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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해가 시작되었다. 나이가 먹어가며 세월이 무척이나 빨라지는다는 것을 느낀다. 이제 어느덧 나도 40대가 되었다. 어릴적에는 무척이나 더디게 흘러만 갔던 시간인데, 이제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다.

작년 10월 경 부산에 재판이 있어 부산을 다녀왔다. 작년 유난히 부산, 영월 재판이 많아 부산과 영월을 자주 다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부산에 재판을 하러 갈때마다 이상하게 비가 왔다. 부산에는 고등학교 친구 롯데자이언츠 외야수 임재철이 있다.

나는 야구명문^^ 천안북일 고등학교를 나왔다. 김태균, 한용덕, 이상군, 등 등 많은 유명한 프로야구선수를 배출했다. 하지만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닐적에는 북일고등학교의 암흑기였다. 지역예선에서는 지역 라이벌 공주고등학교에 번번히 패배하였고, 간혹 전국대회에 진출하게 된 경우에도 금방 짐을 싸서 돌아와야 했다. 당연히 프로야구에 진출한 선수도 거의 없었는데, 유일하게 프로야구에 진출해 그나마 이름을 남긴 선수가 임재철이다.

 임재철은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인연이 있는 듯 하다. 임재철하면 떠오르는 것은 성실함, 그리고 저니맨이라고 할 것이다. 임재철은 롯데자이언츠에 입단하여, 삼성, 한화, 두산, 엘지, 롯데 등 많은 팀을 옮겼다. 그러나 임재철이 성실함의 대명사라는 사실은 인정하겠지만, 저니맨이라는 이미지는 동의할 수 없다. 임재철이 많은 팀을 옮긴 것은 사실이나, 임재철은 두산이라는 팀에서 약 10년간 있었다. 두산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성실함과 후배들을 다독이는 리더십으로 주장까지 역임했다. 그러니 임재철은 두산맨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임재철은 성실함의 대명사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운동을 하고, 술, 담배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후배들이 그를 본보기로 여기며 따르는 듯 하다. 그래서 임재철과는 친구 사이이지만 일년에 한 두번 보기도 힘들다. 그런데 작년 10월경 마침 부산재판이 있어 임재철에게 한 번 볼 수 있냐고 연락을 해보았다. 시즌이 끝나기 전에는 워낙 운동만 하는 녀석이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보자고 한다. 

부산은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재판을 마치고 임재철이 직접 온다고 하여 법원 구내식당에 앉아 캔커피를 마시며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구경하고 있었다. 마치 장맛비 처럼 가을비치고는 많은 빗방울을 쏟아 냈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다 도착했다는 임재철의 전화를 받고 나갔다.

해운대 근처의 카페에 가서 재철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이 술을 안하다 보니 부산에서 회도 먹지 못하고 그냥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 뿐이었다. 당시 재철이와 이야기를 할 때에는 올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리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재철이는 무엇인가 이제 내려놓으려 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재철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헤어졌다. 재철이와 헤어지며 롯데자이언츠 강민호, 손아섭의 싸인볼이라는 소박한 선물도 받았다. 서울로 돌아가는 ktx 기차를 타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재철이는 철저한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철저한 자기관리, 투혼으로  지금까지 현역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성실한 자세로 인해 많은 후배 야구선수들도 그를 따른다. 친구녀석이지만 그러한 점은 배우고 싶다.

그로부터 몇개월 후 재철이가 은퇴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야구에 대한 애정이 남 달랐던 그였는데, 은퇴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아쉬움이 컸을까. 그러나 다른 한편 후회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오직 야구에 자신의 전부를 걸었기 때문이겠지

난 지금 내 모든 것을 걸고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변호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인 이일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뿐이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오는 승패에 대한 압박감, 사건이 잘 진행되지 않았을 때 밀려오는 스트레스, 변호사로서 누구나 경험했겠지만 안풀리는 사건이 있으면 자다가다 그 사건이 머리속에 계속 맴돌아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하기야 그래서 미국 등은 송무를 담당하는 변호사는 그 스트레스로 인해 은퇴연령이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당연히 평균수명도 단축되고, 그래서 난 요즘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탈출을 꿈꾸고 싶었다. 그리고 일에 대한 열정도 점점 사그러짐을 느꼈다.

하지만 임재철의 은퇴를 바라보며, 처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열정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법을 좋아해 시작한 나의일이다. 열정 모든 것을 쏟아부을 수 있는 열정을 다시 불태우고 싶다. 열정이 없으면 죽은 삶이라고 하지 않았나.재철의의 은퇴가 꺼져가던 나의 열정의 불꽃을 다시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재철아 그동안 고생했다. 너의 꿈처럼 야구에 대해 모든 것을 바쳤기에, 훌륭한 지도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선수로서의 삶을 마쳤으니 조금은 긴장을 풀고 술도 마시고 인생을 즐기며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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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촌을 쓸쓸히 떠나는 친구에게.......

고시촌이야기 2010. 4. 10. 11:3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이제 봄인가보다
얼마전까지 차갑게 몰아치던 차가운 늦겨울 바람은 이제 더이상 버틸수 없다는듯 사그러 들었다.진해에는 벚꽃이 활짝피었고.개나리는 노란 봄소식을 전해 온다.변호사시보를 하고 있는 법무법인에서 간단히 출근하여 업무를 마치고 집에서 멍때리고 있을때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녀석이었다.지금도 신림동 고시촌에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녀석이이다.대학때부터 서로 하숙집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이것저것 볼것 못볼것 다본 친한녀석이었다.그러나 운이 좋게 실력도 없는 내가 시험에 먼저 합격하고나서부터 그녀석의 자존심을 건디릴까봐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하는...어설픈 사이가 되어버렸다.

 너무나 반가웠기에 전화벨이 울리자 마자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녀석과 간단한 안부를 나누었다.그리고 녀석은 나에게 말했다.이제 신림동을 떠나야겠다고....;;
나는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녀석의 결정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녀석도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린것일 것이다.그러나 찹찹한 마음은 금할수 없었다.

 녀석은 신림동을 떠나 당분간 강남쪽에 고시원에 있기로 결정했다며 이삿집을 옮겨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나는 알았다고 답했다.그리고 얼마전에 구입한 싸구려 중고승용차를 끌고 신림동을 향해 달려갔다.

 자유로를 따고 달리는 동안 녀석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대학교 입학해서 유난히 내성적이고 수줍음을 많이 타던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와 다가왔던 녀석.그리고 난 녀석과 단짝이 되었다.하숙집에서 같이 라면도 끓여먹고 당시에 유행하던 컴퓨터  게임 '삼국지'에 빠져 같이 수업을 빼먹었던 기억.중간고사에 벼락치기 공부하며 날밤을 지새웠던 기억....신림동 고시촌에서 싸구려 고시식당밥을 먹으면서도 행복해했던 기억........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에 운전을 하니.어느덧 신림동 고시촌에 도착했다.녀석이 있는 곳은 신림9동에 있는 산꼭대기 고시원...다닥다닥 붙어있는 고시원과 간혹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가는 사람들...독서실앞에 잠깐 휴식을 취하며 서성거리는 이들....변한것은 없다. 월 15만원에 닭장같은 공간에 그들의 피곤한 몸을 맡긴다....

  녀석이 보였다.차에서 내려 녀석과 반갑게 악수했다.무슨말을 할까.거의 2달만에 보는 녀석인데..특별히 할말이 생각나지 않았다.그져 묵묵히 그녀석이 거주했던 고시원방으로 향해 짐을 옮겼다.녀석의 짐은 간촐했다.이미 시험을 더이상 안보기로 결정했는지 돈이 될만한 시험관련책은 헌책방에 모두 팔아버렸다.두꺼운 민법 기본서와 그외 법서 몇권.여름,겨울 구별없는 얇은 이불,옷몇가지...그것이 전부였다.

  녀석의 짐을 차에실고 녀석과 함께 차에 타고 신림동 고시촌을 빠져나왔다.녀석은 아쉬움이 남는듯 창가를 통해 점점 사라져가는 고시촌의 풍경을 바라보았다.여전이 길게 줄이 늘어선 고시학원.다닥다닥붙어있는 각종 미니원룸과.고시원.그리고 독서실...그곳에는 아직도 꿈을 간직한체  많은 이들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그리고 녀석처럼.아쉬움을 간직한체..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한참을 달려 녀석이 새롭게 자리잡기로 한 강남의 고시원에 도착했다.녀석은 당분간 이고시원에서 총무로 지내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로 했다고 한다.고시원은 신림동의 15만원짜리 고시원보다 훨씬 사정이 안좋아 보였다.공간은 너무 협소했다. 미로같은 방들..누울자리조차 부족해보이는곳....간단히 짐을 정리해놓으니 공간은 더 협소해 보였다.그나마 신림동 고시촌의 고시원이 훨씬 넓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정리를 마치고 녀석과 저녁을 먹었다.지글지글 타오르는 삼겹살...녀석은 쓰디쓴 소주만 연거푸 마신다. 멋진 변호사가 되고 싶어했던 녀석의 어릴적 꿈을 이제 포기하기로 했으니 그 심정이 쓰라릴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거냐고 물었다.녀석은 잘모르겠다고 한다. 공기업이나.공무원등을 알아볼까 하는데...그것도 잘모르겠단다.

 녀석에게 로스쿨이라도 응시해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녀석의 경제적 형편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그것도 권할수 없었다.녀석은 이삿짐을 옮겨줘서 고맙다고 했다.그러나 무엇이 고마운것일까?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슬픈일이다.인간은 꿈을 먹고 살아가는 동물이기에...하지만 난 녀석이 지금 이 작은 꿈을 포기하지만 보다 원대한 꿈을 이룩할 녀석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착한녀석.너무나 착하고 인간적인 녀석이라는 것을 알기에....

 녀석과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헤어졌다.녀석은 마지막으로 내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했다. 무엇이 고마운 걸까? 난 녀석에게 해준것이 아무것도 없는데.....녀석에게 난 무엇인가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그러하지 못하고 "다음에 다시 보자"는 무덤덤한 말을 하고 떠났다.



  난 신림동 고시촌에 오래동안 있었지만.그 신림동 고시촌만의 이상한 기운이 싫었다.고시촌의 달은 슬펐다.누군가의 아픈 사연을 집어 삼켜버린듯한 저 밝은 달빛의 우울한 모습...

 녀석이 떠난 자리에는 아마 새로운 고시생이 차지하고 있을것이다. 그러나 반면 녀석처럼 그렇게 그곳을 조용히 아쉬움을 뒤로 한체 떠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자.비록 지금 아쉬움의 발걸음에 저 처량하게 걸린 달처럼 슬프고 가슴아프겠지만..그들에게는 더 밝고 희망찬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

친구야.우리 슬퍼하지 말자.지금의 쓰디쓴 상처가 언젠가는 아물어 새로운 희망의 봄을 노래하는 순간이 올것이다.기나긴 춥고 시린 겨울이 있어야만 봄은 소중히 기억될것이다.우리의 인생에 한순간의 실패에 두려워 해서는 안될것이다. 우리는 아직 젊고.해야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