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 전까지만 해도 즐거운 금요일이었다. 다소 부담스러웠던 오전 재판은 새로운 증
거를 추가하여 밤을 새워 쓴 서면 덕분인지 우리측에게 다소 유리하게 진행되었고, 오후에 증인신문이 예정되어 있던 재판은 상대방이 기일변경을 신청해와 한 시름 덜게 되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금요일까지 제출할 의견서의 마무리만 하면 즐거운 주말이 나를 반기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의견서를 마무리 짓고 달콤한 커피한잔과 김광석의 애절한 음악을 들으며 오래간만에 감상에 젖어 있는데, 직원이 급작스럽게 들오오더니 내일까지 의견서를 낼 것이 있다며 질의서를 들고 왔다.

내일까지? 그렇다면 오늘 일찍 퇴근하기는 ;;, 그러나 쉬운 의견서일지도 몰라 하며 바라본 질의서, 이런 젠장 기업회생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생소한 분야의 질의서였다.
이런제기랄...어떤 놈이야 나의 소중한 금요을 저녁을 빼앗아 간 질의서를 보낸놈이 라는 욱하는 그 무엇인가가 가슴 깊숙한 곳에서 올라왔다.

 하지만 이성을 찾아야 했다. 적어도 토요일에는 회사에 나와서는 안된다. 나의 소중한 토요일까지 빼앗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질의서를 읽고 또 읽어 사실관계를 정리했다. 그러나 답을 내리가가 정말 힘들었다. 왜냐면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니까...;;

  기업회생 관련 서적을 이제 탐독해야했다.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이것 저것 관련 서적을 뒤지고 정리하며 계속 되었고, 어느정도 답을 정리할 수 있겠구나 하니, 벌써 저녁 9시가 넘어갔다. 사무실에는 변호사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적어도 의견서를 던져준 직원은 남아있어야 하는 거 아냐 라고 투덜대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커피를 타 마셨다. 달콤하게만 느껴졌던 커피가 이제는 왜 이렇게 쓰게 느껴질까....

자료를 정리하고 이제 의견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자료를 대충 정리하고, 초안을 짜 놓았으니 금방 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견서를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또 다시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며 해결책을 찾아내고 하며 의견서를 완성하니 시계의 시침은 자정을 넘어가고 있었다.

의견서를 메일로 관련 기관에 보내고 긴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안에서 김광석의 마지막 앨범에 실렸단 '부치지 않은 편지'를 볼륨을 크게 하여 틀어놓고 목이터져라 따라 불렀다. 내 소중한 금요일 저녁을  빼앗아간 얄미운 의견서, 김광석의 노래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처량하고 슬프게 들리는 것일까? 야근없는 유토피아 같은 직장은 없는 것일까? 이럴때 개업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은 요즘 어려운 법률시장에 회사에서 안 짤리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숨죽이고 살아야만 할 뿐;; 그래도 나에게는 소중한 토요일, 일요일이 보장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법원에서 느끼는 불황의 그림자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12. 20.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는 생각외로 오래간다. 미국을 벗어나 이제 유럽을 휩쓸며 전세계를 불황의 깊은 늪에 빠지게 만들었다.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수출을 대상으로 하는 몇몇 대기업은 불황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게 직원들에게 연말에 두둑한 성과급을 지급하며 돈잔치를 벌이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민들은 긴 불황의 늪에서 연말의 분위기 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며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불황의 깊은 그림자는 법원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재판을 하러 법정에 앉아 담당 사건을 준비하며 법정을 바라보면, 많은 이들이 카드빚을 갚지 못하여, 채권양수기관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기도하고, 어려운 경제적 형편상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보증기관으로부터 보증을 받아 사업자금을 마련하였으나, 사업의 부진으로 부도를 내고 보증기관으로부터 구상금을 청구당하는 빈번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채권자로서는 채권회수를 위해 당연히 소송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하지만 간간이 법정에서 고령의 노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들의 부탁으로 연대보증인 등이 되어 법정에 출석하여 그들의 사정을 하소연하는 모습을 바라볼 때 가슴이 아려오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고령의 노인의 꾸부정한 모습으로 법정에 출두하는 모습을, 아들의 바라본다면 그 심정이 어떠할까?

정부에서는 무역1조달러를 달성하였고,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섰다며 호들갑 떨고 있지만 무역1조달러의 혜택은 몇몇 대기업에 국한되는 듯하다. 법원에는 여전히 개인회생이나 파산을 신청하는 이들로 북적이고, 불황의 그늘을 견디지 못한 한때는 유망 중소기업이었던 기업이 파산신청을 하기위해 법원에 온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개인회생을 문의하는 전화를 하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다.

경제난으로 회사에서 쫓겨나거나, 명예퇴직을 당한 아직 한창인 이들은, 자의반 타의반 자영업의 세계로 들어오고 결국 자영업의 공급과잉으로 많은 이들이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고 금융기관이나 보증기관으로부터 소송을 당하고 아들의 빚보증을 했던 백발의 어머니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행방불명된 아들 대신 법원에서 그들의 사정을 하소연한다.

얼마전에는 법정에 아직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아이를 대동하고 사라진 남편의 빚을 탕감하여 달라고 울며 하소연 하는 젊은 여성을 보았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어머니의 하소연을 바라보는 어린아이는 무엇을 생각할까.


법원 앞은 많은 이들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며 1인시위를 하고 있고, 오늘따라 법원은 유난히 춥다. 무역1조달러의 달콤한 과실은, 적어도 법원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눈앞에 보였다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닌가 한다.

변호사가 된 것을 후회할 때...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12. 4. 09: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어느덧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지도 11월이 되어간다. 첫 재판에서의 긴장되었던 순간이 아직도 머리속에 생생하지만 이제 긴장되었던 법원도 제법 익숙하게 다가온다.

낯선 것들과 수시로 계속 되는 야근과 가끔씩 즐겁게 나를 부르는 주말출근, 밤샘근무가 어느덧 익숙해졌지만 가끔씩 괜히 내가 변호사가 되었구나 하는 후회와 회의감이 들때가 있다.

1. 쓰라린 패배의 경험

  변호사는 결국 소송의 승패로 말한다. 아무리 재판의 과정에서 치밀히 변론하고, 의뢰인에게 친절하였더라도 재판의 결과에서 지고 만다면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면목이 없을 뿐더러 스스로 자책하게 된다. 담당사건이 그래도 어느정도 패배가 예측되는 사건이라면 그 결과의 크게 아픔을 겪지 않겠지만,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나 이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패배의 결과가 나왔을 때에는 참으로 당혹스럽고 슬프다. 마치 프로야구에서 다 이긴 경기를 망쳐놓은 마무리 투수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중요하고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경우 판결 선고기일이 다가오면 올수록 점점 잠을 잘 수도 없고, 때로는 재판에서 어의없이 지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나같은 경우는 얼마전에 재판에서 패소하면 더이상 담담 의뢰인이 우리법무법인에 사건을 주지 않을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는데 선고기일이 다가오면 올수록 조금만 더 열심히 변론준비할 껄, 사실조회라도 더 해볼껄 그랬나... 아 참고서면에 이걸 좀더 강조해서 썼어야 했는데 등등 후회가 밀려오기도 하고, 밤에 잠이 오지 않는 것은 다반사였고, 회사에 출근해서도 그 사건 생각에 다른 업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선고기일에는 마치 사법시험 2차시험 발표를 기다리는 고시생이었던 시절의 두근거림과 긴장감이 나를 짓눌렀다. 다행히 승소판결을 받았지만 앞으로의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을 수도 없이 해야 할 것이기에.....아무튼 쓰디쓴 패배의 아픔을 맛보는 순간 변호사로서의 깊은 회의감과 후회가 밀려온다.

2.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변호사의 업무는 많은 편이다. 우리사회의 경우는 보통 저녁 9시까지는 기본으로 일하고 일이 밀려있는 경우는 밤샘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주말출근도 많이 해야 한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이런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대형펌의 경우는 더 하다. 새벽근무가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오전에는 원주재판을 갔다가, 오후에는 천안으로 가서 2시간동안 당사자들과 사건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조정절차를 진행하였으나 조정은 불성립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저녁 7시...그리고 책상에는 결재해야 할 서류와 당장 내일까지 처리해야 할 의견서 2통과 준비서면이...그럴 보는 순간 깊은 한숨과 함께.....내가 왜 변호사를 했을까 하는 깊은 후회가 밀려온다...

3. 의뢰인과의 소통의 어려움

의뢰인과 소통은 변호사로서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의뢰인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해야만 사실관계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보다 재판진행을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은 의뢰인과 소통이 어려울 때가 있다. 재판에 있어서 서로 생각하는 관점이 틀리고 의뢰인이 무리하게 법리에서 벗어나는 주장을 하거나, 변호사를 믿지 못하는 경우에는 참 변호사로서 난감한 경우가 있다.

4. 사건을 해결할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을 때


사건자체가 어려운 사건인 경우 사건을 해결할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변호사는 고민한다. 상대방의 준비서면은 우리의 약점을 잘도 찾아서 들어오는데, 우리는 이에 대응할 증거도 없고 오직 새로운 법리만을 개발하여야 할 것인데 뚜렷한 답을 찾을 수 없을 때 변호사는 괴롭다. 점심을 먹으로 가서도 항상 사건이 머리속에 빙빙 맴돌고, 잠을 자려고 누워도 사건은 머리속을 떠나지 않고 내 머리속을 유유히 유영하며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가끔 회사에서 선배 변호사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데 마치 좀비들 처럼 무표정으로 밥을 먹는 경우가 있는데,,,,이런 경우는 모두 머리속에 저마다 하나의 사건을 채워놓고 사건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이다.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 사건은 변호사를 좀비로 만들어 놓는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되지는 않았지만, 변호사의 업무는 생각보다 스트레스도 많고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변호사로서의 일이 항상 힘들고 회의감만이 밀려오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사건을 노력끝에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 의뢰인들의 억울한 사정을 해결해주면 그 순간은 내가 세상을 모두 얻은 것처럼 깊은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초보변호사에게 앞으로 어떠한 태풍이 닥쳐 올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내가 정한 가치관에 부합하는 길로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 것만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변호사들의 휴가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7. 28. 09:2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이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지도 6개월이 넘어서고 있다. 이제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법정도 적응이 되고 있다. 6개월의 기간동안 어려운 사건에서 짜릿한 승리의 기쁨도 보았고, 뼈저린 패배의 아픔도 느꼈다.

  변호사의 업무는 과중한 편이다. 보통 변호사들은 오전 9시나 10시경에 출근해서 오전 오후는 재판준비나 재판에 참석하고 재판을 마치고 와서는 다시 재판을 준비하기 위해 서면을 쓰거나 기록을 분석한다.

  나같은 경우는 보통 오전 9시 30분 경까지 출근해서 기일이 잡힌 재판에 참석을 하고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에 오면 법률자문 계약을 체결한 회사에서 법률자문 질의를 해온 질의서가 2건정도 와 있어 급하게 의견서를 작성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게 의견서를 작성하면 어느덧 퇴근시간인 오후 6시가 다가오지만, 칼퇴근은 꿈꿀 수 없다. 다음기일 재판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6시에 맞추어 동료 변호사들과 저녁식사를 급하게 하고 다시 사무실에 와 다음 재판을 위해 상대방이 제출한 서면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반박서면이나 새롭게 들어온 사건의 의뢰인과 상담을 하고 소장 등을 작성한다. 

나의 실질적인 업무는 실질적으로 오후 6시 이후에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과시간에는 재판진행, 기타 잡무 등으로 서면 작성 등의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야근을 시작하면 운좋게 일찍 일을 마치면 저녁 9시, 늦게까지 일하면 보통 10시 혹은 11시경에 업무를 마칠 수 있다. 급한 업무가 있으면 당연히 퇴근시간은 더욱 늦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도 업무가 밀리면 주말에도 출근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변호사에게도 여름 휴가는 있다. 변호사의 여름휴가는 법원의 여름휴가와 일치한다. 보통 법원의 경우 7월 마지막 주와 8월 첫째 주, 즉 2주간에 걸쳐 판사 및 직원들의 여름휴가를 위해 대부분의 재판을 쉰다. 즉 여름휴가를 위한 휴정기간이다. 이에 맞추어 변호사들도 대부분 휴가를 잡는다. 각 로펌 변호사들은 2개의 팀으로 나누어 일주일간 휴가를 잡는다. 

  변호사들이 1년 중 유일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는 출근을 하여도 법원에 재판이 없기 때문에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른바 칼퇴근도 할 수 있다. 아마도 변호사들이 1년 중 가장 기달려지는 시기가 이 시기가 아닐까 한다. 변호사들은 업무스트레스가 상당히 심한 편이다. 재판에서의 결과에 따라 의뢰인들의 일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재판의 진행과정에서 오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상 그 이상이다. 어려운 사건의 경우 항상 그 사건이 머리에서 맴돌고 어떻게 상대방의 논리를 깰까, 우리에게 보다 유리한 판례는 없을까 등등 사건의 잔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한 업무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변호사들에게 일주일 간의 휴가는 그 무엇보다 달콤한 것이다. 

   변호사들은 휴가 기간에 대부분 여행을 떠난다. 선호하는 지역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의 휴양지나 유럽 등등이다. 그러나 그 휴가 기간에도 갑작스럽게 기일이 잡히거나 하는 경우에는 휴가를 접고 재판에 참석해야 한다. 나같은 경우는 이번주가 휴가 기간인데 금요일날 급작스럽게 사전처분의 심문기일이 잡혀 재판에 출석해야만 한다. 보통 휴가 기간에 재판 기일이 잡히는 경우는 상대방 변호사의 동의를 받아 기일 연기신청을 하고 재판부도 변호사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기간임을 참작하여 기일 변경 신청을 허락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뢰인의 의사가 중요하다. 의뢰인이 조속히 사건을 종결시키기를 원하여 기일변경을 원하지 않는 경우는 당연히 재판을 진행할 수 밖에 없다. 금요일에 진행하는 사건도 의뢰인이 재판을 진행하여 줄 것을 원하기에 기일변경을 신청할 수 없었다.
 
  변호사들의 일주일 간의 휴가는 다른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래만에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일주일 간의 휴가가 끝나면 다시 밀려있던 폭풍같은 재판과 업무가 시작된다.

할머니의 아픔을 함께하는 변호사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5. 6. 10:04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징검다리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지만, 오후 내내 재판일정이 잡힌 나는 다소 짜증이 났던 하루였다. 간단한 공시송달 사건이지만, 여러개의 사건이 시간을 달리하며 잡혀 있었기에 오후시간 모두 법정에서 소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소송기록을 챙겨 무거운 마음으로 법정으로 향했으나. 머리속에는 여전히 사무실에 쌓여만 있는 복잡한 사건들이 빙빙 돌았다.

 오후 2시 30분 재판이어서 2시 20분 정도에 법정에 도착하니,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어서 그런지 변호사, 소송 당사자들로 붐볐다. 오늘도 재판이 늦게 끝나겠구나 하는 불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2시30분 사건은 3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리고 3시 15분 사건은 3시 40분이 넘어서 끝났다. 다음 사건은 4시 예정이었으나. 재판의 진행 속도로 보아 4시 30분이 넘어서 진행될 것이 분명해보였다.그래서 3시 15분 사건을 마치고 법정을 나와 자판기에서 쓰디쓴 커피한잔을 뽑아 잠깐 동안의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에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와 젊은 여성 한분이 법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 여성은 할머니에게 항상 밝은 웃음을 보이며,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걷기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부축해주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 그 할머니의 딸이나 손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사연으로 법정에 온 것일까? 하는 잠시 동안의 궁금증이 있었지만,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의 궁금증도 사라지고, 커피를 모두 마시고 기지개를 펴고 4시가 거의 다되어 다시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은 여전히 복잡했고, 4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3시 40분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무실에서 가져온 민법관련 서적을 읽고 있었다. 수많은 당사자, 변호사들이 재판을 진행하고 법정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그렇게 더디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4시 30분 경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에 온몸이 꼬이며 내 재판은 언제 진행되나 하며 지루해하고 있을때, 법정의 피고석에 휴식을 취하며 눈여겨 보았던 할머니와  젊은 여성 한분이 나왔다.

재판의 진행과정을 들어보니 할머니의 가족중 한명이 할머니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여 발생한 소송인 듯했다. 할머니를 부축해 피고인 석에 앉은 밝은 표정의 젊은 여성을 보고 재판장은 처음의 나의 생각처럼 할머니의 따님이냐고 물어보았다. 누가 보아도 젊은 여성의 할머니에 대한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딸이나 손자 등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젊은 여성은 법률구조공단 소속의 여성 변호사였다. 그 변호사는 우선 신용카드신청서 등 처분문서에 대해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하였고, 재판장은 다음기일을 잡고 재판은 끝났다.

  그리고 나의 간단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남은 한건을 위해 긴긴시간을 기다렸으나. 채 5분도 안되 마지막 사건의 재판 진행은 끝났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4시 5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서류가방에 피곤에 지쳐, 소송관련 서류를 넣고 법정을 나와 힘없이 걸어갔다. 여전히 황사의 영향으로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그런데 내 앞에 방금전에 보았던 할머니와 법률구조공단 소속 여성 변호사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변호사는 할머니에게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이것저것 재판 진행과정을 다정하게 설명해주었고, 재판의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도 다정다감하게 건냈다. 할머니는 연신 이렇게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표현을 했고, 변호사는 마치 딸처럼 다정하게 자신이 해야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법원에서 나와 아마도 할머니와 반대방향인 정문쪽으로 나와야 하는 듯 했으나, 할머니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에게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할머니를 부축하여 후문쪽으로 사라져갔다.

지루하게 진행되었던 재판에 다소 짜증이 났던 나는, 마치 모녀지간 같았던 할머니와 여성 변호사를 보며 마치 한여름의 짜증나던 무더위 속에 시원한 소낙비를 만난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그 여성 변호사는 진정하게 만족하는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변호사는 나에게 앞으로 나의 변호사의 삶에 대한 과제를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