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긴장감과 혼란속에 시작된 지옥의 레이스(6월23일)

   요란하게 울리는 자명종 소리이 부시시 눈을 떴다.몸은 여전히 누구에게 얻어 맞은듯 쑤시고 아파왔다. 그러나 다행히 자기전에 감기약을 먹었기 때문인지 열은 좀 내렸고 두통은 완화되었다.

 눈을 뜨고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치 꿈을 꾸는것같았다. 잠자리에 누워 몇시간을 뒤척이며 늦게 잠든 까닭인지 정신이 멍한 느낌이 들었다.계속 자리에 눕고만 싶었다. 앞으로 펼쳐질 치열한 시험을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몇분을 그렇게 누워있다가.결국 일어나 샤워를 하고 정신을 차리고 시험장인 중앙대로 향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시작되어버린것이다. 아마도 신림동 고시촌에서는 신성초등학교에서 부터 수많은 검은색 모범택시.콜벤등이 이미 예약해둔 고시생들을 태우기 위해 줄지어 서있을것이고 각종 고시학원에서 고시생들을 태우기 위한 전세버스 또한 대기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택시와 버스.그리고 결전의 시험을 치루는 고시생들로 뒤엉켜 고시촌은 팽팽한 긴장감과 혼란속에 앞으로 치열하게 펼쳐질 4일간의 시험을 준비하고 있을것이다.

 난 중앙대에 도착해 바로 학생식당으로 향해 먹히지는 않지만 억지로 밥을 먹었다. 여전히 온몸은 쑤시고 힘들었지만 감기약은 먹지 않았다. 아무래도 감기약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어 시험시간중에 집중할수 없을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중앙대에는 계속해서 수많은 고시생들을 태운 모범택시가 들어오고 있었고.일부는 부모님께서 직접 자신의 소중한 아들.딸들을 태우고 들어오고 있었다. 수많은 모범택시.학원에서 전세한 버스등등으로 그야말로 북적북적거렸다.


2.긴장한 표정으로 고사실에 입실하는 고시생들

 수험표를 보고 다시한번 내가 볼 고사장을 확인한후 고사장으로 들어섰다.내가 본 고사장이 있는 건물은 중앙대 법대건물이었는데 새로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상당히 깔끔해보였다. 법대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모녀를 볼수 있었다. 어머니는 딸의 손을 꼭 움겨 잡으며 딸을 말없이 바라보았고.그렇게 모녀는 그들만이 알수 있는 무언의 대화를 나눈후 딸은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 고사장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한손에는 도시락으로 보이는 쇼핑백을 다른한손에는 기다란 묵주를 꼭 잡고 점점 사라져 가는 딸을 바라보았다.

고사장입구에는 그렇게 자신의 소중한 아들.딸들의 중대한 시험을 위해 함께한 부모님들이 발을 동동구르며 서성이는 분들이 상당히 많았다.그들 또한 직접 시험을 치루는 아들딸만큼이나 긴장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고 다른한편 차라리 자신이 시험을 대신치고 싶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고시생들이 고사실에 들어와서 다시한번 자신들이 정리한 법서를 보고 있었다. 나도 재빠르게 자리를 확인한후 가방에서 행정법책을 꺼내 어제 미쳐 다읽지 못한 행정법을 보았다.

 고시생들은 저마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다. 깊은 한숨을 쉬며 책을 보고 있는 이들.혼잣말로 계속 중얼중얼거리며 책을 보는 이들.천주교 신자인지 긴 묵주를 손으로 주무르며 책을 보고 있는 이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책을 응시했다.

그러나 일부 고시생들은 전혀 긴장한 표정없이 없드려 자거나.고사장 밖으로 나가 친구들이랑 농담을 하며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런 고시생들은 십중팔구 올해 처음2차시험을 보는 이른바 '초시생'들이다.

 물론 처음2차시험을 봐서 합격하는 몇몇의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처음2차시험을 봐서 덜컥붙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참가하는데 의의를 둔 이른바 '올림픽정신'으로 시험을 보는 이들이다. 그러니 시험장에서 특별히 긴장할 필요도 없다.

또 공부도 제대로 해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답안지에 특별히 쓸말이 생각나지 않아 법전을 그대로 베끼거나 그림을 그리거나.혹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 가사를 적어 내는 초시생들도 있다.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일화가 되어 좋아하는 가수노래가사를 적어 냈더니 점수가 20점도 안나왔다느니 난 그림그렸는데 30점을 주었다느니 하는 고시생들사이에 우스겟소리의 소재가 되어 전설처럼 고시촌을 맴돈다.


3.마지막 일분일초까지 책에서 손을 놓지 않는 고시생들

 드디어 시험시간이 점차다가온다. 정확히 10시에 시험은 시작해서 2시간동안 치루어진다. 9시30분쯤 감독관이 입회해 입실인원등 여러가지를 체크하고 얼마후 감독관은 모든 고시생들이 고사실에 입실할것을 통보한다.

 그러나 대부분 고시생들은 입실하지 않고 고사실밖에서 그들이 마지막 볼책을 가지고 나가 계단에 털석 앉거나 고사장 밖 벽에 기대에 마지막 순간까지 책장을 넘긴다. 화장실에 갈때에도 두꺼운 법서를 들고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일반인들이 이장면을 본다면 십중팔고 저사람들 미쳤다고 할것이다.

수많은 고시생들이 그냥 책을 선풍기 돌리듯 막 넘기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게 과장해서 말한다면 초당 10페이지 이상을 막 보면서 넘겨 버린다. 이러니 저사람들 고시공부 너무 오래해서 미쳐버린거 아니냐는 말을 할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미친것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회독수를 거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카메라가 풍경을 찍듯이 눈에 책장을 넘기면서 책의 내용을 찍어 기억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그들은 감독관의 마지막 입실통보가 있을때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다.솔직히 마지막에 이렇게 책을 보는것이 큰도움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불안감과 자기위안을 위해 그렇게 끝까지 책을 붙들고 있는 것이다.

 고사장 밖에서는 그들을 데리고 온 일부 부모님이 끝까지 남아서 그들의 아들딸이 부디 시험을 잘보기를 간절히 바라며 발을 동동구르며 서있다.


4.시험시작전의 숨막히는 긴장감

 드디어 시험시작 얼마를 남겨놓고 8페이지에 해당하는 답안지와 법전이 배부되었다. 2차시험은 법전이 배부가 된다. 2시간의 시험시간동안에 유일하게 볼수 있는 책이 법전인것이다. 2차고시생의 유일한 최후의 무기라고 할수 있다.


 법전이 배부되자 마자 고시생들은 누구나 할것없이 법전을 펴서 연필이나 볼펜을 가지고 법전의 주요조문에 알기 쉽게 표시를 하거나 또 법전의 첫페이지를 접어 주요 법을 확인할수 있도록 저마다의 노하우를 가지고 법전을 자기것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첫째 시험시간과목이 헌법인데 헌법의 경우에 나오는 법은 헌법.국회법.헌법재판소법등인데 그러한 주요법들의 주요조문을 표시하고.헌법.국회법.헌법재판소법이 법전의 어느 페이지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첫페이지를 접는 방법등으로 쉽게 찾을수 있도록 만드는것이다.2시간의 시험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단 몇초라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그런 작업을 대부분 한다.

 시험시간 몇분을 남겨놓고 드디어 문제지를 가지고 온 시험감독관이 고사실에 도착하고 감독관들은 문제지를 각 고시생들에게 나누어준다.이때부터 시험시작하는 시간까지가 가장긴장된다. 단 몇분의 시간이 몇십분 아니 몇시간처럼 느껴진다.

 가슴은 콩당콩당 주체할수 없을정도로 뛰기 시작하고.과연 내가 준비한 문제가 나왔을까? 전혀 준비하지 않은 이른바 '불의타'가 나오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부터 온갖생각이 다들기 시작한다.

고사실은 알수 없는 적막감과 팽팽한 긴장감이 흘러 마치 숨이 막혀 질식할것만 같다. 고시생들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있다. 깊은 한숨을 내쉬는 고시생.지긋히 눈을 감고 마음을 가다듬는 고시생.숨막히는 긴장감에 다리를 떠는 고시생 모두 각각의 방법으로 긴장감을 해소할려고 노력하지만 긴장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이때의 심정은 마치 이런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하나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라는 영화 아니 씨리즈물이 있는데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수부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그영화 2편을 보면 모든 훈련을 마치고 공수부대원들이 이른바 디데이 즉 노르망디 상륙작전전날 적진 한가운데 깊숙히 비행기를 타고 투입이 되는 장면이 있다. 적들이 우글거리는 적진에 투입되기 직전의 공수부대원들은 자신들에게 과연 어떠한 일들이 벌어질지 살아갈수 있을지.죽어서 나갈지 하는 두려움과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있는데.아마도 바로 시험시작 몇분전의 고시생들도 적진 깊숙히 투입되기 직전의 공수부대원들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5.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마침내 시작되는 2시간동안의 열전

그리고 마침내 긴 호루라기 소리를 시작으로 인생을 좌우할 시험시간이 시작된다. 긴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고시생들은 본능적으로 문제지에 부착된 스티커를 제거하고 문제를 읽기 시작한다. 긴문제를 읽으면서 등장인물.일시.사건의 개요등을 초안지 혹은 문제지에 계속 체크하면서 읽어야 한다. 잘못하다가는 갑의 사건을 을로 착각한다거나.일시등을 착오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답을 쓰는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고사장에는 긴적막감속에 빠르게 초안을 잡기위한 딱.딱.딱 하는 볼펜소리만이 들려온다.초안을 어느정도 잡은 고시생은 이제 필사적으로 8페이지의 답안지를 써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여간 힘든일이 아니다. 보통 4페이지정도의 분량을 적으면 손과 팔목.어깨등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답안쓰는것도 하나의 체력싸움이라고 볼수 있다.

 그리고 자칫 잘못하다가는 시간초과로 제대로 답안을 쓰지 못한다거나 분량초과 즉 5점이나 10정도 밖에 배점이 안된문제를 자신이 아는 문제라고 해서 이것저것쓰다가 나중에는 중요한 30점짜리 문제를 달랑 몇줄쓰고 나오는 어이없는 실수를 할수도 있기 때문에 고시생들은 이것저것 다고려해서 답안을 써야만 한다.답을 적는 중간중간에도 내가 지금 주요논점을 빼먹고 있는것은 아닌가? 등장인물을 착오하고 있는것은 아닌가를 계속 점검해보아야 한다.

그렇게 정신없이 답안을 쓰다보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 2시간의 시험시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그야말로 본능적으로 정신없이 답안을 써나간다. 대부분의 고시생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글씨는 나자신만이 알수 있는 지렁이 글씨로 변해버리고  손은 마치 타자기처럼 본능적으로 막움직이게 된다.

그렇게 본능적으로 쓰다보면 어느덧 시험시간종료를 알리는 긴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감독관은 엄격한 표정으로 쓰고 있는 필기구를 모두 내려놓으라고 지시한다.과거에는 시험시간 종료후에도 어느정도 답안을 작성하지 못한 고시생을 배려해 시간적 여유를 주었지만 최근에는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어 시간통제가 엄격해졌다.

그래서 만약 시험시간 종료후에도 답안을 계속 작성하는 학생이 보이면 다시한번 경고를 하고 경고후에도 행위가 계속되면 답안지를 회수해 영점처리하고 그학생은 실격시켜버린다. 이렇게 실격되는 경우가 일년에 몇번씩 발생한다. 몇점을 더 획득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영점처리되고 감독관에게 울며사정하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는 상황에 되어버리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6.2시간의 시험후 찾아오는 2시간의 휴식과 2시간의 시간

 그렇게 오전시험이 끝나고 약2시간의 점심시간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입맛이 없다. 그러나 이미 지칠대로 지친 체력을 회복하기위해서도 먹어야만 한다.

주로 고시생들은 소화기 잘되는 죽등을 싸오거나 대학 고시반에서 제공해주는 도시락을 먹는 경우도 있다. 또 시험시간 내내 고시장 주위를 맴돌며 초조하게 자신의 아들딸을 기다리다가 점심시간에 손수마련한 정성이 가득한 도시락을 부모님께서 주시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나같은 경우는 중앙대에서 아는 사람없이 혼자 시험을 봤기 때문에 도시락을 싸오기도 귀찮고 또 몸살감기까지 걸려서 학교식당에서 파는 햄버거와 콜라를 사서 간단히 먹었는데 도무지 입에 넘어가지 않아서 반도 못먹고 그대로 버릴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간단한 점심식사후 고시생들은 쉴틈도 없이 다시 오후과목을 위해 책을 붙잡고 다시 선풍기처럼 책을 빠른속도로 넘기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시 오후시험시간이 되고 또 2시간의 치열한 열전이 시작된다.

 마침내 오후4시 오후시험종료를 알려오는 긴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오고 그날 하루의 시험은 끝을 맺는다. 고시생은 하루 4시간의 시험시간에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다. 그러나 그나마 하루의 시험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큰논점을 놓치거나 시험을 망친이들은 암울한 표정을 보이기도 한다.


7.시험후 또하나의 혼란과 경쟁 시험장소 빠져나가기

 시험을 마치고 수많은 고시생들이 지친 표정으로 법대건물을 빠져나오고 있다. 이미 4시간동안에 그들이 가진 모든 열정을 쏟아부었기 때문에 많은 고시생들은 이미 힘이 빠져 초췌한 표정으로 고사장을 빠져나온다. 고사장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자신의 아들딸들을 기다리던 부모님들은 그들의 소중한 자식들을 발견하자 마자 와락 끼어안거나 손을 꼭 붙잡고 수고 했다며 말을 건내고 즉시 자신들의 차로 향한다.

시험이 끝난후 고사장은 또하나의 혼잡스러운 상황이 연출된다. 시험을 마친 고시생을 태우고 다시 그들의 집이나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대 근처 주차장에 수많은 검정색 모범택시의 기사님들은 그들을 예약한 고시생들이 확인하기 쉽게 큰 하얀색 종이에 그들 모범택시를 표시하여 고시생들이 가능한 빨리 탑승하도록 한다.

또 각종 고시학원에서 대절한 대형 관광버스들도 문을 열어놓고 고시생들을 기다린다. 이미 그들의 자녀를 태운 부모님의 차들은 고사장을 빠져나가기도 한다.수많은 모범택시.학원버스.승용차등이 어우러져 고사장은 또한번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긴 차량행렬이 긴 꼬리를 이루어 빠져 나가는 것만도 한참이 걸린다.

 그들은 그렇게 시험으로 지친몸을 잠시나마 모범택시등의 의자에 누이고 또 내일있을 시험을 준비해야만 하기에 잠시나마 맘이 편할수가 없다. 또 내일 있는 시험은 가장 양이 많은 과목중에 하나인 민사소송법과 상법이라는 괴물이 큰 아가리를 벌리고 그들을 삼켜버릴듯한 기세로 달려오기때문에 그들은 벌써부터 2과목을 어떻게 다보야 하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