝나는 강도높은 8시간시험이 그어떠한 시험보다 고통스럽다고 말한다.시간이 부족해 점심도 제대로 못먹고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두껍게 쌓여 있는 기록을 보고 판결문.공소장등을 작성해야한다는 것이다.그러한 힘든시험때문에 종종 시험보다 쓰러져 실려나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사법시험2차시험후에는 또다시 2차시험보다 더 힘들고 괴로운 연수원시험이 그들을 기달리고 있다.그만큼 한명의 법조인을 양성하기 위해서 길고 힘든 숙련과정이 필요한것이다.법조인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상 힘들고 고된 사법시험2차시험의 고통과 혹독한 연수원 수련과정을 두려워해서는 안될것이다.



1.긴장감과 혼란속에 시작된 지옥의 레이스(6월23일)

   요란하게 울리는 자명종 소리이 부시시 눈을 떴다.몸은 여전히 누구에게 얻어 맞은듯 쑤시고 아파왔다. 그러나 다행히 자기전에 감기약을 먹었기 때문인지 열은 좀 내렸고 두통은 완화되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꿈을 꾸는것같았다. 잠자리에 누워 몇시간을 뒤척이며 늦게 잠든 까닭인지 정신이 멍한 느낌이 들었다.계속 자리에 눕고만 싶었다. 앞으로 펼쳐질 치열한 시험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분을 그렇게 누워있다가.결국 일어나 샤워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시험장인 중앙대로 향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시작되어버린것이다. 아마도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신성초등학교에서 부터 수많은 검은색 모범택시.콜벤등이 이미 예약해둔 고시생들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서있을것이고 각종 고시학원에서 고시생들을 태우기 위한 전세버스 또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택시와 버스.그리고 결전의 시험을 치루는 고시생들로 뒤엉켜 고시촌은 팽팽한 긴장감과 혼란속에 앞으로 치열하게 펼쳐질 4일간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것이다.

 난 중앙대에 도착해 바로 학생식당으로 향해 먹히지는 않지만 억지로 밥을 먹었다. 여전히 온몸은 쑤시고 힘들었지만 감기약은 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기약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시험시간중에 집중할수 없을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중앙대에는 계속해서 수많은 고시생들을 태운 모범택시가 들어오고 있었고.일부는 부모님께서 직접 자신의 소중한 아들.딸들을 태우고 들어오고 있었다. 수많은 모범택시.학원에서 전세한 버스등등으로 그야말로 북적북적거렸다.


2.긴장한 표정으로 고사실에 입실하는 고시생들

 수험표를 보고 다시한번 내가 볼 고사장을 확인한후 고사장으로 들어섰다.내가 본 고사장이 있는 건물은 중앙대 법대건물이었는데 새로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상당히 깔끔해보였다. 법대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모녀를 볼수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손을 꼭 움겨 잡으며 딸을 말없이 바라보았고.그렇게 모녀는 그들만이 알수 있는 무언의 대화를 나눈후 딸은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한손에는 도시락으로 보이는 쇼핑백을 다른한손에는 기다란 묵주를 꼭 잡고 점점 사라져 가는 딸을 바라보았다.

고사장입구에는 그렇게 자신의 소중한 아들.딸들의 중대한 시험을 위해 함께한 부모님들이 발을 동동구르며 서성이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그들 또한 직접 시험을 치루는 아들딸만큼이나 긴장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다른한편 차라리 자신이 시험을 대신치고 싶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고시생들이 고사실에 들어와서 다시한번 자신들이 정리한 법서를 보고 있었다. 나도 재빠르게 자리를 확인한후 가방에서 행정법책을 꺼내 어제 미쳐 다읽지 못한 행정법을 보았다.

 고시생들은 저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책을 보고 있는 이들.혼잣말로 계속 중얼중얼거리며 책을 보는 이들.천주교 신자인지 긴 묵주를 손으로 주무르며 책을 보고 있는 이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책을 응시했다.

그러나 일부 고시생들은 전혀 긴장한 표정없이 없드려 자거나.고사장 밖으로 나가 친구들이랑 농담을 하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런 고시생들은 십중팔구 올해 처음2차시험을 보는 이른바 '초시생'들이다.

 물론 처음2차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몇몇의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처음2차시험을 봐서 덜컥붙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 이른바 '올림픽정신'으로 시험을 보는 이들이다. 그러니 시험장에서 특별히 긴장할 필요도 없다.

또 공부도 제대로 해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답안지에 특별히 쓸말이 생각나지 않아 법전을 그대로 베끼거나 그림을 그리거나.혹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를 적어 내는 초시생들도 있다.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일화가 되어 좋아하는 가수노래가사를 적어 냈더니 점수가 20점도 안나왔다느니 난 그림그렸는데 30점을 주었다느니 하는 고시생들사이에 우스겟소리의 소재가 되어 전설처럼 고시촌을 맴돈다.


3.마지막 일분일초까지 책에서 손을 놓지 않는 고시생들

 드디어 시험시간이 점차다가온다. 정확히 10시에 시험은 시작해서 2시간동안 치루어진다. 9시30분쯤 감독관이 입회해 입실인원등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얼마후 감독관은 모든 고시생들이 고사실에 입실할것을 통보한다.

 그러나 대부분 고시생들은 입실하지 않고 고사실밖에서 그들이 마지막 볼책을 가지고 나가 계단에 털석 앉거나 고사장 밖 벽에 기대에 마지막 순간까지 책장을 넘긴다. 화장실에 갈때에도 두꺼운 법서를 들고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일반인들이 이장면을 본다면 십중팔고 저사람들 미쳤다고 할것이다.

수많은 고시생들이 그냥 책을 선풍기 돌리듯 막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 과장해서 말한다면 초당 10페이지 이상을 막 보면서 넘겨 버린다. 이러니 저사람들 고시공부 너무 오래해서 미쳐버린거 아니냐는 말을 할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미친것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회독수를 거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풍경을 찍듯이 눈에 책장을 넘기면서 책의 내용을 찍어 기억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그들은 감독관의 마지막 입실통보가 있을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솔직히 마지막에 이렇게 책을 보는것이 큰도움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불안감과 자기위안을 위해 그렇게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고사장 밖에서는 그들을 데리고 온 일부 부모님이 끝까지 남아서 그들의 아들딸이 부디 시험을 잘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발을 동동구르며 서있다.


4.시험시작전의 숨막히는 긴장감

 드디어 시험시작 얼마를 남겨놓고 8페이지에 해당하는 답안지와 법전이 배부되었다. 2차시험은 법전이 배부가 된다. 2시간의 시험시간동안에 유일하게 볼수 있는 책이 법전인것이다. 2차고시생의 유일한 최후의 무기라고 할수 있다.


 법전이 배부되자 마자 고시생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법전을 펴서 연필이나 볼펜을 가지고 법전의 주요조문에 알기 쉽게 표시를 하거나 또 법전의 첫페이지를 접어 주요 법을 확인할수 있도록 저마다의 노하우를 가지고 법전을 자기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첫째 시험시간과목이 헌법인데 헌법의 경우에 나오는 법은 헌법.국회법.헌법재판소법등인데 그러한 주요법들의 주요조문을 표시하고.헌법.국회법.헌법재판소법이 법전의 어느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첫페이지를 접는 방법등으로 쉽게 찾을수 있도록 만드는것이다.2시간의 시험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단 몇초라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런 작업을 대부분 한다.

 시험시간 몇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문제지를 가지고 온 시험감독관이 고사실에 도착하고 감독관들은 문제지를 각 고시생들에게 나누어준다.이때부터 시험시작하는 시간까지가 가장긴장된다. 단 몇분의 시간이 몇십분 아니 몇시간처럼 느껴진다.

 가슴은 콩당콩당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뛰기 시작하고.과연 내가 준비한 문제가 나왔을까? 전혀 준비하지 않은 이른바 '불의타'가 나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부터 온갖생각이 다들기 시작한다.

고사실은 알수 없는 적막감과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마치 숨이 막혀 질식할것만 같다. 고시생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고시생.지긋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 고시생.숨막히는 긴장감에 다리를 떠는 고시생 모두 각각의 방법으로 긴장감을 해소할려고 노력하지만 긴장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때의 심정은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하나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영화 아니 씨리즈물이 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수부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그영화 2편을 보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공수부대원들이 이른바 디데이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전날 적진 한가운데 깊숙히 비행기를 타고 투입이 되는 장면이 있다. 적들이 우글거리는 적진에 투입되기 직전의 공수부대원들은 자신들에게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살아갈수 있을지.죽어서 나갈지 하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는데.아마도 바로 시험시작 몇분전의 고시생들도 적진 깊숙히 투입되기 직전의 공수부대원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5.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마침내 시작되는 2시간동안의 열전

그리고 마침내 긴 호루라기 소리를 시작으로 인생을 좌우할 시험시간이 시작된다. 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고시생들은 본능적으로 문제지에 부착된 스티커를 제거하고 문제를 읽기 시작한다. 긴문제를 읽으면서 등장인물.일시.사건의 개요등을 초안지 혹은 문제지에 계속 체크하면서 읽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갑의 사건을 을로 착각한다거나.일시등을 착오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답을 쓰는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사장에는 긴적막감속에 빠르게 초안을 잡기위한 딱.딱.딱 하는 볼펜소리만이 들려온다.초안을 어느정도 잡은 고시생은 이제 필사적으로 8페이지의 답안지를 써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보통 4페이지정도의 분량을 적으면 손과 팔목.어깨등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답안쓰는것도 하나의 체력싸움이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간초과로 제대로 답안을 쓰지 못한다거나 분량초과 즉 5점이나 10정도 밖에 배점이 안된문제를 자신이 아는 문제라고 해서 이것저것쓰다가 나중에는 중요한 30점짜리 문제를 달랑 몇줄쓰고 나오는 어이없는 실수를 할수도 있기 때문에 고시생들은 이것저것 다고려해서 답안을 써야만 한다.답을 적는 중간중간에도 내가 지금 주요논점을 빼먹고 있는것은 아닌가? 등장인물을 착오하고 있는것은 아닌가를 계속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답안을 쓰다보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 2시간의 시험시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정신없이 답안을 써나간다. 대부분의 고시생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글씨는 나자신만이 알수 있는 지렁이 글씨로 변해버리고  손은 마치 타자기처럼 본능적으로 막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쓰다보면 어느덧 시험시간종료를 알리는 긴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감독관은 엄격한 표정으로 쓰고 있는 필기구를 모두 내려놓으라고 지시한다.과거에는 시험시간 종료후에도 어느정도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 고시생을 배려해 시간적 여유를 주었지만 최근에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어 시간통제가 엄격해졌다.

그래서 만약 시험시간 종료후에도 답안을 계속 작성하는 학생이 보이면 다시한번 경고를 하고 경고후에도 행위가 계속되면 답안지를 회수해 영점처리하고 그학생은 실격시켜버린다. 이렇게 실격되는 경우가 일년에 몇번씩 발생한다. 몇점을 더 획득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영점처리되고 감독관에게 울며사정하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되어버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6.2시간의 시험후 찾아오는 2시간의 휴식과 2시간의 시간

 그렇게 오전시험이 끝나고 약2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입맛이 없다. 그러나 이미 지칠대로 지친 체력을 회복하기위해서도 먹어야만 한다.

주로 고시생들은 소화기 잘되는 죽등을 싸오거나 대학 고시반에서 제공해주는 도시락을 먹는 경우도 있다. 또 시험시간 내내 고시장 주위를 맴돌며 초조하게 자신의 아들딸을 기다리다가 점심시간에 손수마련한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을 부모님께서 주시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나같은 경우는 중앙대에서 아는 사람없이 혼자 시험을 봤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오기도 귀찮고 또 몸살감기까지 걸려서 학교식당에서 파는 햄버거와 콜라를 사서 간단히 먹었는데 도무지 입에 넘어가지 않아서 반도 못먹고 그대로 버릴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단한 점심식사후 고시생들은 쉴틈도 없이 다시 오후과목을 위해 책을 붙잡고 다시 선풍기처럼 책을 빠른속도로 넘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오후시험시간이 되고 또 2시간의 치열한 열전이 시작된다.

 마침내 오후4시 오후시험종료를 알려오는 긴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그날 하루의 시험은 끝을 맺는다. 고시생은 하루 4시간의 시험시간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나마 하루의 시험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큰논점을 놓치거나 시험을 망친이들은 암울한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7.시험후 또하나의 혼란과 경쟁 시험장소 빠져나가기

 시험을 마치고 수많은 고시생들이 지친 표정으로 법대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이미 4시간동안에 그들이 가진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많은 고시생들은 이미 힘이 빠져 초췌한 표정으로 고사장을 빠져나온다. 고사장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의 아들딸들을 기다리던 부모님들은 그들의 소중한 자식들을 발견하자 마자 와락 끼어안거나 손을 꼭 붙잡고 수고 했다며 말을 건내고 즉시 자신들의 차로 향한다.

시험이 끝난후 고사장은 또하나의 혼잡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시험을 마친 고시생을 태우고 다시 그들의 집이나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대 근처 주차장에 수많은 검정색 모범택시의 기사님들은 그들을 예약한 고시생들이 확인하기 쉽게 큰 하얀색 종이에 그들 모범택시를 표시하여 고시생들이 가능한 빨리 탑승하도록 한다.

또 각종 고시학원에서 대절한 대형 관광버스들도 문을 열어놓고 고시생들을 기다린다. 이미 그들의 자녀를 태운 부모님의 차들은 고사장을 빠져나가기도 한다.수많은 모범택시.학원버스.승용차등이 어우러져 고사장은 또한번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긴 차량행렬이 긴 꼬리를 이루어 빠져 나가는 것만도 한참이 걸린다.

 그들은 그렇게 시험으로 지친몸을 잠시나마 모범택시등의 의자에 누이고 또 내일있을 시험을 준비해야만 하기에 잠시나마 맘이 편할수가 없다. 또 내일 있는 시험은 가장 양이 많은 과목중에 하나인 민사소송법과 상법이라는 괴물이 큰 아가리를 벌리고 그들을 삼켜버릴듯한 기세로 달려오기때문에 그들은 벌써부터 2과목을 어떻게 다보야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