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폭풍전야 같은 사법시험 전날(6월22일)

 드디어 대망의 사법시험 전날이 찾아왔다. 제 50회 사법시험 2차시험은 6월23일부터 26일까지 4일에 걸쳐 치루어졌다.드디어 피말리는 이른바 사시생들 사이에서 불리워지는 '지옥의 레이스'가 시작된것이다.

나는 현장적응을 위해 6월 20일 즉 금요일에 중앙대 근처의 베이스캠프 즉 미리잡아 놓은 원룸으로 이동을 했다. 그날 밤에 정리해놓은 책,옷몇벌,세면도구등 간단히 짐을 챙겨서 택시로 이동을 하는데 무엇인가 갑작스럽게 처량함이라고 해야할까 그런것들이 밀려왔다.

 마치 군대가기 전날밤의 그런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다시 가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그런 길을 떠나는것 같은 그런 묘한 느낌이었다.그렇게 다소 우울한 느낌을 받으며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짐을 대충 정리하고 방한가운데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데 무척이나 어색하고 낯선 기분이었다. 

 대학시절의 낙방경험.그리고 무작정 다시 도전해서 지금까지 온경험등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갔다.  물론 내년한번이 남았다고는 하지만 마치 절벽끝에 누가 나자신을 밀어넣어 더이상 밀려날곳이 없는 막다른 인생의 고비를 맞고 있는 느낌이었다. 나자신의 인생을 걸고 또하나의 커다란 도박을 벌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도무지 기분이 찹착하여 무작정 나와 중앙대로 향했다. 대학시절 재시를 볼때도 중앙대에서 시험을 보았기 때문에 눈에 익었다. 도서관이 어디인지도 알고 학교 식당도 알고 마치 모교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익숙했다. 중앙대 도서관 근처에 올라와 캔커피 하나를 자판기에서 꺼내 난간에 기대어 커피를 마시며 야경을 바라보며 내가 할수 있는한 최선을 다했다. 이제 마지막 힘을 내서 내가 준비한 모든 것을 쏟아 붇기만 하면 된다고 스스로 체면을 걸었다. 

 다시 원룸에 들어와 새벽녘까지 뒤척이다.간신이 잠이 든후 이른아침에 바로 중앙대 중앙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토요일날은 헌법을 정리했다.그동안 정리한 기본서를 바탕으로 이른바 눈도장 혹은 책을 스킵해야 한다.

 2차시험은 객관식 시험이 아니고 논술형 시험이기 때문에 즉 직접 자신이 글로 써야 하기 대문에 시험전날 그 두꺼운 기본서를 한번 대충이라도 읽지 않고 즉 눈도장을 찍지 않고 시험장에 들어가면 아무리 오래 공부했어도 답안지에 잘 현출이 안되기 때문에 밤을 새우는 한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고시생들이 시험전날에 기본서를 다보고 들어가려고 한다. 

 나같은 경우는 토요일에는 시험 첫째날 첫과목으로 보는 헌법 그리고 일요일에는 행정법을 보기로 마음먹고 헌법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동안 정리해온 과목들이고 하루의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밤 10시정도 되니까 대충 정리가 되었다. 그래서 책을 정리하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왔서 대충 씼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영 몸이 찌뿌등하고 온몸이 쑤시고 열이 나는것이 느껴졌다. 감기몸살에 걸려 버리고 만것이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걸린 다는 그 감기가 하필이면 시험전날에 걸려버리는 참 황당하고 어이없는 결과가 발생해버렸다.온몸은 쑤시고 열은 나는데 나 자신도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만 흘러 나왔다.

 그래도 시험이 바로 전날이니 가까스로 몸을 추스리고 약국에서 감기몸살약을 구해 입에 털어 넣고 약기운으로 중앙대 도서관에 앉아 버텼다.머리에서 열은 나고 온몸은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은것처럼 쑤셨지만 꾸역꾸역 그렇게 책을 보았다.

 어드덧 시간은 흘러 밤이 되었고 시계는 밤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행정법도 마무리가 되어가는것 같아 더이상 무리해서는 내일첫시험조차 포기하는 사태가 발생할것 같아 행정법 각론부분을 미쳐 다보지 못했지만 공부를 접고 터벅터벅 중앙대 도서관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 대충 씻고 잠자리에 누웠으나 몸은 피곤한데 잠이 잘오지 않았다. 머리속에서는 계속 오늘 보았던 행정법 책내용이 빙빙돌고 있고.몸은 쑤시고.걱정과 한숨은 계속 흘러나오고 그렇게 계속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6.긴장감과 혼란속에 시작된 지옥의 레이스(6월23일)

 드디어 결전의 날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신성초등학교에서 부터 수많은 검은색 모범택시.콜벤등이 이미 예약해둔 고시생들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서있을것이고 각종 고시학원에서 고시생들을 태우기 위한 전세버스 또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택시와 버스.그리고 결전의 시험을 치루는 고시생들로 뒤엉켜 고시촌은 팽팽한 긴장감과 혼란속에 분주하게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것이다.

 난 7시정도에 일어나 간단하게 씻고 바로 중앙대 학생식당으로 향해 먹히지는 않지만 억지로 밥을 먹었다. 여전히 온몸은 쑤시고 힘들었지만 감기약은 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기약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시험시간중에 집중할수 없을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중앙대에는 계속해서 수많은 고시생들을 태운 모범택시가 들어오고 있었고.일부는 부모님께서 직접 자신의 소중한 아들.딸들을 태우고 들어오고 있었다. 수많은 모범택시.학원에서 전세한 버스등등으로 그야말로 북적북적거렸다.

 수험표를 보고 다시한번 내가 볼 고사장을 확인한후 고사장으로 들어섰다. 이미 많은 고시생들이 고사실에 들어와서 다시한번 자신들이 정리한 법서를 보고 있었다. 나도 재빠르게 자리를 확인한후 가방에서 행정법책을 꺼내 어제 미쳐 다읽지 못한 행정법 책을 꺼내 보았다.

 고시생들은 저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책을 보고 있는 이들.혼잣말로 계속 중얼중얼거리며 책을 보는 이들.천주교 신자인지 긴 묵주를 손으로 주무르며 책을 보고 있는 이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책을 응시했다.그러나 일부 고시생들은 전혀 긴장한 표정없이 없드려 자거나.고사장 밖으로 나가 친구들이랑 농담을 하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런 고시생들은 십중팔구 올해 처음2차시험을 보는 이른바 '초시생'들이다.

 물론 처음2차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몇몇의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처음2차시험을 봐서 덜컥붙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 이른바 '올림픽정신'으로 시험을 보는 이들이다. 그러니 시험장에서 특별히 긴장할 필요도 없다.

또 공부도 제대로 해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답안지에 특별히 쓸말이 생각나지 않아 법전을 그대로 베끼거나 그림을 그리거나.혹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를 적어 내는 초시생들도 있다.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일화가 되어 좋아하는 가수노래가사를 적어 냈더니 점수가 20점도 안나왔다느니 난 그림그렸는데 30점을 주었다느니 하는 고시생들사이에 우스겟소리의 소재가 되어 전설처럼 고시촌을 맴돈다.

 드디어 시험시간이 점차다가온다. 정확히 10시에 시험은 시작해서 2시간동안 치루어진다. 9시30분쯤 감독관이 입회해 입실인원등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얼마후 감독관은 모든 고시생들이 고사실에 입실할것을 통보한다.

 그러나 대부분 고시생들은 입실하지 않고 고사실밖에서 그들이 마지막 볼책을 가지고 나가 계단에 털석 앉거나 고사장 밖 벽에 기대에 마지막 순간까지 책장을 넘긴다. 그러나 아마 일반인들이 이장면을 본다면 십중팔고 저사람들 미쳤다고 할것이다.

수많은 고시생들이 그냥 책을 선풍기 돌리듯 막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 과장해서 말한다면 초당 10페이지 이상을 막 보면서 넘겨 버린다. 이러니 저사람들 고시공부 너무 오래해서 미쳐버린거 아니냐는 말을 할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미친것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회독수를 거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풍경을 찍듯이 눈에 책장을 넘기면서 책의 내용을 찍어 기억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그들은 감독관의 마지막 입실통보가 있을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솔직히 마지막에 이렇게 책을 보는것이 큰도움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불안감과 자기위안을 위해 그렇게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고사장 밖에서는 그들을 데리고 온 일부 부모님이 끝까지 남아서 그들의 아들딸이 부디 시험을 잘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발을 동동구르며 서있다.

 드디어 시험시작 얼마를 남겨놓고 8페이지에 해당하는 답안지와 법전이 배부되었다. 2차시험은 법전이 배부가 된다. 2시간의 시험시간동안에 유일하게 볼수 있는 책이 법전인것이다. 2차고시생의 유일한 최후의 무기라고 할수 있다.

 법전이 배부되자 마자 고시생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법전을 펴서 연필이나 볼펜을 가지고 법전의 주요조문에 알기 쉽게 표시를 하거나 또 법전의 첫페이지를 접어 주요 법을 확인할수 있도록 저마다의 노하우를 가지고 법전을 자기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첫째 시험시간과목이 헌법인데 헌법의 경우에 나오는 법은 헌법.국회법.헌법재판소법등인데 그러한 주요법들의 주요조문을 표시하고.헌법.국회법.헌법재판소법이 법전의 어느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첫페이지를 접는 방법등으로 쉽게 찾을수 있도록 만드는것이다.2시간의 시험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단 몇초라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런 작업을 대부분 한다.

 시험시간 몇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문제지를 가지고 온 시험감독관이 고사실에 도착하고 감독관들은 문제지를 각 고시생들에게 나누어준다.이때부터 시험시작하는 시간까지가 가장긴장된다. 단 몇분의 시간이 몇십분 아니 몇시간처럼 느껴진다.

 가슴은 콩당콩당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뛰기 시작하고.과연 내가 준비한 문제가 나왔을까? 전혀 준비하지 않은 이른바 '불의타'가 나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부터 온갖생각이 다들기 시작한다.

고사실은 알수 없는 적막감과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마치 숨이 막혀 질식할것만 같다. 고시생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고시생.지긋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 고시생.숨막히는 긴장감에 다리를 떠는 고시생 모두 각각의 방법으로 긴장감을 해소할려고 노력하지만 긴장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때의 심정은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하나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영화 아니 씨리즈물이 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수부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그영화 2편을 보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공수부대원들이 이른바 디데이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전날 적진 한가운데 깊숙히 비행기를 타고 투입이 되는 장면이 있다. 적들이 우글거리는 적진에 투입되기 직전의 공수부대원들은 자신들에게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살아갈수 있을지.죽어서 나갈지 하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는데.아마도 바로 시험시작 몇분전의 고시생들도 적진 깊숙히 투입되기 직전의 공수부대원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긴 호루라기 소리를 시작으로 인생을 좌우할 시험시간이 시작된다. 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고시생들은 본능적으로 문제지에 부착된 스티커를 제거하고 문제를 읽기 시작한다. 긴문제를 읽으면서 등장인물.일시.사건의 개요등을 초안지 혹은 문제지에 계속 체크하면서 읽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갑의 사건을 을로 착각한다거나.일시등을 착오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답을 쓰는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사장에는 긴적막감속에 빠르게 초안을 잡기위한 딱.딱.딱 하는 볼펜소리만이 들려온다.초안을 어느정도 잡은 고시생은 이제 필사적으로 8페이지의 답안지를 써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보통 4페이지정도의 분량을 적으면 손과 팔목.어깨등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답안쓰는것도 하나의 체력싸움이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간초과로 제대로 답안을 쓰지 못한다거나 분량초과 즉 5점이나 10정도 밖에 배점이 안된문제를 자신이 아는 문제라고 해서 이것저것쓰다가 나중에는 중요한 30점짜리 문제를 달랑 몇줄쓰고 나오는 어이없는 실수를 할수도 있기 때문에 고시생들은 이것저것 다고려해서 답안을 써야만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답안을 쓰다보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 2시간의 시험시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정신없이 답안을 써나간다. 대부분의 고시생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글씨는 나자신만이 알수 있는 지렁이 글씨로 변해버리고  손은 마치 타자기처럼 본능적으로 막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쓰다보면 어느덧 시험시간종료를 알리는 긴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감독관은 엄격한 표정으로 쓰고 있는 필기구를 모두 내려놓으라고 지시한다.과거에는 시험시간 종료후에도 어느정도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 고시생을 배려해 시간적 여유를 주었지만 최근에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 시간통제가 엄격해졌다.

그래서 만약 시험시간 종료후에도 답안을 계속 작성하는 학생이 보이면 다시한번 경고를 하고 경고후에도 행위가 계속되면 답안지를 회수해 영점처리하고 그학생은 실격시켜버린다. 이렇게 실격되는 경우가 일년에 몇번씩 발생한다. 몇점을 더 획득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영점처리되고 감독관에게 울며사정하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되어버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오전시험이 끝나고 약2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입맛이 없다. 그러나 이미 지칠대로 지친 체력을 회복하기위해서도 먹어야만 한다.

주로 고시생들은 소화기 잘되는 죽등을 싸오거나 대학 고시반에서 제공해주는 도시락을 먹는 경우도 있다. 또 시험시간 내내 고시장 주위를 맴돌며 초조하게 자신의 아들딸을 기다리다가 점심시간에 손수마련한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을 부모님께서 주시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나같은 경우는 혼자 시험을 준비했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오기도 귀찮고 또 몸살감기까지 걸려서 학교식당에서 파는 햄버거와 콜라를 사서 간단히 먹었는데 도무지 입에 넘어가지 않아서 반도 못먹고 그대로 버릴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단한 점심식사후 고시생들은 쉴틈도 없이 다시 오후과목을 위해 책을 붙잡고 다시 선풍기처럼 책을 빠른속도로 넘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오후시험시간이 되고 또 2시간의 치열한 열전이 시작된다.

 마침내 오후4시 오후시험종료를 알려오는 긴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그날 하루의 시험은 끝을 맺는다. 고시생은 하루 4시간의 시험시간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나마 하루의 시험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큰논점을 놓치거나 시험을 망친이들은 암울한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7.시험후 또하나의 혼란과 경쟁 시험장소 빠져나가기

8.떨어진 체력을 회복하기 위한 안간힘

9.처량한 달빛 바라보며 눈물나는 새벽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