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촌 입성기(고시촌 탈출기 1)

좌충우돌고시촌탈출기 2012. 2. 4. 07:00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신림동 고시촌에서 본격적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대한민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였다. 비록 법학을 전공하기는 하였지만 나는 법학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다기 보다 적성에 맞지 않았다. 대학 1학년때 처음 접한 민법총칙은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다. 외계어 같은 각종 법률용어, 이론 등은 아 내가 괜히 법학을 전공했구나 하는 충격을 주었고 나는 1학년을 마치고 즉시 군대로 도피를 택했다. 그만큼 법학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강릉에 침투한 무장공비와 열심히 싸우고, 제대를 하고 보니 대한민국은 듣지못했던 외환위기로 건국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었고,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던 직장은 이제 실업자를 양산하며 수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시골에서 힘겹게 자식뒷바라지를 하는 부모님을 생각해서 난 안정적인 무엇인가를 해야했고, 그렇게 택한 것이 결국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사법시험 준비였다.

  그러나 쉽게 고시공부를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난 2002년 월드컵의 분위기에 취해 신나게 거래에서 친구들과 "대한민국"을 외친 후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조용히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그리고 신림2동 산꼭대기에 위치한 조용한 원룸에 정착했다. 그때가 아마도 2002년 가을 무렵이 아닌가 생각된다. 혼자 조용히 입성한 고시촌은 나에게 어색했고 쓸쓸했다. 생전 처음 고시식당에서 아무도 모르는 이들과 섞여 혼자 밥을 먹는 것이 가장 어색했고, 독서실에서 하루 종일 법서를 바라보는 것도 민법총칙의 충격에 군대로 도피했던 나에게는 신기하리 만큼 어색했다. 독서실 책상에 조용히 공부해달라며 음료수 하나와 메모지를 받은 것도 어색했다. 그러나 가장 어색한 것은 하루종일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는 고립무원의 무인도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때였다.


쓸쓸함, 독서실에서 힘겨운 공부를 마치고 달빛을 조명삼아 산꼭대기 원룸을 꾸역꾸역 올라 갈때는 쓸쓸함을 넘어서는 표현할 수 없는 처량함이 밀려들어 왔다. 고시촌에서의 몇달의 생활을 통하여 수시로 받는 조용히 해달라는 메모지, 고시식당에서의 어색한 식사 등 등이 익숙해졌지만, 쓸쓸함과 외로움은 여전히 어색한 친구였다.

  더욱 나를 당황시키는 것은 역시 법학이라는 과목에서 오는 어색함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니 모든 것들이 구멍이었다. 민법은 여전히 외계어처럼 들려오고, 형법총칙의 이론들은 내가 법을 공부하는 것인지, 철학을 공부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난해했다.

 그러나 신림동 고시촌에 꿈을 품고 입성한 이상, 즉 사나이가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썰어야했다. 어떻게 해서든 1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밤공부를 마치고 원룸에 돌아와 창문을 열면 신림동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여기 이곳을 내가 벗어 날 수 있을지, 아니면 패배자가 되어 쓸쓸히 퇴장할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밀려왔다. 난 과연 신림동 고시촌을 탈출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의 신림동 고시촌 생활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