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길목에 찾아온 이별

가사소송 2012. 8. 14. 13:29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아마도 작년 여름이었을 것이다. 올해만큼은 아니지만 작년의 8월도 에어컨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무척이나 더웠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쏟아지는 한여름 재판을 마치고 사무실에 땀에 젖어 축 늘어져 있을 때 70대가 넘어 보이는 단아한 모습의 할머니 한분이 찾아왔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법률상담 받기를 원하는 할머니가 있다고 소개를 받았는데, 그 할머니께서 찾아오신 거였다. 우선 할머니를 상담실로 모셨다. 할머니께 어떠한 일로 상담받기를 원하시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시더니, 지금까지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남편과 이혼을 하고 싶다고 하셨다. 단아하신 할머니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나는 다소 놀랐다. 왠지 세상의 풍파를 겪지 않고 곱게 늙으셨을 것 같은 할머니의 모습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의사는 단호해보였다. 그래서 할머니께 수십 년 동안 남편과 함께 해오시다가 왜 이제야 이혼을 결심하셨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요즘 증가하고 있는 전형적인 황혼이혼이였다. 남편은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인물이었다. 남편은 부모로 부터 물려받은 재산과 사업의 성공으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자식과 할머니에게 선물하였지만, 가부장적인 행태로 할머니를 인격적으로 대우하지 아니하였고, 젊은 시절에는 바람도 피웠다. 할머니는 남편의 그러한 태도를 인내하며 살았다. 그러나 남편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나이가 들어서도 바뀌지 아니하였고, 심지어 술을 마시면 폭력까지 행사했다.

  이에 할머니는 10여 년 전 부터 자식들이 장성하여 결혼을 마치면 이혼을 하리라고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막내딸이 마지막으로 결혼을 하였고, 할머니는 마침내 이혼하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할머니의 사연을 한참 들었다. 누가 할머니의 황혼에 결심한 이별 준비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혼소송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법정에서 서로의 상처를 들추어내어 잊고 싶었던 아픔을 공개하며 그로인한 갈등의 폭은 깊어만 간다. 이러한 이혼소송의 고통을 할머니께 설명하며 상담 등을 통하여 남편을 변화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며 나는 할머니의 이혼소송을 막으려했다. 이혼소송 진행과정에서 겪을 할머니의 심적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의 이혼의사는 확고부동이었다. 그러한 할머니를 더 이상 설득할 수 없었고, 결국 이혼소송을 진행했다. 할머니의 이혼소송은 예상했던 만큼 법정에서 서로의 잊고 싶은 상처, 아픔을 끄집어내며 진행되었다. 더욱이 가슴이 아픈 것은 상당한 규모의 재산을 두고 둘러싼 자녀들의 다툼이었다. 자녀들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할머니와 남편의 편으로 나누어져 소송의 당사자인 할머니와 남편보다 더 심하게 다투었다. 할머니의 이혼소송으로 그나마 단란했던 자식들의 사이도 이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된 것이다.

  소송을 진행하면서 누구를 위한 이혼소송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한때 화목했던 자녀들은 재산문제로 인하여 이제는 원수가 되어있는 상황이고, 할머니와 그 남편은 법정에서 끄집어진 아픈 상처에 눈물을 흘리울 뿐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한가운데서 수많은 고통들이 찾아오지만 가족으로부터 오는 배신과 아픔은 그 어떠한 고통보다 참혹한 것이다.

 가족 간의 더 이상의 상처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조정기일을 요청하였고 수차례의 조정을 통하여 이혼절차는 더 이상의 상처 없이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할머니와 그 남편. 자식들 간의 갈등은 쉽사리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절차가 마무리되자 할머니는 홀가분하다고 하였다. 수십 년 동안 남편의 폭압에 시달려온 자신에게 이제 자유를 주고 싶다고 하셨다.

 언론에서 수년전부터 밝힌 것처럼 최근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 질서에서 벗어나면서 그 동안 억압되어 왔던 여성이 이러한 억압된 상황을 수인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일 것이다.

  하지만 이혼소송은 지루하게 진행이 되고, 서로의 상처를 끄집어내야만 하기에 서로를 힘들게 한다. 시대는 변했는데 여전히 가부장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남편들은 변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하지 못한 아내의 이혼통보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혼은 신중해야만 한다. 이혼소송의 과정에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혼에 앞서 심리전문가, 가정문제 전문가 등의 상담을 통해 서로의 갈등의 원인을 찾아내고 그 원인을 해결하는 방안을 우선 모색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름다운 황혼의 길목에 아픈 생채기를 남기는 것은 서로에게 큰 슬픔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