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남자 고시생들의 무덤

고시촌이야기 2010. 12. 17. 07:46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10월 27일 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많은 사법시험 준비생들이 숨을 죽인 가운데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특히 로스쿨 도입으로 인해 사법시험 합격자 인원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점점 응시 기회가 줄어드는 만큼 초조함이 더해갔을 것이다.

 이번 시험 합격자의 특성은 여성 합격자의 비율이 처음으로 40%를 넘겼다는 것이다. 행정고시에 이어 여풍이 지속되었다. 이번 행정고시에 있어서도 여성합격자가 총 143명으로 44.7%를 차지하며 여성합격자가 강세를 보였는데 사법시험에 있어서도 전체 합격자 800명 중 여성합격자가 337명으로 42.1%를 차지하였다. 


 여성합격자가 40%를 넘은 것은 이번시험이 처음이었다. 여성합격자가 이렇게 각종 고시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분석이 다수를 차지하나 일각에서는 2010년에는 월드컵 등 스포츠 행사가 많아 남자고시생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전국민이 월드컵 열기에 빠졌던 2002년에 여성합격자 비율은 처음으로 20%를 넘어 23.9%를 차지하였으나 다음해에는 21%로 다소 하락하였다. 그러다가 2006년 월드컵에서는 여성합격자가 37.5%를 차지하며 증가하다가 월드컵 다음해인 2007년에는 하락하였다.그리고 2010년 월드컵에 다시 상승하여 처음으로 40%를 돌파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월드컵 저주가 다시 실현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월드컵 저주란 월드컵, 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행사가 있는 해에는 유독 남자고시생의 합격률이 저조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남자고시생들의 특성상 스포츠를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고시생들이 여전히 박지성등이 활약하고 있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엄리그가 있는 날에는 만화방이나. 비디오방 등에 삼삼오오 모여 밤을 세워 티비를 보는 경우가 흔하다.

 단순한 클럽경기에도 이렇게 열광하는데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월드컵경기에는 얼마나 열광하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할 것이다.

 실제로 스포츠광인 후배인 B군은 2006년도에 사법시험 2차시험을 치루었다. 1차 시험에만 3번이나 떨어지고 2005년도에 처음으로 1차시험에 붙고 후배는 최선을 다해 2차시험을 준비했다. 주말에도 잠을 제대로 못자며 그야말로 눈만 뜨면 공부에 집중했다.

 그리고 결전의 2006년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배는 연대에 시험장이 걸려 일찍 시험장 근처로 숙소를 옮겨 컨디션을 조절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시험을 2주정도 남겨놓고 연대근처의 하숙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런데 전국민의 축제 2006년 월드컵이 시작된 것이다. 후배녀석은 평소에도 야구와 축구에 열광하는 녀석이다. 특히 축구는 스페인의 프리메가리그 부터 잉글랜드 리그까지 유럽의 빅리그 소속 유명선수들의 프로필을 모두 외울정도로 광적인 팬이다.

 2006년 6월 13일 경에 약 사법시험 2차시험을 일주일 정도 남겨놓고 대한민국과 토고와의 첫게임이 펼쳐졌다. 후배녀석은 첫경기이고 아직 시험이 일주일남았고, 2시간정도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컨디션 조절에도 좋다는 생각으로 하숙집의 하숙생들과 같이 거실에서 치킨에 맥주를 마시며 대한민국을 목이 쉬어라 외치며 열렬히 응원했다.후배녀석의 응원에 힘입은 것인지 대한민국은 토고를 이기며 원정에서 첫승리를 따냈다.

시험을 일주일이나 남겨두었으니 뭐 이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사단은 6월19일 정도(?)에 치루어진 대한민국과 프랑스전에 이루어졌다. 당시 2차시험이 6월 20에 시작되기 때문에 스포츠광인 후배녀석도 더이상은 안돼겠다는 생각으로 연대 도서관에 자리를 잡고 마지막 정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새벽이 되어 처량하게 지는 달빛을 바라보며 하숙집으로 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잠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 왔다는 것에 대한 긴장감 때문에 아니고 새벽에 열리는 프랑스전때문이었다.

내가 보지 않아도 대한민국이 잘해낼 수 있을까? 최소한 비겨야 하는데, 박지성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잠깐 잠이 든 후배녀석은 와 하는 함성소리에 잠이 깨어버렸다. 하숙집 거실에서 프랑스전 응원이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후배는 잠에서 깨어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거실로 달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열렬히 학숙생들과 어울려 응원했다. 녀석의 혼을 다한 응원때문인지 대한민국은 최강 프랑스와 비기는 기적을 연출했다. 녀석은 너무 흥에 겨워 잠에 들지 못하고 하숙생들과 수다를 떨다 오전 10시경에 잠이 들고 그리고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찌는 오후 늦게야 일어났다.

 다음날이 바로 2차시험 시작인데, 후배는 이제야 정신을 차렸지만 언제 두꺼운 교과서 2권을 봐야 할지 앞이 막막하고 이미 전의를 상실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2차시험 4일 내내 허탈함에 사로잡혀 시험을 치지 못했고 결국 그해 2차시험에 헌법 과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다행히 후배녀석은 다행히 다음해 3시로 2차시험에 붙어 지금은 대형로펌의 유능한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아무튼 가끔 만나는 후배녀석은 지금도 그때의 이야기를 무슨 무용담처럼 이야기 한다. 우스운 것은 그렇게 시험을 망치고도 2차시험이 끝나는 날 열렸던 마지막 경기 스위스전을 신림동 고시촌의 만화방에서 치킨과 맥주를 사들고 보며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고시생들중에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월드컵은 사법시험 2차시험이 치루어지는 6월달에 개최되어 시험일정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스포츠에 열광하는 남자고시생들을 힘들게 한다.

 아마도 이러한 여러가지 것들이 겹쳐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는 남자고시생의 합격률이 저조하다는 월드컵의 저주라는 말이 생긴 듯 하다. 하지만 어찌보면 다 핑계일 수도 있다. 월드컵이 열리던 그렇지 않던 여성 합격자 비율은 지속적으로 늘어가는 추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