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시험합격자발표날,고시촌풍경

고시촌이야기 2008. 10. 22. 10:1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10월21일 아침 고시촌의 아침은 폭풍전야같은 고요함속에 긴장감이 넘쳤다.사법시험 2차시험 합격자발표일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2차시험을 본 나또한 긴장감과 초조함에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채 아침을 맞이했다.

 이른아침에 도저히 신림동의 작은 원룸에서는 합격자명단이 뜰때까지 있을수 없을거 같아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근처 관악산으로 향했다.여러번의 시험의 낙방끝에  내인생을 건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내인생에서 모든열정을 쏟아 공부를 했고 올해 1차시험에 합격후 6월에 2차시험을 보았다.담담하려고 노력했지만,발표일이 다가오면서 나도모를 긴장감과 초조함이 찾아오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관악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때마다.그때의 생각.대학시절 합격자명단에 내이름이 없는것을 확인후 좌절하던순간. 간단히 짐을 챙겨 신림동으로 오던때의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관악산으로 오르는 도중 침울하고 초췌한 표정의 몇몇이들을 보았다. 아마 그들도 조금있으면 발표할 사법시험2차시험을 본 수험생들일것이다. 그들의 고통.긴장감은 시험을 본사람만이 알수 있을것이다.2차시험4일동안에 잠도 제대로 못해 헛구역질을 연발하며 오직 정신력으로 버텨온 그들만이 그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이해할수 있기에 그들의 모습이 더욱 처량해보였다.

 그렇게 약 천천히 몇십분을 걸은 끝에 관악산 호수공원에 왔다.호수공원은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그곳에서 거의 한시간동안을 멍하니 잔잔한 물결을 바라만보았다. 이미 불합격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시험에 떨어지면 또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하는 걱정부터.불투명한 장래에 대한 고민등으로 한숨만 계속 터져나왔다.

 이제 관악산을 내려가야 한다고 마음속에서는 말하고 있지만 내려가서 명단을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렇게 몇번인가를 망설이고 망설이며 관악산 주위를 맴돌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이제 고시촌으로 향해야 했다. 결과가 어찌되었건 명단을 확인해야 했다.

발걸음은 천근같았다. 힘겨운 발걸음을 간신히 이끌어 다시 고시촌으로 돌아왔다.그런데 고시촌으로 돌아오니 상원서적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순간적으로 직감했다. 합격자 명단이 뜬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오후3시에 발표한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일찍난모양이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것을 보니 심장이 마구마구뛰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나의 발걸음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상원서적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전화를 하거나.친구의 합격을 축하해주고 있었다.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합격자 명단앞에 서니 나의 심장은 이제 터질꺼같이 뛰었다. 그리고 하나하나 떨리는 눈으로 명단을 확인했다. 그렇게 몇초가 흘렀을까? 난 믿을수 없었다. 합격자 명단에 내이름이 있었다. 도무지 믿을수 없어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혹시 동명이인이 아닐까해서 수험번호까지 확인했지만 분명 나였다. 


 눈물이 핑그르르 돌았다. 그동안 고생했던 순간의 기억이 떠올랐다. 2치시험을 보던 첫날 긴장때문인지 몸살감기에 걸려 감기약을 먹어가며 보아야했던 기억등이 떠올랐다.

 어머니께 제일먼저 전화를 했다.  어머니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나도 눈물이 날것같았지만 어머니앞에서는 꾹참아가며 울지않았다.

 아침에 그토록 고요했던 고시촌은 언제 그랬냐는듯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미 각 서점에는 합격자 명단과 컷트라인을 붙혀 놓았고.사람들은 그명단앞에 모여 자신의 이름 혹은 친구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명단을 확인한 이들은 친구의 합격에 축하의 전화를 해주는 이도 있었다.하지만 어떤이들은 명단에 이름이 없는 것을 보고 고개를 푹숙인채 북적거리는 인파사이를 빠져나갔다.


 얼마후에 고향의 친척들.친구들로부터 축하의 문자.전화가 왔다. 전화통에 불이난다는 말이 이해될정도였다.모두 고마웠다. 같이 공부하던 J형,M형,B군이 찾와왔다.모두 축하해주었다. 우리는 곧바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인파를 헤치고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오후 6시정도였지만 삼겹살집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부분이 합격자들을 축하해주기 위한 모임인듯했다.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띤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우리일행도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나를 다시한번 축하해주었다.오래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작년부터 벼랑끝에 섰다는 위기감에 항상 긴장한채 경직되었던 내몸이 오래간만에 녹아내리는듯한 느낌이었다.

 우리일행은 밤늦게까지 조촐한 소주와 삼겹살 파티를 했다.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소중한 하루를 헌납해준 J형,M형,B군이 너무나 고마웠다.그렇게 우리는 밤 12시까지 소주잔을 기울이며 함께 했다. 그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작은 원룸으로 향했다.밤 12시가 넘었지만 고시촌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술집에는 합격을 축하해주는 이들로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거리거리마다 서점에 붙어 있는 합격자 명단을 바라보며 고시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도중,이번에 사례스터디를 같이 하던 대학선배가 내가가는 길 반대방향으로 오는것을 보았다.그선배도 나를 바라보았다.하지만 그선배는 애써 나의 눈을 피했다.선배의 애써 피하는 눈빛을 보고 직감적으로 선배의 불합격을 알수있었다.이번에 2차시험을 5번째 본 선배인데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같이 공부했던 동료중 일부만 합격하고 자신은 떨어진 심정은 아무도 모른다. 그비참함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대학시절 나또한 그러한 경험을 해보았기에 그선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술에 취해 휘청거리며 신림2동 산꼭대기에 위치한 작은 원룸으로 향하면서 애써 눈을 피하던 초라한 모습의 선배가 자꾸만 떠올랐다.부디 선배가 내년에는 꼭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를 기원했다. 언덕배기 중간정도에 오르던중 한남녀 고시생이 보였다. 그들도 술에 취해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 여자고시생은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일요일아침에도 독서실에 나와 공부했는데....이름이 없어..무언가 잘못된거야...."
 라며 눈물을 펑펑쏟았고 그옆의 남자고시생이 위로해주고 있었다.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또한 눈물이 날건만 같았다.그들의 눈물의 의미를 일반인들은 알지 못한다.몸살감기가 걸려도 한번 밀린 진도는 회복할수 없기에 아픈몸을 이끌고 학원강의들 끙끙거리며 들어야 했던 아픔,2차시험전날 수천페이지가 넘어가는 책한권을 다보야 하는데서 우는 막막감등을 일반인들은 도무지 알수가 없다. 그러한 고통을 참아내며 인생의 모든것을 걸고 도전했던 시험에서의 탈락의 아픔은 그만큼 깊을수밖에 없다.


 사법시험 발표날 신림동 고시촌의 풍경은 합격자의 밝은 웃음과 떨어진자의 깊은 한숨과 좌절의 눈물이 공존하는 말로 표현할수 없는 그 미묘한 아픔과 기쁨이 함께하는 모습이었다.합격에 즐거워 하며 핸드폰으로 가족이나 여자친구에게 그 기쁜 소식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는 이들이 있는 반면.고개를 푹숙인채 깊은 한숨을 쉬며.남몰래 아픈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술집에 모여 합격의 기쁨을 함께 하며 밤새 축하주를 마시는 이들이 있는 반면 어두침침한 고시원에 웅크리고 앉아 혼자 깡소주를 마시며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않는 흐르는 눈물에 가슴아파하는 이들도 있다.

 신림동 고시촌,사법시험 합격자 발표날 합격자와 불합격자의 운명은 그렇게 냉혹하게 갈린다.하지만 내일의 태양은 다시 떠오르듯 불합격자들은 다시 아무런 일이 없다는듯 훌훌 아픔을 털어버리고 이른아침에 학원강의를 듣기 위해 고시원을 나설것이다.그들의 꿈이 반드시 이룩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