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에 서산에서 재판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조정기일이었는데 별다른 성과없이 양측 당사자의 감정의 골만 깊어졌기에 다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버스에 탔다. 피곤함이 몰려와 주변의 풍경을 볼 여유도 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 그리고 버스는 약 2시간여를 달려 터미널에 도착했다.

 나른한 몸을 이끌고 버스에 내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대학후배 녀석을 우연히 만났다. 말이 후배이지 9살 정도 차이나는 녀석이었다. 대학 선후배 모임에서 만나서 간간히 연락하던 녀석이었는데, 그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오래간만에 본 것이다.

  녀석은 강남의 어학원으로 향하고 있던 중이었다. 녀석은 무척이나 피곤한 모습이었다. 이제 취업을 걱정해야 할 나이가 되어서 이른바 스펙관리하느냐고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학점은 기본적으로 따 놓아야 하고, 토익도 900점이상은 획득해야 그나마 괜찮은 직장에 면접이라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고, 그외에도 각종 자격시험 등을 보아 스펙을 갖출 수 있는 만큼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녀석의 한숨은 아무리 스펙을 갖추어 놓아도 녀석이 원하는 이른바 좋은 직장은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청년실업 어느덧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어버렸다. 젊은이들이 원하는 고용이 보장되고 적장한 임금이 보장되는 이른바 좋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젊은이들은 취업난의 고통속에 실업자로 내몰린다.

 사회는 점점 좋은 스펙을 요구하고, 얼마 안남은 좋은 일자리를 위해 젊은이들을 경쟁의 굴레로 몰아넣는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만 해도, 나름대로 대학의 낭만이 있었다. 1.2학년 때에는 마음껏 놀아도 괜찮았다. 선동열의 방어율과 비슷한 학점이 나와 학사경고장이 나와도 대학생활에서 한번쯤은 경험해봐도 되는 그런 것이었다.내가 대학에 갓 입학했을때만 해도 졸업을 앞둔 선배들은 취업이 될까라는 걱정보다는 여러개의 회사 중에 어디로 골라 갈까 하는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그만큼 그 시절은 청년들의 일자리가 보장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IMF가 오고, 무한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평생 보장되었던 평생 직장의 개념은 사라졌고, 수시로 반복되는 구조조정, 40대만 넘어서도 퇴직을 걱정해야 하는 고용불안, 값싼 노동력을 선호하는 대기업의 행태로 인한 비정규직의 양산 등으로 젊은이들이 원하는 질 좋은 직장의 수는 줄어만 갔다. 

 국민소득 2만달러가 넘어가고, 무역규모가 1조원 달러를 넘어갔다고 정부에서는 연일 자랑질을 하고 있지만, 국민소득이 채 1만달러가 안되었던, 그러나 아버지의 퇴근길에는 자식을 위한 따스한 치킨이 들려있던 그 시절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국민소득 2만 달러의 혜택은 몇몇 가진 자에 편중되고, 무역규모 1조 달러의 달콤함은 몇몇 대기업만 누릴 수 있고, 그로인한 빈부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개천의 용은 사라졌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어쩌면 아버지가 부유층이 아닌 한 신분의 장벽을 영원히 넘어 설 수 없는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88만원 세대라는 비아냥 거림을 들으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잃어버린 세대'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다음에 또 보자며 성급히 지하철역에서 내리는 녀석의 축 처진 어깨를 바라보며, 오늘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깊은 한숨과 고뇌를 느낄 수 있기에 집으로 오는 내내 측은함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