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후유증에 시달리는 고시촌

고시촌이야기 2008. 8. 28. 11:31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전국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올림픽이 드디어 끝났다. 연일 계속되는 금메달 소식에 전국은 그야말로 올림픽 열기로 가득했다.전국의 고시생들이 모여드는 신림동 고시촌도 예외는 아니었다.올림픽 기간 내내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먹고 올림픽 이야기를 나누거나 주요경기가 있는 날이면 독서실 휴게실을 가득 채우며 한국팀을 응원했다.

 특히 스포츠광인 남자고시생들은 올림픽 열기가 참 참기 힘든 유혹임에 틀림없었다. 고시촌에는 그래서 이런말이 돈다. 그해 올림픽이 있거나 월드컵이 있으면 남자고시생들의 합격률이 줄어든다는 말이다.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승부욕이 강하고 특히 이른바 잡기에 강한 남자고시생들에게 올림픽이라는 큰 행사는 참기힘든 유혹이다.

 나를 포함해서 4명은 같이 공부하는 고시촌 사총사들이다. 다 직장을 다니다 대학시절 꿈.혹은 여러가지 회사사정상 직장들 그만두고 다시 이른바 고시촌에 뛰어든 사람들이다. J형은 가장 나이가 많은 연장자로 잘나가던 대기업을 다니다,간부눈치나 보고 미래도 불투명하고 더러워서 못해먹겠다고 울컥하는 심정으로 작년에 사표를 쓰고 나와 세무사시험을 준비한다. 그리고 M형 두번째로 나이가 많은 형으로 증권회사의 펀드매니저일을 하다가 역시 회사를 때려치고 CPA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 법대를 나온 나도 대학시설 고시준비를 하다 사법시험 2차시험에 실패후 바로 취직을 했다.그러나 앞서 말한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때려치고 다시 작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중이다.

 남들은 고시병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잘나가던 직장 때려치고 다시 우중충한 신림동 고시촌에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있으니 말이다.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 후배인 막내인 B군역시 사법시험을 준비중이다.

 어 갑자기 같이 공부하는 일행들 소개가 길어져 버렸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4명이 모여서 한독서실에서 공부한다.J형도 올해 세무사 1차시험을 붙고 2차시험까지 보고 9월에 있는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합격을 확신하는지 시험끝나고 연일 놀고 있다. 아침늦게 일어나서 밥을 먹는둥 마는둥 독서실에 잘나오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남아 도는 J형에게 올림픽은 그야말로 시간때우기 좋은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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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는 아침늦게나 일어나던 J형은 올림픽이 시작되자 마자 언제 그랬냐는둥 독서실에 아침 일찍나와 이른바 휴게실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티비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한국이 금메달이라도 딴다싶으면 박수치고 함성지르고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를 친다. 그리고 메이저 스포츠 신문 몇개를 읽고 또 읽고 하며 3회독 이상을 한다.우리끼리 하는말은 "저형이 저렇게 공부만 했어도 벌써 사법시험 수석은 했겠다"라고 우스개소리를 한다.아무튼 J형은 올림픽 기간내내 독서실에 출근하더니 올림픽이 끝나자 마자 다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또하나 문제거리인 녀석은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막내녀석 B군이다. 이녀석은 1차시험도 합격하지 못해서 내년2월에 있는 1차시험을 봐야 하는 녀석이다.지금이 사법시험1차시험을 준비하는 녀석들에게는 진도별모의고사기간이라고 해서 상당히 중요한 기간이다.이시간을 놓쳐 버리면 더이상 책을 자세히 볼수 없는 그야말로 중요한 시간이라고 볼수 있다. 근데 문제는 이녀석이 J형 못지 않은 스포츠광이라는 것이다 평소에도 주말에는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 주요경기는 꼭 보고 메이져리그의 주요경기도 꼭보는 녀석이다. 난 잘알지도 못하는 메이져리그의 주요선수이름.경력.성적등을 일일히 체크하고 다니는 녀석이니 올림픽이라는 큰 스포츠 행사의 유혹을 거부하기가 여간 힘든것이 아닌가 보다.

 진도별 모의고사를 들으러 학원에 가 있어야 할녀석이 공부하다 잠깐 커피를 마시러 휴게실에 가보면 스포츠광J형과 나란히 맨 앞자리에 앉아서 올림픽 경기를 마치 티비에 빨려들어갈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녀석이 참 한심해 보여서
" 야 너 지금 학원가야 할 시간인데 여기서 뭐하고 있냐?"
 라고 물으면 녀석은
 "아 이거 한게임만 보고 갈려구요"
 라고 변명아닌 변명을 한다. 그러나 녀석은 한게임이 두게임이 되고 세게임이 되고 그리고 학원은 끝나버린다. 그러고는 녀석은 후회를 한다. '내가 왜이러지 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나와 M형은 스포츠에 그다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올림픽기간에도 별상관없이 독서실에 쳐박혀 있었지만 스포츠광인 고시생들은 이처럼 올림픽은 참기힘든 유혹이었다.독서실을 마치고 지난 토요일 밤 내 안식처 작은 원룸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신림동 고시촌이 떠나갈듯한 함성들이 터져나왔다.한국야구대표팀이 우승을 한것이었다.이리저리 터지는 함성을 들으며.고시생도 역시 한국인인가부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거리 거리의 티비가 있는 곳에는 고시생들이 여럿 모여 옹기종기 티비에서 보여주는 올림픽야구 하일라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올림픽 기간내내 보였던 고시촌풍경이다.

 그나저나 올림픽 기간내내 학원을 거의 빼먹어 버린 B군이 참걱정된다. 거의 한과목을 빵구내버렸으니 어떻게 회복할지 말이다. 지금 이녀석은 올림픽기간내내 휴게실에 처박혀서 티비를 바라본 자신을 자책하며 엄청난 후회에 빠져있다. 더욱이 큰 문제는 한과목을 빵꾸내버렸다는 두려움에 다른과목에까지 영향을 미쳐 이른바 슬럼프에 빠져버렸다는 것이다.요즘은 올림픽 끝난지 거의 4일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J형과 더불어 독서실에 잘나오지 않고 있다. 이녀석이 빨리 컨디션을 회복하고 슬럼프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걱정이다.당장 내년 사법시험은 1차시험인원을 올해보다 줄여 뽑는다고 하는데 말이다.

 아무튼 올림픽이 스포츠광인 남자고시생들에게는 쥐약이었다. 너무나 참기 힘든유혹이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내년에 각종고시에서 또다시 여자고시생들의 약진이 눈에 띄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림픽이 끝난후 유난히 독서실에 빈자리가 많이 보인다.B군처럼 올림픽 슬럼프에 빠진 친구들이 많은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