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인지 감수성과 무죄 추정원칙에 대한 새로운 대법원 판결이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여러분도 아시다 시피 2018년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근거로 그동안 법원은 성범죄 사건에서 다른 유력한 증거가 없다라도 피해자의 진술이 어느 정도 일관되고 믿을 수 있다면 그 범죄를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 왔습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2018년에 선고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7709 판결)에서 등장했는데, 그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등으로 인하여 성폭행이나 성희롱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가 부정적인 여론이나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하여 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결국 성범죄의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피해자에게 이른바 피해자 다움을 강요해서 쉽게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것으로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자의 진술이 일부 일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전반적으로 그 내용이 일관되면 그 진술의 증명력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되다는 것입니다.

 

위 대법원 판결은 일응 타당한면이 있으나, 그 판결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지나치게 형식적으로 적용시켜 입증책임을 피고인이나 피의자에게 전가시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경찰이나 검찰 같은 수사기관은 특별한 증거 없이 피해자의 진술만 어느 정도 일관되면 피해자의 진술이 진실이라는 전제하여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이와 반대되는 증거를 제출하지 않으면 그 범죄혐의를 인정해 기소하는 것이 실무상 관례처럼 자리 잡아 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피의자나 피고인은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알리바아를찾아야만 했고, 알리바이를 입증할 증거를 찾지 못하면 범죄사실을 인정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피해자측과 합의를 해야 했습니다. 이는 사실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력화시키는 중대한 문제를 초래하고, 이에 대한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기존 판결의 문제점을 인식하였는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강조하는 변화는 입장을 보여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공소사실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피고인은 2021. 6. 24. 23:15경 부산도시철도 1호선 서면역에서 다대포 해수욕장역으로 운행 중인 전동차에서, 피해자(, 19)의 옆 자리에 앉아 피해자의 왼팔 상박 맨살에 자신의 오른팔 상박 맨살을 비비고, 피해자가 이를 피해 옆 좌석으로 이동하자 재차 피해자의 옆 자리로 이동하여 위와 같은 방법으로 대중교통수단인 전동차에서 피해자를 추행하였다.

위 공소사실에 대해 원심법원인 서울동부지방법원은 피고인 측이 제출한 소견서 등만으로는 추행의 고의가 없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피고인의 지적 또는 의지적 상태가 자신이 한 행동의 사회적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의 상태에 해당한다고 볼 정도는 아닌 점, 피고인이 피해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다가 피해자 옆으로 옮겨 앉은 후 공소사실 기재와 같은 행위를 한 점에 비추어 자폐성 장애로 인한 상동행동에 기인한 것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하여, 추행의 고의를 부인하는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고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하였습니다.

 

위 원심법원의 판결은 기존의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판결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여 판결한 것입니다. 이에 피고인이 상고하여 위 사건이 대법원에 가게 되었는데,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해 사건을 파기환송하였습니다.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야 하므로, 개별적ㆍ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없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객관적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만을 부인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죄의 증거가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물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ㆍ타당성, 객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피고인이 수사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였고 그 내용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관하여 증거동의를 한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 내용이나 진술의 맥락ㆍ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중 일부만을 발췌하여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함부로 허용할 수 없다.

위 대법원 판결이 기존의 성인지감수성을 내용으로 하는 기존의 대법원 입장을 변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인지감수성의 형사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으로 실무상 잘못 적용되고 있는 성인지감수성에 대한 적용의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위 판결로 별다른 유죄의 증거 없이 피해자 진술만으로 피고인에게 유죄를 선고하거나, 무죄추정원칙에 반해 사실상 피해자가 무죄의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