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아픔을 함께하는 변호사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1. 5. 6. 10:04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징검다리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지만, 오후 내내 재판일정이 잡힌 나는 다소 짜증이 났던 하루였다. 간단한 공시송달 사건이지만, 여러개의 사건이 시간을 달리하며 잡혀 있었기에 오후시간 모두 법정에서 소비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소송기록을 챙겨 무거운 마음으로 법정으로 향했으나. 머리속에는 여전히 사무실에 쌓여만 있는 복잡한 사건들이 빙빙 돌았다.

 오후 2시 30분 재판이어서 2시 20분 정도에 법정에 도착하니, 연휴를 하루 앞둔 날이어서 그런지 변호사, 소송 당사자들로 붐볐다. 오늘도 재판이 늦게 끝나겠구나 하는 불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2시30분 사건은 3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리고 3시 15분 사건은 3시 40분이 넘어서 끝났다. 다음 사건은 4시 예정이었으나. 재판의 진행 속도로 보아 4시 30분이 넘어서 진행될 것이 분명해보였다.그래서 3시 15분 사건을 마치고 법정을 나와 자판기에서 쓰디쓴 커피한잔을 뽑아 잠깐 동안의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도중에 나이가 많이 드신 할머니와 젊은 여성 한분이 법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젊은 여성은 할머니에게 항상 밝은 웃음을 보이며, 이것저것 설명을 하고, 걷기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부축해주기도 했다. 얼핏 보기에 그 할머니의 딸이나 손녀처럼 보이기도 했다.

과연 그들은 어떠한 사연으로 법정에 온 것일까? 하는 잠시 동안의 궁금증이 있었지만,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의 궁금증도 사라지고, 커피를 모두 마시고 기지개를 펴고 4시가 거의 다되어 다시 법정에 들어섰다.

법정은 여전히 복잡했고, 4시가 되었지만 여전히 3시 40분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사무실에서 가져온 민법관련 서적을 읽고 있었다. 수많은 당사자, 변호사들이 재판을 진행하고 법정에 들어오고 나가고를 반복하며 그렇게 더디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4시 30분 경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에 온몸이 꼬이며 내 재판은 언제 진행되나 하며 지루해하고 있을때, 법정의 피고석에 휴식을 취하며 눈여겨 보았던 할머니와  젊은 여성 한분이 나왔다.

재판의 진행과정을 들어보니 할머니의 가족중 한명이 할머니 명의의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고 대금을 지급하지 아니하여 발생한 소송인 듯했다. 할머니를 부축해 피고인 석에 앉은 밝은 표정의 젊은 여성을 보고 재판장은 처음의 나의 생각처럼 할머니의 따님이냐고 물어보았다. 누가 보아도 젊은 여성의 할머니에 대한 다정다감한 모습을 보고 딸이나 손자 등 가족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젊은 여성은 법률구조공단 소속의 여성 변호사였다. 그 변호사는 우선 신용카드신청서 등 처분문서에 대해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고, 소멸시효 완성을 항변하였고, 재판장은 다음기일을 잡고 재판은 끝났다.

  그리고 나의 간단한 재판이 진행되었다. 마지막 남은 한건을 위해 긴긴시간을 기다렸으나. 채 5분도 안되 마지막 사건의 재판 진행은 끝났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4시 50분을 지나가고 있었다.

서류가방에 피곤에 지쳐, 소송관련 서류를 넣고 법정을 나와 힘없이 걸어갔다. 여전히 황사의 영향으로 하늘은 뿌옇기만 했다. 그런데 내 앞에 방금전에 보았던 할머니와 법률구조공단 소속 여성 변호사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변호사는 할머니에게 재판이 끝나고 나서도 이것저것 재판 진행과정을 다정하게 설명해주었고, 재판의 결과에 대해 걱정하는 할머니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위로의 말도 다정다감하게 건냈다. 할머니는 연신 이렇게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표현을 했고, 변호사는 마치 딸처럼 다정하게 자신이 해야 할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변호사는 법원에서 나와 아마도 할머니와 반대방향인 정문쪽으로 나와야 하는 듯 했으나, 할머니가 안쓰러웠는지 할머니에게 길을 안내해주겠다며 할머니를 부축하여 후문쪽으로 사라져갔다.

지루하게 진행되었던 재판에 다소 짜증이 났던 나는, 마치 모녀지간 같았던 할머니와 여성 변호사를 보며 마치 한여름의 짜증나던 무더위 속에 시원한 소낙비를 만난 것 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도 그 여성 변호사는 진정하게 만족하는 변호사의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변호사는 나에게 앞으로 나의 변호사의 삶에 대한 과제를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