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중앙지방법원을 향하여

지난 4월 3일 사법연수원생으로서 처음 경험한 법정 방청이 있었다.대학시절에 형사법정을 방청한 경험은 있었지만 민사법정을 방청하는 것은 처음이라 다소 설레였다.법정방청장소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었다.오전 법정이 열리는 10시전까지는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4월3일 오전 지하철을 타기로 마음먹고 아침일찍 일어나 차가운 아침바람을 맞으며,정발산역으로 향했다.

정발산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을 탔고,지하철은 굉음을 울리며 빠른속도로 서울을 향해 달렸다.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한시간정도가 지나고 나니 최종목적지 교대역에 도착을 했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열차는 사람들을 토해냈고,나또한 그 대열에 합류해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향했다.너무 빨리 왔기 때문인지 조원들을 찾지 못했고.한참을 서울에 처음 올라온 시골의 촌부처럼 법원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렸다.


 약 20여분간의 시간이 흐른후 조원들과 지도교수님을 만났다.그리고 곧바로 우리가 방청할 민사17부로 향했다.약 40명의 연수원생들로 법정의 방청석은 꽊찼다. 연수원생들은 저마다 상기된 얼굴로 어떠한 사건이 심리되고.쟁점이 무엇이 될지 궁금해 하며,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치열한 법정공방의 열기로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던 법정


 그러나 3인의 판사님이 곧바로 입장을 하시며 재판정은 순간 고요한 침묵과 긴장감이 흘렀다.그리고 고요한 침묵속에 곧바로 사건의 심리가 개시되었다.


 각 원고와 피고측의 소송대리인은 법정에서 치열한 법정공방을 펼쳤다.원고측은 각종 증거자료와 함께 그들의 논거를 주장하며 그들이 승소해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이에 대해 피고측은 각종 반박자료와 증거를 제출하며.원고측의 청구요건사실에 대해 항변사항을 주장하며 그를 입증하려고 노력하였다.연수원에서 교과서로만 배워왔던 원고측의 청구요건사실의 주장입증,피고측의 항변사항의 주장입증,그리고 다시 원고측의 재항변등을 실체적으로 익힐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치열한 법정공방으로 인해 법정은 팽팽한 긴장감과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재판장님은 조용하면서도 절도있는 목소리로 각 소송대리인의 법정공방이 가열된다 싶으면 적당히 쟁점을 정리해 사건의 쟁점을 명확히 하고,불분명한 쟁점은 보충질문을 하면서 사건을 정리해 나갔다.그두꺼운 기록속에 쟁점이 되는 포인트를 정확히 찍어내는 재판장의 능력에 감탄을 했다. 


 끝날것 같지 않았던 치열한 첫사건에 대한 법정공방이 끝난후 잠시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잠깐동안의 휴식기간동안에 연수원생들은 각기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며 원고와 피고측의 어느주장이 타당한지 그들의 설전을 버렸다. 마치 작은 모의법정이 만들어진것 같았다.



3.숙연해진 법정


 그리고 다시 11시경부터 사건의 심리가 시작되었다.11시경이 되자 연수원생들로만 꽊차있던 법정방청석이 머리가 희끗희끗하신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할머니들께서 입장하셨다.갑작스럽게 늘어난 방청객으로 인해 자리가 부족해지자 연수원생들은 할아버지.할머니께 자리를 양보하고 법정끝으로 가 서서 방청을 했다.


 도대체 어떠한 사건이길래 갑작스럽게 방청객들이 오신것일까? 생각을 했는데,알고보니 ‘인혁당사건’이었다.우리에게 너무나 잘알려져 있는것처럼 ‘인혁당사건’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져 최근에 재심을 통해 대부분 무죄판결을 받자,이에 대해 국가의 위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었다.


 이미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었기 때문에 국가를 대리한 소송대리인도 대부분 요건사실을 인정하고 다만 손해배상금이 과다하다는 이유로 감액만을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원고측의 대표자께 말씀을 하실 기회를 주셨고,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께서 일어서서 국가의 권력에 의해 조작된 사건으로 자신 및 가족들은 큰 가슴속에 상처를 새긴체 숨죽이며 살아왔다며 눈시울을 붉히셨고,앞으로 다시는 이런 억울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다.

 법정은 숙연해졌다.내옆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 한분은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계셨다.사건 심리가 모두 끝나자 연신 눈물을 훔치시던 할머니께서 일어서시며 나에게 사법연수원생이냐고 물어보셨다.나는 짧게 “네 그렇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나를 바라보시며 “공부 열심히 하라”고 짧게 말씀하시며 떠나셨다.아직도  연신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있던 할머니의 슬픈모습이 오버랩된다.수십년의 세월동안 가슴속에 남아있는 그 상채기는 아무리 국가가 뒤늦게 반성하며 그들에게 금전적 손해배상을 해준다고 해도 결코 아물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사법불신의 시대에 살고 있다.어쩌면 그러한 사법불신의 원인은 과거 권력의 공포로 부터 사법부가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일수도 있다. 오늘날 사법부는 이런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의 불신은 높기만 한것같다.이점은 지도교수님들도 항상 염려하며 안타까워 하는 부분이다.

 할머니께서 연수원생들에게 연신 눈물을 흘리시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라"며 짧게 던진 한마디는 그 어떠한 조언보다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다.권력으로부터.온갖 유혹으로부터 굴복하지 않는 정의로운 판결을 하라는 의미일것이다.비론 나는 판사로 임관할 능력은 없겠지만 앞으로 법조인 생활을 하면서도 그할머니의 눈물의 의미를 항상 되새기도록 할것이다.



4.법조인의 길을 향한 한단계 걸음


 법정방청이 끝난후 지도교수님께서는 우리조원들을 모아놓고 우리가 만약 앞에서 방청한 사건의 원고나.피고측의 소송대리인이라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조언해주셨다.


 법정방청을 통해서 그리고 교수님의 조언속에 아직도 부족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스스로 걸을수도 없지만 한단계 법조인의 길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법정방청을 마친후 일산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맡긴체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지만 그 풍경속에 연신 눈물을 흘리던 방청객속의 할머니 모습이 보였다.


 재판장의 잘못된 판단과.변호인의 잘못된 변론이 그 당사자에게는 돌이킬수 없는 인생에 있어서 큰 아픔을 줄것이다.결국 그러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공부에 매진하는 길밖에 없음을 깨닫고 또한 당사자와 재판부의 충분한 의사소통과 구술심리가 시행되고 있음을 경험한 소중한 법정체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