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달간의 법원 시보를 드디어 마쳤다.새벽의 고요함을 깨고 봄을 시샘하듯 하늘은 하얀 눈을 바람소리와 함께 뿌린다.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바라보며 이글을 쓴다.아마도 올겨울의 마지막 눈일것이다. 

 40기 사법연수원생은 이제 1년차 과정을 마치고 각 시보생활을 하고 있다. 난 처음으로 법원시보생활을 하게 되었다. 법원시보는 각 형사.민사판결문 작성.조정.영장기록검토등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법원시보생활중에 가장 하이라이트는 아마도 국선변호일것이다. 시보기간동안 의무적으로 2건이상의 국선변호를 하도록 되어있다. 실질적으로 법정에서서 피고인을 위해 변호를 해야하는것이다. 연수원 생활동안 실무경험을 처음하게 되는 그런 사건이다. 처음 국선변호 사건을 배당받아 법정에서 피고인 신문을 하고 판사님께 피고인을 위한 최후변론을 하던 그때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기록을 들고 법정의 변호인석에 앉으니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고 떨렸다.그러나 피고인을 위해서라도 정신줄을 놓으면 안되었다.심호흡을 크게 하고 집중해서 피고인 신문사항을 검토하고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니 다행히 긴장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

 국선변호인에 선정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피고인을 접견하기 위해 구치소로 향했다.과연 피고인은 아무런 경험도 없는 초짜 사법연수원생을 그를 조력할수 있는 변호인으로 신뢰할까하는 두려움도 들었다.

 마침내 구치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절차를 마치고 접견실에서 피고인을 기다렸다.이미 접견실에는 많은 변호인과 피고인들이 접견을 하고 있었다.가방에서  피고인에 관한 기록을 꺼내 다시 한번 천천히 읽었다. 

 내가 국선 변호를 담당한 피고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다.무엇이 이 사람을 범죄의 길로 이끈것일까? 기록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곰곰히 생가했다. 또 내가 이사람을 위해 무엇을 변호해야 하는 것일까? 피고인은 이미 모든 범죄사실을 자백했기 때문에 특별히 법률적 쟁점이 없는 사안이었다.다만 피고인이 범죄전력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정상관계를 강조해 실형을 피하는 방법을 모색할수 있을 뿐이다.

  약 10여분이 흐른후 피고인이 찾아왔다.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피고인은 자리에 앉았다.난생 처음으로 보는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피고인의 모습.나도 모르게 다소 긴장했다. 간단하게 내가 지금 앉아 있는 피고인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음으로 알리고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피고인은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기 때문인지 많이 긴장하고 두려워하는 기색이 확연히 드러났다.피고인이 왜 이범행을 저지르게 되었는지부터해서 범죄사실을 모두 인정하는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피고인의 가족관계.어린시절,경제적 상황등 정상관계를 참조하기 위한 질문을 했고, 피고인은 차분하게 대답을 했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면서 피고인을 바라보니 피고인도 우리 보통사람과 다를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피고인도 이사건 범죄를 저지른것에 대해 깊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는 생계형 범죄로 그렇게 죄질이 중한 범죄가 아니었기에 더 가슴이 아팠다. 

  초범이고 죄질이 중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실형이 선고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피고인을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약 한시간정도의 피고인과의 접견을 마치고 구치소를 나왔다. 나도 모르게 피곤함이 밀려왔다. 

  법과 정의 그것은 무엇일까? 어찌 보면 모순덩어리처럼 보인다. '죄를 지은자는 반드시에 그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정의일것이다. 그러나 법도 눈물을 흘린다. 지나친 온정주의는 피해야 할것이지만,엄정한 처벌만이 정의롭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수 있는 기회는 주어져야 하는것은 아닐까?

집으로 오는 도중이 깊은 한숨을 계속 내리쉬던 피고인의 모습이 창밖에 스쳐갔다. 

 기일에 제출할 변론요지서와 피고인신문사항을 작성했다.자백한 사항이라 중요한 법적쟁점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관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피고인 신문사항도 피고인이 왜 이러한 범행을 저지를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는지 피고인이 많은 반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두어 작성할수 밖에 없었다. 

  또 피고인이 취한 범죄수익을 피고인이 그대로 보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피고인의 가족에게 일정부분 복지단체에 기부할것을 제안했고 피고인의 가족도 흥쾌이 수락해주어 피고인의 가족이 일정부분의 금액을 기부하고 그 영수증을 제출받아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드디어 변론기일이 열렸다.변호인석에 앉아 맡은 사건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기록을 차근차근 다시 한번 살피고 피고인 신문사항을 다시한번 검토하고 변론요지서 또한 검토해 최후변론할사항도 정리하였다. 

 피고인이 호명되었고 변호인석에 앉았다. 변호인석에 앉아 보니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몰려왔다. 피고인에 대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증거조사가 시작되었다. 피고인이 범죄사실을 모두 자백하여 간이공판절차로 재판은 진행되었다. 증거조사가 끝난후 피고인 신문이 진행되었다. 

  나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피고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나 신문이 진행되면서 다소 떨리던 목소리도 어느덧 안정감을 찾아갔다. 피고인의 정상관계를 가능한 많이 부각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약 30여개 이상의 질문을 마치고 피고인 신문을 끝냈다. 다른 이에게는 짧은 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무척이나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변론요지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최후변론을 하였다. 가능한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번 피고인의 정상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최후 변론이 드디어 끝나고 재판이 종료되었다. 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재판부의 선처를 바란다며 눈물을 흘렸다. 변론을 마치면서 피고인과 간단히 악수를 했다. 피고인의 손은 따스했다.내가 이피고인을 위해서 과연 제대로 변호를 해준것일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내가 아닌 다른 변호인이었다면 숨어 있던 법적 쟁점을 찾아내거나 혹은 정상관계를 더욱 부각시켜 피고인에게 유리한 변론을 해줄수 있었던것은 아닐까 하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변론을 마치고 집에 오면서 나의 잘못된 변론으로 해서 이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들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무능력한 앞으로도 배울것이 많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며칠후 판결선고에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피고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다시한번 기회를 준것이다. 피고인은 과연 선량한 시민으로 살아갈수 있을까?법은 이피고인에게 이번기회에 죄를 깊이 반성하고 소박한 시민으로 살아갈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피고인의 몫이다. 아니 어쩌면 그러한 피고인의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수 있도록 하는 사회정책적 접근방식도 필요할것이다. 

 어찌 되었건 2달간의 법원시보생활은 다시 한번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닭게 하였다. 무료법률상담에서는 아직도 내가 너무나 모르는 영역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조정위원으로 참석한 조정사건에서는 당사자간의 법적 분쟁에 대해 원만한 해결책을 찾아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것은 가를 알게 해주었다. 그리고 국선변호를 맏은 사건에서는 변호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능력한 변호인은 그 의뢰인에게 깊은 상처를 줄수도 있겠구나 하는 반성을 하는 시기였기도 했다. 

 화사한 봄꽃소식을 전해 주여야 하는 3월에 한가운데 봄을 시샘하듯 눈발이 휘날린다. 이번겨울은 유난히 눈도 많이 오고 추웠다. 어둠을 밝혀내는 작은 촛불은 나약하다. 작은 바람에게 꺼질듯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 나약한 불빛에 의지에 길을 찾는 이에게 그 불빛은 유일한 희망일것이다. 나는 과연 누군가에 유일한 희망이 될수 있는 그런 법률가가 될수 있을까?



...........................3월의 눈내리는 새벽 어느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