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이 부러진 채 사법시험 본 사연

고시촌이야기 2011. 1. 5. 07:4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고시촌에 입성하여 그 해 겨울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 비록 경제적 환경이 넉넉하지 못하여 학원은 수강할 수 없었지만 강의테입으로 대체하여 유명강사의 강의도 들었고, 미니원룸과 독서실을 왔다갔다하며 단조로운 생활을 이겨내고 가능한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으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인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이전처럼 긴장감과 두려움은 덜했다. 오히려 때로는 시험을 빨리 봐서 내 실력을 확인하고 싶기도 했다.(물론 아주 잠깐이지만,,,,)

 그리고 어느덧 매서운 겨울 바람이 잠잠해지고 봄의 기운이 찾아 올 무렵 사법시험1차시험 전날이 되었다. 그해 시험은 2003년이었다. 시험을 보고 나서 법률저널 게시판에 가보니 나와 똑같은 사연을 가진 사람이 글을 올린 것이 있어 다소 참 우습기도 했는데 법률저널 게시판에 보니 안경이 부러져 안경없이 시험을 보았다고 하소연 한 글이 있었다.

그런데 나도 그 해 시험에서 똑같은 경험을 한 것이다.난 중학교때부터 안경을 썼기 때문에 눈이 상당히 나쁘다. 흔해 말해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장님 수준이다. 그러한 내가 그 해 사법시험 1차시험을 안경없이 본 것이다.

사연은 이렇다. 시험전날 나는 독서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밤 10시경에 숙소인 미니원룸으로 왔다. 역시 시험전날이라 무척이나 긴장되었다. 숙소에 들어와 대충 씻고 내일 시험장에 가지고 갈 책 등 준비물을 정리하고 나니 11시가 다 되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영 오지 않았다. 시험장에 갈려면 그래도 7시경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영 잠이 오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시험장에서 실수하면 어떡하지,또 떨어지면 하는 잡생각만 머리속에서 맴돌고, 또 눈을 뜨면 얼릉 자야지 하며 다시 눈을 감고를 반복하며 시간은 12시, 1시,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영 잠이 오지 않아. 군대시절 이후 끊었던 담배를 물고 창문을 열고 한눈에 내려보이는 신림동 전경을 바라보았다. 고요함이 오히려 더 나의 잠을 방해했다. 그렇게 뒤척이다 난 안경을 침대아래에 두고 새벽3시경에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6시경에 눈을 가까스로 떴다. 잠을 못자서인지 머리가 빙빙돌고 컨디션이 별로 안좋았다. 그리고는 무심결에 침대 아래 방바닥을 밟았는데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밟히고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경이 두동강나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절단나버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들고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상황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주 허탈한 웃음....순간 든 생각은 올해 시험은 또 이렇게 어이없이 망치는 구나 하는 것과 모르겠다.시험보러 가지말까...등등의 생각들이 머리속을 스쳐갔다.

잠시 놓았던 정신줄을 다시 잡고 방을 뛰쳐나가 안경점을 찾아 갔지만 이른 아침이 문연 안경점은 없었다. 마지막으로 편의점을 찾아가 순간 접착제를 구해 와서 절단난 안경을 접착시키려고 했지만 절단면이 너무 매끄러워선지 안경은 야속하게 계속 떨어져 나갔다.

시간은 계속 흘렀다. 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이제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시험을 포기할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일단 시험장에 가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뿌옇게 초점이 잡히지 않은 채 보였다. 버스번호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택시를 잡아 타고 가야 했는데, 그때서야 시험당일 날 신림동에 보이는 택시들은 대부분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붙잡는 택시마다 예약되어 있다고 승차를 거부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가는데 당황스러웠다. 간신히 버스정류장에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 버스를 타고 신림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탔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하철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을 주의깊게 들어야 했다. 그때서야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동안 지금 내모습이 너무나 황당하여 계속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간신히 시험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시험은 시작되었다. 시험지도 잘 안보였다.가능한 시험지와 눈을 밀착시켜야만 했다. 그리고 글자한자한자를 세심하게 보며 시험을 치루었다. 그때의 모습이 시험감독관도 이상했는지 세심히 나를 관찰했다.

한자 한자 집중해서 보아야 했기 때문에 피로감이 더했다. 오전 시험을 마치고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담배 하나를 사 군대제대 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폈다. 역시 식후에 먹는 담배맛이 제일이었다.솔직히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점심시간에 다시 급하게 안경을 맞출 시간은 있었지만 그냥 만사가 귀찮았다. 이미 의욕상실이라고 할까....

 그리고 다시 오후 시험을 보았다. 자포자기의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험에 대한 긴장감도 이미 사라졌다. 긴장감이 사라지니 어려운 문제 아리송한 문제도 그냥 맘편하게 고민없이 답이라고 생각되는 지문에 정답을 체크했다. 역시 시험은 긴장없이 보아야 해 하면서 말이다.시험을 잘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다시 한번 올림픽정신으로 끝까지 해보자 뭐 그런 생각이었다. 시험지와 다시 내 눈을 밀착시키고 한자한자 글자를 세어가며 시험을 보았다.

악몽같은 하루가 그렇게 끝났다. 시험장을 나오며 다시 담배를 물며 하늘을 보았다. 하늘도 잘 안보였다. 내 불투명한 미래처럼 모든 것이 흐리멍텅했다. 가까스로 신림동에 와 안경점에 갔다. 그리고 한풀이라도 하듯 내 능력을 뛰어 넘는 비싼 안경을 샀던 기억이 있다.

 작은 내 안식처 미니원룸에 와 그냥 잠이 들었다. 채점이고 뭐고 할 기력이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너무 웃겨서 웃음만 나왔다. 지금생각해도 웃긴 상황이 아니던가. 며칠후 가답안을 보고 채점을 해보긴 했다. 그러나 점수가 생각보다 잘나왔다. 정확히는 기어나지 않지만 81.5점인가 맞았던 기억이 있다.

그당시 컷트라인이 내 기억에는 82점이었을 것이다.그런데 81.5점이었다. 아마  그 당시 합격자 발표전까지 컷트라인 공방이 꽤 있었던 기억이 있다.당시에는 좀 아쉬웠다. 만약 안경을 끼고 정상적인 컨디션에서 시험을 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 나의 점수대가 가장 불안한 점수대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불합격이었을까?

아니. 나는 합격했다. 컷트라인이 82점인대 어떻게 합격했냐고? 안경을 안쓰고 어려운 상황에서 시험을 끝까지 마친 것에 대해 법무부가 이를 참작하여 합격을 시켜주었다. 무슨 말이냐고..... 당시 경제법을 선택과목으로 시험을 보았는데 경제법 한문제가 복수정답이 인정되어 0.5점이 올라가버렸다. 그래서 정확히 컷트라인 82점으로 붙어버린 것이다.

한마디로 꼴찌로 1차시험에 합격했다.(물론 다음해 2차시험에는 어이없이 떨어졌지만...,,) 컷트라인으로 붙는 짜릿함은 아무도 모른다. 마치 수석으로 붙은 느낌이라고 할까....^^ 안경이 부러진 어이없는 상황에서 시험으로 포기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시험을 보고 드라마같이 꼴찌로 합격을 해버렸다.지금생각해도 내 인생의 역사 중에게 가장 재밌는 상황중에 하나이다.

다시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무엇인가 결과물이 생기는 모양이다. 우리 다시 힘들고 지금은 괴롭더라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말고 도전합시다. 오늘은 어둡고 힘들더라도 내일은 태양이 다시 뜨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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