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쓴맛과 당혹스러움을 느꼈던 일주일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2. 9. 24. 12:00 Posted by 법률사무소 진실 kellsen

  이번주 일주일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추석명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바쁜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능한 주말출근은 하지 말자는 의지를 가지고 월요일부터 밤이 늦도록 야근을 했건만, 사건을 화요일에 기록을 만들어서 가지고 와서 목요일에 서면을 제출해달라고 하는 급박한 사건이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장을 쓰면서 '주말출근은 제발'이라는 나의 목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 중 목요일은 최악이었다. 사건이 꼬여버린 다소 부담스러운 사건이 3개나 있었던 마의 목요일이었다. 그중 아침에 잡혀있던 사건은 그나마 어떻게 잘 해결될 기미를 보여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찰나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진행했던 항소심 사건이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통보.......1심에서 승소한 사건이었으나 항소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점점 불리해지더만....결국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잠시동안의 안도의 한숨이 무거운 한숨으로 바뀌었다. 의뢰인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까...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 뒤집어지는 판결은 의뢰인도 당혹스럽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당혹스럽다.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인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의뢰인은 역시나 크게 실망했고. 나는 대략적으로 패소한 원인을 설명하며 일단 판결문이 오고 나서 상고여부를 검토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쓰디쓴 패배의 소식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동부지원으로 향했다. 형사사건 재판이다. 의뢰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신청한 증인은 수차례 출석을 거부하고, 사건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측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기일에도 증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기일이 될 것이다.

 역시 증인을 출석하지 아니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은 증인의 불출석에 풀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 기대가 날아가는 심정일 것이다....그리고 방청석에는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와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을 가르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뢰인을 위해 최후변론을 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십명의 피해자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고함을 쳤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나는 법정경위와 피고인과 함께 온 교도관들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다시 나는 오후 5시에 잡힌 수원재판을 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난 지칠때로 지쳐있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머리속이 복잡....아니 미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이 사건 다소 논리적을 빈약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변호사로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그런 낯뜨거운 사건이랄까^^;;; .......그러나 어찌어찌 그렇게 마치고 나니 5시30분이 넘어선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바람에 춤을 추는 막대인형처럼 이리저리 이끌려 춤을 추다가 바람이 빠져버려 힘없이 사그라지는 느낌이랄까....온몸이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금요일은 오후에 춘천재판이 있었다. 그렇게 부담은 없는 사건이었으나, 의뢰인이 필요한 증거를 준비해오지 않아 공전이 될 사건이기에 재판부에 한기일만 더 잡아달라고 사정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가을하늘은 가을하늘의 청명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목요일의 고단함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상쾌한 공기로 잊혀지는 듯 했다.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던 중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을 보았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하얀소금을 뿌러놓은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왜 문학작품에 그렇게 아름답게 메밀꽃을 묘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과 청명한 가을하늘의 유혹에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췄다. 콧등을 스치우는 상큼한 바람의 내음, 유유히 떠가는 하얀 구름사이로 푸르른 얼굴을 비치우는 하늘...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일어섬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사그라짐이라고 했던가...나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게 유유히 구름을 보내며 나에게 근심을 덜어놓으라 하고, 이름모를 풀꽃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며 나에게 행복하라 하는데,, 나는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듯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일주일의 고단함이, 소박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의 유혹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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