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망중한

좌충우돌변호사일기 2017. 2. 13. 11:22 Posted by 채희상 변호사

2월의 법원은 한가하다. 인사이동으로 인해 재판기일을 대부분 잡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 또한 2월달에는 재판이 별로 없어 그나마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벌써 3월이 두려워진다. 속속 재판기일이 잡히고 있고 그로인해 3월은 또다시 폭풍재판이 예상된다.

 

어느덧 변호사 생활을 한지도 7년이 되어간다. 30대 초반의 나는 어느덧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고 건강검진을 할때마다 건강에 주의하라는 경고를 받는 40대가 되어있다. 열정으로 시작한 변호사 생활은 이제 복잡한 사건들로부터 며칠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간절한 피곤함에 함몰된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자연인이라는 프로를 자주 본다. 아내는 왜 그런 재미없는 프로를 보냐고 핀잔을 주지면, 모든 욕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간 그들이 하염없이 부러워 대리 만족이라도 얻기 위해 그런 프로를 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거대한 문명이 만들어낸 물질의 풍요로움에 중독되어 있으니, 그래서 더 간절할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생활이 그래도 보람된 순간은 있다. 당사자의 억울함이 그나마 풀리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생각한다. 진실은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증거에 의해 판단할 수 밖에 없는 법원은 자신만이 아는 진실을 못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법정 앞에서 왜 진실을 밝히지 못하냐고 1인시위를 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자신의 억울함을 판결에 의해 해소한 당사자는 행복한 것이다.

 

최근에 선고된 기억나는 사건은, 강제추행으로 기소된 당사자가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약 1년 이상 재판이 진행된 사건으로, 처음에 상담할 당시 당사자는 자신이 왜 기소되었는지 모르겠다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당사자와 상담을 통해 당사자가 강제추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어느정도의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당사자는 이미 기소가 되었다. 기소가 된 사건을 무죄판결 받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우리헌법상의 대원칙이지만 실무적으로 기소가 되었다면 법원은 검사가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기소한 것으로 보기때문에 무죄판결을 받기는 무척이나 어렵다. 그래서 더 고민이었다.

 

그래도 기록에 답이 있었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적이지 않고 모순되는 부분이 많았다. 강제추행을 당한 장소에 대한 진술도 일부 달랐고, 뿐만 아니라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장소는 다수의 목격자가 있을 수 밖에 없는 장소인데, 그 목격자가 전혀 없었다. 더욱이 당시 상황은 당사자 즉 피고인이 강제추행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였다. 또 피해자의 그동안은 언행, 성향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정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결국 1년에 걸친 사실조회, 증인신문 등의 재판진행을 통해 당사자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당사자는 무척이나 기뻐했고, 나 또한 당사자의 억울함이 그나마 해소되었기에 안도했다.

 

또 한주가 흘러간다. 겨울이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지 매서운 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그래도 봄은 오겠지....