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장수생들의 비애

고시촌이야기 2009. 1. 12. 08:07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지난 9일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사법시험을 20여년이상 공부해온분께서 고시원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마치 내일처럼 안타까움이 깊게 들었다.그분의 20여년의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고.힘들었는지 충분히 짐작이 되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다른 한편 여전히 신림동 고시촌 작은 고시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선배형님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간단하게 문자나 전화를 해서 그들의 안부를 물었다. 다행히 그분들은 탈없이 지내고 있었다.

 신림동 고시촌에는 사법시험.행정고시등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들의 안식처이다. 모두 청운의 꿈을 품고 들어와 그들의 젊음의 열정을 쏟아부어 그들이 마음깊숙히 간직한 꿈을 이루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중 일부만이 합격의 영광을 안은체 신림동 고시촌을 벗어나고 대부분은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맛보고 신림동을 떠난다.

 그러나 계속되는 낙방에도 불구하고 신림동 고시촌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이있다. 그들 깊이 간직된 꿈이 너무나 커 조금만 노력하면 잡을수 있을것 같은 아쉬움에 1년만더.1년만더를 외친것이 어느덧 수년.10년이 되어버려 이른바 장수생이 된체 신림동 고시촌에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 고시촌의 장수생의 비애를 제대로 아는 이들이 있을까?일반인은 왜저렇게 되지도 않는 시험을 오래 붙잡고 있냐며 차라리 막일이라도 하라고 그들을 비난하고 고시촌의 젊은 고시생들 또한 그들을 스터디등에도 받아주지 않고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은근히 그들을 피하며 그들을 비난한다. 그럴수록 그들은 고시촌 외딴 고시원에 갇혀 더욱 외로움을 느끼고 사회로부터 점차 격리되어가는 아픔을 느낀다.

 나같은 경우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험에 늦게 붙은 장수생이라고도 볼수있다.그러나 고시촌에는 나보다 더 형님뻘되는 이른바 장수고시생들이 많이 있다. 이상하리만큼 나는 고시공부를 할때 나보다 훨씬 형님뻘되는 그런 선배 고시생들과 같이 공부를 많이 했다. 작년 2차시험을 준비할때에도 사법시험 1차준비하는 후배녀석하나와 세무사와 회계사 준비하는 선배형님과 공부를 했는데 그선배형님들은 대학 대선배들이었다.

 그리고 평소에 알고 지내는 고시촌의 사람들도 대부분 대학 대선배인경우가 많다.왜그렇게 공부할때 그런 대선배들과 공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그분들과 공부해오고 교류하면서 난 이른바 고시촌 장수생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다.


1.사회로부터의 격리에서 오는 절박함

 고시촌 장수생들이 처음부터 장수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들도 모두 중고등학교 대학시절에는 고향에서 천재소리를 들으며 이른바 공부로 한가닥했던 인물들이었다. 그러한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청운의 꿈을 가지고 신림동에 입성했을때 그들또한 신림동에 오래 공부해온 장수생을 비웃었을것이다.
"무슨 공부를 10년이상이나 하냐.난 3년안에 끝내겠어"하는 오만함과 자신감이 강한 눈빛으로 신림동에 입성해 그들의 장기인 공부의 달인이 되어 책을 삼키기라도 할 눈빛으로 공부에 열을 올린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대로 고시라는것이 결코 쉽게 그들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친 이른바 수재들이 치열한 경쟁터인 고시도전에서 처음으로 그들은 낙방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하고 그렇게 수없이 낙방이 반복되자 점차 자신감은 상실되어 가고 어느덧 그들이 비웃던 장수생의 길로 접어 든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험을 접고 사회로 나가고 싶어도 사회가 그들을 거부한다. 물론 나이제한이 철폐되었다고 하지만 일반기업에서 30대중반이 넘어선 그들을 신입사원으로 취업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그나마 집에 여유가 되면 사업이나 장사라도 할수 있어 다행이지만 집에 여유가 없는 경우는 이또한 불가능하다.

 결국 어느순간 그들은 사회로 나가고 싶어도 사회가 그들을 거부해버려 나갈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2.생계의 절실함

고시촌에서 10여년이상 공부를 하게 되면 어느순간 집에서의 지원이 줄어들다가 결국 끊겨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더이상10여년이상 고시준비비용을 집에서도 지원하기에 부담스러운 상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나가면서 공부를 해야하는 상황이 초래된다. 따라서 아르바이트라도 구해서 책값과 밥값을 마련해야만 한다. 하지만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그들에게 아르바이트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구인하는 고용주들은 젊은 아이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구할수 있는 아르바이트자리는 기껏해야 주유소 주유원.고시원 총무.비디오방 아르바이트등이 전부이다. 그나마 고시원 총무자리라도 구하면 다행이다.어느정도 돈도 지급받고 숙식이 해결되고 공부할수 있는 시간도 확보될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시험을 10년이상 공부했던 대선배 k형의 경우도 집으로부터 지원이 어느순간 끊겨 고시원 총무.주유소 아르바이트등에서 부터 심지어는 인력시장에 나가 막노동까지 하면서 간신히 고시원비와 책값을 충당하며 근근히 버티고 있다. 


 예전에 k형이 나에게 이런말을 해준적이 있다. 몇년전 그해가을에 어김없이 사법시험2차시험에 k형은 떨어졌다고 한다.정말 그해에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떨어져서 더 충격적이었다는 것이다. 그충격에 몇날 며칠을 고시원을 나오지 않고 거의 시체처럼 누워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동안 간신히 아르바이트해서 벌어는 돈은 바닥이 나고 간신히 컵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이제 더이상 컵라면 살돈도 남아 있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돈이라도 마련해야 했는데 도무지 돈을 구할곳이 없더라는 것이다.집에 연락해서 어떻게 식비만이라도 달라고 하기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또 그동안 고시촌에만 있어서 대학.중고등학교 친구들과는 연락이 단절되어 버리고.고식공부했던 친구들도 사정은 별로 좋지 않고. 결국 그렇게 이틀정도를 라면하나 먹지 못하고 굶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간신히 어떻게 같이 공부했던 친구를 만나 얼마의 돈을 빌린후 바로 가게에 가서 컵라면 하나를 사먹는데 그렇게 세상에서 컵라면이 맛있어본적이 없더란다. 그렇게 컵라면 맛있게 먹고나니 그제서야 "참 내가 뭐하는 짓인가?,완전히 사회에서 단절된체 고립되어 살아가는구나..."하는 허무함을 느꼈다고 한다.

 이렇게 점차 생계가 어려워지는 그들은 점차 자신감마져 상실되어 가고 가능한 숙식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신림9동 산꼭데기에 위치한 가장 저렴한 고시원을 찾아 떠나간다. 신림동 산꼭데기에 위치한 고시원은 여전히 15만원의 돈으로 한달간 숙박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수생들의 마지막 안식처같은 곳이다. 그나마 그렇게 기거할곳이 있다는 것 조차가 다행스러운 점이다.


3.같은 고시생으로부터도 따돌림 당하는 장수생의 비애

일반 사회인으로부터도 고시촌 장수생의 인식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 그러나 그들을 더욱 아프게 하는것은 같은 고시생으로부터도 따돌림당한다는 것이다.

고시촌의 젊은 고시생들은 은근히 고시촌 장수생들을 비하하거나 따돌리는 경우가 많다. 각종 스터디를 모집하는 경우에도 나이제한을 두어 장수생과 같이 공부하기를 꺼려한다. 공부분위기에 저해된다는 이유에서다.그리고 장수생이 있는 독서실 열람실이나 고시원등은 가능한 피할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장수생으로 불리우는 우리의 선배들은 젊은고시생들과 같이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그런 처지가 되어버린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외로움은 더욱 커져갈수밖에 없고 점차 신림동 고시촌에서 조차 고립된체 외로운 섬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4.갈수록 깊어지는 인간에 대한 그리움

 " 어느날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말야.내가 거의 3일정도를 아무말도 안하고 지난거 같더라.정말 다시한번 생각보니까 맞는거야.하기야 뭐 하루종일 고시원에 처박혀 있으니까 정말 말없이 지내게 되는거야 밥먹으로 식당에 갈때도 혼자 식권내고 그냥 먹으면 되고.또 고시원에 와서 책보고 그렇게 계속 반복되는 거야......꼭 무인도에 같혀 버린 로빈슨 크루스가 되어버린거 같은거야......이러다 정말 몇개월만 지나면 우리나라 말을 잊어버릴꺼 같더라고....가끔가다 정말 단어가 머리속에서는 맴도는데 생각이 안나는거야...참 환장하겠다.....;; 그래서 요즘은 가끔 벽보면서 혼자 대화해 우리말 안까먹으려고........어떤놈이 보면 고시공부오래 해서 미쳤다고 하겠지....하하.........."

                                   (고시촌 어느고시원에서 바라본 석양)

 어느날 만난 선배형이 나에게 해준말이다.사회와 또 고시촌에서 조차 격리된 그들은 그럴수록 인간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만 간다. 그래서 가끔 대학시절에는 그렇게 과묵하고 터프했던 대선배인 형들을 우연히 고시촌을 가다 만나게 되면 선배들은 그렇게 반가워하며 수다 봇다리를 늘어놓는다. 그동안 못다한 이야기를 다풀어놓기라도 하려는듯....

 " 요즘은 고시원에 정말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그래서 밖에서만 맴돈다. 독서실에 아침일찍가서 가장 늦게 나오고....또 피씨방에 가서 시간때우던지 해..정말 요즘은 고시원 들어가기가 싫어 .정말...무슨 책에도 나왔던것처럼 관속에 들어가는 느낌이야..사방은 창없이 꽉 막혀 있고..누우면 다리하나 제대로 피기 힘들정도로 꽉 차버리고...답답해서 죽을꺼 같아...정말 ....고시원에 있고 싶지가 않아....휴...언제 이놈의 신림동이라는 거대한 수용소를 떠나게 될지....."

 작년에 같이 공부했넌 회계사를 준비하는 M형이 나에게 해준말이다. M형은 직장생활하다 뒤늦게 회계사 시험에 뛰어든 형인데 신림동에 늦게 들어온만큼 그 답답한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

 하기야 가족들과 함께 티비도 보고 식사후 과일도 깎아먹으면서 단란하게 지냈던 이들이 쪽방같은 답답한 고시원에 처음 들어오면 그 적막함과 외로움에 견디기 힘들것이다. 또 장수생들은 금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고시원에 세상과 연락할수 있는 인터넷등을 설치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가끔 고시원에 누워 적막감 속에 멀뚱멀뚱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이 관속에 누워있고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것은 외로움.인간에 대한 그리움이다.


5.사회적 안전망과 관심필요

 매년 고시촌에서는 오래동안 공부해온 장수생이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느니.혹은 시험에 대한 중압감을 못이겨 안타깝게 자살했다느니 하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온다. 그리고고시촌 장수생의 인식또한 그렇게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우리가 보듬어야할 우리사회의 구성원이다.따라서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는 취업교육.상담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을 우리사회로부터 격리하지 말고 사회에 포용해야 할것이다.

또한 그들 또한 고시촌에서 그들의 꿈을 이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고시생이라는 사실을 우리 젊은 고시생들이 잊지 말아주었으면한다. 나는 대부분 장수생 선배들과 공부를 같이 했는데 그런 선배님들로부터 많은 시험에 대한 노하우.인생에 대한 지혜를 전수 받을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과 함께 동반자정신을 가지고 어려움을 해쳐나가주었으면 한다.

                                            (눈이 내린 고시촌 풍경)

그리고 고시촌에서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악전고투하고 있는 우리 선배님들이 부디 올해에는 좋은 결과를 내기를 바란다.자신의 꿈을 이룩하기 위한 열정앞에 나이는 문제되지 않는다. 여전히 사법시험등 각종고시에서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고 합격의 영광을 차지하는 나이많은 고시생들이 많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부디 올해에는 좌절하지 말고 그들의 꿈을 이루어 신림동고시촌이라는 공간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서 벗어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