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주거공간의 변천사

고시촌이야기 2012. 2. 10. 10: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는 아직도 수많은 고시생들이 각종 시험을 준비하며 거주하고있다. 고시촌하면 의례 생각나는 부분이 고시원일 것이다. 티비 드라마 등에서 고시생은 항상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고시원의 조그마한 방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낡은 추리닝을 입고 책상에 앉아 두꺼운 이른바 육법 전서를 하루 종일 외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이제 신림동 고시촌에서 고시원은 점점 사라져가는 과거의 유물이 되어가고 있다 고시생들을 낡고 허름한 고시원에서 거주하지 않고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원룸이나 오피스텔에서 거주한다. 

  신림동 고시촌이 어떻게 형성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인 90년대 중반에만 해도 고시촌에 거주하는 고시생들은 대부분은 하숙집이나 고시원에 거주하였다. 고시원의 경우에는 대부분 방은 규모가 아주 작았고, 화장실이나 샤워 시설은 당연히 공용이었다. 그리고 고시원의 경우 고시원 주인이 고시생을 위한 식당을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하숙집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 한달에 약 30여만원을 내면 밥과 숙식이 제공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고시생들은 항상 공부때문에 체력이 딸리기에 고시원 주인 아주머니들은 고기 등 고열랑 음식을 고시생들에게 수시로 공급해주었다. 대학에 갓 입학한 나는 고시 공부를 할 생각도 없었고, 법으로 밥을 벌어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시촌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당시 대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할 때 같이 하숙집에 있었던 형이 갑자기 행시 준비를 하겠다며 신림동 고시촌으로 떠났기 때문에 몇번 그 형이 거주하던 고시원을 찾아 간 적이 있었다.

  당시 그 형을 찾아 가면 고시원 주인집 아주머니는 나에게도 푸짐한 밥상을 차려주었던 그런 기억이 있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아직은 인정이 남아 있던 시기이다. 그때는 그렇게 신림동 고시촌에 고시원들이 자리잡고 있었던 시기이다.

  더불어 고시촌의 고시원 생활이 답답하다며, 지방의 풍경이 좋은 절을 찾아가 공부하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절에는 의례 고시생 몇명씩이 꼭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근처의 절로 소풍을 갔는데, 고시생 몇명이 어린 여선생님을 보자, 여선생님에게 그렇게 말을 걸려고 애쓰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합격생을 배출하기로 유명한 즉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인 유명한 절들은 항상 고시생들로 북적거렸다.



  하지만 고시원의 영광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새롭게 유입되는 젊은 고시생들은 풍요로운 삶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지 아니하는 고시원을 선호하지 아니하였고 그들만의 공간이 보장되는 이른바 원룸형태의 집들을 원했다. 쾌적한 환경을 선호하는 젊은 고시생들의 유입으로 고시원은 급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고 고시촌에는 원룸이나 오피스텔 등의 속속 들어섰다. 그리고 정보화 시대를 맞이하여 각종 시험정보 최신판례 등의 업데이트와 단절된 절도 고시생들이 더이상 찾지 않게되었다.

  원룸형태의 주거공간은 다 아는 것처럼 하나의 공간에 방, 화장실, 간단한 조리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함께 갖추어져 있어 개인공간과 쾌적함을 중요시하는 고시생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아주 작고 협소하기 때문에 이른바 '미니원룸'이라고 불리웠다. 삶이 더 여유로운 고시생들은 근처의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전세로 얻어 윤택한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고시원은 그렇게 고시촌의 중심적인 주거공간의 위치를 넘겨주고, 신림동 고시촌 산꼭대기로 밀려났다. 그러나 아직도 고시원은 고시생들의 유용한 공간이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오랜기간 고시준비로 경제적 형편이 여유롭지 못한 이른바 장수 고시생들에게는 고시원은 아직도 저렴하게 거주하며 공부할 수 있는 유용한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 신림동 고시촌은 이제 서서히 고시생들이 사라지고 있다. 사법시험은 조만간 사라질 전망이고, 행시나 외시도 그 제도의 변경으로 우리가 불렀던 고시생들의 숫자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이다. 따라서 신림동 고시촌의 원룸이나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도 고시생에서 저렴하게 방을 잡기를 원하는 직장인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고시촌의 메카로 자리잡았던 신림동 고시촌이라는 이름도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