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망중한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7. 2. 13. 11:22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2월의 법원은 한가하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재판기일을 대부분 잡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 또한 2월달에는 재판이 별로 없어 그나마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벌써 3월이 두려워진다. 속속 재판기일이 잡히고 있고 그로인해 3월은 또다시 폭풍재판이 예상된다.

 

어느덧 변호사 생활을 한지도 7년이 되어간다. 30대 초반의 나는 어느덧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고 건강검진을 할때마다 건강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는 40대가 되어있다. 열정으로 시작한 변호사 생활은 이제 복잡한 사건들로부터 며칠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간절한 피곤함에 함몰된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자연인이라는 프로를 자주 본다. 아내는 왜 그런 재미없는 프로를 보냐고 핀잔을 주지면,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간 그들이 하염없이 부러워 대리 만족이라도 얻기 위해 그런 프로를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거대한 문명이 만들어낸 물질의 풍요로움에 중독되어 있으니, 그래서 더 간절할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생활이 그래도 보람된 순간은 있다. 당사자의 억울함이 그나마 풀리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증거에 의해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법원은 자신만이 아는 진실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법정 앞에서 왜 진실을 밝히지 못하냐고 1인시위를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자신의 억울함을 판결에 의해 해소한 당사자는 행복한 것이다.

 

최근에 선고된 기억나는 사건은,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당사자가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약 1년 이상 재판이 진행된 사건으로, 처음에 상담할 당시 당사자는 자신이 왜 기소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당사자와 상담을 통해 당사자가 강제추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느정도의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미 기소가 되었다. 기소가 된 사건을 무죄판결 받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우리헌법상의 대원칙이지만 실무적으로 기소가 되었다면 법원은 검사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기소한 것으로 보기때문에 무죄판결을 받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더 고민이었다.

 

그래도 기록에 답이 있었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모순되는 부분이 많았다. 강제추행을 당한 장소에 대한 진술도 일부 달랐고, 뿐만 아니라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장소는 다수의 목격자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장소인데, 그 목격자가 전혀 없었다. 더욱이 당시 상황은 당사자 즉 피고인이 강제추행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였다. 또 피해자의 그동안은 언행, 성향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정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결국 1년에 걸친 사실조회, 증인신문 등의 재판진행을 통해 당사자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사자는 무척이나 기뻐했고, 나 또한 당사자의 억울함이 그나마 해소되었기에 안도했다.

 

또 한주가 흘러간다. 겨울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지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래도 봄은 오겠지....

쇠락해가는 고시촌을 지나며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6. 2. 9. 00:02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금요일 오후 인천에서 2시간에 걸친 지루한 증인신문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맡기고 서울로 향했다. 무심코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한참을 가던 나는 점점 눈에 익숙해지는 풍경에 나도 모르게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그토록 내가 몸부림치며 벋어나고 싶어 했던 신림동 고시촌이었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나는 5년여 동안 거주하며 처절하게 시험준비를 했던 신림동 고시촌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신림동 고시촌은  항상 탈출하고 싶은 그러나 쉽게 탈출할 수 없던 절망과 한숨의 아물지 않는 상채기로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는 찾기 싫었던 신림동 고시촌으로 네비게이션이 나를 안내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그렇게 사법시험 합격 후 처음으로 찾아간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을 차량 창문으로 보던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가난한 촌부의 아들이 사법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한 것자체가 무리였을지 모른다. 몇년에 걸친 2차시험에서의 낙방은 나를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만들었고 거주지는 점점 가격이 낮은 신림동 산 끝으로 향했다. 더이상 새책을 살 여력이 되지 않아 헌책방에서 책을 사야했고, 학원 강의는 들을 여력이 되지 않아, 헌책방에서 테입을 사서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테입도 듣자 마자 바로 팔아야 했고 책도 시험이 끝나자 마자 다시 팔아야 했다.

그래도 시험은 계속 떨어졌고, 더이상 독서실비도 낼 여건이 되지 않아, 서울대 도서관에서 1,800원 짜리 식사를 하며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나는 그해 4번째 2차시험에서 또 떨어졌다. 3번째 낙방까지는 무덤덤했다. 하지만 총점에서 3점 차이로 떨어진 4 번 째 낙방은 날 더이상 일어설 수 없게 만든 카운터 펀치 같았다. 그날 고시촌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고시원 옥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난 좌절해야만 했다. 그렇게 신림동 고시촌은 나에게 처절한 아픔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잊으려 했을지 모른다. 끄집어 내면 낼수록 아픈 과거가 들추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우연치 않게 스쳐 지나가는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은 더이상 아픈 상채기가 아니었다. 아무리 아픈 기억도 시간이 흘러가 뒤돌아보면 아름답게 포장되는 추억이 되는가 보다. 20대 후반 젊은 시절을 통채로 바친 고시촌의 모습은 어느덧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고시촌은 쇠락해가고 있었다. 합격자 발표일에 합격자 명단을 붙여 놓아, 수많은 고시생들이 서로의 명단을 확인하며 기쁨의 환호성과 아쉬움이 탄식이 교차하던 상원서적, 쿠폰을 가져가면 책을 할인해주었던 광장서적, 사법시험 2차시험 강의로 유명했던 고시학원 등이 모두 사라져 버린 듯 하다. 나의 젊은 시절을 모두 바친 고시촌이 그렇게 쇠락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의 젊은시절 추억의 앨범하나가 날아가버리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또 한해가 시작되었다. 나이가 먹어가며 세월이 무척이나 빨라지는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어느덧 나도 40대가 되었다. 어릴적에는 무척이나 더디게 흘러만 갔던 시간인데, 이제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작년 10월 경 부산에 재판이 있어 부산을 다녀왔다. 작년 유난히 부산, 영월 재판이 많아 부산과 영월을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부산에 재판을 하러 갈때마다 이상하게 비가 왔다. 부산에는 고등학교 친구 롯데자이언츠 외야수 임재철이 있다.

나는 야구명문^^ 천안북일 고등학교를 나왔다. 김태균, 한용덕, 이상군, 등 등 많은 유명한 프로야구선수를 배출했다. 하지만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적에는 북일고등학교의 암흑기였다. 지역예선에서는 지역 라이벌 공주고등학교에 번번히 패배하였고, 간혹 전국대회에 진출하게 된 경우에도 금방 짐을 싸서 돌아와야 했다. 당연히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도 거의 없었는데, 유일하게 프로야구에 진출해 그나마 이름을 남긴 선수가 임재철이다.

 임재철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인연이 있는 듯 하다. 임재철하면 떠오르는 것은 성실함, 그리고 저니맨이라고 할 것이다. 임재철은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삼성, 한화, 두산, 엘지, 롯데 등 많은 팀을 옮겼다. 그러나 임재철이 성실함의 대명사라는 사실은 인정하겠지만, 저니맨이라는 이미지는 동의할 수 없다. 임재철이 많은 팀을 옮긴 것은 사실이나, 임재철은 두산이라는 팀에서 약 10년간 있었다. 두산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성실함과 후배들을 다독이는 리더십으로 주장까지 역임했다. 그러니 임재철은 두산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임재철은 성실함의 대명사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운동을 하고,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후배들이 그를 본보기로 여기며 따르는 듯 하다. 그래서 임재철과는 친구 사이이지만 일년에 한 두번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작년 10월경 마침 부산재판이 있어 임재철에게 한 번 볼 수 있냐고 연락을 해보았다.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워낙 운동만 하는 녀석이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보자고 한다. 

부산은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임재철이 직접 온다고 하여 법원 구내식당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장맛비 처럼 가을비치고는 많은 빗방울을 쏟아 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 도착했다는 임재철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해운대 근처의 카페에 가서 재철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이 술을 안하다 보니 부산에서 회도 먹지 못하고 그냥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 뿐이었다. 당시 재철이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재철이는 무엇인가 이제 내려놓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재철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졌다. 재철이와 헤어지며 롯데자이언츠 강민호, 손아섭의 싸인볼이라는 소박한 선물도 받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ktx 기차를 타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재철이는 철저한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철저한 자기관리, 투혼으로  지금까지 현역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성실한 자세로 인해 많은 후배 야구선수들도 그를 따른다. 친구녀석이지만 그러한 점은 배우고 싶다.

그로부터 몇개월 후 재철이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 달랐던 그였는데, 은퇴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아쉬움이 컸을까. 그러나 다른 한편 후회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야구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기 때문이겠지

난 지금 내 모든 것을 걸고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인 이일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뿐이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오는 승패에 대한 압박감, 사건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밀려오는 스트레스, 변호사로서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안풀리는 사건이 있으면 자다가다 그 사건이 머리속에 계속 맴돌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하기야 그래서 미국 등은 송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는 그 스트레스로 인해 은퇴연령이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당연히 평균수명도 단축되고, 그래서 난 요즘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탈출을 꿈꾸고 싶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러짐을 느꼈다.

하지만 임재철의 은퇴를 바라보며, 처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법을 좋아해 시작한 나의일이다. 열정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싶다. 열정이 없으면 죽은 삶이라고 하지 않았나.재철의의 은퇴가 꺼져가던 나의 열정의 불꽃을 다시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재철아 그동안 고생했다. 너의 꿈처럼 야구에 대해 모든 것을 바쳤기에,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선수로서의 삶을 마쳤으니 조금은 긴장을 풀고 술도 마시고 인생을 즐기며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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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함속에 긴장감이....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5. 2. 8. 09: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2월 첫주가 마감되어 간다. 2월은 다행히 법원인사이동, 설날 연휴 때문인지 재판기일이 별로 잡히지 아니하여 그나마 여유롭다. 2월 첫주도 재판이 전혀 없어 오래간만에 사무실에서 망중한을 즐겼다. 재판이 없고, 다른일도 없으면 미루어 두었던 판례공부도 하고, 민법책도 다시 한번 보고 싶건만 마음과 같이 되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금요일 중요한 재판의 선고기일이 예정되어 있어, 마음이 한없이 여유롭지는 못했다. 시가 130억 상당의 마약 밀수사건에서 필로폰 판매책 물색 및 자금책 역할을 하였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맏아 진행을 하였다. 피고인은 자신은 절대로 필로폰 밀수 사건에 관여한바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다른 공범들 또한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를 다투었지만 다른 공범들은 이미 징역 10년, 5년의 중형을 선고받은 상태였다.

  형사사건을 여러번 해보면, 이 피고인이 진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인지,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인지를 대충 감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사건 피고인을 여러차례 접견하면서 이 피고인이 진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알리비아 입증이 용이하지 아니하였다. 오히려 총책의 출입국 일자와 유사한 피고인의 출입국 내역, 피고인이 송금한 돈의 일부가 공범의 항공권 구매 자금등으로 사용되는 등 일부사항은 우리측에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고민이다. 차라리 자신이 죄를 저지르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그런 피고인을 변호하는 것이라면 유죄판결을 받아도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의 사건은 심적으로 괴롭다. 특히 사건의 진행이 점점 어려워지는 경우는 나로 인하여 이 무고한 피고인이 엉뚱한 처벌을 받지 아니할까 하는 괴로움이 나를 잠못이루게 한다.

피고인을 필로폰 판매책 물색 역할을 했다고 유일하게 진술한 이에 대한 증인신문은 생각보다 잘 진행되지 아니하였고, 사실조회 결과도 미흡했다. 피고인을 위한 최후변론을 하며 목소리가 떨려옴을 느꼈다. 피고인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미흡했다고 생각했기에 그러했던 것 같다.

선고기일 약 2주전을 앞두고 변론요지서를 작성했다. 마지막 희망은 변론요지서 뿐이었다. 다시 한번 기록을 차분차분 한글자도 놓치지 않고 보려고 했다. 유일한 증인 진술의 신빙성 결여, 피고인의 알리바이 입증, 주범의 도주, 공범들의 피고인 관련성 부정 등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약 4일에 걸쳐 신중하게 50여 페이지에 이르는 변론요지서를 신중하게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그리고 선고기일 아침, 과연 무죄가 선고될 수 있을까, 유죄가 선고되면 피고인의 그 좌절 스러운 모습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는 긴장감이 맴도는 아침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다행스럽게도 무죄를 선고하였다. 변론요지서에 기재된 우리측 주장과 증거를 대부분 인정해 주었다.휴....하는 한숨이 나왔다.재판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진실은 그 당사자만 알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진실하면 재판에서 그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현실은 상당수의 진실이 재판에서 밝혀지지 못하고 어두운 그늘 속에 잠들어 버린다. 그나마 이번 사건에서 그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조그마한 노력의 결과가 이루어져 한숨을 돌릴 뿐이다.

속물 변호사가 본 영화 '변호인'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3. 12. 30.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어느덧 2013년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간다. 한해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난 금요일 대표변호사님을 비롯하여 회사 직원들과 함께 조촐한 송년회를 했다. 그리고 모두 함께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변호인을 보았다.

 영화 변호인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영화이다. 이른바 전두환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감추기 위해 부산 지역 독서모임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엮어 넣은 이른바 '부림사건'의 변호인을 맡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이 영화는 나 또한 개봉하기 전부터 관심있고 지켜보았고 개봉을 하면 꼭 보고 싶었던 영화였기에 직원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관에 들어섰다. 

  상고 졸업의 백도 돈도 없는 변호사 송우석 그에게는 다른 것은 관심도 없고 돈을 버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러했기에 다른 변호사들의 욕을 먹으면서 당시 사법서사(법무사)나 했던 부동산 등기 업무에 손을 댔고 상고 경험을 살려 세무영역에 손을 대며 돈을 벌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아내와 자식들에게 돈없는 서러움을 안겨주지 않을 정도로 아파트도 장만하고 번듯한 사무실도 차릴 정도로 돈을 번다. 그리고 그를 멸시하던 변호사들은 이제 그가 초호화 요트를 장만했다느니 하며 시기어린 질투를 느낀다. 그렇게 그는 부산에서 성공한 변호사로 명성을 높이고 어느덧 부산을 벗어나 전국구 변호사로 그의 명성을 알릴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다.

  그렇게 험난한 세상을 스스로 극복해온 그에게 데모를 하여 세상을 바꾸겠다며 뉴스에 나오는 학생들은 그져 데모를 핑계로 공부를 하기 싫어하는 그런 문제아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단골 국밥집 아들 진우, 빨갱이라고 전혀 생각할 수 도 없는 그런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진우가 행방불명이 되고 몇달이 지나 빨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짜맞혀진 각본에 따라 국가보안법위반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그제서야 변호사 송우석은 그가 어쩌면 의도적으로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던 부당한 국가권력의 횡포를 보고, 거대한 국가권력과 싸운다.

  영화는 즐거웠고 감동적이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오며 가슴 한곳이 먹먹했다. 시골에서 논 몇 마지기를 부쳐 먹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어찌어찌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요 시골에서는 이른바 개천의 용이었다.

 그러나 나는 속물 변호사이다. 변호사가 급작스럽게 너무 많이 늘어나 이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불평하고, 어떻게 하면 사건을 수임해서 돈을 벌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도무지 말도 안되는 사건도 수임한다. 그리고 복잡하게 널부러진 재판기록을 보며 넥타이를 풀어헤치고 되지도 않는 머리를 짜내며 밤새워 서면을 작성하고 재판 며칠을 앞두고 납기일을 마치듯 그렇게 법원에 서면을 낸다. 그렇다고 영화속의 송우석 변호사처럼 성공한 속물 변호사도 아니다.

  영화 변호인은 속물 변호사로서 살아온 나에게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작은 무엇인가를 끄집어 낸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속물 변호사 일 수 밖에 없다. 송우석 변호사처럼 모든 것을 내던질 그런 용기가 없는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와 싸운다는 것, 거대한 권력과 싸운다는 것 그것은 그렇게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고정된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다. 죽어있는 바위를 살아 있는 계란이 뛰어 넘기 위해서는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는 힘든 것이다. 오늘도 자신을 버린 채 정의로움을 위해 싸우는 변호인들에게 가슴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영화 변호인은 속물 변호사로 살아온 나에게 조그마한 양심의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던 그런 영화였다.

청년변호사들의 반란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3. 2. 3. 11:38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최근에 대한변호사협회장,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가 있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큰 이슈가 되었던 선거이다. 그러나 선거의 결과는 더 큰 화제를 불러왔다. 그동안 간선제로 선출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직선제 선거방식이 도입된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위철환 전 경기중앙변호사회장이 당선되었다.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위철환 변호사의 당선을 두고 지방,비주류의 반란이라고 부르며 다소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결과는 전체 변호사 1만2000여명의 70%가 넘는 9131명이 소속된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에 30대 중반의 나승철 변호사가 당선된 것이다.

  이번 선거의 결과가 이와 같이 비주류,젊은 변호사가 당선된 것을 두고 변호사들 사이에서는청년변호사들의 반란이라고 부르고 있다. 최근에 변호사 업계는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히 변호사들 숫자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최근에 변호사가 된 젊은 변호사들은 그동안 변호사들의 겪어 보지 못했던 어려움에 처했다. 즉 어려워진 법률 시장으로 인해 젊은 변호사들은 만성적인 고용불안, 연봉의 감소,

 

 

 

 

 

 

  지난주에 변호사들 사이에 자신이 근무하던 법인을 상대로 임신을 이유로 무급 휴직명령을 내린 것은 위법하다며 휴직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한 한 여변호사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이 여변호사는  법무법인에 입사하여 평균 퇴근 시간이 새벽 1시 또는 2시일 정도로 바쁘게 근무하였으나, 지난 5월 임신한 사실을 회사에 알리자 회사는 2차례에 걸쳐 업무 실사를 했고 회사는 이후 일방적으로 무급 휴직을 통보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물론 소송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변호사들 특히 이러한 현실과 직면해 있는 많은 청년 변호사들이 상당 부분 분노했고, 최근 설립된 청년변호사협회는 해당 법무법인을 형사고발까지 했다.

  왜 아직 구체적인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아니하여 누구의 말이 옳은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많은 젊은 변호사들이 이 사건에 대해 공감을 하며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 것인 아마도 현재 청년변호사들이 접하고 있는 현실을 이 사건이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스쿨 제도 및 사법시험 합격자의 증가로 인하여 변호사들은 최근 사이에 급속도로 늘어났다. 반면에 법조시장은 수년째 경기불황 등의 여파로 정체되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급속도로 늘어나는 변호사들의 숫자에 비하여 법률시장 정체로 인한 변호사들의 고용상황 및 근무여건은 점점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 상당수의 변호사들이 취업하는 법무법인 등은 소규모로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서 당연히 보장받아야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많은 변호사들이 감당할 수 없는 업무량으로 인하여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야근을 하는 등 주당 평균근무 시간이 60시간에서 80시간 이상되고, 주말 출근을 밥먹듯이 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야근수당 등은 생각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또한 업무량으로 인하여 법적으로 보장받아야 할 연차휴가 등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미 사용 연차휴가에 대하여 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임신한 여변호사에게 노골적으로 회사를 그만 둘 것을 종용하는 경우도 있고, 회사 퇴직시 퇴직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또한 신입변호사의 급여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변호사가 전문직 고소득 직종이라는 말은 이제 점차 옛말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변호사들은 오히려 해고되지 않고 고용되어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할 정도로 현재의 법률시장의 고용환경은 상당히 악화되고 있다. 주변에 연수원 동기나 후배들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았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오는데, 그러한 소식이 들려오는 횟수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니 현재의 변호사들의고용상황이 얼마나 악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변호사 개업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어려운 법률시장의 여건속에 용기를 내어 개업할 수 있는 청년 변호사는 몇 되지 않는다. 농담으로 개업이나 할까라고 개업한 선배들께 물어보면 모두 당분간 참아라. 지금 개업하면 힘들다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개업변호사들도 어려운 상황이다.

 더욱 우려스려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호사 숫자는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이고, 법률시장은 그에 비하여 확대의 폭이 넓지 않다. 그렇다면 새로운 업무영역을 개척해야 할 것인데 그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이러한 청년변호사들의 열악한 고용조건과 노동환경으로 인해 최근 청년변호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청년변호사들의 처우개선에 있다. 이에 따라 매번 대한변협회장 선거나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 이러한 청년변호사들의 처우개선은 단골 공약으로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나 개선의 여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선거에서는  청년 변호사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운 청년변호사 출신 후보가 당선자와 근소 차이로 떨어져 기성 법조인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 만큼 청년변호사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이번주 일주일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추석명절이 성큼 다가왔지만 바쁜 일정은 변함이 없었다. 가능한 주말출근은 하지 말자는 의지를 가지고 월요일부터 밤이 늦도록 야근을 했건만, 사건을 화요일에 기록을 만들어서 가지고 와서 목요일에 서면을 제출해달라고 하는 급박한 사건이 들어오고, 생각지도 못했던 소장을 쓰면서 '주말출근은 제발'이라는 나의 목표는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

  그 중 목요일은 최악이었다. 사건이 꼬여버린 다소 부담스러운 사건이 3개나 있었던 마의 목요일이었다. 그중 아침에 잡혀있던 사건은 그나마 어떻게 잘 해결될 기미를 보여서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찰나에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내가 진행했던 항소심 사건이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통보.......1심에서 승소한 사건이었으나 항소심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점점 불리해지더만....결국 패소판결이 내려졌다. 잠시동안의 안도의 한숨이 무거운 한숨으로 바뀌었다. 의뢰인에게 어떻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할까...1심에서 승소하고 항소심에서 뒤집어지는 판결은 의뢰인도 당혹스럽고, 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도 당혹스럽다. 마음을 가다듬고 의뢰인에게 전화로 소식을 전했다. 의뢰인은 역시나 크게 실망했고. 나는 대략적으로 패소한 원인을 설명하며 일단 판결문이 오고 나서 상고여부를 검토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그렇게 쓰디쓴 패배의 소식을 뒤로하고, 나는 다시 동부지원으로 향했다. 형사사건 재판이다. 의뢰인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되었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우리측이 신청한 증인은 수차례 출석을 거부하고, 사건은 원심과 마찬가지로 우리측이 불리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기일에도 증인이 출석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기일이 될 것이다.

 역시 증인을 출석하지 아니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은 증인의 불출석에 풀이 죽어 있었다. 마지막 기대가 날아가는 심정일 것이다....그리고 방청석에는 수십명의 피해자가 나와 피고인석에 앉은 의뢰인을 가르키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의뢰인을 위해 최후변론을 했다. 그러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십명의 피해자들은 더욱 웅성거렸고 심지어는 '거짓말'이라는 목소리까지 터져나왔다.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수습하고 최후변론을 마쳤다. 재판을 마치고 나가려는 순간 방청석에 앉아 있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변호사님이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며" 고함을 쳤다. 험악해진 분위기에 나는 법정경위와 피고인과 함께 온 교도관들의 경호??를 받으며 간신히 법정을 빠져 나왔다.

  다시 나는 오후 5시에 잡힌 수원재판을 하러 차에 몸을 실었다. 이미 난 지칠때로 지쳐있었다. 운전을 하며 나는 정말 거짓말을 한 것일까? 피해자들의 말이 사실일까? 진실은 존재하는 것일까?를 생각했다....머리속이 복잡....아니 미로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멍청이처럼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했다. 이 사건 다소 논리적을 빈약한 주장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변호사로서 과연 이런 주장을 해도 되는 것일까...하는 그런 낯뜨거운 사건이랄까^^;;; .......그러나 어찌어찌 그렇게 마치고 나니 5시30분이 넘어선다....

하루가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졌다. 바람에 춤을 추는 막대인형처럼 이리저리 이끌려 춤을 추다가 바람이 빠져버려 힘없이 사그라지는 느낌이랄까....온몸이 힘이 빠지고 피곤했다.

  금요일은 오후에 춘천재판이 있었다. 그렇게 부담은 없는 사건이었으나, 의뢰인이 필요한 증거를 준비해오지 않아 공전이 될 사건이기에 재판부에 한기일만 더 잡아달라고 사정을 해야만 하는 사건이었다. 춘천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의 가을하늘은 가을하늘의 청명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목요일의 고단함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상쾌한 공기로 잊혀지는 듯 했다.

 

  재판을 무사히 마치고 다시 서울로 향하던 중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밭을 보았다. 청명한 가을하늘에 하얀소금을 뿌러놓은듯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왜 문학작품에 그렇게 아름답게 메밀꽃을 묘사했는지 알 것 같았다.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과 청명한 가을하늘의 유혹에 나는 결국 가던 길을 멈췄다. 콧등을 스치우는 상큼한 바람의 내음, 유유히 떠가는 하얀 구름사이로 푸르른 얼굴을 비치우는 하늘...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일어섬이요,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의 사그라짐이라고 했던가...나는 무슨 걱정을 그렇게 많이도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게 유유히 구름을 보내며 나에게 근심을 덜어놓으라 하고, 이름모를 풀꽃은 향긋한 꽃내음을 풍기며 나에게 행복하라 하는데,, 나는 세상의 고뇌를 모두 짊어진듯 걱정과 근심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일주일의 고단함이, 소박하지만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의 유혹으로 사라지는 듯 했다.

법원은 휴식중......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2. 8. 7.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법원은 7월말에서 8월 초까지 약 2주간의 휴정기를 갔는다. 이 기간 동안 판사 및 법원 공무원이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이 기간에 맞추어 변호사들도 여름휴가를 떠난다. 드디어 변호사들이 꿈꾸어 오던 법원 휴정기기 시작되었다. 올해는 7월 30일부터 8월 11일 까지 약 2주간의 법원 휴정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7월 30일부터 약 일주일간의 휴가를 얻었다. 1년동안 오직 이 일주일간의 휴가만을 기대하며 살아 온 것처럼 휴가가 다가올수록 가슴이 설레였다. 휴가 일주일 전부터는 다소 나를 짜증스럽게 만드는 의뢰인이 찾아와도 싱글벙글 웃으며 친절하게 상담을 하였고, 촉박하게 재촉하는 의견서를 작성하기 위해 밤 10시가 넘어서 까지 사무실에 남아 있어도 즐거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휴가 전주 금요일..... 오후 4시 인천재판을 마치고 나는 바로 집으로 고고씽이다. 나를 괴롭히던 두꺼운 사건 기록들이여 이제는 안녕, 이제 너를 다시 보지 않으리.....나에게는 푸르른 제주도 바다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일찍 끝날줄 알았던 인천재판은 뜻밖에 밀려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끝나고, 퇴근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출발하는 나의 애마는 질주본능을 느끼지 못하고 서울로 기어만 간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휴가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후 8시가 다되어서 집으로 도착, 사랑하는 아내와 10개월 된 딸아이가 나를 반긴다. 이것이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본래 이번 휴가는 큰맘먹고 유럽으로 날아가 런던 올림픽의 영웅들도 응원하고 싶었건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원대한 유럽원정의 꿈은 날아가고 제주도로 향했다. 그래도 나는 즐겁다. 푸른 바다의 시원함과, 맛있는 음식들,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겨주었고, 일년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날아만 가는 것 같았다.

  3박 4일 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이제부터 슬슬 다시 사무실에 나가야 할 날이 얼마 안남았다는 지옥같은 현실이 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아직 여유는 있다. 쇼파에 늘어져 올림픽 경기를 보고,,,졸리면 자고,,,,배고프면 먹고,,,,,, 이 얼마만에 누리는 여유란 말인다. 영원히 이 시간이 지속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달콤했던 일주일간의 휴가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월요일 요란스럽게 울리는 핸드폰의 기상소리가 왜이렇게 지옥의 종소리 처럼 느껴지는지....결국 사무실에는 지각을 했고...사무실 책상에는 결제 서류가 산더미 처럼 쌓여 있고, 갑작스럽게 다음주 까지 제출하라는 석명준비명령은 왜 이렇게 많이 날라왔는지,,,아무래도 다음주 광복절에는 출근을 해야만 할 것 같구나....

 나의 일주일의 휴가는 그렇게 꿈처럼 사라져 갔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인가..우울함의 그림자가 나를 하루종일 짓눌렀던 검은 월요일이다.

 

  6월 들어 너무 바뻐 쉴 틈이 없었다. 평일에는 최소한 11시까지 사무실에서 두꺼운 기록과 씨름하다 녹초가 되어 퇴근, 그래도 일이 밀려 주말에도 출근.......하지만 밀린일의 양은 줄어 들지 않는다. 간신히 재판 기일 전날에 서면을 작성하여 마감에 쫓기는 작가처럼 법정에 당일 제출하는 일들이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하루살이 인생같은 느낌이랄까....

  왜 이렇게 바빠진 것일까....그래서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수를 세워보니..이건 뭥미.....75건......지금까지 내가 담당하고 있는 사건수를 정확히 세어보지 않고 그져  40건이나 50건 사이겠지 하고 추측만 했었는데,,,75건이란다......75건...내가 우리법인 탑이다. 사건 담당수로는.....;; 이제야 내가 그토록 바빠진 이유를 알겠다.....보통 한 변호사당 적절한 사건수는 30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좀 많이 배당받는다 싶으면...40건, 50건.....그러나 난 그 한계치를 뛰어 넘은 75건이란다.........그러니까 당연히 바쁠 수 밖에 없겠지....

당장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머리속에 가득찬 사건들의 향연을 끝내고, 에메랄드 빛 몰디브 해변에 내 몸을 맡기고 싶건만, 난 여전히 날 괴롭히는 사건들과 함께 고통스러운 왈츠를 추고 있다.

  오후에 있는 의정부 재판을 마치고 재빨리 사무실에 들어가 밀린 서면을 쓰려고 했건만, 2시 30분 예정인 재판은 앞에 사건진행이 밀려 3시 20분이 넘어서야 끝나고, 부랴부랴 차를끌로 사무실로 향하였건만,오늘따라 길은 왜 이렇게 막히는 것인가?, 짜증이 밀려오고 내 고운 입속에서 나도 모를 아름다울 쌍욕을 뱉어 낸다. 간신히 사무실 근처에 도착하니 벌써 5시가 다 되어 가고, 몸도 마음도 이미 지쳤다. 일할 의욕도 사라졌다.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핸들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이번주는 주말에 출근 안할거다라고 굳게 다짐했다. 물론 다음주 밤을 세워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꿈속에 아름다운 몰디브 해변이 날 맞이해주길 굳게 기원한다. 출렁이는 파도소리에 스르르 잠이 드는 나의 낙원 몰디브여....언제 나의 낙원은 길을 열여 줄 것인가, 저 어둠의 괴물같은 사건들로부터 나를 구원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